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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판문점」의 참고자료 1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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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6-04-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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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어 — 역사와 역사소설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소설이란 무엇인가?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는 어떤 사람들이 기술하는가? 역사는 누굴 위해 기록되는가? 그리고 역사주의란 무엇인가? 역사와 역사소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내 경험에 의하면 역사소설은 역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와 문학은 철학과 함께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서로 다른 분야로 구분되어 취급된다. 문학 연구가나 역사가는 문학과 역사가 어떻게 다르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공명하고 조응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누구나 문학이 무엇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평생을 사는 사람이다. 그 질문을 통해서 역사와 문학의 본질과 경계를 밝히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역사란 '이미 일어났던 것(역사적 실재)을 다루'는 데 반하여 문학은 '일어날 수 있는 것(개연성)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일어난 사건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서술하는 것을 생명으로 삼고 객관성을 담보한다. 반면에 문학을 하는 사람은 어떤 구체적 사건으로부터 외면적이거나 내면적으로 파생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탐색하면서 이야기를 생생하게 구축한다. (평론가 김치수의 「역사와 역사소설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참조)

그래서 역사가와 소설가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paradigm)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과 역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소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사소한) 차이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소설이란 이미 확정되어 있는 실재를 소재로 해서 있을 수 있는 것을 묘사한 예술 작품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형상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는, 묘사는 실상을 빌려서 허상을 그려낸다는 의미에서 묘사를 소설의 본질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소설은 이미 존재하는 공적인 기록으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상상력이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은 부분 (또는 숨어있는 부분)과 융합하여 만들어낸 구조물이다. 따라서 역사소설이 문학이 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과 재해석을 열어 놓게 되는 것은 과거의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예술적 조합에 의한 것이다. (이때 작가의 상상력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환기시켜 서로 조응하고 공명하게 한다. 하지만 누구는, ‘상상력이라는 언어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게으름뱅이 작가들의 실상이 묵인되어 온 것일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통 역사소설을 쓰려면 정통 리얼리즘 소설이 될 수밖에 없다.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이 분화되고 리얼리즘의 개념마저 논자에 따라 다양한 정의가 나오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리얼리즘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치밀하게 묘사한 디테일의 진실성이다. 그래서 팩트체크 (factcheck)가 정말 중요하다. 리얼리즘 소설은 소설의 육체 (혹은 몸통) 라고 할 수 있는 실재의 구체성과 일관된 내적 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역사소설은 당해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 바탕을 두지만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사상성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구현해야 한다). Storytelling이 시대적으로 중요한 핵심 주제 (主題)와 주재 (主材)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또는 그것들을 훼손 조작한다면 흥미 위주의 희극적 통속소설로 전락하게 된다.

미시사 (微視史)란 무엇인가?

작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 폰 랑케의 교조적 사실주의 (doctrinal realism) 또는 정통 역사주의나 프랑스 초기 아날학파를 초월한 후기 아날학파의 통계적이고 계량적인 방법론과 비교하면 순수 미시사야말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 소설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미시사는 작가에게 소설의 主題 (theme)와 主材 (subject matter)를 제공하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문학적 필치로 이야기 만들기 (story-fashioning)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시사 또는 미시문화사는 역사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서술은 분석적이지 않고 세세하고 미묘하다. 그것은 거시 역사학처럼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거대 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정통 역사학에서는 역사의 밑바닥에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한 기층민 인간 개개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미시적 접근을 하면 역사 속에서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소하지만 중요한 인물과 실재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미시사에서는 익명의 거대 집단과 평균적 개인의 존재보다는 그동안 꼭꼭 숨겨져 왔던 소수 집단에 속하는 구체적 개인의 이름과 그를 둘러싼 삶의 형태가 희미하게나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통 역사학의 지나치게 좁고 엄격한 실증 방식보다는 (비록 추론 과정에 의문의 여지가 많을지라도) 역사적 맥락에 따른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가능성의 역사가 가능해진다. 미시사는 딱딱하고 분석적인 문체가 아니라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듯한 이야기로서 역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시사와 역사소설은 치명적일 만큼 근접해 있다. 미시사는 역사라기보다는 역사소설에 가깝다. 미시사에서는 역사적 자료의 부실 때문에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데 그걸 메꾸려면 필자의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시사적 인물의 서사에는 사건성과 소설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정통 역사학에서는 미시사를 폄하하면서 역사적 사료보다는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역사소설은 역사서술의 하위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미시사 (micro history)와 구술사 (oral history)와 관계가 있다. 역사는 어차피 과거시제이고 storytelling이기 때문에 오래전에 서사시나 소설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온 것이다. 미시사 서술은 역사소설이고 역사소설은 미시사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미시사와 역사소설은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고 소설의 전성기인 19세기의) 정통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미시사건 역사소설이건 아주 깊고 세밀하게 파고들어서 역사적 사건, 실재, 인물, 맥락 등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서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시사는 역사소설이 된다. 역사소설은 철저한 정통 리얼리즘적 방식으로 쓰게 되면 결국 미시사가 된다. SF이건 판타지이건 어떤 장르의 소설도 리얼리즘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리얼리즘을 신봉하는 리얼리스트 작가이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무명의) 작가일 뿐이다.

그러므로 역사와 역사소설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논의할 입장에 있지는 않다. 다만 역사적 사건의 평범하고 빈약한 이야기 속에 문학적 또는 소설적 무늬를 입히려면 불가피하게 작가적 상상력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역사적 사건, 인물의 인생역정을 (시작과 중간, 결말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전개하려면 작가의 합리적 추론과 상상력 발휘가 불가피하다. 나는 그것들의 전후사정, 인생역정이 너무 궁금하다. (내가 막말을 하자면 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그래서 역사적 실재를 훼손하거나 변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용이나 오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최소한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실과 허구를 혼합해서 소설을 쓰면 불가피하게 역사적 실재를 파편화하고 침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상력은 예술의 원천인데 작가가 그걸 무슨 수로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사르트르는 ‘상상을 통해서 인간이 현실의 제약을 넘어선 자유로운 존재임’을 강조했지 않은가.

나의 인생역정을 돌이켜보면 미시사와 역사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나는 이산가족이고 (외갓집이 함흥이고 거기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6.25 전쟁을 직접 경험했으며 월남전 참전 용사이니까, 그리고 내 아주 가까운 지인들이 (?) 6‧25 전쟁 당시 좌파와 우파 간 마을 전쟁에서 희생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끊임없이 밤낮으로 미시사와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 참고문헌과 소송사건의 판례를 찾아서 읽고 있다. (소송사건에는 필연적으로 사건성과 소설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재심 사건, 살인사건, 사기와 마약 사건, 자백과 고문, 분단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남파 공작원 사건,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운동권 사건, 6‧25 전쟁과 관련하여 1950년 12월 중순경 흥남철수작전, 좌파와 우파 간 마을전쟁, 빨치산, 양민학살 사건, 1950년 10월경 황해도 신천의 인민대학살 사건, 전쟁 부역자,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 등에 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역사소설이란 역사 (역사적 사건, 사실, 진실, 인물, 실재, 맥락 등)를 토대로 주제를 설정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은 역사적 맥락에 따라 스토리 속에 인과관계의 법칙, 개연성(probability)과 핍진성(verisimilitude), 필연성(inevitability)을 바탕으로 내적 논리와 내면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면 엄격한 산문은 시적 파격(poetic license)을 모면할 수 있고 사르트르가 비판한 소설적 자유(romanesque liberté)는 제한받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 (history)와 문학 (storytelling)은 본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일심동체였다. 역사 기술은 과거형 Narrative와 Storytelling을 본질적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내러티브는 항상 사후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재현적 (representational)이다. 역사 서술은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상당한 또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역사가의 렌즈에 의해 해석 재해석되고 설명 묘사될 뿐이다.) 어쨌거나 19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 흐름 속에 경험주의와 역사적 탐구의 영향이 커지면서 역사는 문학에서 분리 독립되었고 역사학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역사주의 (historicism)적 관점에서는 문학 작품을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역사소설은 역사적 맥락에 의해 결정되고 역사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소설은, 특히 역사소설은 다양한 역사적 사실, 실재를 소재로 하여 텍스트를 구성하지만 문학인 이상 문학적, 미학적 특질이 분명하게 나타나거나 암시되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이나 맥락을 초월하여 독립된 텍스트의 내재성 속에는 작가의 고유한 관점, 문학적 메시지가 나타나면서 자체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1863년부터 1867년에 이르는 5년 동안 「전쟁과 평화」를 집필했다. 그는 1865년부터 「루스키 베스트니크」에 ‘1805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연재를 끝낸 후 상당 부분을 삭제하고 수정하여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으로 1868년 4권의 책으로 출간했고 1869년에 전 6권의 제2판을 출간했으며 1873년 또다시 상당 부분을 개정한 제3판을 출간했다. 그는 쇄를 거듭하면서 수정하고 수정 보완했으며 오늘날 4권짜리 작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거의 광적일 만큼 수정 보완에 집착했다.)

그 소설은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의 대결이 시작되는 1805년 전쟁부터 시작하여 (러시아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프리들란트 전투, 바그람 전투 등에서 나폴레옹에게 계속 패한다. 「전쟁과 평화」 1권과 2권은 이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1812년 러시아와 프랑스 간 전쟁(1812년 6월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 국경선을 넘는다. 러시아는 석 달 만에 모스크바를 내주고 시베리아 쪽으로 퇴각한다. 하지만 텅 빈 모스크바에서 혹한의 겨울을 날 수 없었던 프랑스군은 스스로 퇴각하고, 러시아군은 그 뒤를 추격하여 파리까지 쫓아간다. 「전쟁과 평화」 3권과 4권은 이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을 거쳐 1820년 12월까지 대략 15년의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 소설 속에는 나폴레옹, 알렉산드르 1세, 쿠투조프 등 수많은 실존 인물들과 안드레이, 피에르, 나타샤 등 허구 인물들의 삶을 엮어나갔는데 모두 559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서 도서관의 장서를 방불할 만큼 무수한 역사 자료를 조사하고 읽었다. 그래서 그 소설 속에는 전쟁과 역사에 대한 작가의 관점, 역사와 역사 철학에 관한 작가의 관점이 노골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장편도 아니고 서사시는 더더욱 아니다. 하물며 역사 연대기도 아니다. 「전쟁과 평화」에서는 실제 표현된 형식으로 작가가 표현하기를 원했고 또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스스로 소설임을 부인한 것이다. 더욱이 소설 본문과 일심동체라고 할 수 있는 에필로그 1부와 2부에는 온통 역사와 역사가에 관한 담론뿐이다. 그 소설에는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서 작가 스스로 붙인 각주뿐만 아니라 역자가 붙인 각주만 수백 개에 이른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역사적 실재를 훼손하거나 변조하거나 조작하지 않는다. (민음사, 「전쟁과 평화 4」 작품 해설 “변두리에서 중심을 바라보다” 참조)

그러므로「전쟁과 평화」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서 역사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또는 역사적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결합한 팩션형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특히 1812년 전쟁에 관한 역사서로 읽고 해석, 재해석할 수도 있다. (역사서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장르가 문제가 되고 있다. 장르의 문제는 작가가 소설을 창작하는 행위이건 독자가 소설을 읽는 행위이건 전통적으로 예외 없이 장르에 대한 이해관계와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도 장르를 의식하고 독자도 장르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관점은 무엇인가? 수백 권의 참고문헌을 토대로 역사적 사실, 실재, 인물, 맥락을 치밀하게 조사하여 구성했으므로 역사서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전쟁 속에서 극도의 허무주의를 초탈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 작중 인물들이 세밀한 윤곽과 풍성한 색채를 통하여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에서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그의 단어, 문구, 문장은 아름답다. 시적 파격(poetic license)을 배격하고 정확하고 냉혹한 필체로 썼음에도 그렇다.

역사 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소설적 언어는 물론이고 비소설적 언어가 많이 표현되긴 하지만 (그건 극히 사소한 문제점에 불과하고), 나는 (소설가의 입장에서 소설성과 문학성에 비추어 보면) 삶과 죽음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우주적 자아를 발견한 대단한 인물을 그려낸 대하소설 (민음사의 국내 번역본은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로, 명작소설 또는 역사소설로 인정한다. 누가 감히 그 대작 소설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오늘날 대다수의 통솔적 견해는 「전쟁과 평화」를 명작 대하소설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것은 사적인 해석, 재해석이 가능하지만 흥미와 재미를 넘어서 아주 정확하고 진실해야 한다.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아주 중요하다. 다만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아주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을 훼손 조작 변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소설은 완전무결한 fiction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는 말했다. …… 역사가로서 나는 늘 문학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편지나 일기 외에 역사 사료는 대체로 사람들의 감정이나, 욕망, 의지 등을 잘 보여주지 않으므로 역사가들은 사료의 흔적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도 결국 그 상상들을 글로 다 풀어내지 못한다. 근거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므로 역사책은 늘 딱딱하고 건조해지기 쉽다. 그에 비해 문학, 특히 소설은 인물 군상들의 섬세한 감정과 욕망, 갈등, 좌절 등이 이야기 속에 면면히 녹아있으니 그야말로 도마 위에 진수성찬을 위한 식자재들이 요리사의 칼질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형국이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역사가도 소설이 탐난다. 당대에 쓰인 소설을 사료로써 요리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소현숙, 「‘문학을 통해 보는 역사’와 ‘역사를 통해 보는 문학’ 사이의 거리」 참조..)〕

역사소설은 엽기적이거나 심심풀이용 역사소설로서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이 불투명하고 장소나 기타 소설적 요소가 불분명한 시대소설과는 정확하게 구분이 되어야 한다. 시대소설은 소설적 허구성을 역사적 진실보다 중시해서 상업적 요구에 부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장」은 8‧15 해방 이후 해방 공간과 남북 분단의 역사, 6‧25 전쟁과 거제도 포로 수용소와 포로 송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정통 역사소설이다. 그러므로 실제의 역사를 왜곡하여 재구성하는데 강조를 둔 대체 역사소설이나 가상적인 시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주안점을 둔 가상 역사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역사소설에는 한계가 있고 경계선이 있다. 소설은 진실해야 한다. 역사소설은 역사를 훼손, 조작, 변조해서는 안된다.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어느 정도 문학적 세련미를 덧칠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너무 열성적으로 소설성에 매몰된 나머지 너무 많이 나아가면 안 된다. 작가는 상상력을 최소한으로 발휘해야 하고 상상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 작가는 자신의 색안경으로만 역사를 보아서는 안 된다. 작가는 역사를 사유화하고 개인적 취향에 맞추거나 감상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자신의 관점에 맞추어 견강부회해서도 안 된다. 역사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그가 사용하는 렌즈는 올바르고 타당해야 한다. 그는 역사를 결에 따라 읽지 않고 결을 거슬러 읽고 해석 재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소설은 발표된 이후 60년 동안이나 명작소설로 회자되고 있지만 정통 역사소설의 한계 또는 경계선을 너무 많이 벗어난 것이다.

역사와 역사소설의 관계에 대해서는 김일구, ‘역사와 허구의 경계: 교실에서 역사소설 혹은 시대소설 가르치기.’, 소현숙, ‘‘문학을 통해 보는 역사’와 ’‘역사를 통해 보는 문학’ 사이의 거리’, 김치수, ‘역사와 역사소설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박진, ‘역사 서술의 문학성과 역사소설의 새로운 경향’, 박상익, ‘이광수 초기 역사소설의 허구성 연구’, 주민재, ‘가상의 역사와 현실의 관계’, 강미정, ‘1930년대 역사문학론의 관점에서 본 사화와 야담, 역사소설의 거리’, 민족문학사연구소 엮음, 「새 민족문학사 강좌」에 나오는 박현수의 ‘1920년대 소설의 등장과 전개’, 채호석의 ‘1930년대 장편소설과 리얼리즘’, 김종욱의 ‘식민지근대성과 모더니즘 문학’, 윤대석의 ‘1940년대 국민문학’, 한수영의 ‘식민지, 전쟁, 그리고 혁명의 도상에 선 문학’ 등 참조.

다만 게오르그 루카치의 「역사소설론」은 인용 원용을 삼가하겠다. 그 책은 지금부터 거의 백 년 전에 쓰인 것이어서 현재의 역사적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저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그 책은 너무나 맑스주의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주 (尾註, endnote)

1)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연구논문과 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속에 수많은 전쟁 경험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체험과 기억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기억은 살아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확인될 수 있지만 그 대신 어느 정도 감상적이다.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훼손되고 변조되기 때문이다.

구술사(oral history)는 기억과 상상력에 기반하면서 과거를 기록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과 실재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 까마득하게 잊혀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구술사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공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와 문헌들이 우리에게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다는 맹점과도 관련된다. 정통 역사학은 문헌자료야말로 가장 객관적 내지는 과학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지만 당해 시대의 시대정신과 경험의 총체적 재현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통 역사학은 대체적으로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물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한 거대 담론에 집중하므로 기층민들이 경험하거나 이야기하는 것들은 빠뜨리거나 일부러 (무시해서)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구술사는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혹은 배제된 소수 집단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다. 6.25 전쟁에 대한 구술사 연구는 크게 참전군인들의 집단적 기억에 대한 연구로서 전쟁포로와 참전군인들의 경험에 대한 연구, 집단적 정체성과 기억과 망각의 정치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치열하게 사상전을 벌였던 전쟁포로 경험이 이후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특히 북한 인민군과 남한 국군 전쟁포로들의 경험에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현재 어떠한 형태로 기억될 수 있을까?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6.25 전쟁과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관한 우리들의 구술사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왜 우리들의 가슴이 찢어지는 역사적 문제인데 우리가 아니라 외국에서 그 연구가 주로 진행되고 있단 말인가? 어쨌거나 미시사(micro history)에 해당하는 구술사는 역사소설(전쟁소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역사소설은 (소설성과 핍진성 때문에) 그걸 토대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편소설 「판문점」은 주영복의 회고록인 「내가 겪은 조선전쟁」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Tomedi, Rudy. 1993, No Bugles, No Drums: An Oral History of the Korean War, John Wiley&Sons. Inc. 또한 염미경, 「전쟁연구와 구술사」 참조.)



2) 개연성(蓋然性)과 핍진성(逼眞性)은 둘 다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 그 소설을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설득력을 의미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독자에게 잘 전달되어야 한다. 이 경우 독자의 가독성과 몰입감이 중요한데 이것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미묘하지만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개연성은 실제 현실에서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절대적으로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Recklessness)와 심리적 과정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개연성은 소설 속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추론할 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에 핍진성은 이야기의 논리적 설득력을 실제 현실(또는 상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작가의) 세계관과 내적 논리에 맞추는 것이다. 판타지 소설의 경우 소설 속 세계와 배경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개연성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허구의 존재이지만 소설 속 세계관과 내적 논리에 의하면 독자는 소설의 상황과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핍진성은 진실처럼 보이는 정도를 의미한다. 다만 당해 작품 속에서만 따질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 선배 문인들은 거의 한 세기 전에 ‘개연성’을 두고 논쟁을 펼쳤다. 조선문단 합평회(3회)에서 백화(梁建植은 1910년대에 소설가, 중국문학의 전신자이면서 수준 높은 독자였다)는 “계급쟁투니 자본가이니 그것은 말고 전편을 보면 그렇게 훌륭한 창작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사냥개가 주인을 물어 죽인다는 데 모순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이 아니다’라는 평가는 키우던 개가 주인을 물어 죽인다는 개연성의 부족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박영희는 이 평가를 “소설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를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백화와 박영희에게 ‘소설’ 개념은 동일하지 않았다. 백화에게 소설은 여타의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내적 완결성을 지닌 문학 장르를 의미하기에 계급쟁투나 자본가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는 소설평에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그는 굳이 개라는 소재를 써서 소설이 부자연스러워진 것을 작가의 실책으로 평가했으며 이 평가도 작가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소설의 내적 구성으로 제한된 것이었다. 반면 박영희에게 소설은 작가의 정신이 포착한 시대적 요구의 표현이므로 ‘소설이 아니다’라는 평가에는 작가의 정신과 작가가 포착한 시대적 요구마저 부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하영의 「식민지 조선에서 출발한 신경향의 가능성과 문단의 반응 - 초기 회월의 평론을 중심으로」, 이주미의 「백화 양건식의 현대적 문예관」, 유봉희 지음, 「백화 양건식 바로 세우기」 참조. 또한 박영희와 카프의 맹우인 팔봉 김기진 간 소설적 기법과 장치, 즉 내용과 형식을 둘러싼 논쟁에 관해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4) 작가 최인훈은 1990년 6월경 전 인민군 소좌 주영복을 만나 대화를 했다. 최인훈이 말했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쓴 것입니다. 그때만큼 그 당시를 생생하게 느낄 수는 없을 거예요. 대학생이었는데 학년이 막 끝나 방학을 했을 때 신문에서 처음 포로문제를 읽었어요. 전쟁이 끝나면 으레 고향에 간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북한송환도 거부하고 남한에 남기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 숫자가 76명이든 7명이든 왜 이런 경우가 발생했는가? 여기에 한국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하는 충격이 오더군요.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 양해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 소설은 인도행 포로 76명 중 아무하고도 관련이 없이 제 상상의 공방에서 지어낸 얘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실대로 쓰는 기록도 아니고, 단지 그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한 한국인 청년의 운명을 지어낸다면 이런 청년을 그려내겠다 한 것입니다.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소속'을, 죽음을 담보로 하고 선택해야 했던 현대한국인의 정치적 초상화로서 말입니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겠으나 선생님께만은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제하에서도 살았고 김일성 찬가도 불러보았습니다. 장교로 국군에도 복무했고 지금은 서울시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모두 나를 속였다고 생각해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일본)이 나를 자기나라 사람이라고 속였고 김일성이라는 사람은 청산리전투 같은 큰 전과를 올린 독립선배도 있는데 감히 그들을 제치고 공을 독차지했어요. 김일성 정도의 애국자와 항일운동자는 그 위패를 모시자면 큰 수레 여러 대에 차고 넘쳐요. 그러나 그는 어떤 경위에 의해 뽑혀나왔을 뿐이고, 그 전과가 그저 그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권위를 주장했어요. 남한에 와서 보니까 이승만은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동지들에게 폐를 끼친 사람이에요. 4·19까지 그가 나라를 다스린 태도는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노인이 했던 것 이상이 못됐어요. 미국에서 그만한 문명을 보았던 사람이 말입니다. ……제 나름의 동정과 이해를 충분히 표현했다고 믿습니다. 6·25는 어느 한쪽도 정의를 가지지 않은 전쟁이었어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실력을 겨룬 것뿐이지요. 그런 전재에서 절대절명의 명분도 없이 죽은 영혼을 위무할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중립국을 택한 사람들은 죽음과도 같을 골짜기를 걸은 것이지요. ……인도까지는 며칠 걸렸습니까? (주영복의 대답 ― 16일 걸렸어요. 인천에서 홍콩까지 4일, 홍콩에서 싱가포르까지 4일, 싱가포르에서 마드라스까지 8일해서 16일이지요.) ……배는 얼마만한 크기였습니까? (주영복의 대답 ― 2만2천톤짜리였지요. 2차대전 당시의 군대 수송선인데 시설이 아주 잘돼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내가 젊어서 격한 마음으로 내 심정을 다 드러낸 느낌이에요. 지금의 나 같으면 자살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제2편을 위한 작가적 포석으로라도 이명준으로 하여금 그 아픔을 거쳐서 살아가게 했을 거예요.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지로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죽음과 마찬가지의 고독과 공포와 절망의 단계를 거쳤겠지요. 민족공동체를 버리면서 거쳤을 영혼의 죽음에 대한 통과의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에게 그런 최후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았기 때문에 현행본에서는 갈매기 중 한 마리를 두 사람의 따로 바꾸어서 생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적어놓았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에 관한 것 이외에는 작가로서 열정이 별로 없어요. 전쟁이나 사랑이 자기 영혼에 한번 낙인 찍히면 일생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조그만 목소리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라면 제3국을 택했던 사람들,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으나 그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인훈씨의 말처럼, 오늘날 한반도는 그 기본적 구조가 그때와 똑같이 결박당한 채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 그 때문에 오늘과 같은 두 사람의 후일담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불광동을 나와 임진각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주영복씨는 자꾸 목이 메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조국을 위하여'등의 표어가 세워진 통일로를 달리며 내내 침묵을 지키다가 단 한번 말문을 열었다. (출처는 「시사저널」 에 실린 김현숙 기자의 “소설은 결국 현실이었다”이다.)



5) 형식주의 (formalism) 내지 형식주의 비평은 당해 텍스트나 대상의 주제는 희생시키고 그 예술적 기법에 초점을 맞추는 비평의 관행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작품의 구조상 디자인이나 패턴, 혹은 스타일이나 양식, 즉 형식을 그 내용에서 분리시켜 강조하는 수많은 유형의 비평에 대해 경멸적으로 쓰였다. 형식주의에서 미적 평가의 기초가 되는 것은 보통 그러한 형식적 특징들이다. (현대 문학‧문화 비평 용어사전 참조)

러시아 형식주의는 러시아 비평에서 문학의 내용과 사회적 의의에 지나치게 역점을 두는 데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문학 분석의 한 유형을 말한다. 이 주의가 문학의 내용 대신에 소리와 말의 형식적인 패턴에 역점을 둔다고 해서 형식주의란 말을 경멸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형식주의는 문학을 하나의 특수 언어로 보고 있으며, 문학의 언어와 일상 언어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이 있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형식주의는 일상 언어의 일차적 기능을 언어 밖에 존재하는 세계를 지시하는 메시지, 즉 정보를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본다. 이와 대조적으로 형식주의는 문학의 언어를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본다. 작품의 문학성은 말을 최대한 앞에 내세움에 있다. 즉 표현 행위, 언어 행위 자체에 있다. 그래서 문학의 일차적 목표는 멀어지게 하는(estrangement) 또는 낯설게 하는 (defamiliarization) 데에 있다. 말과 글의 일상 양식들을 붕괴시킴으로써 문학은 일상 지각의 세계를 낯설게 하여 독자가 상실한 신선한 감각 능력을 회복시킨다. 시의 언어를 멀어지게 하는, 앞에 내세운 특성들, 즉 예술의 기법들은 흔히 일상 언어의 과정들로부터의 일탈이라 묘사된다.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 참조) 학술논문이나 판례평석과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는 형식과 내용은 어떤 기법으로 구성되고 단어와 문장 등 언어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가?



6) 정치인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관여하며, 언론은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르게 보도한다. 새로운 발견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항을 재평가하도록 다그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날 역사는 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가? 과거에 대한 진실 모색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증거가 정직하게 제시되도록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온갖 문제에 겸허하게 대처하고 맹목적 애국심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다른 민족과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무엇이 역사인가」 참조.)

단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 – 역사가의 고유한 목표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 랑케는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일들이 어떠했는가를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카 교수는 역사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식화하는 가운데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들이 선택한 것일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수백만 명이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역사가들은 오직 카이사르가 건넌 것만을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그 시대의 규준에 영향을 받은 역사가들의 해석상의 선택의 결과로 등장한다. (E.H. 카 지음 / 김택현 교수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 참조.)





7) ……역사의 총체성을 표현하는 위대한 문학과 역사정신 사이의 두 상호작용에 대한 탐구였으면 그것도 부르조아 문학과 관련에서였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해 초래된 전환은 내 연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 역사발전상에 있어서의 전형적인 흐름, 분기점 그리고 절점만을 분석하고 탐구한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역사적 완전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여기서 역사극이나 역사소설의 발전에 대한 교과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그러므로 순수문학적인 측면에서 덜 중요한 작가가 상세히 다루어질 수 있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음에 반해, 다른 경우에는 문학적으로 훨씬 중요한 작품들도 여기서는 배제되지 않을 수 없었다. …… 중요한 방법론적인 관점은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과 여기에서 성장해 나오는 세계관과 예술형식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탐구이다. …… 장르의 자기분화의 사회적 토대, 장르들의 상호접근, 이와 같은 복잡한 상호작용 과정에서의 새로운 형식요소들의 발생과 소멸 등이 바로 그것이다. …… 고전적 역사소설과 퇴폐적 역사소설 등등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는 그 역사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에서는 역사소설의 성립과 발전, 발흥과 쇠퇴가 어떻게 근대의 거대한 사회변혁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나타나는가가 곧바로 드러나야만 한다. ( 게오르그 루카치 지음 / 이영욱 옮김 「역사소설론」 참조.)



8) 누구는 말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하여 또한 (창조주인) 신의 존재에 대하여 반역을 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실제의 현실을 파괴하고 변혁해서 소설가가 재창조한 허구의 현실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소설가는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실패할 줄 뻔히 알면서도 변혁을 시도하기 때문에) 인생과 세계를 원래 있는 그대로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소설가는 어떤 경우에도 현실의 생에 만족할 수 없다. 모든 소설은 신을 살해하는 행위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9) 문학적인 용어로서 리얼리즘은 삶의 단편, 즉 현실의 정확한 표상 (representation)을 제공하는 픽션 (fiction)의 방법 혹은 형식으로 정의된다.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현대의 문학 작품들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19세기 소설을 논의할 때 쓰이는 경우가 가장 많다. 리얼리스트로 간주되는 작가들 중에는 영국의 조지 엘리엇, 앤서니 트롤로프, 조지 기싱, 프랑스의 오노레 드 발자크,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 러시아의 이반 투르게네프, 레오 톨스토이, 미국의 W.D. 하웰즈, 시오도어 드라이저, 헨리 제임스가 있다. 이 작가들의 작품은 대체로 평범한 작중인물들과 그들 삶의 일상적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의 플롯은 모든 사회계급을 포함하며 지나친 감상주의를 피하려 한다. 작중인물들의 말투와 행동은 그들의 교육과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다.

이 작가들은 작중인물들이 겪는 경험의 사소한 디테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장면, 사건, 하찮아 보이는 대상들을 길게 묘사한다. (아비 바르부르크)는 “신은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 속에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 스튜어트)는 “문학 텍스트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거기에 나오는 장소, 식물, 기상 상태와 같이 배경을 설명해주는 말들을 해독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톨스토이)는 전쟁을 주제로 하면서 리얼리즘과 역사 혹은 전쟁 소설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평화」에서 “어떤 역사적 현상은 오직 그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활동상을 재구성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라고 하면서 현장성을 살리기 위하여 거의 광적일 정도로 자세하게 전투 상황을 기술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리얼리티의 실재성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는 뛰어난 작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독자가 소설이라는 물질의 질감 (matière)과 감각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탁월했다.

19세기에는 리얼리즘과 동의어이기도 했던 용어가 바로 자연주의 (naturalism)이다. 리얼리즘 내부의 문학운동인 자연주의는 작중인물들과 그들의 인생사를 훨씬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이다. 자신의 소설을 과학적 실험이라고 생각한 에밀 졸라는 인간의 행동과 성질은 통제를 벗어난 진화론적 생물학적 힘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조셉 칠더스‧게리 헨치 엮음, 「현대 문학‧문화 비평 용어사전」참조.) 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socialist realism)이나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이 아니라 정통 리얼리즘을 신봉하는 리얼리스트 작가이다. 미시사나 구술사는 뭐니뭐니해도 결국은 리얼리즘이다. 리얼리즘이야말로 미시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10) 아날학파는 19세기 독일의 (실증주의자인) 랑케로부터 시작된 ‘정치, 지도자, 연대’ 중시의 근대 전통사학이 사실주의를 토대로 지나치게 사료에만 집착하는 것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그들은 지나치게 엄격한 실증주의를 비판했지만 문학과 역사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려는 해체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들은 인간의 삶에 관한 모든 학문 분야를 통합해 생활사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며 1970년대 이후 세계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초기 아날학파는 미시사를 개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시사는 연대기 소설, 회고록, 전기 등과는 구별해야 하지만 구술사 (oral history)와 지역사 (local history)를 포함한다.

한편 일상생활사 (History of everyday life) 또는 독일의 일상사 (Alltagsgeschichte)라는 용어는 인간이 실제로 살아온 경험의 역사를 가장 범속한 층위에서 기록하고, 묘사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역사를 명명하는 데 사용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마을과 그 밖의 작은 공동체 생활의 사례 연구나 생활방식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를 의미하므로 미시사라고 할 수 있다. (곽차섭 엮음, 「다시, 미시사란 무엇인가」 참조.)



11) 미시사는 역사의 실재를 작은 규모 또는 척도를 통해서 투시하고자 한다. 규모가 큰 실체들보다 오히려 작은 조각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정통 역사가들이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정신을 쏟는다면 그들은 단지 나뭇잎에만 정신을 집중한다. 더 큰 맥락은 제쳐놓고 과거의 미세한 단편들만 따로 떼어 연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집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분석한다. 영화적 기법에 비유할 때, 거시사가 롱샷으로 본 것이라면 미시사는 줌으로 사물을 당겨보는 것이다. 역사가가 어떤 작은 공동체나 개인을 선택해서 그곳의 특이한 모습이나 특이한 행위들을 세밀하게 기술함으로써 그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 주도록 하거나, 혹은 그러한 특이한 행위에 대한 역사적 맥락에 따른 합리적 추론과 상세한 분석을 통해서 일반적 해석, 재해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곽차섭 엮음, 「다시, 미시사란 무엇인가」 참조)



12) 역사가는 문학과 철학을 역사적으로 다룬다. 또 철학자는 역사와 문학을 철학으로 다룬다. (N. 프라이 저, 「문학의 원형」 참조.)



13) 소설적 자유 (romanesque liberte)란 사르트르의 초기 소설론을 이루는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르트르는 모리아크의 유명한 전제 ‘모든 작가들은 신과 가장 흡사해야 한다’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소설가는 신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즉 ‘소설가는 절대적인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소설은 다양한 관점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사건’의 연속체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전지적 권능을 일방적으로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특히 작중인물의 자유의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되는데, 사르트르는 작가가 작중인물의 자유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은 견지함으로써 소설적 자유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한용환의 「소설학사전」 참조.)



14) 비록 허구로 쓰일지라도 역사 소설가는 대개 핍진성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가 선택한 시대를 철저하게 조사한다. 그러나 역사소설은 과거 시대의 충실한 재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의 삶을 비추어 보는 데에 그 진지한 의도가 있으므로 과거의 시대를 오늘의 감각에 맞추어 재현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시대착오는 불가피해진다. 루카치는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파악과는 무관한 복고 취미의 장식적인 소설, 개개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정확한 재현에만 충실한 소설을 가리켜 ‘사이비 역사주의’라고 말했다. 역사소설의 또 다른 폐단은 역사적 소재를 낭만적으로 통속화해서 역사적 주인공을 신화적으로 과장하거나, 역사를 지나치게 개별화된 사생활의 영역으로 귀속시키려는 것이다. (한용환의 「소설학사전」 참조.)



15) 역사주의란 모든 것의 가치는 그 근원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으며, 모든 것의 본성은 그 역사적 발전의 관점에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문학에서는 문학작품과 그것을 생산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의 관계를 다루는 개념이다. 작품은 그 역사적 맥락에 의해 결정되므로 역사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이러한 가정은 예술 작품이 어떤 초월적이고 영원한 가치 체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연주의적, 또는 실증주의적 개념은 작품을 당대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사회학적인 열쇠로 본다. 하지만 신역사주의는 전통적 역사주의와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신역사주의는 인간은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구축물이지 역사적 변화를 낳는 자율적인 행위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명석 편,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 참조)

하지만 신비평 (New Criticism)은 문학작품을 자족적이고 자율적이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문학작품을 객관적으로 취급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신비평은 20세기 문학 이론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랜섬은 전기적 역사적 맥락보다 작품의 내재적 (intrinsic) 특질을 존중하는 보다 객관적인 비평을 요구했다.



16) 요즈음 유행하는 대중적 문화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Faction (Fact + Fiction)류의 역사소설은 어떤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핍진성 있게 쓰인 역사책은 소설처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역사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치밀하게 역사적 사실이나 맥락에 맞춰 서술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역사책으로 보인다 (박진, 「역사서술의 문학성과 역사소설의 새로운 경향」 참조).

어쨌거나 「판문점」은 팩션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역사적 진실을 세밀하게 연구해서 이를 토대로 하고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 진실, 맥락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작가의 상상력은 최소한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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