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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간첩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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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6-04-27 13:48

본문

“할배가 처음 내려갔을 때 성남에 숨어있던 그 쥐새끼를 아주 잘 처리했어. 감쪽같았으니까 완벽했단 말이지. 그리고 무사히 귀환해서 영웅 대접을 받았소.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단 말이지. 경호원들이 붙어있어서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소.”

“경호원을 따돌리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 임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처리하는 것이지. 그렇지않소…… 타이머로 조종되는 폭탄은 어떻소? 소형 폭탄을 침대 밑에 설치해서 원격 조종으로 처리하는 거지. 그렇지만 조잡한 사제 폭탄은 안되오.”

“만능 기술자가 있기는 합니다. 틀림없이 폭탄도 잘 처리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걸 설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게…… 우리는 소형 스마트 폭탄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배터리를 이용해서 타이머 설치가 가능한 부비트랩인데 폭발력이 너무 강렬합니다. 아마 이층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릴 겁니다. 그리고 소리도 엄청날 겁니다. 남북 간에 전쟁이라도 터진 줄 알겠지요.”

“그건 불가능하단 말이지……?”

“역시 집 밖에서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밤에 집 안으로 침투가 가능한지 여부와 집 밖에서 처리하는 게 좋은지는 면밀히 검토하겠습니다. 그걸 남산1호에게 주지시키겠습니다. 동선은 충분히 파악해 두었습니다. 자신이 설립한 ‘탈북자동지회’사무실에 일주일에 두세 번 나가고 가끔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라는 학회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출판기념회나 강연회에 나갑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지요. 그 양반은 탈북자동지회 회원들이면 누구든지 ‘동지’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동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자가 가만히 칩거하고 있으면 그를 제거할 필요가 없단 말이지. 잘난 체하고 강연을 하고 다니니까. 최근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는 대외 활동을 강화하고 있소. 우리는 혹시나 망명정부를 수립하려고 그러는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지.

눈엣가시 같은 존재야.

우리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도록 경고를 보냈네. 경고를 하기 위해서 쥐새끼를 처단하지 않았는가. 협박 소포를 보내기도 했지. 2004년 3월 그가 회장으로 있던 탈북자동지회 사무실로 ‘확실하게 죽여버리겠다.’는 문구가 적힌 영정사진 크기의 사진과 함께 30센티미터 길이의 식칼을 함께 배달했지. 2006년 12월에는 자유북한방송 사무실로 그를 겨냥한 소포를 보냈는데 소포 안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얼룩진 사진이 35센티미터 길이의 손도끼와 함께 들어있었고, 동봉된 A4 한 장짜리 협박문에는 ‘너는 쓰레기이다. 그 입을 다물어라.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글이 적혀있었네. 2007년 5월에는 하얀색 가루가 들어있는 봉투를 소포로 보냈었네. 그 하얀색 가루는 그냥 가루였어. 그게 탄저균이나 리신이라는 독성물질이었다면 그는 그때 죽었을 거야.

그런데 그 작자는 그걸 장난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단순한 협박으로 보는 거야. 아무리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처치할 수밖에 없는 거라네. 도대체…… 본때를 보여줄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 할배는 눈치가 전혀 없어요. 남조선 정부는 그가 쓸모가 없어요. 아무리 캐봐도 쓸만한 정보가 없는 거야. 국가적 체면이 있으니까 억지로 보호하고 있어. 부담만 되는 거지. 그러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까불고 발악을 하고 있는 거요.

추악한 민족 반역자! 늙다리 정신병자!”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사무실이나 강연회장에서 말입니다. 사무실의 경우 경호원을 따돌리고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처리할 수도 있고 사무실에서 잠시 쉬고 있으면서 졸고 있을 때 감쪽같이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자가 화장실에 간다면 거기까지 경호원이 따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강연회장에서도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을 때도 가능합니다.”

“좋소. 그건 장 동무한테 일임하겠소. 무기는 뭐가 있소?”

“중국이 특수 부대용으로 만든 67식 소음 권총, 독일제 발터 권총, 남한의 대우DP51 권총, 미군 장교용 권총, 우리 공화국에서 만든 1970년식 권총 등이 있습니다.”

“다른 무기는?”

“구식 독침이 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볼펜형 독침인데 일반인들이 청산가리로 알고 있는 시안화칼륨에 비해서 독성이 몇 배나 강력한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독극물이 들어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제대로 작동할런지 성능을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강화도와 태안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벨기에 돌격소총과 체코제 기관단총, 소련제 최신형 AK 카빈과 수류탄 등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체코제가 성능이 좋습니다. 크기에 비해 가볍고 명중률도 가장 좋습니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매일 손질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잘 들으시오. 역시 권총을 사용해야 하오. 공화국의 잔인한 힘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권총이어야만 하오. 독침은 녀자애들이나 쓰는 거지. 구리 총알이 그자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대정맥, 허파, 심장, 간을 찢어놓으면서 피가 쏟아지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될 거요. 푹 쓰러져서 죽는 거지.

그렇지만 북한제 권총은 안되오. 너무 노골적이니까. 귀중한 총알을 아껴야 하오. 꼭 두 발만 주시오. 더 이상은 안 된단 말이오.”

“잘 이해가 안됩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남산1호는 명사수요. 그가 목표를 잡았다면 딱 한 발이면 되지. 그래도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까 여분으로 한 발 더 주는 거요. 저격에 실패해도 반은 성공한 거요. 그 인간에게 충분히 경고를 한 것이니까. 만약 말이오…… 비상한 상황에서 당황하여 난사해서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요. 함부로 총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그러면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지. 그건 본부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체포가 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총알은 머리 아니면 목구멍에 정통으로 박힐 거니까 비명을 지를 수도 없어요.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도망칠거고 경호원들은 졸고 있다가 뒤늦게 나타나서 당황하고 허둥댈 거야. 비상이 걸리고 현장을 봉쇄하고 경찰차, 구급차가 출동하겠지.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 응급실로 달릴 쯤에는 봉화1호는 귀신처럼 날쌔게 움직여서 벌써 1킬로 쯤은 달아날 거야.”

“저는 만약의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하오. 독약 앰플을 건네주시오. 너무 잔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가 운 좋게 현장에서 빠져나와 도망친다고 해도 말이오…… 남조선은 너무 좁아. 경찰의 기동력이나 국정원 조직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잘못하면 붙잡히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모든 걸 불 수도 있겠지. 그도 연약한 인간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끝까지 도망쳐서 살아남으라고 하시오. 그러면 우리가 공작선을 내려보내 데려올 것이오. 본부는 구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요. 그건 우리들 공작원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야. 자신들이 본부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큰 신뢰감을 가지게 될 거야.

만약…… 만약의 경우에는…… 마지막 궁지에 몰리게 되면…… 약을 삼키라고 하시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가 살아서 체포되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공화국은 감당할 수가 없어요. 최고 지도자 동지도 노발대발할 거라고. 그게 말이야, 앰플을 삼키고 죽으면 해결되는 거지. 우리는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고 공화국과는 관계가 없다고 계속 부인할 거고 그러면 시간이 흘러서 가면 결국 묻히는 거지.”

“그가 앰플을 보면 동요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겁니다. 앰플을 받는 순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지 모르죠. 국정원이나 하나원 교육 과정에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오면서 보고 들은 게 많았으니까…… 그런데 인간들은 누구나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어쩔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세대 공작원이라고 할 수 있소.

처음 선발할 때부터 사상이나 능력,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 등 여러 측면을 감안해서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누지. 그런데 국내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단 말이지. 어쨌든 해외보다는 국내가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야. 그런 걸 모두 뛰어넘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소. 정신력이 중요하지.”

“너무 젊으니까 순수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본부는 남산1호에 대해서 큰 기대를 걸고 있소. 정직하고 고지식해서 어떤 경우에도 명령을 어길 인간이 아니야. 의지가 아주 강한 단단한 청년이지. 그는 공화국 최고 엘리트 공작원이오. 머리가 아주 뛰어나지. 수재인지…… 천재인지…… 어렸을 적부터 무슨 시험이건 시험만 보면 무조건 일등을 했어. 독서량도 상당하고. 그는 해낼 수 있어. 그리고 사상 교육이 철저해요. 정신력도 강하고…… 출신성분이나 사회성분 역시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어.

딱 한 가지 흠이 있는데 술을 좋아한다는 거요. 말술이란 말이요. 북한에서 제일 좋은 술인 40도가 넘는 양덕술을 두 병이나 마셔도 끄떡 없단 말이지. 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선 안 된다고 주의를 주시오. 절대로……”

“지부장님…… 목숨을 건 일인데…… 앰플을 건네주는 것은 꺼려지네요. 제가 앰플을 건넬 때 손이 떨려서 아마 땅에 떨어트릴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네. 이렇게 말하게. ‘최고 지도자 동지에게 충성을 바치라고’ 그리고 공화국의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해. 그가 죽으면 영웅 훈장의 혜택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간다고.”

“잘 알겠습니다. 저로서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가 앰플을 삼키지 않으면 문제는 너무 커지는 거야.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버마의 아웅산 사건’을 돌아보라고. 그때 강민철이가 그 자리에서 죽었더라면 그 사건은 공화국과는 관계가 없다고 끝까지 부인할 수 있었어.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지만. 그런데 그자가 살아서 모든 걸 털어놨단 말이야. 그 바람에 우리의 가장 친근한 우방이었던 버마와는 단교가 되고 국제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지. 그리고 또 있어. 대한항공 KAL기 폭파 작전도 김현희가 현장에서 죽었으면 그걸로 끝인데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나불거렸단 말이오.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까 그 여자 입장에서는 하늘이 도와준 거겠지. 똑같은 앰플을 똑같은 방법으로 삼켰는데 여자는 살아났단 말이야.

역시 여자란……? 여자의 목숨이 훨씬 질긴 법이라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남산1호가 하나원을 잠시 나오면…… 그러니까 외출을 하건 외박을 하건 간에 임시 숙소로 들어갈 거요. 그리고 나서 북경으로 대포폰으로 연락을 하는 거지. 그러나 접선 장소는 이미 정해져 있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바로 아래야. 동상 앞 바닥에는 청동으로 된 실물 크기의 해시계와 측우기,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는데 거기서 만나는 거지.

이게 오백 년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인 세종대왕의 동상일세. 아주 옛날 일이지만 내가 모종의 임무 때문에 남조선에 잠깐 내려갔을 때 거기서 누굴 만났던 일이 있었지.”

“저야 서울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광화문 광장을 잘 알긴 합니다만…… 아마 수십 번 수백 번은 지나갔을 겁니다.”

“거기는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거요. 그래서 안성맞춤인 거요. 그 사람들은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토속촌’이라는 삼계탕집에서 삼계탕을 먹고 경복궁으로 가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정문으로 나와 광장으로 몰려가는 거요. 그 집 삼계탕이 맛있다고 중국까지 소문이 났다네. 걔는 적구화 교육을 철저히 받아서 남한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이상의 수준이오. 서울 지리도 샅샅이 익혔기 때문에 아주 훤해요. 서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소. 교육 과정이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어떠한 비상 상황이 일어나도 귀신처럼 날쌔게 이동할 수 있을 거요.”

“암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암호는 동무가 먼저 ‘백두산 천지는 벌써 살얼음이 얼었어요’ 하면 그쪽에서 ‘한라산에는 지금 단풍이 한창이지요’ 할거야.”

“남산1호와 접선하는 일자와 시간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접선 일자는 할배가 외출하여 사무실에 출근하는 요일과 남산1호가 하나원에서 외출 또는 외박하는 날짜를 고려해서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소만. 문제는 없겠지? 어때요?”

“접선하는 시간은 오전이 좋겠군요. 퇴근하는 시간은 대략 정해져 있는데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오후 5시쯤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게 버릇이 됐습니다.”

“그러면 북경에서는 만날 날짜와 시각을 정해서 양쪽에 알려줄 거요. 흔히 볼 수 있는 관광용 가방이어야 하지. 가방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통째로 전달하는 거야. 가방 속에는 장전된 총과 앰플, 안경, 관광객이 쓰는 모자, 실리콘 가면, 갈아입을 가벼운 여름 상의가 들어있어야 하오. 남산1호가 처음 나타날 때는 완전히 중국 관광객처럼 행세할 거요. 서툴지만 광둥 말을 조금 할 수 있지.”

“제가 남산1호를 정확하게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기 사진을 보게나. 이게 남산1호야.”

“참 단정하게 잘 생겼습니다.”

“아까운 인물이야. 우리들의 가혹한 운명인 걸 어떡하겠어. 우리는 항상 목에 올가미를 걸고 사는 거요.”

“제가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에 얽혀들었군요.”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 싶다네. 그러니까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 최후의 수단인 거야. 우리가 가는 길에는 단 한 번도 무풍지대가 없었소. 우리는 언제나 폭풍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야 했소.”

“잘 알겠습니다.”

“그걸 아시오. 미행을 조심해야 하오. 미행이 있다고 가정하여 행동하시오. 만약 미행의 낌새가 있으면 즉시 접선을 중단하시오. 장 동무 임무는 할배의 동선을 알려주고 나서 바로 헤어지는 거요. 뒤도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요. 그 다음은 다른 공작원이 알아서 할 거요.”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그렇지…… 차질이 있으면 안 되지.”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다.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맥주는 시원하긴 약간 약점이 있는데 너무 싱겁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도수가 높은 맥주를 입가심 겸해서 단숨에 한 잔씩 마셨다.

장 동무는 안주머니에서 돈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흰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자금을 내려보내지 못하는데……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가난해서 돈이 없어요. ‘자력갱생’의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소. 그래서 비자금이건 공작금이건 음식점이나 회사를 직접 운영해서 가급적 스스로 마련해야 하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니까 고맙소. 그 대신 중국의 수출회사는 우리가 잘 관리하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마진이 너무 적지요. 그래도 안전하니까 다행입니다. 그 정도 마진이면 빠듯하지만 조직을 유지하는 데 별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동무! 동무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오. 국정원 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귀신처럼 행동해야 하오.”

“잘 알겠습니다.”

“장 동무는 흰 머리가 몇 가닥이 솟아오르기는 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맑은 하늘에는 일곱 빛깔의 무지개는 뜰 수 없어요. 무지개는 오로지 물방울 속에서만 빛나는 거요.”

“무지개라고 하셨나요……”

“그건 알아야 하오. 우리는 남북대결의 최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어요. 민족 분단의 희생자란 말이오. 언제가 될지 모르겠소만 남북 화해가 이루어지고 평화가 정착되면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해방될 거요.

그때까지 행운을 비오.”

“우리 생전에…… 가능할까요. 안녕히 가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제 각자 자기 길을 따라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헤어지면서 말없이 손을 붙잡았다. 장해식은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어쩐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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