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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간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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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6-04-27 13:46

본문

화산섬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 ‘설문대할망’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 섬. 수려한 정취를 자랑하는 우뚝 솟은 한라산. 검은 화산암과 보석처럼 빛나는 에메랄드빛 바다의 어울림. 거친 듯 부드러운 바닷바람.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섬. 유채꽃을 시작으로 왕벚꽃이 피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름이면 수국으로 풍성하고 가을이면 온통 달빛을 머금은 하얀 메밀꽃이 만발한다. 겨울이 한창인 때도 붉은 물감을 칠한 듯 붉은 동백꽃으로 물든다. 남쪽 섬나라의 낭만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너무나 아픈 역사가 있다.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사건을 ‘제주도 4·3 사건’ 이라고도 하고 ‘제주도 4·3 항쟁’이라고도 한다. 1948년 4월은 예년과는 다른 봄이었을까. 겨울 동안 멀리 시베리아 동토에서 불어온 찬 바람은 한반도 남단 제주해협을 건너면서부터 한결 부드러워져서 해안가 절벽과 한라산 산허리에 가볍게 부딪혔다. 울창한 숲은 바람의 영향으로 가지들이 뒤엉켜 휘어진 채로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새벽이면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해무가 해안가를 뒤덮었고 파도는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몸부림치며 포효하였다. 최근 며칠 동안 바람이 잦아들고 기온은 따뜻해서 올해는 봄이 일찍 올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마을의 돌담 밑에는 벌써 금잔화가 피기 시작했고 섬 전체에 봄기운이 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관덕정 주변 왕벚나무에는 벚꽃이 아름답게 만발했다.

제주도 섬 전체를 무려 8년간이나 뒤흔들었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역사의 암흑 속에 파묻혔던 그 사건은 반세기를 지나서야 지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당시 제주도민 30만 명 중에서 10명 중 1명꼴로 무고한 양민들을 폭도로 몰아서 학살한 것이다. 집단 학살이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한 지역에서 학살된 인원으로는 가장 많았다. 1949년 가을쯤이 되자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산해서 귀순 또는 투항했고 토벌대에 의해 대부분의 산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한 달 내내 밀항선 크기의 작은 화물선에 실려 본토로 이송되었다. 이송 도중 배에서 마구잡이로 총살되어 바다로 내던져지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행선지는 목포형무소, 대구형무소, 서울의 마포형무소였는데 20살 미만의 청소년은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졌다.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미결이었던 그들은 형무소 운동장에 집합하여 한 명씩 호출을 받은 뒤 법무장교가 닥치는 대로 무기형, 20년 형, 10년 형 등 즉석에서 형을 언도하였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 즉시 전부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러므로 그때 화물선에 태워져 섬을 떠난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946년에 ‘대구 폭동’이라고 부르는 ‘10월 항쟁’이 대구에서 먼저 일어났다. 미 군정의 식량 강제 공출 반대, 친일파 처단, 소작료 조정 등을 구호로 내세웠다. 주로 친일파 기회주의자와 독립투사를 고문하고 학살한 친일 경찰관들을 공격했다.

1948년에는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났고 그해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0월 8일 정부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본격적인 토벌을 위해서 여수 주둔 제14연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지만 10월 9일 연대 병력들이 인사계 오창수 상사의 지휘하에 ‘동족상잔을 강요하는 제주도 출동 명령’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4·3 항쟁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지고 학살이 그렇게 큰 규모로 자행된 것은 그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파견된 군인과 시급히 청산되어야 할 일제 잔재였던 친일파 경찰, ‘서북청년회’의 횡포가 극심했고 육지 사람에 대한 섬사람의 두려움이나 적대감이란 측면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던 민란 때처럼 들고 일어난 것이다.

특히 서청이라고 불린 서북청년회는 대표적인 극우 단체로 그 횡포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서북이란 원래 ‘서관 또는 서도 (경기도 북쪽의 황해도와 평안도)’와 ‘북관 (경기도 북쪽의 함경도)’ 지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남한에서는 ‘서북청년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후 몇 달 지나서 또는 그 다음 해, 그 다음 다음 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온 그들은 일제 시대에는 지배층에 속했던 친일파 지주계급 사람들이거나 그들과 혈연 관계인 친족들이었다.

1947년 3·1 독립기념일에 발생한 3·1 데모 사건 이후 빨갱이 사냥의 특공대로 서북과 본토 출신 경찰들이 섬으로 들어왔다.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였다. 그들이 말했다. ‘정어리도 물고기인가. 제주도 새끼도 인간인가.’ 서북들에 의한 약탈, 강간, 살인이 끊임없이 행해졌다. 서북들은 걸음걸이와 풍채에서 어딘지 모르게 건달 깡패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간부급으로 행세깨나 하는 서북들은 경찰도 군인도 아닌 주제에 대낮에도 거들먹거리며 버젓이 미제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국군 토벌대는 섬을 완전히 봉쇄해놓고 작전이란 이름으로 마을 단위로 양민을 집단적으로 학살했다. 초토화 작전에 의해 중간 산간 마을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고 해안 마을도 대부분 사라졌다. 도민들의 시체를 낡은 타이어와 함께 기름을 뿌려서 태우는 검은 연기가 섬 하늘을 뒤덮었다. 그들은 제주도민은 빨갱이이고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된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시 관덕정 광장의 식장에서 연설을 했다. “…… 우리들은 대구 폭동, 여순반란사건 등, 공산당의 잔인무도한 파괴 공작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주도 폭동같은 대규모 반민족적 반란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나는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남기지 말고 역적 무리들을 섬멸하라고 군사령관에게 지시했는데 진압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순반란사건은 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지만 바로 진압됐고 14연대 병력이 여수와 순천에서 차례로 패퇴해서 지리산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48년 11월 중순, 지창수가 이끄는 200여 명의 잔여 병력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현상의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하여 주력 부대가 되었다.

고 지부장의 아버지인 고대삼은 1949년 이른 봄 아무도 모르게 목포를 떠나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구례 쪽을 통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제 발로 걸어들어왔으니 유격대 대원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군복과 계급장, 견장, 모자, 훈장은 없었다. 대신 99식 구형 장총 한 자루와 수십 발의 총알을 배정받았고 두툼한 누비옷을 받았다. 먼저 총 쏘는 방법부터 배웠다. 대장이 말했다. “우리는 동지애, 형제애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우리는 저 깊은 영혼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동무들! 우리 빨치산에는 세 가지 각오가 있습니다.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입니다.”

지리산은 산봉우리 중에서 천왕봉이 제일 높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사십 개가 넘는다. 지리산은 장엄한 산악군을 이룬다. 빨치산이 숨기 좋은 골짜기가 무수히 많은 데다 대부분 비옥한 흙으로 덮여있어 숲이 울창하고 물이 풍부했다. 골짜기마다 사시사철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서 식량만 조달된다면 몇 달이고 숨어있을 수 있었다. 숲속 깊숙한 동굴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동굴은 입구가 좁았고 S자형으로 굽어 있었지만 안쪽은 넓었다. 취사를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토벌대에게 위치를 알리는 신호가 되기 때문에 취사는 동굴 제일 안쪽에서 이루어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기는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시나브로 사라졌다.

빨치산들은 맨땅에 거적을 깔고 서로 체온으로 몸을 덥히며 잠을 잤다. 고대삼은 밤이면 선잠이 들었고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면서 잠에서 깼다. 그는 잠을 자다가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았다. 잠에서 깨면 사람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새삼스럽게 코를 찔렀다. 사람들은 딱지처럼 비듬으로 덮인 머리와 덕지덕지 온몸에 낀 십 년 묵은 때 때문에 몸 전체에서 숨이 막힐 만큼 쉰내를 풍겼다. 제일 연장자인 50줄의 아저씨는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늘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멩이에 대고 장죽을 두들기고 나서 빈 담뱃대를 힘껏 빨아 공기를 통하게 한 뒤 담배쌈지에서 잘게 썬 담배를 꺼내 담배통에 채워 피웠다. 그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었다. 가끔 식량 보급 투쟁에서 빼앗아온 귀한 소주를 마셨다.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그들은 낮에는 동굴 속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나왔다. 현지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산속 샛길과 지형지물에 익숙했고 그래서 기습이나 매복, 도피에 능숙했다.

그 무렵 광양군 백운산의 동쪽 방면인 경남 하동군과 인접한 진상면에는 국방 경비대 15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유격대는 병력의 수나 무기에서 월등히 앞선 국군 토벌대나 경찰과는 정면에서 대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밤에 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야간 행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다. 능선, 소리, 연기였다. 능선을 타면 밤중에도 뚜렷이 눈에 띄었다. 반드시 능선에서 몇 발짝 아래 울퉁불퉁한 경사지를 걸어야 했다. 당연히 길이 없고 가팔랐기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요한 밤중에서는 말소리나 발소리, 돌이 구르거나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아주 멀리까지 들렸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국군이나 경찰은 유격대원을 생포하면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논두렁이나 산기슭에서 공개적으로 총살시켜버리기 일쑤였다. 걸을 수 없는 부상자나 데려가기 귀찮은 환자들은 발견하면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죽은 대원들의 코나 귀를 베어 가져가는 일도 늘었다. 부대 상관들에게 토벌 실적을 자랑스럽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북한 노동당은 1949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유격대를 남파했다. 노동당은 이들을 제1병단과 제3병단으로 나누어 남파하였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 지구를 맡아 제2병단으로 명명했다. 현지에서는 여전히 그 유명한 ‘지리산 유격대’로 불렸으나 공식적인 명칭은 제2병단이 되었다. 제1병단은 강원도 홍천군 오대산 지구를 맡았다. 제3병단은 태백산 지구를 맡았는데 제주 4·3 항쟁을 주도했던 김달삼이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제1병단과 제3병단은 너무 일찍 와해되었다. 오대산의 제1병단은 12월에 대규모 국군 토벌대를 만나 궤멸되었고 살아남은 잔여 병력은 태백산 지구로 남하해 제3병단에 흡수되었으나 제3병단 역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살당했다.

고대삼은 1949년 8월 한여름 지리산 유격대의 상황을 보고하고 작전을 협의하기 위해서 연락병으로 제3병단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부대가 궤멸되기 직전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와 단신으로 이현상 부대로 복귀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지리산 유격대와 함께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낙동강 전선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인민군 부대는 보급이 완전히 끊기면서 국군과 미군의 총공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밤새 퍼부었던 맹렬한 사격이 멈췄다. 총알도 떨어졌고 수류탄도 없다. 날이 밝자 아침 햇살에 생생한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들은 너무나 참혹했다. 산산조각이 난 팔과 다리, 머리가 안 달린 몸통, 아무것도 안 달린 머리통들이 핏물과 누런 체액이 고인 웅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제 북으로 북으로 후퇴해야만 했다. 영천에서 보현산 줄기를 타고 넘어간 인민군 패잔병 대열은 울진군에 들어서면서는 일월산을 타고 본격적으로 태백산맥 산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노출된 평지 위로 철수를 하면 미군 전폭기의 먹잇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험악한 태백산맥 준령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10명 정도의 여성 대원들은 힘들다는 내색 없이 하루 50킬로미터의 강행군을 거의 초인적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얼굴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었고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몸에는 심한 냄새가 풍겼다. 많은 대원들이 길게 줄을 지어 무작정 걷고 있어서 이탈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누구라도 길가에 주저앉아버리거나 용변을 본다며 대열을 벗어나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미군 정찰기들이 그들을 계속 추적했다. 밤이 되면 어두컴컴해서 방향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간헐적으로 대포 소리와 폭격 소리가 들렸다.

고대삼은 심한 부상 때문에 부축을 받으며 걸으면서 계속 숨을 헐떡였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자주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늦가을의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가 멈추면서 무성한 덤불 속에서 새들이 부드럽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버려진 초가집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물에서 맑은 물을 마셨다. 공기는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모두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



“그게 말입니다. 제주 4‧3 사건이 지부장님과 관계가 있다고요……?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인데요.”

“우리 조상님들은 대대로 남원면에서 살았다네. 조상님들이 언제쯤 제주도에 들어갔고 남원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너무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까. 우리 조상들은 돌담을 두르고 흙냄새가 나는 초가집에서 살았어. 여름철에는 농사꾼이고 겨울이 되면 바다에서 어민으로 살았지. 할머니는 물허벅 (항아리)을 담은 구덕 (바구니)을 지고 다녔지. 쌀이 엄청 귀했으니까 조밥과 감자가 주식이었어. 가족들은 낭푼에 담은 지슬밥에 마농지뿐인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식사를 했어. 시골 변소는 돼지우리를 겸하고 있으니까 사람의 똥이 돼지의 사료가 되고 또 그 돼지를 인간이 먹는 셈인데 그 돼지의 생김새가 멧돼지와 비슷하니까 흑돼지라고 했어.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지만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고기가 쫀득쫀득하고 기름기가 적어서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해. 그래서 소주 안주로는 최고라고 하셨지.

1948년 11월 남원 지구를 관할하던 국군 토벌대가 위귀, 수망, 한남리를 깨끗하게 소탕하고 이어서 태흥리를 불태웠지. 마을 주민들을 동네 어귀 빈 공터에 모아놓고 ‘지금 곧 철수하지 않는 자는 빨갱이의 협력자로 간주하여 즉결처분한다’라고 선포하고 나서 그냥 머뭇거리는 사이 마을에 석유를 들이부어서 전부 깡그리 불태워버렸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총을 쏘았어.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거지.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했으니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어.

그때 아무 죄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등 모두 몰살당했다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되는 거지.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목포에서 졸업반 고등학생이었어. 철없는 어린 학생이 무얼 알았겠는가. 이데올로기니…… 공산주의가 뭐고 민주주의가 뭔지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어.

그런데 부모님과 누나가 죽고 자신은 졸지에 빨갱이 새끼가 되었으니 갈 길은 하나밖에 없었어. 모진 운명에 의해 내몰렸단 말이지. 그때 제 발로 걸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네. 그 유명한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한 거지. 어쩔 수 없었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리고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고 나서 인민군이 퇴각할 때 천신만고 끝에 함께 북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 그런데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네. 아버지는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계속 조금씩 피를 흘렸는데 함께 북으로 후퇴하던 어떤 유격대 여인이 자기 속옷을 뜯어서 상처를 동여매 주면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는데 그분이야말로 생명의 은인이었지. 바로 우리 어머니였다네.

아버지는 왼쪽 다리를 조금 절었기 때문에 인민군에 편입돼서 복무할 수 없었지. 그래서 평양의 김형직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신원고등중학교 사회분과 교원으로 복무하다가 부교장을 끝으로 퇴임하셨지.”

“지부장님 역시 빨치산 가족 출신이군요.”

“그 덕분에 금성정치군사대학에 갈 수 있었지. 그 대학은 원래 남조선 혁명가들을 양성하는 학교 아니었는가.”

“김일성종합대학 못지않게 좋은 대학이지요.”

“우리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있었다네. 남원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의 시신을 수습해서 안장하는 것이었네. 그놈들이 감쪽같이 암매장을 해버렸지. 유해를 발굴해서 봉안을 하고 조상 제사를 지내야만 자손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원혼들의 안식을 위해서 저승으로 천도하는 시왕맞이 굿을 한번 치러야 할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건 내가 완수해야 할 평생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아름다운 섬을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네.”

“그건 남북이 통일되거나…… 최소한 평화가 정착되어서 남북 간 왕래가 자유로워질 때나 가능하겠군요.”

“장 동무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소. 지금 대남 침투는 휴전선을 통한 육상 침투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남쪽 감시 장비가 너무 좋아요. 그러니 해상 침투가 중요한데 그 지역은 서해안 일대요. 서해안에는 중국 어선들이 많이 있으니까 거기에 섞여 있다가 침투하는 거 아니겠소.”

“잘 알고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들은 이미 늙어가고 있소. 걔들은 전혀 쓸모 없는 내용이 엉성한 정보만 보내오고 있어. 그렇다고 중단시킬 수도 없단 말이야. 걔들 사기도 생각해야 하니까. 은퇴할 때가 된 거지. 그래서 새로운 피가 필요한 거야. 흔들리지 않는 투철한 사상을 갖고 있는 참신한 인물을 찾아야 하오.”

“끝까지 찾아보면 군침이 돌만큼 진짜 포섭할 가치가 있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이 중요해요.”

“물론 포섭 대상에게는 금전이나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있을 수 있고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걔들은 머릿속에 온갖 울분과 증오, 불평불만이 가득 들어있을 거라고.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아첨에 약하단 말이야. 그런 약점을 이리저리 파고들어야 하지.

그렇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돈보다는 이데올로기와 자존심이 중요하오. 포섭에 성공하면 철저히 세뇌 공작을 하는 거지.”

“세뇌 공작은 정말 중요합니다. 포섭을 하는 데 있어서 핵심인 거죠. 그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보고드릴 단계는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지금은 예비적 단계입니다. 너무 서두르다 보면…… 접선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할 거요. 동지를 포섭할 때는 눈빛에 주목하시오. 눈빛 속에 그 사람의 본질이 들어있단 말이오.”

“전…… 부끄러움을 너무 타니까 사람 얼굴을 정면에서 빤히 쳐다보지 못하는데요……”

“가끔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소?”

“글쎄요……?”

“지금도 제2전선이나 통일전선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오. 용도 폐기된 게 아니란 말이지. 인민해방전쟁에는 그거 없이는 승리가 불가능한 거야. 그래서 각계각층에 침투하는 게 중요하지.

첫째는 철딱서니 없이 날뛰는 약해빠진 대학생들이 중요해요. 지금은 학생운동이 도대체 시들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거요. 역시 젊은 혈기는 말릴 수가 없으니까…… 원래 혁명을 위해서는 학생, 농민, 노동자가 중요한데 지금 남한에서는 농민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농촌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급감했으니 농촌에는 혁명에는 쓸모없는 늙은이밖에 없단 말이야. 그리고 중소상공인은 철저한 장삿꾼이니까 자본주의 정신이 뼛속까지 깊이 물들어있지.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보지.

그래서 좌파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거요.

김일성 주석님의 ‘갓끈 전술’과도 연관되어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말이요…… 갓은 한쪽 끈만 끊어져도 떨어져 나간단 말이요. 그러니까 한쪽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면 전체가 무너지는 거요.”

“현재…… 남쪽은 자본주의가 번성하여 나름대로 잘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해이해졌습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양극화는 필연적이고 그래서 점점 심각한 불평등 사회로 변하게 되는 거요. 그게 자본주의의 한계인 거지.

그러한 과정에서 중산층이 옅어지면서 결국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되는 거지. 중산층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거요. 그러면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가 다시 일어날 거니까. 공산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어. 절대로 죽을 수 없지. 모두가 가난한 건 참을 수 있어도 소수만 계속 부자가 되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오.”

“그런 징조가 벌써부터 조금씩 보이고 있긴 합니다. 남한 사회는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출생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낮습니다.”

“동무가 자본주의의 병폐를 잘 알고 있군. 다시 말하면…… 수많은 프롤레타리아가 구조적으로 사회의 밑바닥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거지. 먹고살 만하다고 해서 불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요.

상대적 박탈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요.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고 했지 않소. 노동자 계급이야말로 남한 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 영도 계급이고 핵심 세력이 될 거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현재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오. 우리 솔직합시다. 공화국은 완전히 궁지에 몰려있으니까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경제가 갈수록 엉망진창이니까 강성대국은 요원하지. 우리는 끝까지 버텨야 하오.”

“지금 현재 시대 상황은 변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일상화되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립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서로 돕기는커녕…… 연대의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나부터 살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깨우치고 일으켜 세워야 하오. 비정규직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오. ‘이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옳지 않아요. 정당하지 않단 말입니다. 이는 자본가들이 양쪽을 분리시켜서 서로 싸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들끼리 똘똘 뭉쳐라! 압제자들을 맹렬히 증오하고 그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압제자가 누구입니까! 자본가들이고! 정규직이고! 정규직 노조 아닌가요!”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할 겁니다. 언젠가는 비정규직들이 똘똘 뭉치게 되겠지요.”

“걔들 중에서…… 똑똑한 녀석을 골라서…….”

“인재 발굴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포섭 대상이 될 만한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강남 좌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그들을 만나보면 그 순간부터 부르주아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것들은 뺀질이이니까 도저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좌파가 쓸모없다고……?”

“강남 좌파의 실체를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들 모순투성이예요. 그들은 머릿속과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에서만 급진적인 좌파이고 실제 삶에서는 부르주아 중에서도 상급 부르주아입니다.

말로만 진보를 외치고 실제 행동은 물질적 욕망에 따릅니다.”

“그렇구만……? 위선자들……?”

“그 사람들은 잘난 척을 잘하는 자기중심주의자들이죠. 누구보다 자신이 중요해요. 그래서 자신들이 마치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완전히 이중인격자이고 위선자 중에서도 최고의 위선자들이죠. 이런 자들이야말로 잔머리를 잘 굴립니다.

배신자가 될 소질이 다분하지요. 언제든지 상황이 급변하면 곧바로 돌아설 겁니다.”

“들어보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요. 가뭄에 콩 나듯이 그렇지 않은 인간들도 있을 거 아니요?”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만나보면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걸 알게나. 옛날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동아리들에는 동성애가 만연했다네. 그래서 소련 KGB는 거기서 많은 요원을 뽑았다고 하지. 지금 남한 사회는 호모가 공공연히 유행하고 있는데…… 그런 호모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네.”

“남한 사회는 개방 사회이니까 그런 호모들까지 공공연히 행세하고 있는 거지요. 걔들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버젓이 큰 행사를 진행하고 행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게 인간성의 어떤 측면이라고 하니까요.”

“나는 사생활에 관해서는 한 번도 참견한 일이 없었소. 그리고 말이야…… 이건 중대한 사항인데…… 장 동무가 어떤 경우에도 북으로 송환되면 단호히 거절하겠다는 말도 명심하고 있소.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킬 것이오.”

“고맙습니다. 저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깊이 물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북에 가서 사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저는 죽는 편이 났습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말할 필요는 없네.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았으니까 항상 사람을 의심하는 성향이 있어서 대화 중에도 말 한마디 한마디 신중을 기했소. 그렇지만 동무에게만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탁 터놓을 수 있었지. 당신의 인간성을 믿을 수 있습니까.

여자 문제는 내가 간섭할 일이 절대 아니오. 여자와 남자는…… 불가피해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니까. 하늘에 계신 신이 말했지 않은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야. 그와 화합할 짝을 만들어 주어야겠어.’ 그리고 나서 남자에게서 갈비뼈를 빼내 여자를 만들었다는 거지. 그렇지만 너무 깊이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소. 내 말은 성도착증 같은 걸 의미하오. 거기에 깊이 빠지면 성의 노예가 되니까 실패할 수 있단 말이오.”

“……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에게는 성도착증 증세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호모도 아니지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 만나는 여자가 있기는 합니다. 건강한 남자가 어떻게 여자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욕구를 해소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단 말이군. 그런 건 바람둥이들이나 잘하지.”

“여자란 정이 깊이 들면 안 되지요. 워낙 감정적이니까요. 그리고 임신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지부장은 칭따오 맥주를 쭉 들이켰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중국식 식당의 별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이제는 마른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재떨이에는 꽁초가 가득하다. 지부장이 천장으로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에는 그 나름의 많은 고뇌와 상념들이 녹아 있었다. 칭따오 맥주 큰 병 다섯 병중에서 아직 두 병이 남아있다. 식사를 할 때는 중국 고량주를 마셨다. 고 지부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대화를 주도했고 장 동무는 공손한 태도를 흐트러지지 않은 채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지부장이 말했다. “자 자…… 다시 한번 진짜 건배를 하자고. 기분 좋은 날이야. 당신을 만났으니까.”

“건배사를 말씀하시지요.”

“당연하지. 그렇고말고.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 만세! 공산주의 만세! 경애하는 최고지도자 동지 만세!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역시 맥주는 칭따오야. 단맛과 쓴맛과 신맛이……”

그러고 나서 둘은 맥주의 맛과 향을 음미할 틈도 없이 단숨에 들이켰고 장 동무가 다시 잔을 채웠다. 맥주의 거품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다 넘치면서 맥주의 향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그 시절이 참 좋았어. 둘이서 술깨나 마셨다니까. 그땐 우리가 젊었으니까 혈기왕성 했었지. ……그렇지 않나?”

“거길…… 자주 갔었지요. 제가 북경 지사장 시절이었으니까 영업 수당이 꽤 많이 나왔어요. 뒷골목 끝에 있는…… 만두 맛이 최고였죠. 할머니가 직접 만든 고량주 맛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네. 진즉 사라졌지.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지저분한 뒷골목을 정비한다면서 그쪽 동네를 깡그리 뭉개버렸어.”

“지금도…… 눈에 선한데요.”

“난들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할 수가 없지. 남자는 언제든지 여자한테 이끌리게 되어있어요. 여자도 남자에게 이끌리고. 그렇지 않소. 그런데 북경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단 말이야. 서로 감시하니까. 숨바꼭질할 수밖에 없다니까.”

“중국 여자들 별로일걸요……?”

“그렇지. 나긋나긋하지는 않아. 중국 음식이건 중국 술이건 이제는 지겨워. 너무 느끼하단 말이지. 역시 평양 음식이 최고야.”

“저는 다행스럽게도 성도착증 증세는 없습니다. 호모도 아닙니다. 안심하십시오. 그건 자본주의 주구들이 하는 짓입니다.”

“중정의 대공 요원들이나 치안본부 그것들의 동태는 어때요?

우리는 옛날처럼 무선 교신을 하지 않으니까 무선 감청 장치는 이제 쓸모가 없겠지.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 우리는…… 아주 조잡한 난수표를 사용했는데 중정의 대공 요원들은 그런 난수표쯤은 식은 죽 먹듯이 쉽게 해독했단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기술력에서 차이가 있단 말이지.”

“그 사람들은 인터넷 검열이나 핸드폰 감청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여의치 않을 겁니다.”

“작전이건 임무 수행이건 본부와 현장 간 통신연락은 정말 중요하지. 통신보안은 말할 것도 없고, 발신이나 수신 과정에서 암호조작과 암호해독이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단 말이지.

옛날 일이지만 우리가 치명적으로 실수한 거야. 중대한 지시 사항을 암호화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거지. 암호 요원이 너무 형편없이 우둔했거나 태만했거나 아니면 두 개가 합해져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

1968년 1월 17일 우리 124부대 소속 31명의 동지들이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절단하고 남측으로 내려왔지. 18일 새벽 삼봉산에 도착해서 1박을 했고 19일 오후 나무를 하러 온 우씨 형제들을 잡은 거야. 동지들은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우왕좌왕하면서 결국 본부에 암호문을 보내서 물어보았으나 돌아온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어 회의 끝에 이들을 풀어줬어. 어떻게 그 중요한 작전에서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었단 말인가. 그런 실수가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어. 무전 연락을 담당하는 통신원과 암호 해독을 담당하는 변신원 중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또는 양쪽 모두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 있어.

어쨌거나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으니까 회의 끝에 풀어줬는데 걔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작전은 실패했어.

그때 냉정했어야 하는데 그 어린 애들이 너무 불쌍해서 인간적으로 동정을 한 거요. 그래서 손목에 차고 있던 일제 시계까지 풀어주면서 살려준 게 화근이 된 거지. 31명 중 29명이 사살되고 한 명은 북으로 귀환했지만 김신조는 남쪽으로 투항해서 완전히 배신자가 되었지. 그렇지만 천신만고 끝에 북으로 살아 돌아온 박재경 선배는 영웅으로 대접받고 대장으로 승진해서 인민군 총정치국 부총국장까지 지냈어.

……그때 해독되지 못한 암호문은 ‘원대 복귀’였어. 암호문을 해독했더라면 전원 무사히 철수했을 것이고 29명이나 되는 귀중한 목숨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어.”

“IS 같은 이슬람 테러조직도 감청이 어려운 해외 메신저를 이용했습니다. 인터넷 번호와 암호책은 매번 적절히 교체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메일로 교신할 때 썼던 은어들은 너무 구식입니다.

그때는 좌파세력은 ‘좌회사’, 통일전선체는 ‘통회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사장님’으로 불렀고 반미투쟁은 ‘수출’로, 접선을 ‘생일파티’로, 활동중지를 ‘입원치료’로, 체포를 ‘급성장염’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조국은 ‘East Place’, 남조선은 ‘NamKyong’, 중국은 ‘Second-hand market’, 라오스는 ‘Noodle factory’, 홍콩은 ‘Read Flower Garden’으로 하였지요. 너무나 단순했어요.

우리는 남한에서 일반인들이나 회사원들이 흔히 쓰는 보통 용어를 쓰는데 그것도 몇 개월 단위로 교체합니다.

중국과 남조선 사이에 개인이나 회사들 간에 하루에도 수만 번씩 메시지가 오가니까 그걸 모두 감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으로 자주 출장을 가서 직접 만나 처리하니까 더욱 안전합니다. 국정원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도 별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소. 우리 1997년으로 되돌아 가봅시다. 바둑에서 복기하는 것처럼 말이요. 장 동무는 최고수로 소문이 났지. 아마 5단쯤 될 텐데…… 나는 바둑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1급 수준에 불과해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바둑의 묘미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요즈음은 도대체 둘 기회가 없어요. 바둑이란 게 참으로 묘미가 있어요.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정신적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주말이면 바둑을 두던 그 옛날 북경 시절이 그립군요. 지부장님은 승부욕이 강해서 꼭 내기를 고집하셨고 저도 오기로 절대로 져주지 않았지요.”

“그게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꽤 돈을 잃었지.”

“우리가 언제 다시 한가하게 바둑을 둘 기회가 있을까요?”

“글쎄 말이야. 아무튼 말이야…… 장 동무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1997년 그때 나는 북경지부 과장으로 있으면서 ‘쥐새끼 박살 작전’을 실제 지휘했지. 그전에는 노동당 작전부에 있으면서 그 작전을 세밀하게 기획했고. 92년 사건은 정말 비극적이었소.

97년 4월, 그때 그 할배가 남쪽으로 내려갔으니까 온통 난리가 났어. 외무성이 고생을 했지. 변절자는 갈 테면 가라고 성명서까지 발표했으니까. 공화국 전체가 뒤숭숭했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기분전환이 필요했지. 그래서 그 쥐새끼를 목표물로 정한 거야.

그 당시 내 직속 상관으로 대남공작을 총괄했던 부장 동지는 진즉 은퇴해서 할아버지가 되었지. 지금은 대동강변 아파트에 살면서 강에서 낚시도 하고 손주를 데리고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있소. 그해 4월 할배가 서울에 도착했지. 배신자 주제에 영웅 취급을 받은 거야. 우리는 극히 민감한 정보가 남한 당국이나 미국 CIA에 넘어갈지 모른다고 노심초사했어. 핵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극비 정보 말이야. 물론 그 당시 그런 극비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었지만 혹시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서 뭔가 캐낼 수도 있었으니까.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었던 거요. 직접 그를 처치할 수는 없었지. 그때 안기부가 내곡동 안가에서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었지 않소. 걔들이 내곡동으로 이사한 게 1995년인데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초호화판 최신식 건물을 지은 거요. 남산 근처에 있던 부장 공관도 그리로 옮겨갔고 남산 별관에 있던 온갖 고문 기구들도 가지고 갔을 거요. 그걸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먼지를 털어내고 창고에서 꺼낼 때가 있겠지. 세상은 계속적으로 돌고 도는 거요.”

“저는 지금까지도 그 작전의 깊은 내막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남에 숨어 사는 그 쥐새끼를 대신 처리하기로 결정했지. 장 동무는 이제서야 그 쥐새끼를 처리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될 거요. 내가 자세히 설명해 주겠소.

그 인간은 우리 공작원 명부에서 이름마저 지워버렸다네. 그냥 쥐새끼야. 그 이름도 아깝지. 악마 중의 악마이고, 배신자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배신자이니까.

본부에서는 공작원들을 훈련시킬 때 이 사건에 대해서 이미 교육을 했소. 공화국은 배신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이오. 어쨌거나 쥐새끼가 박살 난 사실을 할배가 알 필요가 있었어요. 그 당시 작전의 경과는 장 동무가 어느 정도 관여했으니까 조금은 알고 있을 거요. 장 동무가 자신이 맡았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시오. 그때는 초창기여서 장 동무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단순한 임무만 맡긴 거요.”

“저는 그 당시 한국으로 들어와서 본사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본사는 강남역 부근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 회사의 초대 북경 지사장이었지만 그때는 직원도 서너 명에 불과했고 아주 초라했지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당시 임무가 성남의 빌라로 두 사람의 공작원을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이 일요일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핑계를 대고 회사 영업용 차량을 빌렸지요. 그리고 오후 6시경 안산시 시화방조제 북쪽 오이도 활어판매장 부근에서 만나 함께 간단한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교환한 암호는 잊어버렸습니다. 벌써 13년 전 일 아닙니까. 그때 그들은 ‘누굴 만날 일이 있다. 중요한 물건을 전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른 고첩과 접선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의심할 나위 없이 완전히 남한 사람처럼 행세했습니다. 우리의 적구화 교육이 아주 훌륭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전날 태안의 안면도 해안으로 침투해서 서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산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안산에서 성남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승용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지요. 경원대학교 근처 빌라들이 늘어선 뒷골목 부근에서 내렸습니다. 주위가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6월이었지만 밤이 되니까 약간 추웠는데 그날 밤 초생달이 떴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거기서 함께 한 시간 정도 대기했습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소. 그때 장 동무는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한 거요. 그 암호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 한쪽은 ‘벌써 봄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이고, 다른 쪽은 ‘그러게 말입니다. 세월이 참 빠르지요.’이었어. 그건 그렇고 그들은 소음기가 달린 총을 사용했소. 빌라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나서 다른 요원이 그들을 픽업해서 강화도로 데려왔고 그날 밤 강화도 해안에서 공작선에 오를 수 있었소.

그 요원은 원래 이북 출신이었소.

성남에서 서울을 거쳐 김포와 강화도 북쪽 해안까지 도로를 연습 삼아 열 번 이상 달렸기 때문에 그쪽 지리에 아주 훤했소.

옛날에 영업용 택시기사도 했기 때문에 운전을 잘했으니까 아마 눈감고도 달릴 수 있었을 거요.

6·25 전쟁 때 소년병으로 참전했다가 휴전회담 당시 남쪽의 꼬임에 빠져 반공포로가 되어서 남한에 남은 거요. 그렇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한에서 밑바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소. 온갖 고생을 하였지. 두 번 결혼했다가 두 번 다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어.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북쪽에 가족이 살아있었으니까 고향을 몹시 그리워했소. 그래서 쉽게 포섭이 된 거지.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

그 후 중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왔다가 압록강을 건넜어. 지금은 고향인 신의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아주 잘살고 있어요.”

“지금 돌이켜보니까 정말 전광석화와 같은 작전이었네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네.”

“즉사해서 좋았을 것입니다. 그 무엇도 생각할 틈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하군요. 작은 구멍에 감쪽같이 숨어있는 그 쥐새끼를 어떻게 찾아냈나요? 틀림없이 애지중지 보호하고 있었을 텐데요.”

“당신의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지.”

그는 안기부 방첩과에서 전향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엄격한 조사를 받았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거쳤고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서도 썼다. 그렇게 해서 이중간첩이 되었다. 새로 주민등록증과 그 당시 안기부 산하 무슨 연구소의 연구원 자격으로 의료보험증을 발급받았고 운전면허증은 정식 시험을 치르고 나서 발급받았다. 그리고 성형수술을 했다. 한국인치고는 매부리코처럼 너무 높은 코를 조금 낮추고 쌍꺼풀 수술을 했으며 사이가 벌어져서 금방 태가 나는 앞니 두 개를 뽑아내고 인공치아를 심었다. 항상 머리를 새카맣게 염색을 하여 길게 기르고 다니면서 수십 개의 안경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썼다. 그리고 가끔 여러 종류의 모자를 쓰고 주로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남한의 보통 중년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안기부의 비밀 안가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다. 특급 호텔만큼 깨끗하고 화려한 침실에 자면서 매끼 그가 원하는 대로 식사를 했으며 어떤 책이든 마음대로 골라서 독서를 하고 TV 시청을 했으며 가끔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안내원을 자처한 감시원이 따라나서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는 1년여쯤 지나자 싫증을 내기 시작하면서 밖으로 옮겨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도저히 갑갑해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은 자유를 찾아서…… 해방되기 위해서…… 전향한 것이지 돼지우리에 갇혀 있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를 전담한 직원은 아직은 시기상조이며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건 본부 고위층의 의견이란 것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완강했다. 자살 소동까지 벌인 것이다. 그는 병실에서 깨어나자 마자 ‘도대체 말이죠…… 제가 스스로 죽겠다는데 왜 죽지 못하게 하나요? 이건 제 고유의 권리란 말입니다.’라고 항변했는데, 정말 죽고자 하는 진짜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자살 의도가 없었는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보여주기식이었는지 분간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성남시 태평동에 대지 50평, 건평 35평의 단층 단독 주택을 마련해서 살게 하였다. 그는 그 주택에 도청 장치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호신용 권총을 요구했지만 권총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안기부에서 주선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파출부로 근무했다. 그 아주머니는 정기적으로 그의 동태를 보고했고 가끔 그가 연구소로 출근한 후에는 안기부 요원들이 그의 집을 비밀리에 방문해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없는지 수색을 하고 갔다.

그는 아주머니에게 단단히 지시했다. 절대로 소포를 받지 말고 무조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하라고. 자기한테는 소포를 보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폭탄이 장치된 소포가 배달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바퀴벌레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사를 갈 것을 고집하면서 이번에는 아파트를 요구했다. 그리고 감시받기 싫으니까 아주머니 없이 혼자서 조용히 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 출입하는 주민들이 많아 보안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4층 빌라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당시 북쪽 대남공작 라인의 조직 체계와 지휘관들, 중국 주재 북한 공작원들의 신상 정보 등을 제공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특히 국정원이 애타게 알고 싶어 하는 남한에 뿌리박혀있는 고정 간첩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므로 그의 효용성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이다. 첩보 기관은 어느 조직이든 자족적이고 자체 논리로 움직인다. 이중간첩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면 잔인하게 버려질 수도 있다. 정보기관 입장에서는 당초 약속한 대로 그에게 새로운 신분과 살 곳을 마련해주고 보살피기는 하지만 때로는 적의 손에 죽게 하는 것이 편리할 때도 있다. 언제든지 그쪽의 잔인한 소행으로 발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애를 태웠다네. 그 인간이 계속 거기 안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지. 거기는 언감생심 우리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 그런데 걔가 거기를 떠나 어디론가 떠났는데 근무는 연구소에서 계속한다고 했어. 그게 몇 단계를 거쳐서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온 거지. 우리 세포들은 서로 존재를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부터 우리 비밀 요원 두 명이 걔 출퇴근 시간에 맞춰 부근에서 잠복 근무를 했었지. 우리는 연구소 애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음식점이나 술집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 그리고 말이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쥐새끼의 동선을 찾아낸 거야. 아무리 성형수술을 하고 변장을 해도 소용없었지. 키가 175센티미터인데 키를 키우거나 줄이거나 할 수는 없었지. 그리고 그 인간은 조금 독특한 걸음걸이를 걷는단 말이야. 아주 거만한 모습이지……”

그는 공화국을 배신하고 자기 자신을 반역한 것이다. 지독한 스트레스와 광기에 가까운 고양된 감정의 힘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그의 입술은 아이러니한 체념과 가벼운 비웃음을 띠고 있다. 그는 정신적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 남과 북으로부터 이중으로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계속 그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고 언젠가는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이 언제든지 그를 찾아내서 총을 발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울 강박증에 시달렸고 불면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효과가 아주 좋다는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정신과 의사는 최후의 처방으로 충격요법을 제시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때 성남의 거리에서 마주쳤던 두 명의 젊은 남자는 누구였을까. 눈초리가 매서웠지 않는가. 몸이 단단하고 눈초리가 매서운 걸 보니까 틀림없이 북에서 내려왔을 거야. 나를 찾고 있다고. 너무 지루한 일상, 좆같이 더러운 내 인생. 가끔 총에 맞아 죽는 악몽을 꾸고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잠에서 깼다.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가 울부짖었다. “나도 인간이라구. 어떤 후회도 뉘우침도 없는 게 아냐. 잔인한 짐승이 아니라니까. 너희들은 날 이용해 먹은 거야! 날강도 같은 놈들! 남과 북이 다 똑같다고! 배신자들 같으니라구! 나는 북에서 공작선을 내려보낼 때 2~3명만 내려올 줄로 알았지. 그들이 상륙하자마자 생포될 것이고 그러면 내가 그들을 잘 설득해서 남쪽에서 정착해 살도록 할 작정이었어. 그렇게 약속이 되었단 말이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탄 잠수정이 내려왔느냐 말이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큰 배를 보내면 남쪽 해군들이 금방 탐지하고 말지. 그들이 몰살당한 게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죄가 없다고……”

어느 날 저녁 밤늦게 방탄 조끼를 입고 등산용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검정 군화를 신은 괴한 두 명이 빌라의 옥상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내려왔다. 그들은 전문가답게 아주 능숙한 솜씨로 거실 창문을 깨고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그때 쥐새끼는 거실 소파에 망연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가 창밖을 내다보자 어둠이 꿈틀거리면서 인간의 형체가 그 속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무시무시한 공포에 질려서 몸이 굳어버렸다.

쥐새끼가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드디어 오셨군.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지. 오랜만에 보는 소음 총이군. 한 발만 머리통에 쏘라구. 그러면 충분하니까.” 그들은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처음 한 발의 총알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을 때 죽음이 임박하여 머릿속에 갇혀 있던 회색 안개가 걷히면서 아주 짧은 찰나적 순간에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았다. 곧이어 괴한들은 총을 난사하고 그대로 빠져나갔다.

그는 즉사했다.

“우리 요원들이 들어갔을 때는 이미 이틀 전에 총상으로 죽어있었어. 거실은 끔찍한 피바다였다고 해. 그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니까 아마 기념으로 죽은 시체에다가 몇 발을 갈기고 나왔어. 방아쇠를 당기는 짜릿한 손맛을 느꼈을 거라고. 그리고 증거품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어가지고 돌아왔지. 사실대로 정확하게 보고했어.”

“자살했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자살했다면 그 자리에 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총은 없었어. 그리고 자살자는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여러 발의 총을 쏠 수가 없어.”

“그럼 누구의 소행……?”

“뻔하지 않은가. 걔들이 한 거야. 쥐새끼가…… 배신자 주제에 염치도 없이 안하무인 격으로 요구사항이 많았단 말이오. 그때는 이용가치가 없으니까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는데 제 분수를 모르고…… 유흥가에서 돈을 물 쓰듯 했고 술이 만취해서는 온갖 행패를 부렸어. 여자를 소개해 주면 폭력을 일삼고 학대하니까 도망가버렸소. 더군다나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겠다고 생떼를 쓰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골치를 앓고 있었던 거지.”

“그렇다고……?”

“생각해 보라고…… 걔가 말이야 계속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절대로 보내줄 수 없지. 그런데 밀항이라도 해서 일본으로 망명하거나 일본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찾아가서 망명을 하면 아주 골치 아플 것 아닌가.

또는 말이야…… 변신의 천재이니까 위조 여권을 만들어서 우선 동남아시아로 튈 수도 있었을 거야. 걔들 옛날 이수근의 위장 탈출 사건을 떠올리면서 치를 떨었을 거라고. 그때 이수근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일단 국외로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거든. 그 양반 탈북자였지만 남조석 역시 아니었던거야. 탈남한 탈북자 1호라고 할 수 있겠네.”

“그 당시 상황이…… 옛날 일입니다만?”

“물론 어느 조직에서 처리했는지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일세…… 아마 어느 조직의 작은 그룹의 소행일 수도 있어. 걔들이 수뇌부 모르게 감쪽같이 처리한 거지. 이심전심이었던 거야. 추측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걸 공개했단 말인가요?”

“그 당시 정부 당국자는 당분간 극비에 부치면서 쉬쉬하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간단하게 발표했어. 북에서 망명한 고위 인사가 두 명의 북한 공작원에 의해 서울의 모처에서 암살되었다고 했어. 그러면서 국과수에서 부검한 결과 시신에서 구경이 다른 두 종류의 총알이 나왔고, 모두 열한 발의 총알을 맞았는데 가슴에 아홉 발, 목에 두 발을 맞았다고 했어. 그들은 그걸 북한의 소행으로 돌리면서 북한의 테러리즘을 부각시킨 거야.”

“그럼…… 우리 요원들은 코에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셈이군.”

“그런 셈이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지. 우리는 그걸 교육용으로 활용했어. 우리 요원이 한 거로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은 거야. 그리고 걔들은 북한 소행으로 돌렸으니까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렇게 단단했던 사람이 망가진 게 말입니다. 실세 중의 실세였고…… 확고했는데요.”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어. 그도 인간인데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소. 누구든지 인간이라면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네. 그러니까 배신은 배신한 사람에게도 상처가 되는 법이지. 그런데 말이야…… 쥐란 동물은 아주 영리하고 신경이 예민하지. 본능적인 감각으로 위험을 회피할 줄 아는데 그놈은 쥐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는 그를 납치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북으로 데리고 가서 모든 공작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방법이 너무 복잡해서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네.”

“우리는 아직 핵심 사항은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동무 밑에는 유능한 일꾼들이 있는 것 같소. 현재 영감이 살고 있는 집, 사무실, 건물들과 동선을 정확히 파악했고 수십 장의 사진도 찍었소. 본부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남자는 15년 전쯤 탈북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완전히 동화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꼈지요.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죠.

지금은 잠실에 있는 어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탈북자들이나 탈북자 단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합신센터나 하나원에 대해서는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는 순수 서울 깍쟁이 출신입니다. 아주 딱 부러지게 똑똑하고 거기다 신념이 확고합니다. 그래서 믿을 만하지요. 둘은 처음에는 연인 관계에 있었는데 지금은 동거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식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을 계획도 없는 것 같고요.”

“이건 분명히 알아야 하오. 역할 분담이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다르다는 거지.”

“무슨 말씀인가요?”

“설봉지도국은 남한으로 침투하고 국정원을 통과하는 데까지만 책임을 진단 말이지. 그 후에는 모든 게 북경 지부 소관이야.”

“그렇게 분리할 필요가 있는가요?”

“첫째는 통신보안 때문이야. 그래서 불가피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지. 북경과 서울 간에는 이메일이나 핸드폰을 사용해서 편리하게 통신을 할 수 있지만 평양과 서울 사이에는 국정원의 통신감청 때문에 여의치 않아. 서울과 북경간, 북경과 평양간 삼각통신이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단 말이지.

둘째는 장 동무가 관련되어 있다네. 이번 임무에는 동무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소속이 북경 지부란 말이지.”

“통신 연락은 임무 수행에 아주 중요하지요.”

“그렇다네. 나는 총국장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네. 그리고 모든 권한이 위임되어 있지. 지도국장 말일세…… 원래 노동당 대외연락부 소속이었는데 언젠가 정찰국으로 옮겨왔지. 그 사람 성실하고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네. 재일동포 출신이거든. 물론 조총련에서 밀어주고 본인도 열심히 하니까 올라갈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두 번째 실패니까 입장이 어려워질 거야. 어디 험한 데로 좌천을 당하거나 숙청을 당하지 않겠어?”

“요점은 그거요. 이번에도 장 동무는 직접 남산1호와 접선하면서 가방을 건네주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거요.”

“잘 알겠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임무 같습니다.”

“그걸 아시오. 장 동무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존재요. 우리 조직의 핵심이란 말이요. 우리 공작에서 생명선인 서해안을 책임지고 있지 않소. 그래서 목숨이 위태로운 아주 위험한 임무는 줄 수 없는 거요.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할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시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남산1호가 하나원에서 외출이건 외박이건 나오면 잠시 거처할 곳이 필요해요. 어디가 적당할까? 안전해야 되니까 말이오.”

“제가 이미 찍어놓은 곳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동 고시촌이 있습니다. 거기는 고시원이 널려있어요. 한 달이건 일주일이건 또는 하루이틀 정도 숙박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그쪽에는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단기 외국인 여행객들이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그래서 숨어있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들락날락합니다.”

“그 인간이 현재 살고있는 논현동 집과 그가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 북한 탈북민들과 접촉하는 장소 등 동선 파악은 잘 되고 있소?”

“무장한 경호원이 2~3명이 따라다니고 집에서도 함께 기거합니다. 담장에는 물론이고 사방에 고성능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창문에는 방탄 유리가 끼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여기저기에 틀림없이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경비가 상당히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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