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간첩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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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간첩
기만하고 배신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이다.
우리는 배신을 좋아한다. 그러나 배신자는 가증스럽다.
서울에서 고시촌으로 유명한 곳은 관악구 신림동(법정동) 중에서도 대학동(행정동)이 신림동 고시촌으로 유명하다. 일명 녹두거리라고 한다. 또 한 곳은 동작구 노량진1동의 노량진 고시원이다.
그곳 고시원에서는 월세 20만원이나 30만원을 내고 살 수 있다. 고시원에서 일주일 정도 단기 투숙을 할 수도 있고 또는 1박이나 2박도 가능하다. 하루 자는 데 만원 정도이니까 다른 지역 모텔이나 여인숙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 서울 도심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단기 외국인 여행객들이 소문을 듣고 몰리고 있는 것이다.
고시생과 공시생들의 메카였던 그들 고시촌이 외국인 타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공무원 채용 인원이 축소되면서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감소하니까 이 지역 원룸과 고시원은 잇따라 공실이 됐다. 그에 따라 식당과 상점 매출도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 고시촌이 다른 서울 지역보다 집값이나 식사 비용 등이 저렴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라진 공시생들 빈자리를 외국인 단기 관광객과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대로변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흔해빠진 아파트나 현대식 빌딩 하나 없이 비좁은 골목으로 가득한 동작구 노량진2동은 오래전에 ‘노량진 재정비 촉진 지구 ’로 지정되어 있다. ‘아직도 서울특별시에 이런 동네가 있나 ’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재개발을 앞둔 노량진2동은 동네 곳곳에 다양한 문제가 많았다. 오래된 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지역이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쓰레기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시도 때도 없이 악취를 풍겼다.
중국 교포나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도 있었지만 요즈음은 흑인들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대개 한국인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주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주민센터 인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그들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교회 안에서 비를 피하던 이도 있었다. 주민들은 처음엔 국적도 몰랐지만 이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온 난민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노량진2동에 모여든 이유가 있었다. 노량진2동 근처에 있는 상도동에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가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는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난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는 기독교 비정부기구로 난민 신청을 돕거나 숙소를 제공하고 한국어 교육을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난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장승배기역 쪽으로 올라가는 장승배기로 뒷쪽 이면 도로 골목에 그 건물이 있다. 대지 70평에 지붕은 박공벽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색이 바랜 붉은 벽돌 3층 건물이 서 있는 것이다. 1층은 ‘북경반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중국집이고, 2층은 간판도 없는 무역회사 사무실이고, 3층은 살림집이다.
그 ‘유한회사 대명상사’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통관절차를 담당하는 탈북민 출신의 40대 초반 남자 직원 하나,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물품을 주류 도매상에 배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 하나, 은행에서 수출회사가 송부한 선적서류를 수령하고 물품대금을 결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 하나가 있고, 건물주인 40대 말인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있다.
장해식 (張咍飾) 사장은 원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데 20대 초반에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갔고 그 후 중국 공산당 혁명의 성지인 산시성 연안으로 가서 모택동의 홍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국공내전 당시인 1948년 10월 홍군이 창춘을 포위할 때 국민당군과 치열한 전투 중 사망했다. 그래서 장해식은 혁명 유가족 자격으로 동생들과 함께 중국 공산당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지원을 받아 명문 대학인 북경 정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그리고 20대 말에 벌써 조선족 출신 중국인 신분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제작 수출하는 한국의 대기업 북경 지사장이 되었고, 중국 내 정법대 출신 인맥을 활용해서 탁월한 영업실적을 올렸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성실하여 지독한 일벌레였다. 제품을 팔기 위해서 중국의 도시는 물론이고 홍콩이나 태국, 싱가폴 등지까지 출장을 다녔고 서울에도 본사와 업무 협의차 자주 왕래하였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탁월한 영업실적을 인정받아 국내 본사로 들어와 중국 담당 수출업무를 담당하며 부장까지 승진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는 중국 조선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임원급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고 작은 무역회사를 차린 것이다. 물론 그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의 도움으로 한국 국적을 무난히 취득하기는 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값싼 농산물인 호두, 땅콩, 고구마순, 버섯 등을 들여와 서울 경동시장 농산물 도매상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중국 농산물은 값도 싸고 물량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수입에는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 반면에 북한산 농산물은 국내로 수입할 때 내부 거래로 취급되면서 관세가 면제되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인기 있는 농산물을 중국 현지에서 싼값으로 대량 구입하여 북한 남포항에서 속칭 ‘포대갈이’라고 하는 농산물 세탁 과정을 거쳐서 북한 당국의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오면 막대한 수익이 생겼다. 그 당시 그는 그 건물까지 매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칭따오의 맥주 회사에서 칭따오 맥주를 수입하여 주로 주류도매상과 중국음식점에 납품하고 있다.
그는 외동딸이 북경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내까지 북경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가족들을 만나고, 중국의 수출회사와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거의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중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간첩 (스파이)의 세계란……?!
스파이도 인간이다. 통상 사람들은 첩보원의 업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며 첩보 요원 자체도 비인간적인 인격체로 보기 쉽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괴상한 인물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그러한 인물들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장점과 단점 그리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웅적인 활약을 한 간첩들이라도 그들 역시 각자 독특한 개성과 성향, 괴팍함이 있는 우리 모두와 똑같은 인간이다. 공작 업무에 보통 이상의 지능지수와 아주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격에는 천진난만하고 명랑하며 장난기 넘치는 유연한 측면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은 공작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갖가지 위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공작원에게 이러한 자질이 부족하다면 냉혹하고 형식에 얽매여 메마르고 지나치게 엄격하여 직업적인 킬러처럼 잔인한 사람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유능한 공작원이라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공작원이 현장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본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자주 괴리가 있다. 이는 모든 정보기관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므로 의견 충돌이 생긴 때에는 본부의 지시와 공작원의 행동 사이에 노골적인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걸 조정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때가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할까봐 두렵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하는 등의 걱정 속에 살게 된다. 정신적으로 쫓기게 된다. 종종 공작원은 두려움을 다스리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신다.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을 해소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몇몇은 깊은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여자 관계로 골치를 썩인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도박과 마약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공작원 역시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취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동양적 스포츠인 바둑이야말로 최고의 진정제가 될 수 있다.
올바른 인간은 시간을 잘 지키고 업무에 충실하며 인간 관계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비밀 공작원에게도 정확하게 똑같이 적용된다. 하찮은 공작원일수록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자기가 수집한 쓰레기 같은 첩보를 떠벌리며 갖가지 민감한 작전에 늘 참가한다고 떠벌린다. 그런 공작원은 오래가지 못한다. 훌륭한 공작원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이라는 말과 같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장해식은 청소년 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이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유일하게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정통파 공산주의자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는 자기가 죽는 날까지 공산주의 신념에 충실할 것이다. 자기를 직업적 비밀 공작원으로 생각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공작관이나 공작원 중에서 파견 정부의 공식 지위 (외교관) 에서 활동하는 요원은 백색 요원이라 하고, 이와 비교해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흑색 요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흑색 요원이다.
그는 특수 요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준비 교육이 부족했지만 공작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자신의 감각과 본능이 느끼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은 항상 위험했다.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떤 길은 걸어서 통과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정거장에서 내려 갈아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등의 행위를 몇 차례 반복해 오랜 시간을 복잡하게 돌고 돌아 도착해야 한다. 누가 뒤를 밟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지루할 정도로 주위의 이 길 저 길을 걷는다. 드디어 미행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접선 장소로 간다. 미행에 대한 의심이 들면 본능에 따라 접선을 포기하고 상점에 들어가서 무엇을 사거나 하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이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각 이외에 아무런 개인적인 보상도 약속되지 않았지만 천생 끝없는 참을성이 요구되는 공작원의 고된 업무에 헌신했다. 정보 당국의 의심을 차단하여 보호막이 되어주는 무역업자로서의 영업 활동과 공작 거점의 총책으로서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단순한 밀고자와 같은 역할은 거부했다. 그래서 어쩌다 굴러들어오는 정보 조각이 있으면 보고하는 그런 류의 공작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임무를 훨씬 더 가치 있고 고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공작원이 된 것은 순전히 이념 때문이었다. 이것이 공작원의 특질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는 돈만을 위해서 일하는 공작원을 경멸한다.
톈진 (天津)은 ‘천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수도 베이징과는 바다를 이어주는 관문이다. 인천과 서울처럼, 또는 평양과 남포항처럼 말이다. 베이징에서 급행열차를 타면 약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고두현 (高斗賢) 지부장은 베이징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내려왔고 장해식은 옌타이에서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톈진으로 올라갔다. 지부장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다. 그래서 중국 외무부에서 발급한 면책특권이 있는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북한 인민군 소장으로 정찰총국의 북경 지부장이다. 그 자리는 북한에서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고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직접 추천 없이는 갈 수 없는 자리였다.
그는 금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갈 수 있는 정부 호위총국 행사호위부에서 10년 동안 복무했다. 그리고 호위총국에서 근무할 당시 북경대학교에 3년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노동당으로 옮겨가서 대외정보조사부 (35호실)와 작전부에서 공작 업무를 담당하다가 노동당 공작부서들이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과 통합되어 정찰총국이 출범하면서 정찰총국 소속이 되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반 평생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침투와 파괴, 폭파, 살인, 공작과 역공작, 간첩과 이중간첩, 위선과 가면의 스파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얼굴은 온화했다.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그런 어두운 얼굴이 아니다. 그의 그윽한 시선은 사람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마력이 있었다.
오늘은 이른 아침 첫 햇빛이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공기는 나른하게 어른거린다. 정오 무렵이 되자 태양은 꼼짝하지 않고 정지해 있지만 용광로 같은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경전철 9호선을 타고 탕구역에서 내리면 바로 짝퉁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양화 (洋貨) 시장으로 갈 수 있다. 그들은 그 시장의 남쪽 좁은 이면 도로에 있는 중국인들만 상대하는 낡고 허름한 3층 건물 호텔에서 만났다. 로비에 있는 중국 식당 별실이었다. 천장에는 낡은 선풍기가 느릿느릿 돌아갔다.
지부장이 말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지요. 너무 더워…… 끈적 끈적하지. 남조선은 어떻습니까.”
장 동무가 말했다.
“올해는 무척 더울 모양입니다. 남한도 마찬가지이지요.”
“중국 친구와 몇 번 와 봤는데 여기 음식이 괜찮아요.”
“저는 처음입니다만……”
“우리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이야기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오. 자유스럽게 합시다. 우리가 처음 만난지도…… 너무 오래되었소. 우리는 비밀회의를 하는 게 아니니까 은어나 암호화된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 거요. 식탁에서 대화는 가볍고 유쾌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단 말이요.”
“그래도…… 모처럼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는 거…… 항상 너무나 입조심을 해야 하니까 가끔 입이 근질근질하지요.”
“축하하오! 장 동무! 이번에 대좌로 승진 되었소. 만약 조국이 통일되면 경기도 지사 아니면 인천 시장쯤은 문제없을 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그건 잘 아시오. 내가 적극 추천했단 말입니다. 남쪽에 있는 우리 고첩 가운데 15년 넘게 활동한 경우는 드무니까. 이중생활의 고통이란…… 위험하고 힘들지. 호랑이 굴에서 살고 있는 거란 말이지. 내가 잘 알고 있소. 언제가 귀환하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오.”
“저에게는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정통으로 공작원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직계가 아니라 몇 단계 떨어진 방계이지요. 저는 명색이 간첩인데 아직 총 한 방 쏘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손은 너무 부드러워서……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게…….”
“그건 그렇소만…… 이제는 그런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해요.
동무의 활약은 참으로 눈부셔요. 동무가 공작 업무를 수행하는 걸 보면 거의 예술에 가까워요. 얼마나 깔끔하게 처리하는지…… 예술가의 솜씨라고 할 수 있네. 나는 호위총국이 지겨워서 자진해서 전출을 요청했어. 모험을 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젊은 장교 시절 휴전선 침투도 여러 번 했고 공작선을 타고 해안선 침투도 많이 했었지. 그리고 몇 번쯤 아주 위험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고정 간첩은 할 수 없었소. 성질이 급하니까 안 되는 거요.
사람마다 특징이 있는데 나는 위험하지만 짧은 순간 끝나는 특수 임무가 체질에 맞는 거야. 그러니까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조직하는 데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 고정 간첩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거요. 그 긴장감을 이겨내려면…… 엄청난 자제력과 인내심이 필요할 거니까 말이오.”
“너무…… 지부장님은 언제쯤 본부로……”
“동무 말뜻을 헤아릴 수 있지. 나더러 언제쯤 승진하냐고 묻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북경이 좋다네. 여기서는 내가 최고라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지. 그런데 본부에 들어가면 상전이 너무 많으니까 옴짝달싹할 수 없어.”
“그래도 승진은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내가 간다면 해외 담당 부국장이겠지. 이것도 내 희망 사항일 뿐이야. 하지만 총국장은 어림없지. 총국장 뒤에는 최고 지도자가 있으니까. 그건 측근 중의 측근인 최측근이 아니면 불가능해. 난 그 정도는 아니야. 그걸 바란다면……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네.”
“제게는 과분한 영광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동안의 활동에 비하면 너무 늦은 감이 있어요. 동무는 중국 사람 이상으로 중국어에 능통하고 남한 말 역시 남한 사람 이상으로 능통해요. 그러니 대중국 무역회사 사장으로는 안성맞춤인 거요. 중국과 한국에 인맥도 두텁고…… 가끔 주요 회의에서 통역도 하니까.”
“그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으니까 중국어에 능통하고, 남한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남한 말을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부장님이야말로 중국어라면 최고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내 중국어는 벌써 구닥다리요. 고첩은 신분을 은폐해서 장기 잠복하는 거요. 그래서 역량을 축적하여 기회를 기다리는 거지.
그게 중국 공산당이 엄격한 지침으로 삼고 있는 비밀요원의 직업화, 사회화, 합법화 원칙 아니겠소. 여기서 핵심은 직업화요. 그럴듯한 직업이 없다면 사회화, 합법화를 할 수 없고 당연히 장기 잠복은 불가능해요. 동무는 정말 훌륭하오.
내가 중국 유학 시절 중국 공산당 비밀 조직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네. 국공 내전은 뭐니 뭐니 해도 스파이 전쟁이었어. 장개석의 국민당은 첩보전에서 공산당에 완패를 했어. 국민당 수뇌부나 장개석 군대 최상층부에 자리를 잡고 장기간 암약한 거물 스파이들이 있었지. 누구는 국민당 당 중앙의 속기사로 12년을 근무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어떤 경제학자는 정부 고위 관료로 승승장구하면서 20년 이상 잠복해 있었고, 누구는 10년 이상을 장개석 토벌군 최고 사령관의 부관으로 일했고, 누구는 평생 동안 회사를 경영했지. 그렇게 해서 첩보전의 승리가 홍군의 승리로 이어진 거야.”
“일찍이 스탈린이, ‘전시에 전투에 승리하려면 몇 개의 부대가 필요하다. 반면 전선에서 이런 승리를 뒤집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지 군 지휘부 모처에 심어 놓은 몇 명의 첩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작전은 완전히 소련식이야. 스탈린이 만든 지침을 충실히 따른 거지.”
“지부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극비 사항이오. 아무도 내가 여기 오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칭따오에 간 줄로만 알고 있을 거요. 오늘은 이것저것 할 말이 너무 많소. 그만큼 중요한 일이오.
여기는 안전하니까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소. 문서는 비밀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소.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지. 그래서 극비 비밀은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문서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거요. 구두로 전달하는 게 가장 안전해요.”
“그렇습니다. 문서는 작성도 힘들고 읽는 사람이 자칫 행간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보안이 중요한데 북경에서 이 작전을 아는 요원은 없어요. 당연히 대사도 모르고 있소. 어차피 공작에는 무식하고 관심도 없지만 말이오. 우리는 대사를 비롯해서 대사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소. 그것도 우리의 임무 중 하나요.
걔들은 망명을 시도할 수 있거든. 그래서 대사는 우리 요원들을 경계하면서 싫어하지. 외무성과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
이리로 부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북경이나 옌타이는 너무 위험해요. 국정원이나 국군 정보사, 보안사의 해외 파견 요원들이 무역 회사 주재원으로 위장해서 공작 활동을 하고 있지. 그것뿐만 아니지. 별도로 본부의 공작관들이 직접 조종하는 공작원들이 공작 활동을 하고 있단 말이지. 그건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소. 걔들은 전부 블랙 요원이고 여기저기 버젓이 신분이 노출된 화이트 요원도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단 말이야.
우리 쪽에서도 국가안전보위부나 노동당 조사부, 정찰총국 요원들이 득실거리니까 보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거요. 북경에만 100명 넘게 공작원이 상주하고 있지. 그래서 우리 쪽도 믿을 수가 없어. 쥐새끼들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 여기 톈진은 괜찮아요. 관광도시도 아니고 상업 도시이니까 무역업자가 들락거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지. 인천항에서 여기까지 국제여객선인 ‘천인호’가 정기적으로 운항하지만 승객들은 대부분 장사치들이야. 천진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있는 코스가 아니란 말이요.”
“저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회사 상황은 어떻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칭따오의 수출회사와는 거래가 원만합니다. 우리가 주문하는 대로 즉시 선적을 해주고 그러면 물품대금을 은행을 통해 송금합니다. 주류 도매상들은 아주 오래된 거래처이니까 서로 간에 믿을 만하긴 합니다만 문제는 다른 수입회사들이 덤핑을 하면서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직의 요원들과 정보원들은 끊임없이 지도 검열을 잘 해야 하오. 정신이 해이해지면 안 되는 거요. 동무는 신중하니까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메모리에 어떤 사소한 것도 저장하지 마시오. 아무리 지워도 포렌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복원할 수 있으니까.
컴퓨터는 오직 무역서류만 취급해야 하오. 그리고 휴대폰을 조심하게나. 그게 편리하지만…… GPS 정보를 이용해서 동무의 동선을 삼각측량법으로 추적할 수 있단 말이오. 까딱 잘못하면 빌미가 될 수 있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법적인 거래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거요. 만약 그걸 수사하게 되면 결국 모든 게 탄로나니까.
그래도 복권이 당첨이 되어서 대박이 나는 건 괜찮겠소만……”
“저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까요.”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아주 중요해요. 이 공작의 정식 명칭은 김학모 할배 제거 작전이요. 그리고 대남 공작원의 공작명은 남산1호이지. 지시 사항을 직접 충분히 전달해야 하니까 인터넷으로는……”
“잘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이번 작전은 최고 지도자 동지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소.
장군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할배는 어린 시절 가정교사였어. 그래서 스승처럼 모셨단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갔단 말이오. 처음에는 설마 설마 했을 거요. 그럴 리가 없다고. 마침내 배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충격과 절망감을 생각해 보시오. 용서할 수가 없는 거지. 처절한 복수밖에 없어요. 조금 늦었지만…… 늦은 게 아니오.”
“배신자라면 예수님을 밀고한…… 누구더라…… 이스카리옷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쁜 물이 들지는…… 맑스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소.”
“물론입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점잖은 장로님한테서 어깨 너머로 귀동냥한 것이지요. 그분은 맑스를 예수를 배반한 유다보다 더 나쁜 인간으로 간주합니다. 저에게 교회에 나와 하느님에게 귀의하라고 몇 번이나 강력하게 권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여태 차일피일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안전하니까요.”
“그게 말이오…… 교회에 다니다 보면 목사님의 설교에 현혹되어 진짜 기독교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걸 조심해야 하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러저러한 단맛 쓴맛을 맛본단 말이지.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지. 하지만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는 거요.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배신 아니겠소.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살면서 언제든지 사소한 배신을 한단 말이지. 누가 배신을 안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소.
하지만 말이오…… 그런 배신과 공화국을 배신하는 극악무도한 반역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거요. 공화국은 배신자를 제일 싫어하오. 솔직히 말하면 제일 두려워하지. 그래서 경고를 해야 되니까 반드시 응징을 해야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 할배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그것은 공산주의의 위대한 관습이고 전통인 거 같습니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와 투쟁하는 것보다 변절자와 투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탈린 동지는 트로츠키를 끝까지 추격해서 죽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배신자는 용납할 수 없는 거요. 언젠가 남조선에서 목사도 올라왔고 작가라는 사람도 올라왔지 않소. 그리고 젊은 처녀가 수령님의 품에 안기겠다고 북으로 왔고…… 그게 말이야 아주 공개적으로 왔지. 우리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내심 아주 싫어했던 거요. 배신자니까. 남쪽에서 보면 그건 틀림없이 배신자 아니겠어.
배신이란 게 무엇이오? 배신자가 누구요? 또는 변절자가 누구란 말이요? 그들은 밀고한 사람들이요. 밀고란 말입니다. 고자질쟁이이고…… 밀고자란 말이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밀고자를 혐오하게 되어있어요. 가장 비겁하고 더러운 행동이니까 말이요.
내가 예를 하나 들 수 있지. 더러운 배신자이니까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한때는 주사파의 핵심 인물이었지. 말하자면 그 자가 제 발로 북조선으로 올라왔단 말이지. 수령님께 무릎을 꿇고 충성 서약을 한 후 간첩 교육을 받고 나서 노동당에 정식 당원으로 입당한 거요. 그러고 나서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간 거지. 물론 우리 공작선이 공짜로 태워다 주었지.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됐소? 그 인간이 무슨 북한인권단체를 세워가지고서는 주체사상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수령님을 대놓고 욕하고 북한을 지옥이라고 떠들고 다녔소. 혁명의 열정은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회주의자로 변신한 거지. 처음에는 그의 변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 틀림없이 온갖 꼬임에 넘어간 거요.
그래서 혁명 동지들을 배신한 거요. 확고했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는 거니까. 아무리 무슨 변명을 떠들어대도 듣고 싶지 않아요.
반동분자! 반동분자 중 가장 비열한 반동분자!
그렇지만 그 반동분자는 몸조심해야 할 거야.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우리의 배신자 명단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말이요…… 지식인 중에서 배반자가 된 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인간들은 그 모양이요. 지식이 오염시키니까 그렇게 된 거지. 쓸데없는 온갖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가지고서는 혼란을 일으키니까 그러면 머리가 산만해져서 초심을 잃게 되는 거라고.
공작원은 정직하고 고지식하고 단순해야 한단 말이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총국장님은 최고 지도자 앞에서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장담을 했단 말입니다. 첫 번째 작전에서 실패했으니까 면목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이번 작전은 참으로 중요하오.
동무도 잘 알다시피…… 정찰총국은 출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 정보기관과 공작기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까 효율적이지 않은 거지. 그래서 통합했단 말이오.
총국장님은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거울 것 아닌가. 그래서 무언가 눈에 확 띄는 작품을 지도자 동지께 보여줄 필요가 있었단 말이지.”
“정찰총국이 새로 출범하고 나서 저도 소속이 노동당 작전부에서 그쪽으로 옮겨졌습니다만…… 소속이 다른 조직을 통합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텐데요?”
“그건 사실이오. 내부적 알력과 경쟁은 단시일 내에 해소되는 게 아니지. 무엇보다도 국가안전보위부가 날뛰고 있단 말이오. 우리하고 업무 영역이 겹치니까 말이지. 거기다 군 보위사령부, 노동당 225국까지 대남공작에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설쳐대니까. 그래서 총국장님이 역량을 발휘해야만 되는 거요.”
“최근 보위부는 옛날 대남공작 방식과는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공작원 남파시 검거되거나 임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서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채 탈북자로 위장시켜 내려보냅니다. 일단 남한에서 정착하여 합법적 신분을 취득하면 그때 2차로 침투한 후속 공작원이나 국내 고첩망을 접선시켜 본격적인 공작임무를 수행케 하고 있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선 침투, 안전하게 도착한 후 지령 하달과 임무 수행’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위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우리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간섭할 수 없단 말이오. 그러니 서로 간에 업무 협조도 어려워요.”
“먼젓번도 준비가 소홀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재수가 없었던 거지요. 남쪽의 국정원 조직이 생각보다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놈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자본주의 개x끼들이니까. 걔들은 국내외 정보 수집은 물론이고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이 온갖 짓을 저지르고 있지. 오히려 대북 정보보다는 국내 정보 수집이 더 중요한 거야.
정신이 썩어빠져가지고 국가 안보가 아니고 정권 안보가 우선이요.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지. 상층부는 정치권에 줄을 대고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해요.
육군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당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설립한 거요.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지. 글쎄 그 사람이 바로 중정 부장한테 살해당했단 말이야. 그 사람의 눈과 귀, 손과 발이었던 부장이 직접 확인 사살까지 했어. 그는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어. 그가 누구인가? 일본 관동군 장교에다 해방 후에는 남로당 당원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까지 언도받았어. 그런데 눈치 빠르게 전향해서 동지들을 팔아먹고 혼자서 살아남았단 말이야.
그게 바로 배신자의 말로인 거야.
그러니까…… 그 조직이란 게…… 물불 안 가리고…… 비정한 집단이기도 하지. 피차 마찬가지란 말이지. 우린 오랜 적수이지만 서로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악명 높은 김형욱 부장을 살해하는 데 그 기관이 깊숙이 개입했어. 물론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겠지. 김 부장은 1992년인가 그 무렵에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받았으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냥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죽은 게 틀림없어.
불효자식이 말썽꾸러기 아버지를 죽인 셈이지.
그것들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북을 이용해먹고 있소. 그래서 맨날 간첩 조작을 하고 북풍 조작을 하는 거 아니겠소. 생사람 잡아서 간첩 만드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이오. ‘인혁당 사건’이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도 그렇고 ‘수지 김 사건’도 그렇소. ‘아말렉 공작’이란 게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 북풍을 조작하는 거였소.”
“그 사람들은…… 못하는 짓이 없군요.”
“자기들은 온갖 짓을 다 하면서 말이야. 북을 대놓고 욕한단 말이지. 남쪽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대개 걔들이 조작해서 퍼뜨린 거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다시 강조하지만 물질은 정신을 이길 수 없소.
공화국 이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필요하단 말이오. 부패한 자본주의에 동화되면 안 되는 거요.
북조선이 유토피아는 아니요. 물론 실패한 유토피아도 아니요. 처음부터 유토피아는 없었소. 소련에서부터 혁명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단 말이야. 그렇지만 공산주의도 결국 인간이 하는 짓이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어떤 진실이 존재한다는 거지. 공산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니까 인류의 위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어요. 사회적 평등 추구는 시대를 초월한 주제인 거요.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오. 그게 우리의 자존심이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 해 독일이 통일되었지만 우리 휴전선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요. 경우가 다르단 말이지.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결국에는 미국도 원하지 않을 거요. 모두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 공화국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아요. 핵무기가 있지 않소. 그게 우릴 지켜줄 거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핵을 양보할 수는 없는 거요. 동요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국정원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오.”
“국정원 사람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탈북민을 가장한 침투는 당분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열 명 넘게 발각되지 않았습니까. 특히 2008년 8월 불거진 ‘원정화’ 사건 때문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탈북자들의 동향은 어떻소. 그 사람들이 만든 탈북민 단체도 많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내려온 탈북민은 3만 명이 넘을 겁니다. 탈북민 단체가 대략 70개인지 80개인지가 될 겁니다. 많다고 보면 많고 적다고 보면 적을 수도 있지요. 오히려 너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NK지식연대라는 단체가 있는데요, 북한에서 전문학교, 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지식인들로 조직된 최초의 탈북민 단체입니다. 회원이 무려 4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까 탈북민 단체 중에서는 규모는 물론이고 영향력과 공신력이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단합이 잘 안 돼요.”
“여태껏 몰랐던 자본주의 제도를 새로 경험해야 하니까 듣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걸?”
“아이러니합니다만……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북에서 듣던 것과는 사정이 다르니까 실망하고 다시 탈남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탈북민 중에서 30프로가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듣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는 거죠. 워낙 괄시를 받으니까 분통이 터진 겁니다.”
“그들 탈북민이나 단체들과 관계는 어떻소.”
“우리는 같은 북한 출신이니까 정서적으로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데 문제점은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몇몇 탈북자 단체는 경찰이 관리하거나 기무사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단체는 아예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탈북자들의 모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왜? 젊으니까?”
“젊은 탈북자들이 동아리를 만들어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걔들은 순수합니다.”
“그 인간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소?”
“누구 말씀인가요?”
“김일성종합대학 책임지도교원 말이요.. 걔가 모든 걸 처리했으니까 영감이 내려올 수 있었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지요.”
“그런데 남산1호의 심사는 어떻게 돼가지요?”
“현재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6월 5일 입국했으니까요. 그 센터는 내곡동 본부 건물과는 별개로 시흥시 조남동에 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모든 탈북자들은 센터에서 반드시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조사를 마치고 일부 교육까지 받으려면 센터에서만 대략 2개월이 소요됩니다. 지금이 6월 중순이니까 50일쯤 지나야만 센터를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원으로 가서 또다시 12주 동안 교육을 받게 되지요. 가을쯤에나 완전히 풀려나는 겁니다. 잘 빠져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하나원은 상당히 느슨하기는 합니다. 면회도 가능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외출이나 외박도 가능합니다. 외출 중에는 장기외출도 가능하고 조기 수료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보안이 중요해요. 보안이 생명이야. 철저히 훈련을 받았으니까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거요.”
“우리는 남산1호가 국정원 센터를 나와서 하나원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면밀히 체크할 겁니다. 그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나원도 순서에 따라 기수가 매겨진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소. 장군님도…… 할배도 많이 늙었으니까 건강이 좋을 리 없고…… 97년 4월에 내려왔으니까 벌써 13년이 되었소. 올해가 2010년 경인년이오. 호랑이띠란 말이요.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소.”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장 동무의 근황을 설명해 보시오. 보고서에는 빠져 있는 부분 말이오.”
“잘 아시다시피 제 관할은 충청남도, 인천, 경기도 서남부 지역이지요. 모두 서해 쪽 해안선을 끼고 있습니다. 성남이 있는 경기 동부나 경기 남부는 관할 밖이지요.”
“경기 동부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아있긴 하네.
거기는 운동 기풍이 굉장히 강했거든. 마치 묵가 집단과 같았어. 일종의 공동체였으니까 개인적인 요소는 등장할 수가 없었지. 개인 소유가 없었어.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오면 공동체에 내놓았다네. 그리고 합숙하면서 새벽에 함께 기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
걔들은 고도로 조직화됐고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였어.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이는 북한 말투나 북한식 표현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지. 동지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어. 모두 가명을 썼단 말이야. 그러나 지금은 희미한 기억만 남았다네.
우리는 분리 분할의 원칙, 횡적 연계 금지, 단선 연계 원칙, 월선 금지를 철저히 지켜야 하오. 남의 일에 대해서는 알아도 안 되고 간섭해서도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그쪽과는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거요. 우리가 포섭하는 데 계속 실패했다는 것을 아시오.
우리 쪽에서 신분을 밝히고 접근하면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도망가요.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딱지가 붙으면 출세에 지장이 있으니까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단 말이야.
처음 주사파가 등장하니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오. 드디어 결정적인 혁명의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던 거요. 뭔가 한 줄기 희망이 보였소. 80년대와 90년대 학생운동은 거의 전부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주사파가 주도했어. 아주 고맙게도 남쪽 주사파는 독자적으로 주체사상을 수용해서 대학 운동권의 주류 세력으로 부상했단 말이야. 걔들은 반미 자주화 노선을 내걸었어.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지켜보다가 마침내 접촉을 시작한 거야. 걔들 말이야…… 김일성 주석님을 수령으로 하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인간들이었어. 그걸 군사독재정권이 악랄한 수법으로 조작한 게 아니란 말이야.
우리가 순진했는지 무지했는지……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지. 너무 흥분했었다니까. 결정적인 시기가 되자 꽁무니를 뺀 거요. 아주 얄팍한 기회주의자들이니까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적당히 안전한 곳으로 빠진 거지. 그리고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할 때 ‘나는 공산주의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지. 그 대신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다시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 우리의 평생 동지인 비전향 장기수들은 끝까지 버텼지만……. 걔들은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나지.
속은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거야.”
“뒤늦게 그들의 실체를 파악한 거군요?”
“다 똑같다고…… 입만 살아가지고…… 다시 말하면 한때 운동권이었다고 내세우면서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는 거요. 좌파라던가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묘하게도 신선한 매력을 풍기거든. 자신의 일신 영달을 위해서 북을 제 마음대로 이용했단 말이오.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이지.”
“지금은 주사파가 자연스럽게 소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들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하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서부 해안 지역이요. 서해안은 지리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황해도 일대와 연결되어 있고 황금어장을 끼고 있지 않소.”
“서해안 일대 선착장에는 1톤도 안 되는 작은 낚싯배에서부터 10톤이 넘는 꽃게잡이 어선에 이르기까지 각종 어선이 수없이 정박해 있습니다. 외지에서 온 바다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섬들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밤낮으로 바다낚시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낚싯배나 어선을 가장해서 침투하거나 탈출하기가 용이하지 않겠소. 거길 빠져나오면 바로 공해상이니까 우리 측 선박들이 대기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단점이 있긴 합니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아서 상어급 신형 잠수함이 작전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그 대신 수심이 깊은 동해가 있지 않소. 서해안의 해안선, 섬들, 무인도, 해수욕장, 주요 시설 특히 군의 경비 초소, 레이다 기지를 정탐해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 서해안의 조석과 조류, 다시 말하면 물살의 흐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오.
특히 북방한계선 부근 연평도의 물살이 중요하단 말이오. 거기가 황해남도 개머리와 등산곶과 연결되어 있지 않소.
우리 전선서부지구 사령부가 작전 지휘를 하고 수산사업소 어업지도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지만…… 정확한 남쪽 자료가 필요하지. 솔직히 말해서 남쪽 것이 훨씬 정확하니까. 그런 건 해양경찰청이나 국립해양과학기술원에 중요한 자료가 있을 거요.”
“그곳 바다는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조류가 하루에도 6시간 간격으로 4번씩이나 바뀝니다. 그때마다 물살의 빠르기가 달라집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과 썰물이 시작되는 시각, 고조와 저조에 이르는 시각, 물살의 속도 등에 대해서는 늙은 어부들이 감각적으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로한계선이나 군사분계선을 넘으면 수산업법과 반공법을 적용해서 무조건 구속했던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바다에서만 살았으니까요. 그 시절에는 위성항법장치나 전자해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아닙니까.”
“연평도 주둔 해군과 해병대의 동향에 대한 정찰을 좀 더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거기는 군사적으로 민감해요.”
“강화도에서부터 전북 위도까지가 가장 좋습니다. 반잠수정이나 모터보트를 타고 와서 해안 침투가 용이한 지역입니다. 높은 파도가 치거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으면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군부대의 경계 상태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선들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면서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어선에는 조타실을 겸한 선장실과 갑판, 선실, 기관실 그리고 어창이 있지 않습니까. 선장실에 촬영 장비를 숨겨놓고 있지요.”
“최고급 극비 정보는 우리 영역이 아니오. 모른 척 해야 하오. 정찰총국 본부에서 비밀리에 별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거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요?”
“사이버 전쟁이 진즉부터 시작됐소. 미래의 전쟁은 더 이상 무기나 총탄만으로 수행되는 게 아니란 말이요. 데이터에 들어있는 아주 작은 비트들이지. 사이버 공간에서 누가 정보를 통제하느냐가 중요한 거요. 내 생각에는 우수한 해커들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을 거요. 걔들은 랜섬웨어를 심은 피싱 메일을 뿌려서 사이버 테러까지 할 수 있으니까. 최고급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해서 해커 집단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있어요. 그게 네트워크 관리 업체의 시스템에 접근해서 기밀 정보를 빼내는 모양인데…… 사이버 공격의 진화 속도는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해킹이 불가능한 영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그걸 막기 위해서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보안 솔루션이 필요한 거고. 내가 보기에는 결국 창과 방패의 싸움인 거지. 뚫리느냐 아니면 철벽 보안이냐.
그렇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네. 워낙 정교한 기술 분야이니까.”
“저희 사무실의 컴퓨터 장비는 아주 초라합니다. 해킹 방지는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들통이 날 뿐입니다.”
“잘 알고 있소…… 쓸모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 사소한 조각들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조합해나가는 것이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니까.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서로 꿰맞추면 거기에서 일관성 있는 어떤 흐름을 찾을 수 있지. 그러니까 1급 자료일 필요는 없소. 인터넷에서 흔히 떠들고 있는 2급이면 어떻고 3급이면 어떻소. 그것들하고 우리가 해킹한 자료를 연결하고 조합해서 머리를 짜내면 아주 쓸모있는 게 나올 수 있을 거요.
요즘 인터넷에는 일급 정보까지 넘쳐난다네. 오죽하면 인터넷에 핵무기 제조법까지 떠돌고 있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극도로 예민한 정보가 널리 퍼져있지. 더 이상 우리 스파이들만의 독점적 전문 영역이 아닌거요. 자칭 판타지 사이트에서는 사람을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방법을 소개한 인육 조리법까지 나온다니까.”
“잘 알겠습니다. 기막힌 세상이군요. 퇴폐적인 생활에 물들어서 자유 방종이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 병폐이지요.”
“아무리…… 인터넷 세상이라고 해도 남조선 사회를 혼란시키기 위해서는 통신망이나 교통망, 에너지망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금융기관 전산망 공격, 언론사 신문 제작 시스템에 대하여 사이버 테러를 감행할 수 있어요.”
“그런 종류의 테러에 대해서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장 동무가 ‘한국의 하와이’라고 부르는 제주도에 대한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올린 게 언제쯤이요?”
“2년 전입니다. 그 당시 제주도 일대를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샅샅이 현지 답사했습니다. 제주도 해안은 공작선이 침투하는데 가장 쉬운 곳이었지요.”
“거기다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하니까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에서는 난리가 난 거지. 대남 공작원들을 침투시킬 주요 루트를 잃게 되니까. 기지가 있으면 병력도 대폭 증강되고 경계도 강화될 테니까. 그리고 제주도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해.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특수부대가 제주도를 기습 점령해서 교두보를 확보한 다음 뒤통수를 칠 수 있단 말이야.”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기지 건설 반대가 실패했으니까요. 제주도민의 반대운동이 워낙 거셌으니까 성공할 걸로 예상했습니다만.
그렇지만…… 저는 그 섬에서 행복한 몇 달을 보냈습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처음 갔거든요. 바다가 무척 아름다워요. 바닷바람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매서웠지요. 부두의 어부들과 생선 비린내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몇 달 동안이나 관광했단 말이지?”
“제주도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광이 넘쳐나지요.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또 다시 봄이 온다고 했습니다만 제비는 육지에 오기 전에 먼저 제주도에 들르지요. 새벽 3시쯤이면 벌써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조업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다로 나가지요. 야간 조업을 마친 어선들은 돌아와서 포구에 닻을 내립니다.”
어부들은 거친 바닷바람과 햇빛에 시달린 탓으로 얼굴에 잔주름이 잔뜩 잡혀 있다. 이제 바람소리가 속삭이듯 잠잠해지고 바다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누워있다. 잠에서 일찍 깬 갈매기들이 어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맴돈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거나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그것들 울음소리는 깜빡 착각할 만큼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바닷가를 휘감아 감싸고 있던 회색 안개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밀려 시나브로 흩어진다.
“그 섬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이었네.”
“그렇습니다. 제가 제주도가 안고 있는 비극적 정서를 뼈저리게 깊이 알게 되었지요. 남몰래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뜨르에서 섯알오름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검은 비석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제주 4·3 당시 희생자 추모비인데 추모비 뒤에는 웅덩이 두 개가 있습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학살 현장이었지요. 군인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한 양민들을 그 자리에서 총살했습니다. 그리고 숨진 양민을 웅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웅덩이가 개방된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는데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살은 썩어 문드러졌고 뼈는 엉켜있어 할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슬프고 기가 막혀서 한동안 내내 앓았습니다. 그때는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신열이 나고 환청도 들렸습니다. 피해자들이 경찰과 우익 청년단에게 당한 내용이 계속 꿈에 등장해 고통스러웠죠.”
“이왕 갔으니까…… 제주도 고유 음식을 실컷 즐기지 그랬어.”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동쪽으로 출발하여 한 바퀴 일주했지요. 별미인, 보말칼국수, 돔베고기, 모자반으로 끓여낸 몸국, 메밀가루를 반죽해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 꿩메밀칼국수, 접짝뼈국, 제주 전통 육개장을 번갈아 가며 자주 먹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다금바리 회와 흑돼지 삼겹살, 은갈치 조림이야말로 술안주로는 최고였습니다. 소주와 함께 먹으면 정말 별미였습니다. 그런 안주로 술을 마시면 소주를 몇 병이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옆에 함께 마실 여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제주도 해안선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공작선이 침투 가능한 경비가 허술한 해안선을 찾는 것이 중요했지요. 가시 철조망이 쳐진 해안 경비대 벙커들을 일일이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해군 기지에서 군함들의 입출항을 점검했습니다.
결론은 해안 경비가 강화되어 있어서 공작선이 침투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 아닙니까. 중국 관광객이 그 섬에 엄청나게 오는데 그게 발각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또 하나 최근에는 중국 어선들도 제주도 부근 바다에서는 조업하지 않습니다. 서해로 올라온 것이지요.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주도 해안은 우리에게는 이제 쓸모가 없습니다.
서해에는 효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있습니다. 인당수는 그 옛날 중국 무역선과 우리 무역선이 오가던 서해 바닷길에 있었지 않습니까. 서해에는 연평균 우리 어선 6,000척과 중국 어선 3,000척이 떠다닌다고 합니다. 고기도 잡지만 서로 매매도 하고, 물물교환도 하고, 마약 거래도 하고, 밀수 행위도 합니다. 바다에 떠 있는 국제 암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섬에다 최첨단 해군 기지를 새로 건설하려고 준비하고 있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섬사람들은 결사 반대할 거라고. 그게 해상 수송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데 결국 중국을 견제하려는 거야. 틀림없이 미국의 사주를 받았을 테지만.
내가 지금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 섬은 나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소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지. 마침내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내 개인사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구만…… 글쎄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네.”
기만하고 배신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이다.
우리는 배신을 좋아한다. 그러나 배신자는 가증스럽다.
서울에서 고시촌으로 유명한 곳은 관악구 신림동(법정동) 중에서도 대학동(행정동)이 신림동 고시촌으로 유명하다. 일명 녹두거리라고 한다. 또 한 곳은 동작구 노량진1동의 노량진 고시원이다.
그곳 고시원에서는 월세 20만원이나 30만원을 내고 살 수 있다. 고시원에서 일주일 정도 단기 투숙을 할 수도 있고 또는 1박이나 2박도 가능하다. 하루 자는 데 만원 정도이니까 다른 지역 모텔이나 여인숙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 서울 도심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단기 외국인 여행객들이 소문을 듣고 몰리고 있는 것이다.
고시생과 공시생들의 메카였던 그들 고시촌이 외국인 타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공무원 채용 인원이 축소되면서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감소하니까 이 지역 원룸과 고시원은 잇따라 공실이 됐다. 그에 따라 식당과 상점 매출도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 고시촌이 다른 서울 지역보다 집값이나 식사 비용 등이 저렴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라진 공시생들 빈자리를 외국인 단기 관광객과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대로변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흔해빠진 아파트나 현대식 빌딩 하나 없이 비좁은 골목으로 가득한 동작구 노량진2동은 오래전에 ‘노량진 재정비 촉진 지구 ’로 지정되어 있다. ‘아직도 서울특별시에 이런 동네가 있나 ’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재개발을 앞둔 노량진2동은 동네 곳곳에 다양한 문제가 많았다. 오래된 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지역이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쓰레기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시도 때도 없이 악취를 풍겼다.
중국 교포나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도 있었지만 요즈음은 흑인들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대개 한국인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주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주민센터 인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그들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교회 안에서 비를 피하던 이도 있었다. 주민들은 처음엔 국적도 몰랐지만 이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온 난민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노량진2동에 모여든 이유가 있었다. 노량진2동 근처에 있는 상도동에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가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는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난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는 기독교 비정부기구로 난민 신청을 돕거나 숙소를 제공하고 한국어 교육을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난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장승배기역 쪽으로 올라가는 장승배기로 뒷쪽 이면 도로 골목에 그 건물이 있다. 대지 70평에 지붕은 박공벽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색이 바랜 붉은 벽돌 3층 건물이 서 있는 것이다. 1층은 ‘북경반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중국집이고, 2층은 간판도 없는 무역회사 사무실이고, 3층은 살림집이다.
그 ‘유한회사 대명상사’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통관절차를 담당하는 탈북민 출신의 40대 초반 남자 직원 하나,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물품을 주류 도매상에 배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 하나, 은행에서 수출회사가 송부한 선적서류를 수령하고 물품대금을 결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 하나가 있고, 건물주인 40대 말인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있다.
장해식 (張咍飾) 사장은 원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데 20대 초반에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갔고 그 후 중국 공산당 혁명의 성지인 산시성 연안으로 가서 모택동의 홍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국공내전 당시인 1948년 10월 홍군이 창춘을 포위할 때 국민당군과 치열한 전투 중 사망했다. 그래서 장해식은 혁명 유가족 자격으로 동생들과 함께 중국 공산당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지원을 받아 명문 대학인 북경 정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그리고 20대 말에 벌써 조선족 출신 중국인 신분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제작 수출하는 한국의 대기업 북경 지사장이 되었고, 중국 내 정법대 출신 인맥을 활용해서 탁월한 영업실적을 올렸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성실하여 지독한 일벌레였다. 제품을 팔기 위해서 중국의 도시는 물론이고 홍콩이나 태국, 싱가폴 등지까지 출장을 다녔고 서울에도 본사와 업무 협의차 자주 왕래하였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탁월한 영업실적을 인정받아 국내 본사로 들어와 중국 담당 수출업무를 담당하며 부장까지 승진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는 중국 조선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임원급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고 작은 무역회사를 차린 것이다. 물론 그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의 도움으로 한국 국적을 무난히 취득하기는 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값싼 농산물인 호두, 땅콩, 고구마순, 버섯 등을 들여와 서울 경동시장 농산물 도매상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중국 농산물은 값도 싸고 물량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수입에는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 반면에 북한산 농산물은 국내로 수입할 때 내부 거래로 취급되면서 관세가 면제되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인기 있는 농산물을 중국 현지에서 싼값으로 대량 구입하여 북한 남포항에서 속칭 ‘포대갈이’라고 하는 농산물 세탁 과정을 거쳐서 북한 당국의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오면 막대한 수익이 생겼다. 그 당시 그는 그 건물까지 매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칭따오의 맥주 회사에서 칭따오 맥주를 수입하여 주로 주류도매상과 중국음식점에 납품하고 있다.
그는 외동딸이 북경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내까지 북경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가족들을 만나고, 중국의 수출회사와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거의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중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간첩 (스파이)의 세계란……?!
스파이도 인간이다. 통상 사람들은 첩보원의 업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며 첩보 요원 자체도 비인간적인 인격체로 보기 쉽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괴상한 인물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그러한 인물들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장점과 단점 그리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웅적인 활약을 한 간첩들이라도 그들 역시 각자 독특한 개성과 성향, 괴팍함이 있는 우리 모두와 똑같은 인간이다. 공작 업무에 보통 이상의 지능지수와 아주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격에는 천진난만하고 명랑하며 장난기 넘치는 유연한 측면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은 공작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갖가지 위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공작원에게 이러한 자질이 부족하다면 냉혹하고 형식에 얽매여 메마르고 지나치게 엄격하여 직업적인 킬러처럼 잔인한 사람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유능한 공작원이라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공작원이 현장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본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자주 괴리가 있다. 이는 모든 정보기관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므로 의견 충돌이 생긴 때에는 본부의 지시와 공작원의 행동 사이에 노골적인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걸 조정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때가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할까봐 두렵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하는 등의 걱정 속에 살게 된다. 정신적으로 쫓기게 된다. 종종 공작원은 두려움을 다스리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신다.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을 해소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몇몇은 깊은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여자 관계로 골치를 썩인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도박과 마약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공작원 역시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취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동양적 스포츠인 바둑이야말로 최고의 진정제가 될 수 있다.
올바른 인간은 시간을 잘 지키고 업무에 충실하며 인간 관계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비밀 공작원에게도 정확하게 똑같이 적용된다. 하찮은 공작원일수록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자기가 수집한 쓰레기 같은 첩보를 떠벌리며 갖가지 민감한 작전에 늘 참가한다고 떠벌린다. 그런 공작원은 오래가지 못한다. 훌륭한 공작원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이라는 말과 같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장해식은 청소년 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이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유일하게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정통파 공산주의자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는 자기가 죽는 날까지 공산주의 신념에 충실할 것이다. 자기를 직업적 비밀 공작원으로 생각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공작관이나 공작원 중에서 파견 정부의 공식 지위 (외교관) 에서 활동하는 요원은 백색 요원이라 하고, 이와 비교해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흑색 요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흑색 요원이다.
그는 특수 요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준비 교육이 부족했지만 공작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자신의 감각과 본능이 느끼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은 항상 위험했다.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떤 길은 걸어서 통과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정거장에서 내려 갈아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등의 행위를 몇 차례 반복해 오랜 시간을 복잡하게 돌고 돌아 도착해야 한다. 누가 뒤를 밟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지루할 정도로 주위의 이 길 저 길을 걷는다. 드디어 미행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접선 장소로 간다. 미행에 대한 의심이 들면 본능에 따라 접선을 포기하고 상점에 들어가서 무엇을 사거나 하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이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각 이외에 아무런 개인적인 보상도 약속되지 않았지만 천생 끝없는 참을성이 요구되는 공작원의 고된 업무에 헌신했다. 정보 당국의 의심을 차단하여 보호막이 되어주는 무역업자로서의 영업 활동과 공작 거점의 총책으로서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단순한 밀고자와 같은 역할은 거부했다. 그래서 어쩌다 굴러들어오는 정보 조각이 있으면 보고하는 그런 류의 공작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임무를 훨씬 더 가치 있고 고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공작원이 된 것은 순전히 이념 때문이었다. 이것이 공작원의 특질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는 돈만을 위해서 일하는 공작원을 경멸한다.
톈진 (天津)은 ‘천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수도 베이징과는 바다를 이어주는 관문이다. 인천과 서울처럼, 또는 평양과 남포항처럼 말이다. 베이징에서 급행열차를 타면 약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고두현 (高斗賢) 지부장은 베이징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내려왔고 장해식은 옌타이에서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톈진으로 올라갔다. 지부장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다. 그래서 중국 외무부에서 발급한 면책특권이 있는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북한 인민군 소장으로 정찰총국의 북경 지부장이다. 그 자리는 북한에서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고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직접 추천 없이는 갈 수 없는 자리였다.
그는 금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갈 수 있는 정부 호위총국 행사호위부에서 10년 동안 복무했다. 그리고 호위총국에서 근무할 당시 북경대학교에 3년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노동당으로 옮겨가서 대외정보조사부 (35호실)와 작전부에서 공작 업무를 담당하다가 노동당 공작부서들이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과 통합되어 정찰총국이 출범하면서 정찰총국 소속이 되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반 평생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침투와 파괴, 폭파, 살인, 공작과 역공작, 간첩과 이중간첩, 위선과 가면의 스파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얼굴은 온화했다.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그런 어두운 얼굴이 아니다. 그의 그윽한 시선은 사람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마력이 있었다.
오늘은 이른 아침 첫 햇빛이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공기는 나른하게 어른거린다. 정오 무렵이 되자 태양은 꼼짝하지 않고 정지해 있지만 용광로 같은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경전철 9호선을 타고 탕구역에서 내리면 바로 짝퉁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양화 (洋貨) 시장으로 갈 수 있다. 그들은 그 시장의 남쪽 좁은 이면 도로에 있는 중국인들만 상대하는 낡고 허름한 3층 건물 호텔에서 만났다. 로비에 있는 중국 식당 별실이었다. 천장에는 낡은 선풍기가 느릿느릿 돌아갔다.
지부장이 말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지요. 너무 더워…… 끈적 끈적하지. 남조선은 어떻습니까.”
장 동무가 말했다.
“올해는 무척 더울 모양입니다. 남한도 마찬가지이지요.”
“중국 친구와 몇 번 와 봤는데 여기 음식이 괜찮아요.”
“저는 처음입니다만……”
“우리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이야기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오. 자유스럽게 합시다. 우리가 처음 만난지도…… 너무 오래되었소. 우리는 비밀회의를 하는 게 아니니까 은어나 암호화된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 거요. 식탁에서 대화는 가볍고 유쾌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단 말이요.”
“그래도…… 모처럼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는 거…… 항상 너무나 입조심을 해야 하니까 가끔 입이 근질근질하지요.”
“축하하오! 장 동무! 이번에 대좌로 승진 되었소. 만약 조국이 통일되면 경기도 지사 아니면 인천 시장쯤은 문제없을 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그건 잘 아시오. 내가 적극 추천했단 말입니다. 남쪽에 있는 우리 고첩 가운데 15년 넘게 활동한 경우는 드무니까. 이중생활의 고통이란…… 위험하고 힘들지. 호랑이 굴에서 살고 있는 거란 말이지. 내가 잘 알고 있소. 언제가 귀환하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오.”
“저에게는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정통으로 공작원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직계가 아니라 몇 단계 떨어진 방계이지요. 저는 명색이 간첩인데 아직 총 한 방 쏘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손은 너무 부드러워서……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게…….”
“그건 그렇소만…… 이제는 그런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해요.
동무의 활약은 참으로 눈부셔요. 동무가 공작 업무를 수행하는 걸 보면 거의 예술에 가까워요. 얼마나 깔끔하게 처리하는지…… 예술가의 솜씨라고 할 수 있네. 나는 호위총국이 지겨워서 자진해서 전출을 요청했어. 모험을 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젊은 장교 시절 휴전선 침투도 여러 번 했고 공작선을 타고 해안선 침투도 많이 했었지. 그리고 몇 번쯤 아주 위험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고정 간첩은 할 수 없었소. 성질이 급하니까 안 되는 거요.
사람마다 특징이 있는데 나는 위험하지만 짧은 순간 끝나는 특수 임무가 체질에 맞는 거야. 그러니까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조직하는 데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 고정 간첩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거요. 그 긴장감을 이겨내려면…… 엄청난 자제력과 인내심이 필요할 거니까 말이오.”
“너무…… 지부장님은 언제쯤 본부로……”
“동무 말뜻을 헤아릴 수 있지. 나더러 언제쯤 승진하냐고 묻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북경이 좋다네. 여기서는 내가 최고라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지. 그런데 본부에 들어가면 상전이 너무 많으니까 옴짝달싹할 수 없어.”
“그래도 승진은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내가 간다면 해외 담당 부국장이겠지. 이것도 내 희망 사항일 뿐이야. 하지만 총국장은 어림없지. 총국장 뒤에는 최고 지도자가 있으니까. 그건 측근 중의 측근인 최측근이 아니면 불가능해. 난 그 정도는 아니야. 그걸 바란다면……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네.”
“제게는 과분한 영광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동안의 활동에 비하면 너무 늦은 감이 있어요. 동무는 중국 사람 이상으로 중국어에 능통하고 남한 말 역시 남한 사람 이상으로 능통해요. 그러니 대중국 무역회사 사장으로는 안성맞춤인 거요. 중국과 한국에 인맥도 두텁고…… 가끔 주요 회의에서 통역도 하니까.”
“그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으니까 중국어에 능통하고, 남한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남한 말을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부장님이야말로 중국어라면 최고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내 중국어는 벌써 구닥다리요. 고첩은 신분을 은폐해서 장기 잠복하는 거요. 그래서 역량을 축적하여 기회를 기다리는 거지.
그게 중국 공산당이 엄격한 지침으로 삼고 있는 비밀요원의 직업화, 사회화, 합법화 원칙 아니겠소. 여기서 핵심은 직업화요. 그럴듯한 직업이 없다면 사회화, 합법화를 할 수 없고 당연히 장기 잠복은 불가능해요. 동무는 정말 훌륭하오.
내가 중국 유학 시절 중국 공산당 비밀 조직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네. 국공 내전은 뭐니 뭐니 해도 스파이 전쟁이었어. 장개석의 국민당은 첩보전에서 공산당에 완패를 했어. 국민당 수뇌부나 장개석 군대 최상층부에 자리를 잡고 장기간 암약한 거물 스파이들이 있었지. 누구는 국민당 당 중앙의 속기사로 12년을 근무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어떤 경제학자는 정부 고위 관료로 승승장구하면서 20년 이상 잠복해 있었고, 누구는 10년 이상을 장개석 토벌군 최고 사령관의 부관으로 일했고, 누구는 평생 동안 회사를 경영했지. 그렇게 해서 첩보전의 승리가 홍군의 승리로 이어진 거야.”
“일찍이 스탈린이, ‘전시에 전투에 승리하려면 몇 개의 부대가 필요하다. 반면 전선에서 이런 승리를 뒤집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지 군 지휘부 모처에 심어 놓은 몇 명의 첩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작전은 완전히 소련식이야. 스탈린이 만든 지침을 충실히 따른 거지.”
“지부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극비 사항이오. 아무도 내가 여기 오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칭따오에 간 줄로만 알고 있을 거요. 오늘은 이것저것 할 말이 너무 많소. 그만큼 중요한 일이오.
여기는 안전하니까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소. 문서는 비밀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소.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지. 그래서 극비 비밀은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문서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거요. 구두로 전달하는 게 가장 안전해요.”
“그렇습니다. 문서는 작성도 힘들고 읽는 사람이 자칫 행간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보안이 중요한데 북경에서 이 작전을 아는 요원은 없어요. 당연히 대사도 모르고 있소. 어차피 공작에는 무식하고 관심도 없지만 말이오. 우리는 대사를 비롯해서 대사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소. 그것도 우리의 임무 중 하나요.
걔들은 망명을 시도할 수 있거든. 그래서 대사는 우리 요원들을 경계하면서 싫어하지. 외무성과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
이리로 부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북경이나 옌타이는 너무 위험해요. 국정원이나 국군 정보사, 보안사의 해외 파견 요원들이 무역 회사 주재원으로 위장해서 공작 활동을 하고 있지. 그것뿐만 아니지. 별도로 본부의 공작관들이 직접 조종하는 공작원들이 공작 활동을 하고 있단 말이지. 그건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소. 걔들은 전부 블랙 요원이고 여기저기 버젓이 신분이 노출된 화이트 요원도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단 말이야.
우리 쪽에서도 국가안전보위부나 노동당 조사부, 정찰총국 요원들이 득실거리니까 보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거요. 북경에만 100명 넘게 공작원이 상주하고 있지. 그래서 우리 쪽도 믿을 수가 없어. 쥐새끼들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 여기 톈진은 괜찮아요. 관광도시도 아니고 상업 도시이니까 무역업자가 들락거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지. 인천항에서 여기까지 국제여객선인 ‘천인호’가 정기적으로 운항하지만 승객들은 대부분 장사치들이야. 천진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있는 코스가 아니란 말이요.”
“저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회사 상황은 어떻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칭따오의 수출회사와는 거래가 원만합니다. 우리가 주문하는 대로 즉시 선적을 해주고 그러면 물품대금을 은행을 통해 송금합니다. 주류 도매상들은 아주 오래된 거래처이니까 서로 간에 믿을 만하긴 합니다만 문제는 다른 수입회사들이 덤핑을 하면서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직의 요원들과 정보원들은 끊임없이 지도 검열을 잘 해야 하오. 정신이 해이해지면 안 되는 거요. 동무는 신중하니까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메모리에 어떤 사소한 것도 저장하지 마시오. 아무리 지워도 포렌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복원할 수 있으니까.
컴퓨터는 오직 무역서류만 취급해야 하오. 그리고 휴대폰을 조심하게나. 그게 편리하지만…… GPS 정보를 이용해서 동무의 동선을 삼각측량법으로 추적할 수 있단 말이오. 까딱 잘못하면 빌미가 될 수 있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법적인 거래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거요. 만약 그걸 수사하게 되면 결국 모든 게 탄로나니까.
그래도 복권이 당첨이 되어서 대박이 나는 건 괜찮겠소만……”
“저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까요.”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아주 중요해요. 이 공작의 정식 명칭은 김학모 할배 제거 작전이요. 그리고 대남 공작원의 공작명은 남산1호이지. 지시 사항을 직접 충분히 전달해야 하니까 인터넷으로는……”
“잘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이번 작전은 최고 지도자 동지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소.
장군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할배는 어린 시절 가정교사였어. 그래서 스승처럼 모셨단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갔단 말이오. 처음에는 설마 설마 했을 거요. 그럴 리가 없다고. 마침내 배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충격과 절망감을 생각해 보시오. 용서할 수가 없는 거지. 처절한 복수밖에 없어요. 조금 늦었지만…… 늦은 게 아니오.”
“배신자라면 예수님을 밀고한…… 누구더라…… 이스카리옷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쁜 물이 들지는…… 맑스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소.”
“물론입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점잖은 장로님한테서 어깨 너머로 귀동냥한 것이지요. 그분은 맑스를 예수를 배반한 유다보다 더 나쁜 인간으로 간주합니다. 저에게 교회에 나와 하느님에게 귀의하라고 몇 번이나 강력하게 권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여태 차일피일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안전하니까요.”
“그게 말이오…… 교회에 다니다 보면 목사님의 설교에 현혹되어 진짜 기독교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걸 조심해야 하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러저러한 단맛 쓴맛을 맛본단 말이지.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지. 하지만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는 거요.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배신 아니겠소.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살면서 언제든지 사소한 배신을 한단 말이지. 누가 배신을 안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소.
하지만 말이오…… 그런 배신과 공화국을 배신하는 극악무도한 반역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거요. 공화국은 배신자를 제일 싫어하오. 솔직히 말하면 제일 두려워하지. 그래서 경고를 해야 되니까 반드시 응징을 해야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 할배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그것은 공산주의의 위대한 관습이고 전통인 거 같습니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와 투쟁하는 것보다 변절자와 투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탈린 동지는 트로츠키를 끝까지 추격해서 죽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배신자는 용납할 수 없는 거요. 언젠가 남조선에서 목사도 올라왔고 작가라는 사람도 올라왔지 않소. 그리고 젊은 처녀가 수령님의 품에 안기겠다고 북으로 왔고…… 그게 말이야 아주 공개적으로 왔지. 우리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내심 아주 싫어했던 거요. 배신자니까. 남쪽에서 보면 그건 틀림없이 배신자 아니겠어.
배신이란 게 무엇이오? 배신자가 누구요? 또는 변절자가 누구란 말이요? 그들은 밀고한 사람들이요. 밀고란 말입니다. 고자질쟁이이고…… 밀고자란 말이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밀고자를 혐오하게 되어있어요. 가장 비겁하고 더러운 행동이니까 말이요.
내가 예를 하나 들 수 있지. 더러운 배신자이니까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한때는 주사파의 핵심 인물이었지. 말하자면 그 자가 제 발로 북조선으로 올라왔단 말이지. 수령님께 무릎을 꿇고 충성 서약을 한 후 간첩 교육을 받고 나서 노동당에 정식 당원으로 입당한 거요. 그러고 나서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간 거지. 물론 우리 공작선이 공짜로 태워다 주었지.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됐소? 그 인간이 무슨 북한인권단체를 세워가지고서는 주체사상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수령님을 대놓고 욕하고 북한을 지옥이라고 떠들고 다녔소. 혁명의 열정은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회주의자로 변신한 거지. 처음에는 그의 변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 틀림없이 온갖 꼬임에 넘어간 거요.
그래서 혁명 동지들을 배신한 거요. 확고했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는 거니까. 아무리 무슨 변명을 떠들어대도 듣고 싶지 않아요.
반동분자! 반동분자 중 가장 비열한 반동분자!
그렇지만 그 반동분자는 몸조심해야 할 거야.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우리의 배신자 명단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말이요…… 지식인 중에서 배반자가 된 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인간들은 그 모양이요. 지식이 오염시키니까 그렇게 된 거지. 쓸데없는 온갖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가지고서는 혼란을 일으키니까 그러면 머리가 산만해져서 초심을 잃게 되는 거라고.
공작원은 정직하고 고지식하고 단순해야 한단 말이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총국장님은 최고 지도자 앞에서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장담을 했단 말입니다. 첫 번째 작전에서 실패했으니까 면목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이번 작전은 참으로 중요하오.
동무도 잘 알다시피…… 정찰총국은 출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 정보기관과 공작기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까 효율적이지 않은 거지. 그래서 통합했단 말이오.
총국장님은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거울 것 아닌가. 그래서 무언가 눈에 확 띄는 작품을 지도자 동지께 보여줄 필요가 있었단 말이지.”
“정찰총국이 새로 출범하고 나서 저도 소속이 노동당 작전부에서 그쪽으로 옮겨졌습니다만…… 소속이 다른 조직을 통합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텐데요?”
“그건 사실이오. 내부적 알력과 경쟁은 단시일 내에 해소되는 게 아니지. 무엇보다도 국가안전보위부가 날뛰고 있단 말이오. 우리하고 업무 영역이 겹치니까 말이지. 거기다 군 보위사령부, 노동당 225국까지 대남공작에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설쳐대니까. 그래서 총국장님이 역량을 발휘해야만 되는 거요.”
“최근 보위부는 옛날 대남공작 방식과는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공작원 남파시 검거되거나 임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서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채 탈북자로 위장시켜 내려보냅니다. 일단 남한에서 정착하여 합법적 신분을 취득하면 그때 2차로 침투한 후속 공작원이나 국내 고첩망을 접선시켜 본격적인 공작임무를 수행케 하고 있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선 침투, 안전하게 도착한 후 지령 하달과 임무 수행’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위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우리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간섭할 수 없단 말이오. 그러니 서로 간에 업무 협조도 어려워요.”
“먼젓번도 준비가 소홀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재수가 없었던 거지요. 남쪽의 국정원 조직이 생각보다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놈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자본주의 개x끼들이니까. 걔들은 국내외 정보 수집은 물론이고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이 온갖 짓을 저지르고 있지. 오히려 대북 정보보다는 국내 정보 수집이 더 중요한 거야.
정신이 썩어빠져가지고 국가 안보가 아니고 정권 안보가 우선이요.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지. 상층부는 정치권에 줄을 대고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해요.
육군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당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설립한 거요.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지. 글쎄 그 사람이 바로 중정 부장한테 살해당했단 말이야. 그 사람의 눈과 귀, 손과 발이었던 부장이 직접 확인 사살까지 했어. 그는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어. 그가 누구인가? 일본 관동군 장교에다 해방 후에는 남로당 당원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까지 언도받았어. 그런데 눈치 빠르게 전향해서 동지들을 팔아먹고 혼자서 살아남았단 말이야.
그게 바로 배신자의 말로인 거야.
그러니까…… 그 조직이란 게…… 물불 안 가리고…… 비정한 집단이기도 하지. 피차 마찬가지란 말이지. 우린 오랜 적수이지만 서로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악명 높은 김형욱 부장을 살해하는 데 그 기관이 깊숙이 개입했어. 물론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겠지. 김 부장은 1992년인가 그 무렵에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받았으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냥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죽은 게 틀림없어.
불효자식이 말썽꾸러기 아버지를 죽인 셈이지.
그것들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북을 이용해먹고 있소. 그래서 맨날 간첩 조작을 하고 북풍 조작을 하는 거 아니겠소. 생사람 잡아서 간첩 만드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이오. ‘인혁당 사건’이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도 그렇고 ‘수지 김 사건’도 그렇소. ‘아말렉 공작’이란 게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 북풍을 조작하는 거였소.”
“그 사람들은…… 못하는 짓이 없군요.”
“자기들은 온갖 짓을 다 하면서 말이야. 북을 대놓고 욕한단 말이지. 남쪽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대개 걔들이 조작해서 퍼뜨린 거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다시 강조하지만 물질은 정신을 이길 수 없소.
공화국 이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필요하단 말이오. 부패한 자본주의에 동화되면 안 되는 거요.
북조선이 유토피아는 아니요. 물론 실패한 유토피아도 아니요. 처음부터 유토피아는 없었소. 소련에서부터 혁명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단 말이야. 그렇지만 공산주의도 결국 인간이 하는 짓이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어떤 진실이 존재한다는 거지. 공산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니까 인류의 위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어요. 사회적 평등 추구는 시대를 초월한 주제인 거요.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오. 그게 우리의 자존심이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 해 독일이 통일되었지만 우리 휴전선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요. 경우가 다르단 말이지.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결국에는 미국도 원하지 않을 거요. 모두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 공화국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아요. 핵무기가 있지 않소. 그게 우릴 지켜줄 거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핵을 양보할 수는 없는 거요. 동요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국정원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오.”
“국정원 사람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탈북민을 가장한 침투는 당분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열 명 넘게 발각되지 않았습니까. 특히 2008년 8월 불거진 ‘원정화’ 사건 때문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탈북자들의 동향은 어떻소. 그 사람들이 만든 탈북민 단체도 많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내려온 탈북민은 3만 명이 넘을 겁니다. 탈북민 단체가 대략 70개인지 80개인지가 될 겁니다. 많다고 보면 많고 적다고 보면 적을 수도 있지요. 오히려 너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NK지식연대라는 단체가 있는데요, 북한에서 전문학교, 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지식인들로 조직된 최초의 탈북민 단체입니다. 회원이 무려 4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까 탈북민 단체 중에서는 규모는 물론이고 영향력과 공신력이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단합이 잘 안 돼요.”
“여태껏 몰랐던 자본주의 제도를 새로 경험해야 하니까 듣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걸?”
“아이러니합니다만……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북에서 듣던 것과는 사정이 다르니까 실망하고 다시 탈남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탈북민 중에서 30프로가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듣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는 거죠. 워낙 괄시를 받으니까 분통이 터진 겁니다.”
“그들 탈북민이나 단체들과 관계는 어떻소.”
“우리는 같은 북한 출신이니까 정서적으로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데 문제점은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몇몇 탈북자 단체는 경찰이 관리하거나 기무사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단체는 아예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탈북자들의 모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왜? 젊으니까?”
“젊은 탈북자들이 동아리를 만들어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걔들은 순수합니다.”
“그 인간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소?”
“누구 말씀인가요?”
“김일성종합대학 책임지도교원 말이요.. 걔가 모든 걸 처리했으니까 영감이 내려올 수 있었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지요.”
“그런데 남산1호의 심사는 어떻게 돼가지요?”
“현재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6월 5일 입국했으니까요. 그 센터는 내곡동 본부 건물과는 별개로 시흥시 조남동에 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모든 탈북자들은 센터에서 반드시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조사를 마치고 일부 교육까지 받으려면 센터에서만 대략 2개월이 소요됩니다. 지금이 6월 중순이니까 50일쯤 지나야만 센터를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원으로 가서 또다시 12주 동안 교육을 받게 되지요. 가을쯤에나 완전히 풀려나는 겁니다. 잘 빠져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하나원은 상당히 느슨하기는 합니다. 면회도 가능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외출이나 외박도 가능합니다. 외출 중에는 장기외출도 가능하고 조기 수료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보안이 중요해요. 보안이 생명이야. 철저히 훈련을 받았으니까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거요.”
“우리는 남산1호가 국정원 센터를 나와서 하나원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면밀히 체크할 겁니다. 그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나원도 순서에 따라 기수가 매겨진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소. 장군님도…… 할배도 많이 늙었으니까 건강이 좋을 리 없고…… 97년 4월에 내려왔으니까 벌써 13년이 되었소. 올해가 2010년 경인년이오. 호랑이띠란 말이요.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소.”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장 동무의 근황을 설명해 보시오. 보고서에는 빠져 있는 부분 말이오.”
“잘 아시다시피 제 관할은 충청남도, 인천, 경기도 서남부 지역이지요. 모두 서해 쪽 해안선을 끼고 있습니다. 성남이 있는 경기 동부나 경기 남부는 관할 밖이지요.”
“경기 동부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아있긴 하네.
거기는 운동 기풍이 굉장히 강했거든. 마치 묵가 집단과 같았어. 일종의 공동체였으니까 개인적인 요소는 등장할 수가 없었지. 개인 소유가 없었어.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오면 공동체에 내놓았다네. 그리고 합숙하면서 새벽에 함께 기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
걔들은 고도로 조직화됐고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였어.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이는 북한 말투나 북한식 표현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지. 동지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어. 모두 가명을 썼단 말이야. 그러나 지금은 희미한 기억만 남았다네.
우리는 분리 분할의 원칙, 횡적 연계 금지, 단선 연계 원칙, 월선 금지를 철저히 지켜야 하오. 남의 일에 대해서는 알아도 안 되고 간섭해서도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그쪽과는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거요. 우리가 포섭하는 데 계속 실패했다는 것을 아시오.
우리 쪽에서 신분을 밝히고 접근하면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도망가요.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딱지가 붙으면 출세에 지장이 있으니까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단 말이야.
처음 주사파가 등장하니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오. 드디어 결정적인 혁명의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던 거요. 뭔가 한 줄기 희망이 보였소. 80년대와 90년대 학생운동은 거의 전부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주사파가 주도했어. 아주 고맙게도 남쪽 주사파는 독자적으로 주체사상을 수용해서 대학 운동권의 주류 세력으로 부상했단 말이야. 걔들은 반미 자주화 노선을 내걸었어.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지켜보다가 마침내 접촉을 시작한 거야. 걔들 말이야…… 김일성 주석님을 수령으로 하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인간들이었어. 그걸 군사독재정권이 악랄한 수법으로 조작한 게 아니란 말이야.
우리가 순진했는지 무지했는지……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지. 너무 흥분했었다니까. 결정적인 시기가 되자 꽁무니를 뺀 거요. 아주 얄팍한 기회주의자들이니까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적당히 안전한 곳으로 빠진 거지. 그리고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할 때 ‘나는 공산주의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지. 그 대신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다시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 우리의 평생 동지인 비전향 장기수들은 끝까지 버텼지만……. 걔들은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나지.
속은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거야.”
“뒤늦게 그들의 실체를 파악한 거군요?”
“다 똑같다고…… 입만 살아가지고…… 다시 말하면 한때 운동권이었다고 내세우면서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는 거요. 좌파라던가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묘하게도 신선한 매력을 풍기거든. 자신의 일신 영달을 위해서 북을 제 마음대로 이용했단 말이오.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이지.”
“지금은 주사파가 자연스럽게 소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들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하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서부 해안 지역이요. 서해안은 지리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황해도 일대와 연결되어 있고 황금어장을 끼고 있지 않소.”
“서해안 일대 선착장에는 1톤도 안 되는 작은 낚싯배에서부터 10톤이 넘는 꽃게잡이 어선에 이르기까지 각종 어선이 수없이 정박해 있습니다. 외지에서 온 바다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섬들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밤낮으로 바다낚시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낚싯배나 어선을 가장해서 침투하거나 탈출하기가 용이하지 않겠소. 거길 빠져나오면 바로 공해상이니까 우리 측 선박들이 대기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단점이 있긴 합니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아서 상어급 신형 잠수함이 작전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그 대신 수심이 깊은 동해가 있지 않소. 서해안의 해안선, 섬들, 무인도, 해수욕장, 주요 시설 특히 군의 경비 초소, 레이다 기지를 정탐해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 서해안의 조석과 조류, 다시 말하면 물살의 흐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오.
특히 북방한계선 부근 연평도의 물살이 중요하단 말이오. 거기가 황해남도 개머리와 등산곶과 연결되어 있지 않소.
우리 전선서부지구 사령부가 작전 지휘를 하고 수산사업소 어업지도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지만…… 정확한 남쪽 자료가 필요하지. 솔직히 말해서 남쪽 것이 훨씬 정확하니까. 그런 건 해양경찰청이나 국립해양과학기술원에 중요한 자료가 있을 거요.”
“그곳 바다는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조류가 하루에도 6시간 간격으로 4번씩이나 바뀝니다. 그때마다 물살의 빠르기가 달라집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과 썰물이 시작되는 시각, 고조와 저조에 이르는 시각, 물살의 속도 등에 대해서는 늙은 어부들이 감각적으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로한계선이나 군사분계선을 넘으면 수산업법과 반공법을 적용해서 무조건 구속했던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바다에서만 살았으니까요. 그 시절에는 위성항법장치나 전자해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아닙니까.”
“연평도 주둔 해군과 해병대의 동향에 대한 정찰을 좀 더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거기는 군사적으로 민감해요.”
“강화도에서부터 전북 위도까지가 가장 좋습니다. 반잠수정이나 모터보트를 타고 와서 해안 침투가 용이한 지역입니다. 높은 파도가 치거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으면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군부대의 경계 상태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선들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면서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어선에는 조타실을 겸한 선장실과 갑판, 선실, 기관실 그리고 어창이 있지 않습니까. 선장실에 촬영 장비를 숨겨놓고 있지요.”
“최고급 극비 정보는 우리 영역이 아니오. 모른 척 해야 하오. 정찰총국 본부에서 비밀리에 별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거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요?”
“사이버 전쟁이 진즉부터 시작됐소. 미래의 전쟁은 더 이상 무기나 총탄만으로 수행되는 게 아니란 말이요. 데이터에 들어있는 아주 작은 비트들이지. 사이버 공간에서 누가 정보를 통제하느냐가 중요한 거요. 내 생각에는 우수한 해커들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을 거요. 걔들은 랜섬웨어를 심은 피싱 메일을 뿌려서 사이버 테러까지 할 수 있으니까. 최고급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해서 해커 집단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있어요. 그게 네트워크 관리 업체의 시스템에 접근해서 기밀 정보를 빼내는 모양인데…… 사이버 공격의 진화 속도는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해킹이 불가능한 영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그걸 막기 위해서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보안 솔루션이 필요한 거고. 내가 보기에는 결국 창과 방패의 싸움인 거지. 뚫리느냐 아니면 철벽 보안이냐.
그렇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네. 워낙 정교한 기술 분야이니까.”
“저희 사무실의 컴퓨터 장비는 아주 초라합니다. 해킹 방지는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들통이 날 뿐입니다.”
“잘 알고 있소…… 쓸모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 사소한 조각들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조합해나가는 것이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니까.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서로 꿰맞추면 거기에서 일관성 있는 어떤 흐름을 찾을 수 있지. 그러니까 1급 자료일 필요는 없소. 인터넷에서 흔히 떠들고 있는 2급이면 어떻고 3급이면 어떻소. 그것들하고 우리가 해킹한 자료를 연결하고 조합해서 머리를 짜내면 아주 쓸모있는 게 나올 수 있을 거요.
요즘 인터넷에는 일급 정보까지 넘쳐난다네. 오죽하면 인터넷에 핵무기 제조법까지 떠돌고 있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극도로 예민한 정보가 널리 퍼져있지. 더 이상 우리 스파이들만의 독점적 전문 영역이 아닌거요. 자칭 판타지 사이트에서는 사람을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방법을 소개한 인육 조리법까지 나온다니까.”
“잘 알겠습니다. 기막힌 세상이군요. 퇴폐적인 생활에 물들어서 자유 방종이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 병폐이지요.”
“아무리…… 인터넷 세상이라고 해도 남조선 사회를 혼란시키기 위해서는 통신망이나 교통망, 에너지망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금융기관 전산망 공격, 언론사 신문 제작 시스템에 대하여 사이버 테러를 감행할 수 있어요.”
“그런 종류의 테러에 대해서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장 동무가 ‘한국의 하와이’라고 부르는 제주도에 대한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올린 게 언제쯤이요?”
“2년 전입니다. 그 당시 제주도 일대를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샅샅이 현지 답사했습니다. 제주도 해안은 공작선이 침투하는데 가장 쉬운 곳이었지요.”
“거기다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하니까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에서는 난리가 난 거지. 대남 공작원들을 침투시킬 주요 루트를 잃게 되니까. 기지가 있으면 병력도 대폭 증강되고 경계도 강화될 테니까. 그리고 제주도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해.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특수부대가 제주도를 기습 점령해서 교두보를 확보한 다음 뒤통수를 칠 수 있단 말이야.”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기지 건설 반대가 실패했으니까요. 제주도민의 반대운동이 워낙 거셌으니까 성공할 걸로 예상했습니다만.
그렇지만…… 저는 그 섬에서 행복한 몇 달을 보냈습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처음 갔거든요. 바다가 무척 아름다워요. 바닷바람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매서웠지요. 부두의 어부들과 생선 비린내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몇 달 동안이나 관광했단 말이지?”
“제주도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광이 넘쳐나지요.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또 다시 봄이 온다고 했습니다만 제비는 육지에 오기 전에 먼저 제주도에 들르지요. 새벽 3시쯤이면 벌써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조업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다로 나가지요. 야간 조업을 마친 어선들은 돌아와서 포구에 닻을 내립니다.”
어부들은 거친 바닷바람과 햇빛에 시달린 탓으로 얼굴에 잔주름이 잔뜩 잡혀 있다. 이제 바람소리가 속삭이듯 잠잠해지고 바다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누워있다. 잠에서 일찍 깬 갈매기들이 어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맴돈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거나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그것들 울음소리는 깜빡 착각할 만큼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바닷가를 휘감아 감싸고 있던 회색 안개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밀려 시나브로 흩어진다.
“그 섬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이었네.”
“그렇습니다. 제가 제주도가 안고 있는 비극적 정서를 뼈저리게 깊이 알게 되었지요. 남몰래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뜨르에서 섯알오름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검은 비석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제주 4·3 당시 희생자 추모비인데 추모비 뒤에는 웅덩이 두 개가 있습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학살 현장이었지요. 군인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한 양민들을 그 자리에서 총살했습니다. 그리고 숨진 양민을 웅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웅덩이가 개방된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는데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살은 썩어 문드러졌고 뼈는 엉켜있어 할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슬프고 기가 막혀서 한동안 내내 앓았습니다. 그때는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신열이 나고 환청도 들렸습니다. 피해자들이 경찰과 우익 청년단에게 당한 내용이 계속 꿈에 등장해 고통스러웠죠.”
“이왕 갔으니까…… 제주도 고유 음식을 실컷 즐기지 그랬어.”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동쪽으로 출발하여 한 바퀴 일주했지요. 별미인, 보말칼국수, 돔베고기, 모자반으로 끓여낸 몸국, 메밀가루를 반죽해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 꿩메밀칼국수, 접짝뼈국, 제주 전통 육개장을 번갈아 가며 자주 먹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다금바리 회와 흑돼지 삼겹살, 은갈치 조림이야말로 술안주로는 최고였습니다. 소주와 함께 먹으면 정말 별미였습니다. 그런 안주로 술을 마시면 소주를 몇 병이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옆에 함께 마실 여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제주도 해안선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공작선이 침투 가능한 경비가 허술한 해안선을 찾는 것이 중요했지요. 가시 철조망이 쳐진 해안 경비대 벙커들을 일일이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해군 기지에서 군함들의 입출항을 점검했습니다.
결론은 해안 경비가 강화되어 있어서 공작선이 침투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 아닙니까. 중국 관광객이 그 섬에 엄청나게 오는데 그게 발각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또 하나 최근에는 중국 어선들도 제주도 부근 바다에서는 조업하지 않습니다. 서해로 올라온 것이지요.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주도 해안은 우리에게는 이제 쓸모가 없습니다.
서해에는 효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있습니다. 인당수는 그 옛날 중국 무역선과 우리 무역선이 오가던 서해 바닷길에 있었지 않습니까. 서해에는 연평균 우리 어선 6,000척과 중국 어선 3,000척이 떠다닌다고 합니다. 고기도 잡지만 서로 매매도 하고, 물물교환도 하고, 마약 거래도 하고, 밀수 행위도 합니다. 바다에 떠 있는 국제 암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섬에다 최첨단 해군 기지를 새로 건설하려고 준비하고 있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섬사람들은 결사 반대할 거라고. 그게 해상 수송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데 결국 중국을 견제하려는 거야. 틀림없이 미국의 사주를 받았을 테지만.
내가 지금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 섬은 나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소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지. 마침내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내 개인사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구만…… 글쎄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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