귀휴 歸休 (下)
페이지 정보

본문
남자 (마시다 만 차가운 커피를 마저 홀짝 거리며) 아까, 그 사람들 뒤에 조폭이 있다고 했는가?
목소리 옛날에는 틀림없이 그치들 뒤에 든든한 조폭이 있었다네. 지금은 조폭도 기업형이 대세야. 그러니 동네 조무래기라면 몰라도 그쪽에선 파이가 너무 적으니까 구미가 당기지 않겠지.
남자 ??????
목소리 요즘은 경기가 정말 안 좋다네. 그래서 최근엔 저가 연극이 수두룩하지. 이쪽 영업이란 게 전쟁이나 다름없다네. 그러니 전쟁터에서 무슨 반칙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남자 많이 변했어!! 상상도 할 수 없이!!
목소리 걔들도 할 말은 있을 거야. 연극계가 흥행이 안 되니까 무슨 핑계거리가 필요했을 거고…… 그걸 삐끼 탓으로 돌리는 거라고 툴툴거리고 있지.
그렇게…… 앞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면서도 뒤로는 표를 팔아달라고 부탁한단 말이지.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예매 순위를 올리려고 사재기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네.
남자 단속이 있을 것 아닌가?
목소리 그렇지만 말이지…… 구청이나 경찰서에서도 뻔히 눈치 채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어.
남자 그런데 말이지…… 연극계 선배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사이) 그때는 연극판에도 위계와 서열이 있었지 않은가? 동국대파도 있었고 중앙대파도 있었고 드라마 센터파도 있었지. 서로 지켜야 하는 선이……
우린 셋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목소리 그런 건 사라진지 오래야……
남자 즈그들끼리…… 이러쿵저러쿵……
목소리 연극인들이야 앞에서는 삐끼문화가 변질되었다느니,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사이) 걔들이 단지 공연을 알리고 관객을 모집하는 수준을 넘어서 순위조작이나 허위정보의 제공,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다른 공연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지. (사이) 그건 명백한 영업 방해라고……
남자 썩어빠진 경찰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단속을 해야지!!
목소리 경찰 욕할 것도 없다네. 호객 행위는 기껏해야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는 경범죄에 불과해. 누가 그걸 무서워하겠나?
남자 아까 저가 연극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목소리 일단 저가 연극은 제작비가 싸다네. 거 있지 않은가? TV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처럼 권선징악 구조가 명확하지. (사이) 그러니까 개연성과 현실성이 없는 거야. (사이) 처절하게 궁상맞지 않으면 관객을 끌어 모을 수가 없어.
남자 그렇게 흔해빠진 신파조는 언제나 있었던 거 아닌가……
목소리 그렇긴 하네만. 대게…… 그런 연극엔 남녀 두 명씩 4명이 출연한다네. 연극은 매우 엉성하지만…… 그래도 싸구려 배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지.
그리고 소셜커머스에서 천 원짜리 폭탄 세일로 티켓을 마구잡이로 판매하지.
남자 허허!! 기가 막히구만!! 그래가지고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목소리 누적 판매량이 높아야만 소셜커머스 상단에 노출된다네. 그러니까 울며 겨자먹기지만 딴 방법이 없는 거지. (사이) 평일에는 객석에 열 명도 안 차는 경우가 흔해 빠졌는데 차라리 천 원에 덤핑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보는 거지.
남자 !!!???
목소리 겉으로 보면 지금 대학로 연극의 공식 가격은 대략 삼 만 원 선이라고 할 수 있다네. 그러나 삼만 원을 다 내고 보면 호갱 중의 호갱이라고 하지.
정가에서 통상 70퍼센트를 할인해서 만 원도 비싸다는 게 정설처럼 되어있어. 그러니까 팔천 원 안팎으로 실제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거지.
다시 말하면…… 소셜커머스가 득세하면서 만 원 마지노선은 몇 년 전에 이미 붕괴되었다네.
남자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목소리 그렇고말고…… 가격 하락의 일차적 원인은 공급 과잉이라네. 지금은 만 원이면 대학로 모든 연극을 다 볼 수 있게 되었다네.
남자 그때…… 그 시절에도 뒷골목 연극이라고 하는 저가 연극이 제법 있었지. 스토리나 무대는 조잡하지만 코미디와 싼 가격으로 관객을 끌어 모은 거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심한 것 같구만.
목소리 그러니까 비주류로 간주되던 저가 연극이 대세를 이루게 된 건 2013년부터라네. (사이) 전용관이 있고 어느 정도 완성도도 있고 빠른 회전율로 무장한 창작극 몇 개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아류작이 양산됐다네. 아휴!! 말도 말게!! 자연히 가격 전쟁도 치열해졌지……
남자 전쟁이?? 치열해졌다고??
목소리 얼마 전에 대학로 연극 제작자들이 한 데 모여서 제 살 깎기 그만하고 최소한 가격을 만 이천 원은 지키자고 약속했지만 한 달도 못 가서 깨져버렸다네……
이제는 대학로에 상도의고 뭐고 없어…… 그게 현실이지.
남자 그렇게 해서는…… 뭐가 어떻게 되겠나?
목소리 그렇지…… 그렇고말고. 직격탄을 맞은 건 바로 출연 배우라네. 저가 연극엔 보통 배우 4명이 나오는데 회당 출연료는 평균 이만 원에서 오만 원 안팎이지……
그게 최근에는 만 오천 원까지 낮아졌다네……
그러니까 출연자들은 연극 출연이 아니라 행사 뛴다고 자조하고 있다네……
남자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며) 그 지경이 되었단 말이지?
목소리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그래도 오디션 공고를 내면 보통 2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거야. 그만큼 연기자 지망생들이 줄을 잇고 있는 거지……
젊으면 철없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겨나지. 그 시절은 충동적이고 자기파괴적이고 절망적이고 멋지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더 많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기이니까.
걔들은 이쪽 현실을 전혀 몰라……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 그래서 열정페이를 감수하는 거지……
남자 대학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목소리 하여간에 그 옛날 실험정신이 넘쳐나서 창작 산실이라고 했던 대학로는 이미 사라져버렸다네.
일행인 한 떼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커피숍은 갑자기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진다.
무대 암전.
그들은 이제 한적한 뒷골목 거리로 나와 벤치에 앉아있다.
비는 그쳤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남자는 옷깃을 여민다.
남자 오늘 밤은 달이 뜰 텐데……
목소리 구름이 낀 게 다행이라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니까 말일세.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두운 욕망을 끌어내서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 하거든. (사이) 자네 기억하나? 그날 밤도 달이 떴었지. 달이 자네를 완전히 미치게 한 거라니까.
남자 그만두자고…… 술이 그립군…… 우린 꽤 많이 마셨지.
목소리 그렇다네…… 몇 번이나 토하면서까지…… 죽도록 마셔댔지.
남자 (회색빛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됐다고…… 됐어. (사이) 자네 얘기 좀 해야겠군. 자네는 연습이 시작되면 반쯤은 미쳐버렸지. (사이) 그리고…… 연습을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이 웬 자기 자랑이 그렇게 심했는지…… 그렇지 않은가?
목소리 그래도 그 시절이 너무 그립지. 그때 함께 일했던 배우들이 그립구만…… 너무 그립다고.
남자 담벼락 안에서 얼마나 그리운지…… 너무 그리워서…… 가끔 눈물을 쏟았다네. 통곡을 했다니까.
목소리 그들도 중년이 되자 뒤로 물러났지. 우린 함께 늙어간 거야. 걔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배우인줄 알고 연출가 말을 죽어라고 안 들었는데……
남자 배우로서 자존심이 있었던 거지……
목소리 걔들 연기는 너무 가식적이고 자기도취에 빠져있었는데…… 그래도 신들린 듯한 몰입과 절절한 감정 표현으로 객석을 빨아들였던 거야…… 걔들 정말 용감했어. 때로는 내 말도 듣지 않았으니까. 배우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그리워…… 정말 죽도록 보고싶어.
남자 요즘은 어때??
목소리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네. 20, 30대 배우들이 주류인 연극계에서는 중년 배우가 설 자리가 거의 없지. (사이) 작품에서 할머니나 중년 어머니 역도 젊은 배우들이 다 해버리니까. 정작 중년 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거지. (사이)
그래서인지…… 연극에서 대사가 고작 몇 개 밖에 안 되는 단역 자리라도 맡겨만 주면 감지덕지 하는 거야. (사이)개성이 강한 조연이 필요할 때도 있거든. 때로는 그 조연이 주연보다도 더 작품을 살릴 수 있단 말이지.
남자 그건…… 걔들 탓도 있어. 중년 배우들이 왕따 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젊은 연출가들이 중년 배우들은 컨트롤이 안 되니까 안 부르는 거 아니겠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거야. (사이) 배우들이 이력이 날만큼 났으니까 너 왜 연출을 그렇게 하냐며 대들지 않겠어……? 그리고 막판에 늘 뒤집고 말이야……
목소리 그랬던가?
남자 그래도…… 자네는 확실한 프로니까 연극의 방향성과 내적 논리가 정확했지. 그래서 고집 센 배우들도 자네한테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
목소리 그래…… 그들도 매우 외로울 거야. 어쩌겠어.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이야…… (사이) 연출가와 배우 사이에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있는 거라네. 어쩔 수 없지. (사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면 통속극은 지겨워졌을 걸세…… 가끔 논리도 줄거리도 없는 지리멸렬한 부조리극이나 실험극을 해볼 생각이었네만……
남자 그래?? 자네의 화려한 꿈이었겠지……
목소리 나도 알고 있었다네. 이 고약한 연극이 왜 무대에 서야 하는지 무척 고민을 했다네. (사이) 실험극은 시대적인 고통을 안고 가야 하니까 말이야. 끊임없이 시대와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지. (사이) 실험극은 그냥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 실험 정신이 요구되니까 몹시 불편한 거야.
남자 (희미하게 웃는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지…… 아마 실패했던 적이 더 많았겠지.
관객들이 몰려들고 객석을 꽉 채우면 얼마나 흐뭇했던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웃기고…… 울리면…… 보람도 있었고.
목소리 그렇고말고…… 옛날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침묵
남자 (구름 낀 먼 하늘을 바라보고 나서 다시 땅바닥을 바라보며) 자네만큼은 날 이해하겠지? 자네마저도……
목소리 물론이고 말고…… 자네를 이해하지. (적당한 말을 찾는다.) 음모와 배신이 있었다네. 그리고 강렬한 욕구와 갈망이 있었던 거지. 재판장이 범행의 동기를 묻자 처음에는 질투 때문이었다고 했다가 최후 진술에서는 배신감에 분노했다고 말을 바꿨지. (사이) 자넨 가끔 성질이 불같았으니까 참을 수 없었을 거야. 걔들한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당한거니까. 그놈의 성질하곤…… 그 얘를 오디션에서 내가 뽑았지 않은가? 재능이 있으니까 대성할 것처럼 보였거든. 정말 성공했지. 그러니까 마음이 변한거야. 순수해 보였는데……? 지금 돌이켜 보자면…… 글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
남자 순수해 보였다고……?
목소리 그쪽에서 엄청난 조건으로 유혹을 해서 데려간 거고. 그리고 그 인간은 공연계를 주름잡는 권력가인데다 소문난 바람둥이였어. 돈과 명예와 욕망 때문에……?
남자 (꿈꾸듯이) 인간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니까…… 더욱이 여자의 마음이란……? 새삼스럽게 돌이켜 보면……? 고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네. 신파조 대사 같으니까.
목소리 그때 자넨 연극이라고 착각했던 거야. 뼛속까지 연극쟁이였으니…… 무대 위에서 칼을 휘두른다고 생각했겠지…… 비열한 인간들에게 응징을 한다고…… 그 칼 말이야…… 자네가 직접 벼렸던 거…… 다용도였지. 무대 장치를 하면서도 늘상 사용했으니까. 그 연극에서도 소도구로 이용된 거야. (사이) 그리고 말이지…… 내가 재판할 때마다 법원에 갔었지 않은가……. 항소심 판결 선고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네. 자넨 그때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으니까 자세히 기억하지 못할걸. 그때 내내 눈을 감고 있었지. 아마 내심 귀도 막고 있었겠지. ‘사형을 선고한다’라는 엄숙한 선언을 듣고 싶지는 않았겠지. (사이) 재판장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피고인을 정말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피고인의 영혼만이라도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심문을 했던 것이 아닐까? 영원한 저주의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구원하겠다고 말이네.
사형 선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마치 죄인인 것처럼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을 거야. 사형은 영혼을 모독하는 일이니까. (사이) 범행의 순간 정신을 잃고 반쯤 미쳐버렸으니까 정신적 고통이 극단에 이르렀다면 어느 정도는 심신미약을 인정할 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책임능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네. 그러나 법은 정신적 정당방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지. (사이) 그 재판장은 낮은 목소리로 아주 길게 정상 참작을 이야기했어. 상해치사는 아니라고 했어. 살인의 고의가 명백하다는 거지. ‘배신’이니 ‘정신적’이라거나 ‘불가항력적 요소’라는 단어를 반복했었지. 그러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네. 결심 공판 때 검사는 무고한 사람을 두 사람이나 살해한 극악무도한 살인마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격리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또다시 사형을 구형했지 않은가. 사형과 무기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네만.
(사이)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은 그 관대한 판결에 엄청나게 반발했었지. 하지만 그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지. (사이) 그 재판장이 능수능란하게 자기기만을 하는 위선자인지 아닌지는 혹은 휴머니스트인지는 지금도 도저히 알 수 없다네.
남자 그건 순간적이었어. 찰나였다니까. 그래서 수십 번 수백 번 후회했다네. 그때 참았어야 했다고…… 나는 교도소 안에서 뭉툭한 칼을 구할 수 있었지. 그걸 몇 달 동안 날카롭게 벼렸던 거야. 그걸로 동맥을 잘라서 자기 살해를 결심했어. 도저히 평생을 벽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다른 동에서 장기수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어 죽었다네. (사이)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어. 자살은 또 다른 살인이라고. 자살은 살인의 위장술인 거야.
오직 믿음만이 구원을 준다네.
목소리 믿음만이? 자넨 독실한 무신론자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개종을……?
남자 날…… 배교자인지 변절자인지…… 비난하는 건 아닐 테지. (사이)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네…… 너무 외롭지 않은가……
목소리 예수쟁이가 되었단 말이지……? 자네가……?
남자 그렇게 되었다네…… 그렇지만 나는 신앙심이 너무 부족하다네…… (사이) 나는 후회는 했지만…… 여지껏 회개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사면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네. 나는 살인자였지 않은가. 내 손은 피로 더럽혀졌단 말이네.
목소리 자넨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걸세…… 분노 때문에 이를 갈면서 칼날이 번쩍이는 그 순간에 당연히 수치심을 느꼈겠지……?
남자 내가…… 지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걸 양심이 허락할까?
목소리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을 이해하기가 점점 힘들어지지. 나는 여전히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네. (사이) 얼마나 됐지? 도대체 셈이 되지 않는군.
그날 판사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미결구금일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 나중에 알아봤더니 무기징역이나 사형에는 그게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고. 세월은 너무 느리면서도 너무 빠르거든. 그런데 석방되기는 한 건가? 그래, 어쩔 셈이야?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말이야.
남자 벌써…… 20년이나 되었다네.
목소리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 눈 깜짝할 사이라고? (사이) 식구통으로 들어오는 지독히 맛없는 식사라든가,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는 푸른 죄수복, 소독약을 아무리 뿌려도 어쩔 수 없는 구린내 나는 뺑끼통, 죄수들이 불만에 차서 구시렁거리는 소리, 제복을 입고 거들먹거리는 간수들의 오만하거나 지루하고 무료해서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것 같은 표정, 소름이 돋는 육중한 철문이 철거덕 열리고 닫히는 소리까지 이제 익숙해졌지. 작업도 열심히 했다네. (사이) 그러나 칠흑 같은 밤이 되면 갇혀있는 처지가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네. (사이) 정적은 그렇게 무섭다네. 그렇지, 그곳에선 정적이야말로 최고로 무서운 형벌이지. 그걸 깨뜨리기 위해서 벽돌처럼 두꺼운 책들을 읽고 또 읽었지만 소용없었지. 그 정적이 무서워서 마침내 미쳐버렸다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연극이 끝나고 불이 꺼진 텅 빈 무대 같았다네. 내 머리 속까지 텅 비어버렸지. 그리고 폭발해 버린 거야. 밤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벽과 철문을 발로 차며 한없이 난동을 부렸지. 그래서 더 무서운 정적이 기다리는 징벌방으로 가게 되었지. 징벌방에선 계구 때문에 옴싹달싹 할 수 없다네. 혁대 같은 거친 가죽으로 꽉 조아버리거든. 그 중에서도 안면 계구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네.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죄어버리니까 미칠 노릇이지. (사이) 그러나 끝났다네, 끝났어. 조만간 가석방이 될 거라네.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내가 갈 데가 어디가 있겠어. 결국 연극판이지. 그러니까 대학로로 다시 돌아온단 말일세.
목소리 대학로로 돌아오겠다고?
남자 내가 어딜 가겠어? (사이) 컴컴하고 텅 빈 무대에 올라가면 그게 내 세상이었거든. 아무도 없는 무대가 가장 연극적이었지. 칠흑 같이 캄캄한 무대에 비춰 들어오는 한 줄기 광선을 내내 그리워했다네.
목소리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거야? (사이)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나갔거든. 그 옛날은 낭만이 있었지만…….
남자 어차피 시간이 많이 흘렀어. 다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겠지. (사이) 그리고…… 어차피 나는 사람들이 안 보는 무대 뒤쪽에서 일할 거니까…… 뒤쪽이라니까.
목소리 ??????
남자 (힘없이) 그런데 그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네…… 자네가 없는데…… 자네야말로 참고…… 참고…… 기다려야 했어. 내가 언젠가 돌아 올텐데……?
목소리 그런가?
남자 (눈물이 글썽해서) 네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될까? 마지막일텐데……
목소리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 이그러진 얼굴이 오죽하겠나?
남자 죽도록 자네가 그리웠어.
목소리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여기가 두렵다네. 어쩐지 점점 낯설어……
남자 ……
목소리 저주하고…… 저주한다네…… 이놈의 연극판을……
남자 오오오! 우리의 주님!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 두려운 날에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소서! 하늘과 땅이 움직일 그날…… 주님께서 유황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날…… 우리가 두려워 떨며 심판이 우리에게 떨어질 그날…… 하늘과 땅이 움직일 그날…… 분노와 재앙과 고난의 그날…… 끔찍한 비통의 그날…… 하나님께서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날…… 우리는 다가오는 분노의 날을 기다립니다.
무대 조명이 깜빡인다. 그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리고 곧 망각의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막이 내린다.
막이 내려왔을 때 막 사이로 살펴보니 극장은 텅 비어 있었고 불빛은 꺼져가고 있었다. 극장은 갑자기 공포의 먹방으로 변했다. 나는 움찔했고 몸을 떨었다. 그때 지나가는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냈고, 문득 깨어났다.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가석방되는 날의 순간을 상상했다.
얼마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가. 외부로 통하는 감방의 육중한 철재 문이 열릴 것이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낯익은 콘크리트 담벼락, 망루, 쇠창살, 자물쇠, 운동장, 작업실, 죄수들, 교도관, 불안과 초조, 정적 등과 마침내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잘 있거라! 잘 있으라고! 안녕! 안녕! 안녕!
그러나 가석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길고 긴 고난의 여행 길이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자각하게 해주는 여행. 그 여행은 곧 나를 아는 길이었을까? 그러면 무엇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을까? 혹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또는 나의 신을 발견하기 위한 길이 아니었을까? 나는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침묵 속에서 콘크리트 벽과 망루에 둘러싸인 암흑의 숲을 오랫동안 헤매었을 뿐이다.
그 연극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답시고 먹고 마시며 놀았는데 그가 대학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 연극판이 있었고 젊음과 설익은 순수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연극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였거나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조금 벌었다. 그런데 벌써 50줄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마냥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그는 여전히 젊었다. 그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재미있었던 것이다. 대학로에서 손바닥만 한 연극계에서도 이런저런 일 때문에 사분오열하고 뒤에서는 흉도 보고 뒷말도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험담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자가 조금 실수를 해도 반복해서 촬영할 수도 있고 편집을 거듭해서 완성되지만 연극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오롯이 연극감독과 배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본을 대충 훑어보지 말라. 대사를 토막내지 마라. 리듬을 살려라. 대사 하나하나에 정말로 몰입해라. 무대에서는 액션보다도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함부로 마구 토해내서는 안 된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라. 그래서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즉흥연기도 금기시했다. 프로다움을 강조했다.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진 후 일찍 대학을 포기했다. 몇 년 동안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표동과 입정동, 예지동을 기웃거렸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나서 무작정 대학로 연극판으로 진출했다. 배우를 하겠다고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배우로서 대성할 가망성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해도 무대 연기가 요구하는 신체적인 기교나 발성법이 영 서툴러서 상투적이거나 기계적으로 동작과 대사를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맡은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출연작은 모두 해야 10편을 넘지 않고 그것도 무대에서 단역에 불과했다.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얻어맞고 쫓겨나거나 죽어서 나가는 역이었던 것이다. 또는 문상객 1번 배역을 맡으면, 상주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없이 조문 인사를 하고 퇴장하는 게 전부였다.
어쩔 수 없이 연출로 방향을 틀었지만 연극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공연 대본을 선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한계를 드러내서 그마저도 안 되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연기도 안 되고 연출도 안 됐지만 그런데도 죽어라고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여길 떠날 수밖에 없다고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때 그 연출가를 만났다. (지금 그의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 그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어쩐지 목구멍이 막혀서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다. 그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미어진다.)
그는 작품을 해석, 재해석했고, 인물에 맞는 배우를 선택했으며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창조하는 세련된 미장센의 달인이었다. 그 당시 연극계에서는 그렇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 연출가가 말했었다.
“연극은 우리네 인생과 가장 가까운 예술인 거야. 그러니까 어떤 예술도 연극만큼이나 인간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없는 거야. 연극에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너나 나나 연극을 떠날 수 없어. 떠나는 날이 죽는 날이야.
성공이란 게 무언지 알아?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거야. 그렇다면 성공하는 거지. 자네는 연극계를 떠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기획을 해보라고. 프로듀서라는게 무대 뒤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프로듀서는 총사령관이야…….
연극에서 가장 먼저 꿈을 꾸는 사람이지…… .
그리고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면 여러 사람들을 모아 설득하고 설명하고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래서 프로듀서에겐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데 자네한테는 그게 있는 거지. 해병대 출신이면서…… 우리는 죽으나 사나 함께 가자고……”
그렇게 해서 둘은 인연을 맺었고 콤비가 되었다. 내가 프로듀서를 하고 그 연출가는 감독이 되었던 것이다. 그 연출가가 대본을 던져 놓으면 내가 도맡아서 예산을 짜고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그가 오디션에서 고르고 고른 배우들과 출연 계약을 체결하여 리허설을 준비했고, 무대 장치, 조명, 음향, 의상, 분장, 무대 소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마케팅과 홍보와 광고를 담당 하였으며 포스터, 티켓, 전단지, 팜플렛을 제작해서 배포하였다.
그 연출가는 연출가로서 고뇌하며 최선을 다하여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릴 수 있었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업무 분담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수십 편의 연극을 함께 만들어 대학로에서 공연하였으니 흥행에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젊은 우리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1997년 그 사건으로 구속되어 대학로를 떠나자 그 연출가가 모든 일을 혼자서 힘겹게 떠맡게 되었다. 연극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그 연출가가 대표로 있는 극단은 방송통신대학 뒤쪽에 있는 허름한 빌딩의 지하 연습실을 극장으로 개조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임대료가 일 년이 넘게 밀리자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전셋집을 두 칸짜리 월셋집으로 그 월셋집을 다시 한 칸짜리 월셋집으로 옮겼다. 대학로 극단의 터줏대감의 처지가 그러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연출가는 연극계에, 대학로에 환멸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숨졌다. 그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 빈소는 사흘 내내 연극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고 그는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남았다.
* * *
“잠깐만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출동해서 확인했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었단 말입니다.” 진주교도소의 보안 과장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상황이 정리되어 밖으로 나갔던 직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본부에 먼저 정식 보고를 해야 해서 정신이 없습니다. 현재 시신은 광양읍의 한 병원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김영만의 형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지요. 우리는 형의 말을 듣고 처리해야만 합니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 저수지에서 일자봉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서 김영만의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교도소에 날아들었다. 그때 교도소는 믿었던 김영만이 귀휴에서 돌아오지 않자 발칵 뒤집혔다. 살인을 저지른 무기수가 탈옥을 했으니 그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주교도소는 비상 상태였고 기자들이 벌써부터 몰려들었다.
귀휴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재소자가 출소하기 직전 일정한 사유에 따라 잠시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제도이다.
〔‘형의집행및수용자의처우에관한법률(구행형법)’제77조에 의하면 6개월 이상 복역한 수형자로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교정 성적이 우수한 경우 1년 중 20일 내에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징역 21년 이상을 선고받은 유기수 또는 무기수는 7년을 복역해야 한다. 교도소 내 귀휴심사위원회가 귀휴 여부를 결정한다.〕
거만하고 , 교만한 눈빛이 형형한 대형 공연 기획사의 대표이자 공연계를 지배하는 전통 있는 월간 공연잡지의 소유주, 자칭 유명한 연출가, 어느 예술대학 연극과의 석좌교수, 서울연극연합회 회장이었던 남자와 또렷한 이목구비에 눈빛이 빛나는 젊은 여자는 연극과 영화, TV드라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막 뜨기 시작한 유명 여배우 혹은 탈렌트.
그해 겨울은 일찍 찾아왔다. 초겨울 깊은 밤. 창문 밖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밤의 유령처럼 어른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을 달랬지만 마침내 그녀가 배신했음을 알았을 때, 또한 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 자신이 직접 처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찮은 속물에게 넘어가다니 용서나 화해는 불가능했다.) 그날 밤 대학로에 있는 공연 기획사의 넓고 호화로운 사무실에서 김영만은 필터를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잘라냈다. 그리고 혀로 담배를 핥고 나서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퍼진다. 잠시 후 손잡이가 검은 테이프로 감겨져 있는 예리한 칼로 두 사람을 무자비하게 찔러 살해하였다.
여배우와는 그 옥탑방에서 3년간 동거했다.
그 시절은 너무 가난했지만 그의 인생 항로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종막이 내려올 때까지 함께 살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었으니까.
그는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 살인의 불가피한 동기가 참작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교화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했고 직업능력 개발훈련을 받아 몇 가지 자격증을 땄고 다시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등 모범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심사를 통과해서 귀휴 허가를 받은 것이다.
당초 김영만의 귀휴 일정은 일주일이었다. 5월 1일 오전 10시에 나가 7일 오후 5시까지 복귀하는 조건이었다. 재소자가 귀휴를 나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루 4통의 전화로 동선 보고를 해야 한다. 김영만은 교화위원인 신부님의 설득으로 천주교에 귀의해서 종교생활에 전념했고 같은 방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모범수로 통했다. 담당 교도관들의 평가도 매우 좋았다. 그런 점들이 평가를 받아 귀휴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허가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예정일에 당연히 복귀하기로 되어있던 김영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귀휴 첫날인 1일 저녁 늦게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앞에 있는 형님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계속 종로구 일대에서 머물렀다. 그의 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 화병이 나서 술로 지새다가 죽었고 몇 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죽었기 때문에 형님만이 유일한 혈육이었다. 복귀 예정일인 7일 김영만은 오전 9시경에 충신동의 모텔을 나간 뒤 연락이 완전 두절됐다.
그는 7일 오전 9시경 동대문에서 택시를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고 고속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봉강면 우산리에 있는 보문사에 들려 탁자와 이불만 있는 작은 손님방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그리고 등산을 간다면서 사찰을 나와 산으로 올라간 뒤 자취를 감췄다. 그가 돌아오지 않자 젊은 스님이 다음 날 광양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였다.
술패랭이꽃, 제비꽃, 고사리와 부추꽃, 도라지꽃이 피어있는 호젓한 산길 풀 섶에 진달래꽃이 무리지어 만발해 있었다. 산속은 해가 일찍 저물었다. 황혼녘에 빨강과 주홍빛으로 물든 구름이 산등성이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김영만의 시신을 찾았다. 자신의 검정색 청바지로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목이 조이면서 고통스러웠던지 심하게 몸부림을 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발견 당시 김영만은 파란색 티셔츠와 하얀 속옷 하의만 입고 있었다.
시체는 형님이 동의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을 마쳤다. 그리고 광양읍에 있는 공설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
사찰 방에서 김영만의 스냅백 모자와 파란색 티셔츠,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노트, 완성되거나 미완성된 수십 편의 연극, 드라마의 대본, 시나리오 뭉치, 성경책, 색이 바랜 아주 옛날 연극 포스터들, 현금 90만 원이 든 가방을 발견했고 그의 지갑에서 귀휴허가증을 찾아냈다.
김영만은 형님에게 편지를 남겼다.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곁으로 먼저 갑니다.
제가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조용히 갑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리고 한때는 펜팔 친구였다가 그가 청혼을 하여 혼인신고를 마친 연인에게도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김영만의 면회 기록을 분석한 결과 광양에 있는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영치금을 넣어 주고 면회도 자주 왔으며 그때 그 단체에서 충실한 신도이고 미혼이었던 그 여자를 소개해준 것이었다. 그들은 그가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어 오기 전 순천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수백 통의 열렬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친구로 연인으로 받아주고 더욱이 결혼까지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결혼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지요. 가석방을 받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귀휴를 나와서 차마 만날 순 없었습니다. 염치가 없었거든요.
저의 유일한 희망은 연극이었고 대학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몰라보게 변했듯이 대학로는 변했고 타락했습니다. 절대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저는 그 변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저의 둘도 없는 친구였고 위안이었고 희망이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귀한 영혼은 그곳에 틀림없이 남아있었고 나는 그와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제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목소리 옛날에는 틀림없이 그치들 뒤에 든든한 조폭이 있었다네. 지금은 조폭도 기업형이 대세야. 그러니 동네 조무래기라면 몰라도 그쪽에선 파이가 너무 적으니까 구미가 당기지 않겠지.
남자 ??????
목소리 요즘은 경기가 정말 안 좋다네. 그래서 최근엔 저가 연극이 수두룩하지. 이쪽 영업이란 게 전쟁이나 다름없다네. 그러니 전쟁터에서 무슨 반칙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남자 많이 변했어!! 상상도 할 수 없이!!
목소리 걔들도 할 말은 있을 거야. 연극계가 흥행이 안 되니까 무슨 핑계거리가 필요했을 거고…… 그걸 삐끼 탓으로 돌리는 거라고 툴툴거리고 있지.
그렇게…… 앞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면서도 뒤로는 표를 팔아달라고 부탁한단 말이지.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예매 순위를 올리려고 사재기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네.
남자 단속이 있을 것 아닌가?
목소리 그렇지만 말이지…… 구청이나 경찰서에서도 뻔히 눈치 채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어.
남자 그런데 말이지…… 연극계 선배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사이) 그때는 연극판에도 위계와 서열이 있었지 않은가? 동국대파도 있었고 중앙대파도 있었고 드라마 센터파도 있었지. 서로 지켜야 하는 선이……
우린 셋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목소리 그런 건 사라진지 오래야……
남자 즈그들끼리…… 이러쿵저러쿵……
목소리 연극인들이야 앞에서는 삐끼문화가 변질되었다느니,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사이) 걔들이 단지 공연을 알리고 관객을 모집하는 수준을 넘어서 순위조작이나 허위정보의 제공,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다른 공연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지. (사이) 그건 명백한 영업 방해라고……
남자 썩어빠진 경찰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단속을 해야지!!
목소리 경찰 욕할 것도 없다네. 호객 행위는 기껏해야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는 경범죄에 불과해. 누가 그걸 무서워하겠나?
남자 아까 저가 연극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목소리 일단 저가 연극은 제작비가 싸다네. 거 있지 않은가? TV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처럼 권선징악 구조가 명확하지. (사이) 그러니까 개연성과 현실성이 없는 거야. (사이) 처절하게 궁상맞지 않으면 관객을 끌어 모을 수가 없어.
남자 그렇게 흔해빠진 신파조는 언제나 있었던 거 아닌가……
목소리 그렇긴 하네만. 대게…… 그런 연극엔 남녀 두 명씩 4명이 출연한다네. 연극은 매우 엉성하지만…… 그래도 싸구려 배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지.
그리고 소셜커머스에서 천 원짜리 폭탄 세일로 티켓을 마구잡이로 판매하지.
남자 허허!! 기가 막히구만!! 그래가지고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목소리 누적 판매량이 높아야만 소셜커머스 상단에 노출된다네. 그러니까 울며 겨자먹기지만 딴 방법이 없는 거지. (사이) 평일에는 객석에 열 명도 안 차는 경우가 흔해 빠졌는데 차라리 천 원에 덤핑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보는 거지.
남자 !!!???
목소리 겉으로 보면 지금 대학로 연극의 공식 가격은 대략 삼 만 원 선이라고 할 수 있다네. 그러나 삼만 원을 다 내고 보면 호갱 중의 호갱이라고 하지.
정가에서 통상 70퍼센트를 할인해서 만 원도 비싸다는 게 정설처럼 되어있어. 그러니까 팔천 원 안팎으로 실제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거지.
다시 말하면…… 소셜커머스가 득세하면서 만 원 마지노선은 몇 년 전에 이미 붕괴되었다네.
남자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목소리 그렇고말고…… 가격 하락의 일차적 원인은 공급 과잉이라네. 지금은 만 원이면 대학로 모든 연극을 다 볼 수 있게 되었다네.
남자 그때…… 그 시절에도 뒷골목 연극이라고 하는 저가 연극이 제법 있었지. 스토리나 무대는 조잡하지만 코미디와 싼 가격으로 관객을 끌어 모은 거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심한 것 같구만.
목소리 그러니까 비주류로 간주되던 저가 연극이 대세를 이루게 된 건 2013년부터라네. (사이) 전용관이 있고 어느 정도 완성도도 있고 빠른 회전율로 무장한 창작극 몇 개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아류작이 양산됐다네. 아휴!! 말도 말게!! 자연히 가격 전쟁도 치열해졌지……
남자 전쟁이?? 치열해졌다고??
목소리 얼마 전에 대학로 연극 제작자들이 한 데 모여서 제 살 깎기 그만하고 최소한 가격을 만 이천 원은 지키자고 약속했지만 한 달도 못 가서 깨져버렸다네……
이제는 대학로에 상도의고 뭐고 없어…… 그게 현실이지.
남자 그렇게 해서는…… 뭐가 어떻게 되겠나?
목소리 그렇지…… 그렇고말고. 직격탄을 맞은 건 바로 출연 배우라네. 저가 연극엔 보통 배우 4명이 나오는데 회당 출연료는 평균 이만 원에서 오만 원 안팎이지……
그게 최근에는 만 오천 원까지 낮아졌다네……
그러니까 출연자들은 연극 출연이 아니라 행사 뛴다고 자조하고 있다네……
남자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며) 그 지경이 되었단 말이지?
목소리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그래도 오디션 공고를 내면 보통 2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거야. 그만큼 연기자 지망생들이 줄을 잇고 있는 거지……
젊으면 철없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겨나지. 그 시절은 충동적이고 자기파괴적이고 절망적이고 멋지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더 많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기이니까.
걔들은 이쪽 현실을 전혀 몰라……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 그래서 열정페이를 감수하는 거지……
남자 대학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목소리 하여간에 그 옛날 실험정신이 넘쳐나서 창작 산실이라고 했던 대학로는 이미 사라져버렸다네.
일행인 한 떼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커피숍은 갑자기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진다.
무대 암전.
그들은 이제 한적한 뒷골목 거리로 나와 벤치에 앉아있다.
비는 그쳤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남자는 옷깃을 여민다.
남자 오늘 밤은 달이 뜰 텐데……
목소리 구름이 낀 게 다행이라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니까 말일세.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두운 욕망을 끌어내서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 하거든. (사이) 자네 기억하나? 그날 밤도 달이 떴었지. 달이 자네를 완전히 미치게 한 거라니까.
남자 그만두자고…… 술이 그립군…… 우린 꽤 많이 마셨지.
목소리 그렇다네…… 몇 번이나 토하면서까지…… 죽도록 마셔댔지.
남자 (회색빛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됐다고…… 됐어. (사이) 자네 얘기 좀 해야겠군. 자네는 연습이 시작되면 반쯤은 미쳐버렸지. (사이) 그리고…… 연습을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이 웬 자기 자랑이 그렇게 심했는지…… 그렇지 않은가?
목소리 그래도 그 시절이 너무 그립지. 그때 함께 일했던 배우들이 그립구만…… 너무 그립다고.
남자 담벼락 안에서 얼마나 그리운지…… 너무 그리워서…… 가끔 눈물을 쏟았다네. 통곡을 했다니까.
목소리 그들도 중년이 되자 뒤로 물러났지. 우린 함께 늙어간 거야. 걔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배우인줄 알고 연출가 말을 죽어라고 안 들었는데……
남자 배우로서 자존심이 있었던 거지……
목소리 걔들 연기는 너무 가식적이고 자기도취에 빠져있었는데…… 그래도 신들린 듯한 몰입과 절절한 감정 표현으로 객석을 빨아들였던 거야…… 걔들 정말 용감했어. 때로는 내 말도 듣지 않았으니까. 배우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그리워…… 정말 죽도록 보고싶어.
남자 요즘은 어때??
목소리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네. 20, 30대 배우들이 주류인 연극계에서는 중년 배우가 설 자리가 거의 없지. (사이) 작품에서 할머니나 중년 어머니 역도 젊은 배우들이 다 해버리니까. 정작 중년 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거지. (사이)
그래서인지…… 연극에서 대사가 고작 몇 개 밖에 안 되는 단역 자리라도 맡겨만 주면 감지덕지 하는 거야. (사이)개성이 강한 조연이 필요할 때도 있거든. 때로는 그 조연이 주연보다도 더 작품을 살릴 수 있단 말이지.
남자 그건…… 걔들 탓도 있어. 중년 배우들이 왕따 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젊은 연출가들이 중년 배우들은 컨트롤이 안 되니까 안 부르는 거 아니겠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거야. (사이) 배우들이 이력이 날만큼 났으니까 너 왜 연출을 그렇게 하냐며 대들지 않겠어……? 그리고 막판에 늘 뒤집고 말이야……
목소리 그랬던가?
남자 그래도…… 자네는 확실한 프로니까 연극의 방향성과 내적 논리가 정확했지. 그래서 고집 센 배우들도 자네한테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
목소리 그래…… 그들도 매우 외로울 거야. 어쩌겠어.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이야…… (사이) 연출가와 배우 사이에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있는 거라네. 어쩔 수 없지. (사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면 통속극은 지겨워졌을 걸세…… 가끔 논리도 줄거리도 없는 지리멸렬한 부조리극이나 실험극을 해볼 생각이었네만……
남자 그래?? 자네의 화려한 꿈이었겠지……
목소리 나도 알고 있었다네. 이 고약한 연극이 왜 무대에 서야 하는지 무척 고민을 했다네. (사이) 실험극은 시대적인 고통을 안고 가야 하니까 말이야. 끊임없이 시대와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지. (사이) 실험극은 그냥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 실험 정신이 요구되니까 몹시 불편한 거야.
남자 (희미하게 웃는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지…… 아마 실패했던 적이 더 많았겠지.
관객들이 몰려들고 객석을 꽉 채우면 얼마나 흐뭇했던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웃기고…… 울리면…… 보람도 있었고.
목소리 그렇고말고…… 옛날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침묵
남자 (구름 낀 먼 하늘을 바라보고 나서 다시 땅바닥을 바라보며) 자네만큼은 날 이해하겠지? 자네마저도……
목소리 물론이고 말고…… 자네를 이해하지. (적당한 말을 찾는다.) 음모와 배신이 있었다네. 그리고 강렬한 욕구와 갈망이 있었던 거지. 재판장이 범행의 동기를 묻자 처음에는 질투 때문이었다고 했다가 최후 진술에서는 배신감에 분노했다고 말을 바꿨지. (사이) 자넨 가끔 성질이 불같았으니까 참을 수 없었을 거야. 걔들한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당한거니까. 그놈의 성질하곤…… 그 얘를 오디션에서 내가 뽑았지 않은가? 재능이 있으니까 대성할 것처럼 보였거든. 정말 성공했지. 그러니까 마음이 변한거야. 순수해 보였는데……? 지금 돌이켜 보자면…… 글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
남자 순수해 보였다고……?
목소리 그쪽에서 엄청난 조건으로 유혹을 해서 데려간 거고. 그리고 그 인간은 공연계를 주름잡는 권력가인데다 소문난 바람둥이였어. 돈과 명예와 욕망 때문에……?
남자 (꿈꾸듯이) 인간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니까…… 더욱이 여자의 마음이란……? 새삼스럽게 돌이켜 보면……? 고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네. 신파조 대사 같으니까.
목소리 그때 자넨 연극이라고 착각했던 거야. 뼛속까지 연극쟁이였으니…… 무대 위에서 칼을 휘두른다고 생각했겠지…… 비열한 인간들에게 응징을 한다고…… 그 칼 말이야…… 자네가 직접 벼렸던 거…… 다용도였지. 무대 장치를 하면서도 늘상 사용했으니까. 그 연극에서도 소도구로 이용된 거야. (사이) 그리고 말이지…… 내가 재판할 때마다 법원에 갔었지 않은가……. 항소심 판결 선고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네. 자넨 그때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으니까 자세히 기억하지 못할걸. 그때 내내 눈을 감고 있었지. 아마 내심 귀도 막고 있었겠지. ‘사형을 선고한다’라는 엄숙한 선언을 듣고 싶지는 않았겠지. (사이) 재판장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피고인을 정말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피고인의 영혼만이라도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심문을 했던 것이 아닐까? 영원한 저주의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구원하겠다고 말이네.
사형 선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마치 죄인인 것처럼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을 거야. 사형은 영혼을 모독하는 일이니까. (사이) 범행의 순간 정신을 잃고 반쯤 미쳐버렸으니까 정신적 고통이 극단에 이르렀다면 어느 정도는 심신미약을 인정할 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책임능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네. 그러나 법은 정신적 정당방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지. (사이) 그 재판장은 낮은 목소리로 아주 길게 정상 참작을 이야기했어. 상해치사는 아니라고 했어. 살인의 고의가 명백하다는 거지. ‘배신’이니 ‘정신적’이라거나 ‘불가항력적 요소’라는 단어를 반복했었지. 그러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네. 결심 공판 때 검사는 무고한 사람을 두 사람이나 살해한 극악무도한 살인마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격리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또다시 사형을 구형했지 않은가. 사형과 무기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네만.
(사이)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은 그 관대한 판결에 엄청나게 반발했었지. 하지만 그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지. (사이) 그 재판장이 능수능란하게 자기기만을 하는 위선자인지 아닌지는 혹은 휴머니스트인지는 지금도 도저히 알 수 없다네.
남자 그건 순간적이었어. 찰나였다니까. 그래서 수십 번 수백 번 후회했다네. 그때 참았어야 했다고…… 나는 교도소 안에서 뭉툭한 칼을 구할 수 있었지. 그걸 몇 달 동안 날카롭게 벼렸던 거야. 그걸로 동맥을 잘라서 자기 살해를 결심했어. 도저히 평생을 벽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다른 동에서 장기수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어 죽었다네. (사이)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어. 자살은 또 다른 살인이라고. 자살은 살인의 위장술인 거야.
오직 믿음만이 구원을 준다네.
목소리 믿음만이? 자넨 독실한 무신론자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개종을……?
남자 날…… 배교자인지 변절자인지…… 비난하는 건 아닐 테지. (사이)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네…… 너무 외롭지 않은가……
목소리 예수쟁이가 되었단 말이지……? 자네가……?
남자 그렇게 되었다네…… 그렇지만 나는 신앙심이 너무 부족하다네…… (사이) 나는 후회는 했지만…… 여지껏 회개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사면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네. 나는 살인자였지 않은가. 내 손은 피로 더럽혀졌단 말이네.
목소리 자넨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걸세…… 분노 때문에 이를 갈면서 칼날이 번쩍이는 그 순간에 당연히 수치심을 느꼈겠지……?
남자 내가…… 지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걸 양심이 허락할까?
목소리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을 이해하기가 점점 힘들어지지. 나는 여전히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네. (사이) 얼마나 됐지? 도대체 셈이 되지 않는군.
그날 판사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미결구금일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 나중에 알아봤더니 무기징역이나 사형에는 그게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고. 세월은 너무 느리면서도 너무 빠르거든. 그런데 석방되기는 한 건가? 그래, 어쩔 셈이야?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말이야.
남자 벌써…… 20년이나 되었다네.
목소리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 눈 깜짝할 사이라고? (사이) 식구통으로 들어오는 지독히 맛없는 식사라든가,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는 푸른 죄수복, 소독약을 아무리 뿌려도 어쩔 수 없는 구린내 나는 뺑끼통, 죄수들이 불만에 차서 구시렁거리는 소리, 제복을 입고 거들먹거리는 간수들의 오만하거나 지루하고 무료해서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것 같은 표정, 소름이 돋는 육중한 철문이 철거덕 열리고 닫히는 소리까지 이제 익숙해졌지. 작업도 열심히 했다네. (사이) 그러나 칠흑 같은 밤이 되면 갇혀있는 처지가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네. (사이) 정적은 그렇게 무섭다네. 그렇지, 그곳에선 정적이야말로 최고로 무서운 형벌이지. 그걸 깨뜨리기 위해서 벽돌처럼 두꺼운 책들을 읽고 또 읽었지만 소용없었지. 그 정적이 무서워서 마침내 미쳐버렸다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연극이 끝나고 불이 꺼진 텅 빈 무대 같았다네. 내 머리 속까지 텅 비어버렸지. 그리고 폭발해 버린 거야. 밤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벽과 철문을 발로 차며 한없이 난동을 부렸지. 그래서 더 무서운 정적이 기다리는 징벌방으로 가게 되었지. 징벌방에선 계구 때문에 옴싹달싹 할 수 없다네. 혁대 같은 거친 가죽으로 꽉 조아버리거든. 그 중에서도 안면 계구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네.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죄어버리니까 미칠 노릇이지. (사이) 그러나 끝났다네, 끝났어. 조만간 가석방이 될 거라네.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내가 갈 데가 어디가 있겠어. 결국 연극판이지. 그러니까 대학로로 다시 돌아온단 말일세.
목소리 대학로로 돌아오겠다고?
남자 내가 어딜 가겠어? (사이) 컴컴하고 텅 빈 무대에 올라가면 그게 내 세상이었거든. 아무도 없는 무대가 가장 연극적이었지. 칠흑 같이 캄캄한 무대에 비춰 들어오는 한 줄기 광선을 내내 그리워했다네.
목소리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거야? (사이)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나갔거든. 그 옛날은 낭만이 있었지만…….
남자 어차피 시간이 많이 흘렀어. 다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겠지. (사이) 그리고…… 어차피 나는 사람들이 안 보는 무대 뒤쪽에서 일할 거니까…… 뒤쪽이라니까.
목소리 ??????
남자 (힘없이) 그런데 그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네…… 자네가 없는데…… 자네야말로 참고…… 참고…… 기다려야 했어. 내가 언젠가 돌아 올텐데……?
목소리 그런가?
남자 (눈물이 글썽해서) 네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될까? 마지막일텐데……
목소리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 이그러진 얼굴이 오죽하겠나?
남자 죽도록 자네가 그리웠어.
목소리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여기가 두렵다네. 어쩐지 점점 낯설어……
남자 ……
목소리 저주하고…… 저주한다네…… 이놈의 연극판을……
남자 오오오! 우리의 주님!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 두려운 날에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소서! 하늘과 땅이 움직일 그날…… 주님께서 유황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날…… 우리가 두려워 떨며 심판이 우리에게 떨어질 그날…… 하늘과 땅이 움직일 그날…… 분노와 재앙과 고난의 그날…… 끔찍한 비통의 그날…… 하나님께서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날…… 우리는 다가오는 분노의 날을 기다립니다.
무대 조명이 깜빡인다. 그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리고 곧 망각의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막이 내린다.
막이 내려왔을 때 막 사이로 살펴보니 극장은 텅 비어 있었고 불빛은 꺼져가고 있었다. 극장은 갑자기 공포의 먹방으로 변했다. 나는 움찔했고 몸을 떨었다. 그때 지나가는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냈고, 문득 깨어났다.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가석방되는 날의 순간을 상상했다.
얼마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가. 외부로 통하는 감방의 육중한 철재 문이 열릴 것이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낯익은 콘크리트 담벼락, 망루, 쇠창살, 자물쇠, 운동장, 작업실, 죄수들, 교도관, 불안과 초조, 정적 등과 마침내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잘 있거라! 잘 있으라고! 안녕! 안녕! 안녕!
그러나 가석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길고 긴 고난의 여행 길이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자각하게 해주는 여행. 그 여행은 곧 나를 아는 길이었을까? 그러면 무엇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을까? 혹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또는 나의 신을 발견하기 위한 길이 아니었을까? 나는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침묵 속에서 콘크리트 벽과 망루에 둘러싸인 암흑의 숲을 오랫동안 헤매었을 뿐이다.
그 연극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답시고 먹고 마시며 놀았는데 그가 대학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 연극판이 있었고 젊음과 설익은 순수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연극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였거나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조금 벌었다. 그런데 벌써 50줄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마냥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그는 여전히 젊었다. 그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재미있었던 것이다. 대학로에서 손바닥만 한 연극계에서도 이런저런 일 때문에 사분오열하고 뒤에서는 흉도 보고 뒷말도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험담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자가 조금 실수를 해도 반복해서 촬영할 수도 있고 편집을 거듭해서 완성되지만 연극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오롯이 연극감독과 배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본을 대충 훑어보지 말라. 대사를 토막내지 마라. 리듬을 살려라. 대사 하나하나에 정말로 몰입해라. 무대에서는 액션보다도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함부로 마구 토해내서는 안 된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라. 그래서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즉흥연기도 금기시했다. 프로다움을 강조했다.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진 후 일찍 대학을 포기했다. 몇 년 동안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표동과 입정동, 예지동을 기웃거렸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나서 무작정 대학로 연극판으로 진출했다. 배우를 하겠다고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배우로서 대성할 가망성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해도 무대 연기가 요구하는 신체적인 기교나 발성법이 영 서툴러서 상투적이거나 기계적으로 동작과 대사를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맡은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출연작은 모두 해야 10편을 넘지 않고 그것도 무대에서 단역에 불과했다.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얻어맞고 쫓겨나거나 죽어서 나가는 역이었던 것이다. 또는 문상객 1번 배역을 맡으면, 상주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없이 조문 인사를 하고 퇴장하는 게 전부였다.
어쩔 수 없이 연출로 방향을 틀었지만 연극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공연 대본을 선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한계를 드러내서 그마저도 안 되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연기도 안 되고 연출도 안 됐지만 그런데도 죽어라고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여길 떠날 수밖에 없다고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때 그 연출가를 만났다. (지금 그의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 그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어쩐지 목구멍이 막혀서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다. 그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미어진다.)
그는 작품을 해석, 재해석했고, 인물에 맞는 배우를 선택했으며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창조하는 세련된 미장센의 달인이었다. 그 당시 연극계에서는 그렇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 연출가가 말했었다.
“연극은 우리네 인생과 가장 가까운 예술인 거야. 그러니까 어떤 예술도 연극만큼이나 인간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없는 거야. 연극에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너나 나나 연극을 떠날 수 없어. 떠나는 날이 죽는 날이야.
성공이란 게 무언지 알아?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거야. 그렇다면 성공하는 거지. 자네는 연극계를 떠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기획을 해보라고. 프로듀서라는게 무대 뒤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프로듀서는 총사령관이야…….
연극에서 가장 먼저 꿈을 꾸는 사람이지…… .
그리고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면 여러 사람들을 모아 설득하고 설명하고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래서 프로듀서에겐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데 자네한테는 그게 있는 거지. 해병대 출신이면서…… 우리는 죽으나 사나 함께 가자고……”
그렇게 해서 둘은 인연을 맺었고 콤비가 되었다. 내가 프로듀서를 하고 그 연출가는 감독이 되었던 것이다. 그 연출가가 대본을 던져 놓으면 내가 도맡아서 예산을 짜고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그가 오디션에서 고르고 고른 배우들과 출연 계약을 체결하여 리허설을 준비했고, 무대 장치, 조명, 음향, 의상, 분장, 무대 소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마케팅과 홍보와 광고를 담당 하였으며 포스터, 티켓, 전단지, 팜플렛을 제작해서 배포하였다.
그 연출가는 연출가로서 고뇌하며 최선을 다하여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릴 수 있었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업무 분담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수십 편의 연극을 함께 만들어 대학로에서 공연하였으니 흥행에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젊은 우리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1997년 그 사건으로 구속되어 대학로를 떠나자 그 연출가가 모든 일을 혼자서 힘겹게 떠맡게 되었다. 연극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그 연출가가 대표로 있는 극단은 방송통신대학 뒤쪽에 있는 허름한 빌딩의 지하 연습실을 극장으로 개조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임대료가 일 년이 넘게 밀리자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전셋집을 두 칸짜리 월셋집으로 그 월셋집을 다시 한 칸짜리 월셋집으로 옮겼다. 대학로 극단의 터줏대감의 처지가 그러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연출가는 연극계에, 대학로에 환멸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숨졌다. 그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 빈소는 사흘 내내 연극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고 그는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남았다.
* * *
“잠깐만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출동해서 확인했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었단 말입니다.” 진주교도소의 보안 과장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상황이 정리되어 밖으로 나갔던 직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본부에 먼저 정식 보고를 해야 해서 정신이 없습니다. 현재 시신은 광양읍의 한 병원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김영만의 형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지요. 우리는 형의 말을 듣고 처리해야만 합니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 저수지에서 일자봉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서 김영만의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교도소에 날아들었다. 그때 교도소는 믿었던 김영만이 귀휴에서 돌아오지 않자 발칵 뒤집혔다. 살인을 저지른 무기수가 탈옥을 했으니 그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주교도소는 비상 상태였고 기자들이 벌써부터 몰려들었다.
귀휴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재소자가 출소하기 직전 일정한 사유에 따라 잠시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제도이다.
〔‘형의집행및수용자의처우에관한법률(구행형법)’제77조에 의하면 6개월 이상 복역한 수형자로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교정 성적이 우수한 경우 1년 중 20일 내에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징역 21년 이상을 선고받은 유기수 또는 무기수는 7년을 복역해야 한다. 교도소 내 귀휴심사위원회가 귀휴 여부를 결정한다.〕
거만하고 , 교만한 눈빛이 형형한 대형 공연 기획사의 대표이자 공연계를 지배하는 전통 있는 월간 공연잡지의 소유주, 자칭 유명한 연출가, 어느 예술대학 연극과의 석좌교수, 서울연극연합회 회장이었던 남자와 또렷한 이목구비에 눈빛이 빛나는 젊은 여자는 연극과 영화, TV드라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막 뜨기 시작한 유명 여배우 혹은 탈렌트.
그해 겨울은 일찍 찾아왔다. 초겨울 깊은 밤. 창문 밖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밤의 유령처럼 어른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을 달랬지만 마침내 그녀가 배신했음을 알았을 때, 또한 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 자신이 직접 처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찮은 속물에게 넘어가다니 용서나 화해는 불가능했다.) 그날 밤 대학로에 있는 공연 기획사의 넓고 호화로운 사무실에서 김영만은 필터를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잘라냈다. 그리고 혀로 담배를 핥고 나서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퍼진다. 잠시 후 손잡이가 검은 테이프로 감겨져 있는 예리한 칼로 두 사람을 무자비하게 찔러 살해하였다.
여배우와는 그 옥탑방에서 3년간 동거했다.
그 시절은 너무 가난했지만 그의 인생 항로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종막이 내려올 때까지 함께 살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었으니까.
그는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 살인의 불가피한 동기가 참작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교화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했고 직업능력 개발훈련을 받아 몇 가지 자격증을 땄고 다시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등 모범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심사를 통과해서 귀휴 허가를 받은 것이다.
당초 김영만의 귀휴 일정은 일주일이었다. 5월 1일 오전 10시에 나가 7일 오후 5시까지 복귀하는 조건이었다. 재소자가 귀휴를 나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루 4통의 전화로 동선 보고를 해야 한다. 김영만은 교화위원인 신부님의 설득으로 천주교에 귀의해서 종교생활에 전념했고 같은 방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모범수로 통했다. 담당 교도관들의 평가도 매우 좋았다. 그런 점들이 평가를 받아 귀휴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허가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예정일에 당연히 복귀하기로 되어있던 김영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귀휴 첫날인 1일 저녁 늦게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앞에 있는 형님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계속 종로구 일대에서 머물렀다. 그의 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 화병이 나서 술로 지새다가 죽었고 몇 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죽었기 때문에 형님만이 유일한 혈육이었다. 복귀 예정일인 7일 김영만은 오전 9시경에 충신동의 모텔을 나간 뒤 연락이 완전 두절됐다.
그는 7일 오전 9시경 동대문에서 택시를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고 고속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봉강면 우산리에 있는 보문사에 들려 탁자와 이불만 있는 작은 손님방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그리고 등산을 간다면서 사찰을 나와 산으로 올라간 뒤 자취를 감췄다. 그가 돌아오지 않자 젊은 스님이 다음 날 광양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였다.
술패랭이꽃, 제비꽃, 고사리와 부추꽃, 도라지꽃이 피어있는 호젓한 산길 풀 섶에 진달래꽃이 무리지어 만발해 있었다. 산속은 해가 일찍 저물었다. 황혼녘에 빨강과 주홍빛으로 물든 구름이 산등성이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김영만의 시신을 찾았다. 자신의 검정색 청바지로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목이 조이면서 고통스러웠던지 심하게 몸부림을 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발견 당시 김영만은 파란색 티셔츠와 하얀 속옷 하의만 입고 있었다.
시체는 형님이 동의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을 마쳤다. 그리고 광양읍에 있는 공설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
사찰 방에서 김영만의 스냅백 모자와 파란색 티셔츠,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노트, 완성되거나 미완성된 수십 편의 연극, 드라마의 대본, 시나리오 뭉치, 성경책, 색이 바랜 아주 옛날 연극 포스터들, 현금 90만 원이 든 가방을 발견했고 그의 지갑에서 귀휴허가증을 찾아냈다.
김영만은 형님에게 편지를 남겼다.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곁으로 먼저 갑니다.
제가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조용히 갑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리고 한때는 펜팔 친구였다가 그가 청혼을 하여 혼인신고를 마친 연인에게도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김영만의 면회 기록을 분석한 결과 광양에 있는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영치금을 넣어 주고 면회도 자주 왔으며 그때 그 단체에서 충실한 신도이고 미혼이었던 그 여자를 소개해준 것이었다. 그들은 그가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어 오기 전 순천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수백 통의 열렬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친구로 연인으로 받아주고 더욱이 결혼까지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결혼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지요. 가석방을 받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귀휴를 나와서 차마 만날 순 없었습니다. 염치가 없었거든요.
저의 유일한 희망은 연극이었고 대학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몰라보게 변했듯이 대학로는 변했고 타락했습니다. 절대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저는 그 변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저의 둘도 없는 친구였고 위안이었고 희망이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귀한 영혼은 그곳에 틀림없이 남아있었고 나는 그와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제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