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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上)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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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6-04-27 14:39

본문

존엄한 죽음
만능 해결사 –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 A. 카뮈




미래스페셜컨설팅주식회사 (MSC)
MSC는 10여 년 전 특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이다. 사회적으로 늘어나는 특별한 수요에 부응하여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서 설립되었기 때문에 공인된 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선전화 : 070-4488-5301, 팩스 : (02) 588-4040, e-mail : msc2010@hanmail.com).
그러므로 무슨 악덕 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사는 송파구 가락동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근처 뒷골목에 있는 엘리베이터 없는 작은 4층 건물 전체를 임차해서 쓰고 있다.
그날은 새벽녘부터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진눈깨비로 변했다. 그날 오후 늦게 본사 컨설팅팀의 김재원 팀장이 회사의 유선전화를 받았다.
“거기가…… 죄송합니다. MSC인가요? 어디선가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만…… 틀림없는가요?”
“그런데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뭔가 상의할 게 있어서…… 어떻게 하면 되죠?”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 우선 선생님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밝힐 수가…… 그냥 X라고 해두죠.”
“저희 회사로 연락하는 분들은 처음에는 그렇거든요. 혹시 말입니다. 이메일로 요약해서 보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고객님께서 의뢰하는 일이…… 그러니까 이삿짐센터의 일인가요? 혹은 역할대행팀인가요? 탐정팀의 업무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살조력팀의 업무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업무가 해당 될 수 있겠지요.”
“그렇군요……?”
“우선 가격을 알 수 없을까요?”
“업무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먼저 현장을 방문해서……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가격을 산정해야 합니다.”
“어차피 한 번쯤은 오셔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가격을 결정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입소문이지만…… 그렇게 들었습니다.”
“좀 더 본론으로 들어갈 수 없을까요?”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컴퓨터도 없고 이메일도 없고 핸드폰도 없지요.”
“요즘 세상에…… 21세기 대명천지에…… 설마 농담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렇지 않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진지하게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 전화는……?”
“전화는 불가피하게 대포폰을 쓰지만 끝나면 곧바로 땅속에 묻어버릴 겁니다.”
“우편물을 보낼 주소지는 있는가요? 또는 특별한 연락 방법이 있는가요? 원하시면 우리 직원이 찾아뵐 수도 있습니다만……”
“물론…… 주소지가 있습니다. 우리 집은 무허가 건물이어서 건축물대장에도 나오지 않지요. 하지만 우편 배달은 가능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회사의 주소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우편물을 보낼 때 선생님의 정확한 주소지와 구구한 사연을 상세하게 적은 편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등기속달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검토하고 나서 우리 직원이 선생님을 찾아가 면담할 수 있습니다.”
“먼저 회사의 계약서를 보내주세요. 자세히 검토하겠습니다. 저는 정확한 계약서 없이는 업무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걸 아셔야 합니다. 계약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계약서의 내용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계약서는 휴지 조각이 되는 거죠.”
그 고객의 목소리는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높낮이 없이 부드러웠다. 지극히 사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회사의 사무실 벽면에는 ‘죽음으로 삶을 완성할 수 있다’, ‘만능 해결사 —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 ‘고객의 비밀은 철저히 지킨다’라고 굵은 글씨체로 쓴 표어가 들어있는 세 개의 대형 액자가 걸려있다. 그게 회사의 기본 목표였고 규칙이었고 업무 지침이었다.
그들의 업무는 합법과 불법, 탈법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엄연히 주식회사였기 때문에 영업이익을 내는 것은 회사의 존립을 위해서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그들은 자선 사업을 하는 게 아니었다.
MSC는 회사 업무 전반을 기획 조율하는 컨설팅팀, 탐정 업무를 담당하는 탐정팀, 심부름센터, 역할대행을 주선하는 역할대행팀, 이삿짐센터 (야반도주 전문 포함)와 특수청소팀, 자살조력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컨설팅팀과 역할대행팀, 자살조력팀은 본사 직속이었다.
컨설팅팀은 회사 내부에서는 기획 관리팀으로 통한다. 회사의 두뇌에 해당한다. 회사의 발전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기획 업무, 인원의 채용과 배치, 회계 처리, 업무의 조정을 담당한다.
본사 건물 1층에는 에덴파견주식회사의 사각형 목재 간판이 걸려있고 그 회사가 운영하는 연극교실과 분장실은 지근 거리에 있는 별도 건물 5층에 자리잡고 있다.
어쨌거나 그들 간에는 정확하게 업무 분담이 되어 있어서 칸막이가 철저했고 독립채산제에 의해 매출과 수입 등을 별도 회계 처리한다. 그러므로 팀원들의 수입도 차별이 있었고 난이도가 높은 특수 업무를 처리할 때에는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 팀은 업무특성상 경쟁이 불가피했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협업할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만만치 않은 인생살이에서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었고 이 회사는 그들이 일하러 갈 곳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었다.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 한 때 인생의 꿈과 낭만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며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직원들은 회사를 자신의 사업체처럼 생각했다.
창업주인 김성수 대표이사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 MSC를 설립한 후에도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회사는 점차 안정되고 규모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오랜 경험에 의해서 기업 경영은 최소한 10퍼센트의 이익률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왜 회사의 이름에 미래 (未來)를 붙였나? 회사의 신사업들은 10년쯤 지나면 사회적 수요가 더욱 폭발해서 일취월장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리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오지 않는 법이다.
MSC는 뚜렷한 사회적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직원은 그 목적 의식을 공유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진실을 밝혀내면 따라서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이 노력한 대가로 정당한 이익을 취득하는 것이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과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일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일거양득인 것이다.
꿩을 잡아서 몸통은 쫄깃쫄깃한 꿩 매운탕을 끓여 먹고 그 알은 삶아서 술안주 하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다.
MSC는 고의적으로 인터넷 웹 사이트에 회사 이름이나 위치를 제대로 표시해 놓지도 않았으며 어디에도 광고를 한 적이 없고 무슨 전단지를 뿌린 일도 없다. 고객들이 만능 해결사라는 알음알음 입소문을 듣고 암암리에 직접 찾아오거나 이메일이나 전화를 해서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회사의 업무 추진에는 틀림없이 크고 작은 무수한 장벽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인간도 세상도 복잡다단하니까. 그 장벽을 돌파하는 것은 결국 각 팀의 최종 책임자인 팀장의 몫이었다. 팀장이 지니고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중요했다.
MSC는 주식회사이다. 주식회사와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주식회사가 없다면 주식도 없고 주식 거래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식 매매를 한다. 하지만 개미들은 대부분 돈을 잃는다. 그럼에도 마약 중독처럼 끊을 수 없다.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회사는 비상장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도유망한 회사라고 해도 이 회사의 주식을 살 수는 없다. 이 회사의 주식 지분은 대표이사가 40퍼센트, 네 팀의 팀장이 15퍼센트씩 소유하고 있다.


자살조력팀
특수 비밀 조직인 자살조력팀은 이 회사의 은근한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할까? 지금은 세계적으로 자살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 세상이 돌변하여 버튼만 누르면 수초 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안락사 캡슐’ 또는 ‘안락사 키트’이건 자살약 판매가 편의점이나 인터넷에서 가능한 시기가 도래할지 모르니까.
자살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피한 필요악일 수도 있다. 자살은 살아남아서 겪어야 할 더 큰 고통을 끝내는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음은 그를 짓누르고 있는 모든 너무나 저주스럽고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르고 어쩌면 가장 고결한 탈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살조력팀의 조성식 팀장은 키 175센티미터에 약간 말랐지만 용모가 단정했다. 그는 뒤늦게 L.A.에 있는 대학에서 복수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범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생리학, 사회학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민간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심리 상담과 프로파일링 업무를 수행했다.
심리 상담사는 심리 상담과 분석을 통해서 정신적,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는 주로 정신병원 퇴원 환자, 약물중독 치료 시설에서 일정 기간 치료를 받은 사람, 교도소 출소자, 소년원 퇴원자 등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그런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게 하는 고도로 숙련이 필요한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심리 검사의 경우에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해석자의 경험과 숙련도가 아주 중요하다. 그 결론은 해석자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갈릴 수 있다. 그래서 상담사가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사고 판단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심리상담사 업계에서는 실력이 아주 출중한 상담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나 TV 등에 얼굴이나 신분 등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인생 최초 직업은 부산의 중형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임시직 응급 구조사 역할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수까지 했지만 원하는 최고 명문 대학의 경제학과에 입학이 실패하자 자포자기하고 백수 생활을 하던 무렵이었다.) 앰뷸런스와 병원을 연결해주는 브로커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응급실에는 빨간 전화기가 있었고 벨이 울리면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장갑을 착용하고 장비를 켜놓고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부산항 제3부두 40세 초반의 항만 노동자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오고 있었다. 그 환자는 거의 30분 동안이나 맥박이 없다고 했다.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면 산소가 부족해서 뇌가 죽는다. 환자가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왔고 외상용 가위로 옷을 자르고 정맥주사인 에피네프린을 주입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죽은 채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필요한 응급 처치를 시도해야 했다. 기적이 일어나기 바라면서. “할 만큼 했다니까. 더이상은 무의미해.” 그러고 나서 의사는 죽음을 인정하고 선언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감추기 위해서 밖에서 볼 수 없도록 침대에 흰색 커튼을 쳤다.

조성식 팀장은 21세기 대명천지에 어떻게 하여 자살이나 고독사가 그렇게까지 유행하는지 그 이유와 사연을 알고 싶어서 그가 한때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한국자살예방재단의 ‘심리부검과 프로파일링 면담 분석 보고서’를 검토했다. 또한 자살학적 관점에서 자살 신화와 자살의 전염과 연쇄자살, 자살의 잠재적 위험요인과 경고 신호 등에 대해서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고차원적으로 깊이 연구했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거의 잠을 자지 않으며 (그 무렵에는 불면증이기도 했다) 연구 과업에 몰두했다. 그럴수록 좌절감과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다. 그 무렵에는 소화불량과 속쓰림 같은 위장 장애 때문에 또는 십이지장궤양 같은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 때문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는 죽어도 가기가 싫어서 부채표 활명수를 물처럼 마시면서 지냈다.
자기 스스로 두려웠다. 자신에게 내면적으로 너무나 많은 정신적 문제점이 누적되어 있다고 느낀다. 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난다. 잔인한 바다와 사투를 벌이다 심연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가 계속 생각난다. 깊이를 잴 수 없는 검은 바다의 고요. 그가 어렸을 적 일이라 아버지의 얼굴이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놀림을 당했다. 누군가, 아버지의 화를 돋우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대가 범죄자가 되면 아버지가 화를 낼 터이고, 성자가 되더라도 아버지는 화를 내리라. 비록 그대가 부처님이 되더라도…… 라고 말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그립다.
그래서 자기야말로 언젠가는 자기 살해를 감행해야 한다는 악몽에 시달린다. 입에 털어넣고 단숨에 삼킬 수 있는 새로 나온 알약을 삼키면 몇 분 내에 죽을 수 있으니까. 그때는 잠시 위경련이 일어나고 벌겋게 뒤틀려진 눈이 튀어나오며 입에는 거품이 흐를 것이다.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갈 수 있지만 의사는 이미 숨졌다고 사망선고를 내리겠지. 그때쯤이면 내 영혼은 허공으로 흩어져 하늘 높이 사라졌을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자살이 허용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무엇이라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살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무려 절반이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빠져있다. 어쩐 일인지 세상은 날이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불공정하고 부조리해졌다. 너무 부당한 사회적 대우와 모욕 등은 분노를 유발했다. 깊은 좌절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들은 중증의 불면증을 호소한다. 그래서 조사 대상자의 상당수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살이란 무엇인가? 자기를 살해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칸트가 말했듯이 모든 자살은 일종의 타살 아니겠는가?
자살 이외의 고백의 피난처는 없다고 했으니까 자살은 곧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인생에 패배했다는 걸 혹은 인생을 절대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고백하는 것인가?
성경 말씀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자살은 살인이라는 일종의 범죄로 보았고, 자살의 이유로 육신이 곤고하고 마음이 혼란하여, 생이 허무하여, 분노를 참지 못해서, 고통이 극심해서, 자책하여 등을 들고 있다.
자살한 사람은 죽어서 말이 없다. 결국 죽음의 문제이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일상적 존재 양식으로 삶의 연장선 상에 있다. 삶의 종점에 불과한 것이다. 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해야만 하는가? 죽음은 그 누구도 빗겨갈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사무엘 하 14:14; 로마서 6:23)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 죽음이란 인간이 저지른 원죄로 말미암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누구의) 처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서 죽음이란 처벌만큼 가혹한 것이 또 있을까? 그는 불가지론자로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지만 멀리 벗어나고자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래서 죽음은 존엄하다.
자살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A. 테니슨)

자살조력팀 (assisted dying team)의 경우에는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만나서 시간을 아끼지 않고 면담하고 속을 완전히 터놓은 진심 어린 대화를 하는 게 중요했다. 저 깊은 심연에는 불가사의한 내면의 근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은 몸짓 하나, 얼굴 표정, 숨소리, 눈빛을 살펴보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심장은 단지 혈액을 순환시키는 펌프가 아니다. 생명의 상징이고 영혼이 깃드는 곳으로 생명력의 근원이다.
첫째는 고객의 자살 의사 또는 의지가 확고해야 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했다. 둘째는 자살의 이유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어야 했다. 단순한 안락사의 경우는 안 된다. 주로 심리 분석과 프로파일링 기법을 사용한다. 프로파일링은 범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범죄자 프로파일링은 심리학, 정신과학, 사회학, 범죄학 등을 토대로 하여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한다. 고객의 심리와 행동 특성을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분석해서 자살의 동기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가 가장 애매했다. 자살의 의사와 이유가 명백하지만 고객이 마음이 흔들리면서 망설일 경우이다. 그럴 경우에는 고객을 설득하고 격려해서 자살을 감행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거나 자살할 특별한 이유나 동기가 없어서 자살해서는 안 될 사람은 세뇌를 해서라도 살 수 있는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에게 폭행이나 협박 등을 행사하거나 고객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세심증, 강박증, 병적인 죄책감을 일으키는 교묘한 심리적 수법이나 고객의 흔들리는 자아를 조종하는 가스라이팅 같은 수법을 사용해서 자살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치유 불가능한 사람들의 죽음을 승인하거나 인간적 삶이 존재하지 않고 무력하게 숨만 쉬며 살아야 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나치의 안락사(enthusiasm) 프로그램, 또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독극물과 세균을 투여하거나 혹한에 노출시켜 그 영향을 연구하는 생체실험을 하는 (인면수심의 악마들이 자행하는) 시도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살방조죄는 이미 자살을 확고하게 결심한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주어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하면 성립된다. 그 방법에는 자살 도구인 총, 칼 등을 빌려주거나 독약을 만들어 주거나 조언 또는 격려를 한다던가 기타 적극적, 소극적, 물질적, 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대법원 2005도1373 판결). 그러나 위력자살결의죄 또는 위력자살결의방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해 행위자 (피고인)의 자살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등의 위력이 자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여 자살자가 그 의사결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자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여 자살자가 자살 이외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를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부산고법 96노502 판결, 상고기각).
위력자살결의의 법정형은 살인죄에 준한다고 규정되어 있어서 행위자의 행위는 살인에 버금갈 정도의 죄책을 질 정도라고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다시 말하면 자살을 확고히 결심한 경우에도 마음이 바뀌어 번복을 하면 즉시 철수하는 게 원칙이다.
조 팀장이 자살조력팀을 만드는 데는 캐나다의 사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캐나다의 ‘임종 관련 의료 지원법 (MAID)’은 회복 불가능한 신체적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성인의 경우에는 의사 두 명의 확인과 동의 절차를 걸쳐 처방받은 독극물을 직접 주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법이 그런 불가피한 경우에도 허용하지 않고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법을 어기면서 자신이 실행할 수 밖에 없다고 결심한 것이다.

인터넷 자살 카페
하지만 자살조력팀은 ‘인터넷 자살 카페’의 개설자는 아니다. 당연히 그런 카페와는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어떤 카페는 카페 회원으로 가입시키기 위해서 (‘자살을 원하시면 가입하십시오.’라는 문구와 함께 동반 자살 카페의 이름, 카페의 인터넷 주소 등을 표시한다.) 또한 그 카페의 개설자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동반자살 카페 게시판에 글 남겨서 계획 세워 뜻대로 하세요. 자살 멤버 구하신 분들은 탈퇴하고 죽으세요. 자살할까 말까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조용히 탈퇴하기를 눌러주세요’라고 말한다) 회원들이 서로 자살의 당위성 및 자살 방법 등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고 (‘연탄은 타다가 산소가 부족하면 꺼지게 돼요. 꺼진다는 것은 충분히 일산화탄소를 배출했다는 거겠지요. 좁은 밀실에서 피우면 더 효과적일 거라고 보는데 혹시 모르니 두 장 사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두 장을 쌓아 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동반 자살자를 물색한다.
또 다른 카페는 전국적으로 회원이 수백 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탐정팀이 조사 확인한 바로는 그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다.
카페의 모토는 ‘우리는 단 한 번 죽는다’였다.
그 카페의 개설자는 자살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가명을 번갈아 쓰기 때문에 본명은 알 수 없다. 그는 철저하기 자신을 숨기는 은둔자였다.)
2018년 늦가을 경이던가. 북한산 국립공원이 보이는 도봉구 A빌라에서 신부전증으로 투병을 하고 있던 남편이 진통제의 약 기운이 떨어지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목을 스타킹으로 감은 후 아내에게 “여보! 여보! 너무 고통스러워. 도저히 살 수 없다니까. 죽여줘. 죽여 달라니까.”라고 간절하게 하소연했다. 아내는 그 스타킹을 힘껏 잡아당겨서 목을 졸라 질식으로 죽게 하였다. 하지만 그 아내는 재판을 받고 촉탁 살인죄로 징역 4년에 처해졌다.
조성식은 그 무렵 신문에서 그 사건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미 고인이 된 그 남편을 내심 비난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나? 비겁하지 않았나? 결단코 스스로 죽어야 했다. 왜? 그 가련한 아내가 4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해야만 한단 말인가?
그는 불치병을 앓고 있던 가까운 지인이 모진 고통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했지만 그 방법이 서툴러서 실패로 끝났고 그 후유증으로 몇 달 동안 공황 상태에 빠졌다가 칼로 배를 찔러서 과다 출혈로 죽은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도저히 회생할 가망이 없는 불치병 환자들이, 병들고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몰라서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의료와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지금 세상에서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인 ‘엑시트 인터내셔널 Exit International’에서 출간한 온라인 자살 설명서인 「평온한 약 안내 Peaceful Pill Handbook」를 읽는다.
여러 군데 동물 용품 가게에 들려서 다량의 수면제를 사서 먹으면 된다. 의식을 잃을 만큼 진통제를 먹으면 며칠 만에 죽을 수 있다. 펜토바르비탈 성분이 들어 있는 넴뷰탈을 먹으면 신속하지만 급작스럽지 않게 잠에 빠져 죽을 수 있다.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말했다. “약물을 사용하세요.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굶어서 죽는 거, 목을 매다는 거, 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가스를 마시는 거, 사무라이처럼 칼로 배를 갈라서 과다 출혈로 죽는 거 등등 모두 옛날식이에요. 편안하게 죽는 게 중요해요. 아시겠죠.”


탐정의 세계
MSC의 탐정팀 (대외적으로 통용되는 정식 명칭은 탐정법인 솔로몬이다) 사무실은 광진구 구의동 옛날 서울동부지청 근처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한 거리의 4층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데 1층에서부터 3층까지는 심부름센터가 사용하고 있고 4층은 탐정팀이 사용하고 있다. 건물 입구는 물론이고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추는 복도에는 간판도 상호도 보이지 않는 사무실이다.
탐정팀은 ‘모든 법률문제, 법률상담을 원하는 분은 오세요’라는 선전 문구를 내걸고 법률 카페를 이미 개설했다. 많은 돈을 주고 탐정 업무를 의뢰하는 사건은 거의 반드시 법률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온라인 법률 카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카페에는 법률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와 생성형 AI로 판례를 분석하는 전문가 2명이 함께 근무했다. 그래도 변호사법 위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무료 상담을 진행했지만 그러나 돈 버는 방법은 따로 있다. 단골 변호사 사무소에 은밀하게 사건을 연결해주고 착수금의 30프로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차제에 별도로 유한회사인 법률사무소를 정식으로 개설해서 서초동에 사무실을 내는 게 어떠냐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2020년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탐정 사무소가 합법화되면서부터 미검증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그들 업체는 사무실도 없이 핸드폰 또는 대포폰 하나로 업무를 수행한다. 말이 탐정이지 정보 브로커일 수도 있다. 출신이 불분명하거나 조직에서 밀려난 조폭 출신이 신분을 숨기고 탐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니 민간 탐정 자격증이 남발되고 탐정사무소가 여기저기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에서도 수백 개의 탐정사무소가 눈이 빠지게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MSC 탐정팀 직원 대부분은 경찰청 등록 탐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탐정사 배지를 소지하고 한국공인탐정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탐정팀장은 대표이사가 겸직했다. 강력계 형사 출신으로 모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탐정 법무를 전공했다.
그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상고를 졸업한 후 뜻한 바 있어 아주 일찍 경찰에 투신해서 줄곧 고달픈 강력계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근무했다. 본인이 희망한 것이다. 하지만 승진은 지지부진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서 경찰 내 호남 인맥이 비로소 기를 펼 때쯤 겨우 진급할 수 있었다.
그는 새내기 형사 시절부터 밤낮없이 격무에 시달리면서 아내와는 그 때문에 자주 부부싸움을 했고 그래서 몇 번이나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 그래도 두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럭저럭 위기를 넘기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딸이란 얼마나 귀여운가!!
그는 성질이 급한 열혈 형사였다.
인천의 경찰서에서 근무할 당시 어느 날 폭력과 사기 전과 5범인 지저분한 피의자가 높은 사람과 친척 관계라는 둥 돈이 많다고 뻐기는 둥 잘난 척하자 그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흠씬 두들겨 패준 게 말썽이 되어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파면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사표가 처리된 게 다행이었다.
그의 별명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평생 불독으로 통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애매함이나 타협을 배제하고 일을 어정쩡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범죄 수사에는 합리적 추론이나 판단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그는 직감과 함께 온갖 감각을 중시했으니 때로는 얼핏 순간적으로 스치는 도저히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변덕 같고 악마 같은 직감이 수사의 활로를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주기도 했다. 마음속 깊숙이 얼씬거리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어떤 막연한 느낌, 지각을 무시하고 흘려보냈다가 낭패를 겪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놈의, 그냥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감각.
그는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서로 협력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은밀하게 과거 경찰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들과는 뭔가 상통했으니 상부상조하는 처지였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었다. 겉으로 보면 다부진 몸매에 여전히 열정이 넘쳐 흐르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으니 눈 밑에 생긴 다크서클은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은 탐정법인 솔로몬의 이름으로 홈페이지, SNS, 유튜브, 블로그를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때로는 불법이나 탈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그렇지만 홈페이지에는 선전용으로 그들의 과거 탐정 실적을 보란 듯이 잔뜩 과장 미화하여 올려놓았다.
탐정팀은 지금도 인원이 제일 많고, 차량, 첨단 장비 등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지만 경찰처럼 조직을 갖추는 게 목표였다. 조만간 산하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고가의 포렌식 장비를 갖추고 필적 감정이나 지문 감정, DNA 감정, 랜섬웨어의 암호를 풀고 데이터를 복구하는 작업, 디도스, 랜섬웨어, 피싱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해킹을 시도하는 꽁꽁 숨은 해커를 색출하는 작업, 삭제된 메일이나 인터넷 사용 기록을 복구하고 비밀번호를 해제하는 작업을 전담할 사설 감정센터를 신설할 예정이다.
특히 DNA 분석은 장기 미제 살인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분야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고유 영역이다. 하지만 민간 영역인 친생부인의 소, 부를 정하는 소, 인지청구의 소나 인지취소의 소, 친생자추정 등에서 증거자료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STR 부분을 분석하는 DNA 분석은 부모 자식 간 혈연 관계를,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은 형제 자매 간 혈연 관계를 완벽하게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DNA 분석 기법은 점점 그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유전자의 조합이나 연결을 통해서 완벽한 짝 찾기를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선남선녀들은 속궁합이 맞거나 천생배필인 자신의 짝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유산
끔찍한 교통사고, 항공기 사고, 화재 사고 등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족을 잃었을 때 황망한 가운데 사망자의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리고 싶어도 연락처를 알지 못해 속을 태우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스마트폰 암호는 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족이라도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나 (KT, SKT, LG U+ 등) 통신사,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이 이를 알려주지 못한다. 법률이 엄격하게 규정하는 개인정보보호 원칙에 따라 회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같은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자가 생전에 동의한 경우에는 스마트폰 속 연락처나 소셜미디어의 기록 등 디지털 유산을 유족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금 고인이 남긴 기록을 디지털 유산으로 지정해 상속 가능하도록 하는 디지털 유산 제도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이 한창 논의되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 역시 최신 제품에는 생전에 지정된 사람들이 고인이 작성한 글들, 음성 파일들, 연락처 등이 저장된 클라우드를 열어서 열람할 수 있는 기능을 설치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법률의 규정에 의해 꽉 막혀 있고 다른 대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망인의 가족들은 궁여지책으로 솔로몬으로 고인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와서 연락처나 소셜미디어의 기록 등을 풀어서 알려달라고 은밀히 의뢰하는 것이다.

옛날의 탐정 업무는 불륜사건 조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는데 간통죄 폐지 후 불륜 현장을 급습하던 경찰 업무는 탐정사무소로 넘어갔다. (2015년 2월 헌법재판소는 간통한 기혼자와 상간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한 형법 제241조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1953년 성립된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되면서 그 무렵 피의자 1779명이 즉시 혐의를 벗어났다. 하지만 피해 배우자가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할 경우 수고스럽게도 직접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요즈음 탐정팀의 다양한 업무는 세상이 복잡해지고 세분화되니까 그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 재산 상태, 개인적인 비행 따위를 몰래 조사하고, 밀수업체의 불법행위를 밝힐 수 있는 증거자료를 채증하고, 경쟁 회사의 제품 개발 정보를 탐색하면서 시제품이나 레시피를 빼내고,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구입하여 설치한 변형된 불법 카메라를 탐지하는 일, SNS에 ‘청소년 환영’이라고 대놓고 홍보하면서 학위증명서, 성적증명서, 어학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공문서와 사문서를 위조하는 위조자를 잡는 일, 대학과 유학원의 의뢰로 불법 체류하는 유학생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 수배자와 도주자를 추적하는 일, 횡령 배임을 하고 도망간 회사 직원을 잡는 일, 실종자를 찾는 일, 행방불명자를 찾는 일, 은닉 재산을 찾는 일, 유명회사 제품과 유사한 가짜 상품을 유통시키는 유통업자를 잡는 일, 랜섬웨어를 이용해서 금전을 갈취하는 도박 사이트를 찾아내고, 산업 스파이를 색출하고, 꽁꽁 숨은 해커들을 특정해서 잡아내고, 거액의 돈을 사기치고 잠적해버린 사기꾼을 추적하는 일, 야반 도주한 불쌍한 채무자를 찾는 일,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숨어버린 애인을 찾는 일을 한다.
탐정팀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증거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한다. 거액의 사기를 당했다는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의뢰인이 말했다. “지금 단계에서 경찰에 고소할 수는 없어요. 우선 잡고 나서 돈을 받아내야 해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기꾼이 직접 운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메르세데스 마이바흐를 발견한 후 3개 팀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뒤를 따라갔다. 서로 신속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차에는 운전 기술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운전자와 좌우 감시 역할을 하는 두 명의 요원이 타고 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어느새 눈치를 채고 6차선 도로를 빠르게 달려 교차로에 접근했는데 마침 신호등은 초록색이다. 노련한 거물 사기꾼은 직진하지 않고 우회전하고 나서 다시 불법 좌회전을 두 번씩이나 하면서 잠깐 멈춰 서는가 싶더니 속도를 내서 직진했다.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시야를 벗어나 사라진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탐정은 사내 컴퓨터 포렌식을 통해서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임직원의 비리, 횡령 배임 행위를 적발하고 특히 한창 개발 중인 극비 기술이 유출될 경우 신속하게 수사를 의뢰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증거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관련 증거를 수집해서 제공함으로써 수사 공백을 메꾸는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학교 폭력 조사관 행세를 하면서 학교 폭력 피해 학생 부모들이 요청하는 가해자의 집 주소, 부모의 신원을 조사하기도 한다. 대도시 뒷골목 지역 유흥협회의 의뢰를 받아 유흥가 골목에서 암암리에 불법 영업을 하는 유흥업소를 파악하기도 한다.
사설 경호 업무도 탐정팀에서 수행한다. 때로는 거래처의 요청에 따라 진짜 정예 경호원을 파견하기도 한다. 그들은 무술 유단자이면서 청와대 경호처 은퇴자들에게서 비밀 경호 업무에 대해 철저히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경호 요원들은 누굴 경호하느냐에 따라 복장부터 달라진다. 정 · 재계 고위 관계자라면 요원들도 이들에게 맞춰 정장차림의 양복을 입는다. 연예계 아이돌일 땐 캐주얼한 차림을 한다. 남자 요원은 머리칼에 무스나 왁스를 바르고 여성 요원은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단단히 묶는다. 그들은 선글라스를 자주 쓴다. 범인이 요원의 시선을 잘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경비업법에 따르면 사설 경호원은 경비 업무를 수행할 때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거나 정당한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경호원이 다른 사람에게 협박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면 경비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가 된다.
경호원에게는 직관이나 직감이 아주 중요하다. 도발적인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칼날이 눈앞을 스쳐도 총소리를 들어도 두려움에 떨거나 겁에 질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솔로몬은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큰 이익이 나지 않아서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뢰인에 대한 청구금액은 보통 시간당으로 계산하고 소요되는 비용은 따로 요구한다. 선불 조건이 원칙이고 따로 성공 보수금을 책정하기도 한다.
MSG 탐정팀은 발 빠르게 탐정 업무를 확장하고 있다. 현재는 소송 증거 자료 수집에 강점이 있다. 고객의 의뢰를 받아 소송 당사자의 신원이나 행적을 조사한다. 이혼소송에서 유리한 증거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증거물을 수집하고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고 대화를 녹취한다. 그러므로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지만 초고성능 카메라와 녹음기는 필수품이다. 누군가를 몇 시간씩 또는 며칠간이나 잠복해서 기다리고 미행해서 밀회 사진을 찍어온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면 불법적인 도감청이나 자동차의 적당한 위치에 위치추적기(GPS)를 다는 것도 불사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은 애매모호하다. 그들은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식은 죽 먹듯이 경계선을 초월해버린다.

지금 MSC 탐정팀의 주된 고객은 (결국 타인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들과 사건 브로커들이다. 브로커들은 법원이나 검찰청 주변에 득실거린다. 서울에만 만 명이 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브로커는 변호사와 공생한다. 어떤 간 큰 브로커는 수하에 막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새끼 변호사를 몇 명씩이나 고용해서 거느리고 있다.
그들은 온갖 수법을 동원해서 돈이 될만한 사건을 물색하거나 아예 사건을 만들고 변형시키고 심지어 조작하는 등 혈안이 되어 있다.
늙고 노련한 단골 사무장이 말했다.
“요즈음 거기 법률 카페는 뭘 하고 있는거야? 혹시…… 우린 단골 거래처야. 계산은 항상 정확했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다른 데 주면 안 되지. 악마처럼 덤비는 걔들과는 다르단 말이야. 우리 변호사는 부장 검사 출신이지만…… 마약 수사를 전담했던 검사가 사표를 내고 나서 마약 사범을 변호하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야.”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절대로 이중 거래는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절대가 어디 있어?”
“절 믿으세요.”
“이번 건 역시 이혼소송이야. 우리 쪽은 남자야. 남자는 광양 출신이지.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 채소와 과일 도매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더군.”
“큰 건인가요?”
“단가가 높지.”
“얼마나……?”
“재산분할이 100억 대라니까.”
“정말 큰 건이네요.”
“몇 년 만이야……?”
“얼마나 받을 건가요? 모처럼 만난 천재일우의 기회인데 뜯어낼 수 있을만큼……?”
“영업비밀을 왜 물어……?”
“그쪽도 양심이 있기는……하나요?”
“양심이 밥 먹여 주나?”
“그래도……?”
“요즘 당사자들은 옛날과는 다르지. 다 알고 온다니까. 그래서 이것저것 따지니까 은근슬쩍 넘어갈 수가 없어.”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우리는 우리죠. 몇 주일…… 몇 달간이나 고생 고생하는데 말이죠. 걔들 대화를 녹취하기 위해서 콘크리트마이크도 준비하고. 그뿐입니까…… 집음 마이크도 필요하고 여러 대의 대포폰도 필요하고 야간 투시경도 필요하단 말입니다.
방범 카메라의 영상을 끄집어 내는 교묘한 기술도 필요해요. 우리는 대충대충 업무를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때국놈이 번다고…… 그런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의 직업적 불만 때문에 무겁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가끔 온 밤을 차 안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자야한단 말입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뻐근하죠.”
“이거…… 왜 이래? 한두 번 거래했어……? 싫으면 관둬. 탐정 회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우리는 그런 허접한 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어떻게 걔들과 우리를 비교해요? 참으로 섭섭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다는거야? 우리도 가성비를 따져야 할 거 아냐?”
“본론으로 들어가죠. 우리가 뭘 해야 되죠?”
“남자 쪽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려고 하는데…… 남자가 소 제기 전에 10억을 준다고 하면서 합의이혼을 종용했다네.”
“그런데요? 뻔하네요. 여자가 그거로는 응할 리가…… 없죠. 여자는 먼저 법률 카페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을 거에요. 그러면 사건이 없어서 굶어죽게 생긴 변호사들이 벌떼처럼 덤벼들게 뻔합니다. 변호사들이 가만두지 않겠지요.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길 겁니다. 합의하면 절대로 안 되죠. 어떻게든 사건화시켜서 돈을 뜯어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걸 누가 모르겠어. 넘어가자고. 남자는 꼭꼭 숨겨둔 다른 여자가 있으니까. 그런데 여자 역시 자기보다 서너 살 아래인 남자가 있다는 거야.
지금은 별거 중이야. 뻔하지. 날마다 부부 싸움이 격렬해지니까 여자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집을 나갔어. 잠실 석촌 호수 근처 빌라라고 추측하고 있더군.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다는 거지.
그거만 확실하게 잡으면 협상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거든.”
“그거 잡으려면 보통 문제가 아녜요. 여자의 임시 거처를 찾아내야 하고. 걔들이 밀회를 하는 모텔도 찾아내야 하고. 걔들 엄청 신경 쓸 텐데요. 다시 말하면 동거까진 안 갔을 겁니다.”
“돈 걱정은 하지마. 곱빼기로 할 거니까. 그러니까 오랫동안 미행하고 잠복해야 할걸.”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우리가 늘 하던 겁니다. 방법은 많이 있어요.”
“실력을 발휘하라고. 그 결정적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찍고 녹음하면 끝내주는 거지.”
“우리야 뭐…… 돈만 많이 준다면 못 할 거 없죠.”

탐문 조사부터 시작했다. ‘탐문에서 시작해서 탐문으로 끝난다’라고 했지만. 탐문 조사는 모든 조사의 기본이자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래도 탐문 조사를 하면서 여자의 고등학교와 대학의 동창생들을 여성 요원이 만나 필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여자의 이름은 오인우이고 전남 여수 출신으로 순천의 모 대학 영문과를 나왔다. 여자는 집을 나와 이혼한 후 혼자 사는 언니 집에서 임시로 살고 있다).
남자의 경우 직장과 출신 고향, 졸업한 지방 대학을 알아냈다 (남자의 이름은 장영태이고 전남 고흥 출신으로 모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에서 3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고 그 후 전직해서 현재는 어느 중견 식품회사에서 영업팀 과장으로 있다). 그들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하지만 남자는 자가용 승용차가 없었고 오직 지하철로만 이동했다. 탐정팀은 한 달여 동안이나 모자와 안경을 착용해서 변장한 채 미행과 잠복을 계속하면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들이 밀회를 하는 은밀한 장소이건 모텔이건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용의주도했는지 아니면 뜬소문과는 달리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서 탐정팀은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했고 성공보수금도 하늘로 날아가 멀리 사라져버렸다.

노련한 탐정은 귀중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경찰관이나 변호사, 사무장, 브로커 행세를 하거나 때로는 기자, 인플루언서, 공연 기획자, 프로듀서, 음악 비평가, 신흥종교 사이비 교주, 가톨릭서 면직된 가짜 사제, 가짜 신분증 위조업자, 부동산 공인중개사, 펀드 매니저, 회계사, 공인 감정사, 독심술사, 의사 등 전문직 행세를 하고 심지어 조폭 두목 노릇까지 한다.
탐정에도 탐정 철학이 있고 탐정윤리강령이 있다. 법률에 위반되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비밀유지 의무,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사건의 수임 금지, 이익충돌 회피 의무, 정직 및 진실 유지 의무도 있다. 하지만 솔로몬의 직원들은 지킬 수 있는 건 지키고 지킬 수 없는 것은 간단히 지나쳐버린다.
탐정은 사건의 세밀한 부분을 구별할 줄 아는 ‘곤충의 눈’과 독수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사건을 전체적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새의 눈’이 필요하고, 물고기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도 감지할 수 있는 ‘물고기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얕지만 광범위한 전문적 지식을 조금씩 갖추고 있어야 하고 의사 소통의 달인이어야 한다. 얼굴 표정이나 작은 몸짓, 마음의 창인 눈을 통해서 인간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고객들이 모두 진실만을 말하는게 아니었다. 그들은 숨길 것은 숨기고 공개할 수 있는 것만 말할 수도 있었다. 의뢰인과 일종의 심리 게임을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착수금과 비용은 반드시 선불 조건이어야 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했지 않은가. 사건이 끝나고 나면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변에다 유머 감각을 한껏 발휘해서 상대방의 혼을 빼놓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심부름센터 (혹은 흥신소)
2020년 8월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부터 탐정업이 합법화되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탐정업은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암암리에 몰래 영업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 재산 상태의 조사, 사람 찾기, 불륜 현장의 증거 잡기, 학교 폭력 가해자 관련 증거 수집, 개인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불법 유통, 스토킹, PC나 휴대폰 해킹, 위치 추적기(GPS) 몰래 부착하기, 각종 뒷조사 등을 돈을 받고 몰래 조사해서 알려 주는 민간 조사 업체 또는 탐정사무소를 흥신소 또는 심부름센터라고 했다. 경찰에서는 전국적으로 4,000여 군데의 흥신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들은 공원이나 건물의 공중화장실에 공공연히 광고 스티커를 붙여놓는다. 의뢰인들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이름이 꽤 알려진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오너 등도 익명으로 몰래 의뢰했다.
MSC 탐정팀은 당초 암암리에 ○○심부름센터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 발 빠르게 대외적 명칭을 법무법인 솔로몬으로 해서 탐정업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그간 쌓아온 은밀한 고객들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센터를 당분간 계속 운영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다만 그 시점에서 앞으로는 전통적인 탐정 업무는 탐정팀이 담당하고 심부름센터 업무는 완전히 분리해서 진짜 용역업체 업무만 수행하기로 업무 분담이 되었다.
어느새 세상은 많이 변했다. 택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퀵서비스 때문에 용역업체의 고유업무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들과 경쟁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먹고 살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무슨 짓이든지 해야 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센터의 업무가 너무 심하게 아슬아슬 합법과 불법의 영역을 넘어 들고 있었으므로 위험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확고한 경계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도록 절감하고 있었다.)
옥바라지 업무는 한사코 사양한다. 옥바라지는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재소자들이 의뢰하는 유해 간행물인 성인 잡지, 담배나 (극히 정교한 수법이 필요한) 마약의 교부, 펜팔을 원하는 여자들과의 연결, 스포츠 도박의 대행 등 심부름을 말한다.
이들 업체는 전국적으로 100여 개가 있다. (형집행법 제26조는 수용자의 경우 물품소지를 허용하고 있고, 제27조는 허가를 받으면 외부인의 수용자에 대한 금품교부를 허용하고 있다. 이 법 규정을 탈법적으로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학교 폭력의 경우 피해 학생의 부모나 친척들이 거액을 제시하면서 가해 학생이나 끝내 정식 사과를 거부하는 학부모를 죽지 않도록 때려주라는 부탁은 한사코 거절한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마약 거래와 마약 투약이 전방위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 정상적인 직원에서부터 전문직 종사자들, 대학 동아리 멤버들, 심지어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까지 암암리에 확산하고 있다. (마약류 중독이 되면 평생 동안 유혹에 시달려야 하는 만성 재발성 질환인데도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의학으로도 도저히 가망이 없는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받고있는 환자들, 철딱서니 없이 자살 자체를 스스로 과장 미화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 우울 강박에 시달리는 젊은 여자들과 남자들은 안락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흥분하고 매혹되어서 적극적 안락사를 간절히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마약과 안락사 약의 은밀한 배달이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약도 구해달라고 하면 딜러라고 하는 마약 판매상으로부터 대신 사다 준다. 안락사의 경우에는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춘다. 가령 몸무게가 70kg이면 약은 20g이 치사량이다. CCTV가 없는 비밀스러운 곳에 ‘물건’을 넣어두면 고객이 스스로 찾아간다.
심부름센터는 보안 메신저를 이용한다. 여기서 물건은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된 스위스나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 사용되는 B성분 의약품을 말한다. 국내에서 이 약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진정제와 마취제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약국이나 개인 간 거래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보통 비트코인으로 50만 원을 송금하면 드로퍼 (Dropper)가 물건을 집 근처까지 가져다준다. 그들은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다’거나 또는 ‘평화롭고 고통 없는 죽음을 제공한다’고 노골적으로 광고한다.
마약에 호기심이 많은 고객들은 대개 랜덤채팅 앱을 통해 처음 마약을 접하게 된다. (식욕 억제제 디에타민의 별칭인) 나비약 중독에 빠지면 어느새 필로폰 중독으로 넘어간다. 랜덤채팅 ‘앙톡’ ‘즐톡’ 등에 ‘ㅋㄷ구해요’라는 글을 수차례 반복해 올린다. ‘ㅋㄷ’는 마약 투약자들 사이에서 엑스터시를 가리키는 ‘캔디’의 약자이다.
랜덤채팅 앱이 마약의 유통과 소비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얼음 넣고 술 같이 한 잔할 분 찾아요’라고 글을 올린다. 또는 ‘차가운 술 드실 분?’이라고 올린다. ‘차가운 술’과 ‘얼음’ ‘아이스’ 등은 모두 마약 투약자들 사이에서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이다. 그렇게 유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심부름센터의 직원이 그들을 낚아채서 비밀스러운 장소로 유인한 뒤 필로폰을 건네준다. 하지만 회사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직원은 절대로 함께 투약하거나 기타 성추행을 하거나 성관계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심부름센터는 마약 운반을 담당하는 직원을 채용할 때 엄격하게 심사를 했다. 운반책이 중간에 돈을 빼돌리거나 마약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도망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마약 판매상들이 모인 은밀한 대화방이 있다. 마약을 공급하는 판매상들은 절대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대화방을 개설하여 수천만원 상당의 마약을 들고 잠적한 마약 운반책의 신상 정보를 박제 (공개)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불량한 드로퍼의 이름과 나이, 주민등록번호, 가족들의 정보를 공유한다. 운반책을 잡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며 막대한 현상 수배금을 걸기도 한다.


역할대행팀 (또는 파견 회사)
역할대행팀은 본사 건물 1층과 2층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역할대행팀은 결혼식 하객 동원이나 장례식 조문객, 무슨 수상한 행사의 참석자, 전시장의 모델,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의 데모 참가자 동원이 가장 많았다. 장례식에도 상주의 체면을 세워주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정장 차림에 검은 넥타이를 맨 수십 명의 조문객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물 사기꾼들은 역할대행 업체를 통해 가짜 기자와 경호원 등을 동원한다. 조폭 두목의 경우에도 유흥가 골목의 보호 업소를 순찰할 때 대동할 조무래기 경호원을 의뢰하기도 한다. 거액의 투자금 유치를 위한 바람잡이를 파견하는 등 불법의 소지가 있는 업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견 회사는 온갖 종류의 업무를 대행한다. 새로 뜨는 대행 업무는 퇴사 대행 서비스다. ‘사표를 대신 내드립니다’라는 업무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 다른 직장을 찾아서 바로 이직하는 잡호핑 (job-hopping) 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직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 직원이 경쟁 업체로 이직할 경우 극비 자료인 핵심 기술이 넘어가거나 회사의 제품 개발 계획 또는 영업 비밀 등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는 입사 당시 퇴직 후 전직 금지 약정을 맺는다. 전직 금지 위반이 발견되면 어김없이 소송이 진행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장래가 불안정하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내 사업을 하겠다고 사업 아이템을 찾아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퇴직자, 얼마 전 회사에서 사전 통보도 없이 느닷없이 짤렸다는 고위직 퇴직자들도 고객이었다.
그들은 모두 퇴직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는 것 자체를 참으로 어려워했다. 그들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극도로 위축되어 불안해했다. 그들은 딱한 처지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퇴직 대행을 의뢰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쪽 사람들은 당분간 쳐다보기도 싫어요.”
대기업 회사의 인사부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오랫동안 회사에 다닌 부장급 사원이 퇴사 대행 서비스를 신청해서 대신 전화했다는 것이다. 역할대행팀은 본인을 만나 절차를 상의했다.
그가 말했다. “오라고 하는 회사가 있어요. 하지만 계속 망설였죠. 새로 온 직속 상관인 상무가 업무용 메신저로 너무 괴롭힌단 말이에요. 그 양반 명문 대학 출신에다 유학파고 커리어가 화려하죠. 회사의 오너 회장님과도 연결고리가 있으니까 이너 서클 멤버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제 목줄을 쥐고 있죠. 그러니 어떻게 무시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업무 시간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와요.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단 말이에요.
문제는 말입니다…… 한밤중에도 걸려 온다는 겁니다. 그때 모처럼…… 근 한 달 만에 발동이 걸려서…… 그 황홀한 순간에 말이죠…… 아내가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아서 노골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순간에…… 절정으로 치닫는 그 순간에 걸려 온단 말입니다. 도저히 안 받을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랬다가는 다음날 난리가 나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역할대행팀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본인과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직접 연락하지 마세요. 개인 물건은 우편으로 착불로 보내주십시오.’라는 단서가 달린 사직서를 회사로 송부했다. 역할대행팀은 월급과 퇴직금의 정산, 퇴직연금이나 기타 회계 처리, 회사의 영업비밀이나 특수 비밀을 준수한다는 내용의 비밀준수 약정, 퇴직 후 다른 회사로 전직할 경우 전직 조건 등에 관하여 회사와 합의했다.
세상은 돌고 도니까 언제 다시 만날 수도 있는데 감정적 앙금을 남기지 않고 작별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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