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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검은 그림자의 여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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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49회 작성일 26-01-2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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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벌써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이 소설은 분단소설이고 역사소설이다. (분단의 문제는 내 가슴 속에 너무 깊이 뿌리 박고 있다. 나는 이산 가족이고 6.25전쟁을 직접 경험했다.) 역사소설은 철저하게 리얼리즘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역사가의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 학자처럼 역사적 사건, 인물, 실재에 대해서 엄밀한 입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관점에 의한 역사적 해석이 필요하고 소설의 토대와 구조가 되는 역사적 배경과 시대정신이 어느 정도 (혹은 충분하게) 소설의 내적 논리에 따라 서술되어야 한다.
나는 역사소설을 쓰려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관심을 끄는 그런 필수적인 소재를 불가피하게 도용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 훔쳐오는 것에 대해 빚을 갚고 보답하기 위해 문학적 범주 안에서 깊이 있게 통찰하면서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과 허구를 혼합해서 소설을 쓰면 불가피하게 역사적 실재를 파편화하고 침식할 수도 있다. 작가는 예술적 아름다움과 작중 인물의 영혼을 포착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위험을 무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에서 보통사람으로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터인데 분단국가의 운명과 6.25전쟁의 그늘이 그녀를 전설적인 할머니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에게는 자존심이 강하고 반항적인 제주도 해녀의 원형적인 특징이 엿보인다. 그녀는 평생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살았다. 그녀의 인생역정은 감내하기 힘든 적대적인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1. 이선실
할머니 간첩 이선실은 북한은 물론 남한에서도 가장 완벽한 간첩으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남다른 의지와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에게 부과된 어려운 임무를 빈틈없이 수행했다. 그녀는 여러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요했고 편집광적이었다. 그녀는 철저히 냉정했다. 남한에서 1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제주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오매불망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지도 않았다.
이선실이 1955년 한국에 침투해서 어느 지하조직의 위기를 수습하고 북한으로 복귀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 남측 군사분계선의 비상 경계 태세가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강화되는 바람에 호송을 담당하는 공작원과 접속을 못하고 보름간이나 비무장지대 죽은 식물이 켜켜이 쌓이며 만들어진 얕은 언덕에 땅굴을 파고 숨어서 물만 마시고 자기 오줌을 받아먹으며 견뎌냈다. 다시 공작원과 만났을 때에는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다 죽게 되었었는데 이 때문에 공작원이 계속 울면서 그를 업고 북으로 넘어갔다.
이선실은 언제인가? 김일성의 특명을 받고 남조선 침투 준비를 할 때, 김일성이 “이번에는 늙어보이도록 분장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하자, ‘어떻게 하면 늙어 보일까?’고 며칠을 고민하던 와중에 누가 “어느 책에서 보니 이빨을 다 뽑으면 10년은 늙어 보인다고 하더라.”하는 말을 듣자마자 나흘 동안에 이를 몽땅 뽑아냈다. 김일성이 ‘이선실이 생니를 몽땅 뽑았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잣죽을 쑤어들고 와서 “조국이 통일되면 오늘의 이 고생도 옛말이 될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고, 이빨을 몽땅 뽑고 남한에 침투한 덕에 그해 가을 어느 날 오후 늦게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북측과 무전교신을 하고 내려오다가 산을 포위하고 수색하는 국군 수색대를 만났을 때 순식간에 틀니를 뽑고 입을 오물거리면서 말을 더듬어 80대 노인 행세를 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그때 수색대 대원들은 약초를 캐러 높은 산에 올라온 늙은 할머니가 측은해서 수통의 물을 마시게 해주기까지 했다.
사실 그녀가 여간첩으로서 지녀야 할 신체적 조건은 보잘 것 없었다. 그녀는 반백의 머리 또는 염색을 하고 안경을 쓴 평범한 얼굴의 키 155센티미터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대범한 면이 있고 친화력이 탁월했다. 마음씨 좋고 정겨운 할머니였다. 그래서 남파 간첩들은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녀가 진보정당 창당에 간여하고, 민중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던 손병선, 황인오를 포섭한 후 이들을 중심으로 간첩망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지하조직 구축을 시도했던 때는 70대의 중반의 할머니였다. 지난 20세기 세계 첩보사에서 기억되는 섹스 어필을 무기로 삼는 여성 공작원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나는 사형 집행자의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목을 내려치는 그 짧은 순간을 생각한다. 그녀야말로 평생 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그것들로부터 ―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인 ― 경애하는 최고 지도자 동지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으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으로부터 배반을 당했으니, 그 순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외로운 영혼은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의탁하고 눈을 감았을 것인가?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키리에, 엘리이손.
키리에, 엘리이손.

2. 김낙중 (金洛中, 1931.12.11. 태어나서 2020.7.29. 사망)은 안기부에 의해 36년간 고정 간첩으로 암약한 간첩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진짜 본 모습은 사상범으로 통일 운동가이자 평화 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6.25 전쟁을 겪고 나서도 ‘청년공동체안’을 들고 김일성을 찾아갔고 나중에는 이선실에게서 거액의 공작금을 받았다. 2006년 국가정보원은 안기부가 “간첩으로 남파된 뒤 1961년 안행협을 월북시키고 1973년 정부전복을 음모하는 등 북한의 지령을 수행했다.”고 발표한 김낙중 사건에 대해서 조사 결과 “1957년과 1963년 사건 당시에는 김낙중이 ‘북한의 간첩으로 남파되었다’는 내용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 받은 사실이 없고 김낙중이 월북했던 때로부터 무려 16년이 지난 1973년 사건 당시의 수사 결과와 판결 내용을 별도 조사 없이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비록 김낙중이 1990년 공작원을 접선하고 공작금 210만 달러 (한화 20억)와 공작 장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36년간이나 고정 간첩으로 암약했다는 안기부 발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3. 김부겸은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에서 이선실과의 악연을 해명했다. “1988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진보정치연합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나는 장모님과 알고 지낸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그 할머니가 수표로 500만원을 두고 갔다고 했다. 일단 은행에 예금했다. 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혁명 이야기를 꺼냈다. 일정한 선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앞으로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라며 야멸찰 정도로 축객을 선언했다. 그 후 나는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3년이 흐른 뒤에 간첩단 사건이 터졌고, 핵심 인물로 발표된 북한 공작원이 바로 이선실, 내가 아는 신씨 할머니였던 것이다. 모골이 송연했다.”
남파 간첩 김동식은 이선실 접선에 이어 백암산 접촉에 나섰다. 이선실이 보고한 백암산은 당시 33세 정치인이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였다. 1970~80년대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대학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던 운동권 출신이었는데 이선실이 막무가내로 접근하던 시기에는 정계에 막 입문한 상태였다. 김동식 공작조가 이선실에게 요청했다. “김부겸을 만나 당신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고, 북한에서 당 연락원이 왔으니 만나보라고 권유해 주세요.” 이선실은 김부겸을 만났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선실은 김부겸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로 꽤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부겸에게 ‘평양에서 손님이 왔다. 만나 보시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김부겸은 ‘할머니(이선실)가 과거 빨치산 활동하신 분 정도로 알고 있었지 북한에서 파견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다. (평양에서 온 공작조를) 안 만나겠다’고 했다. 이후 이선실이 김부겸을 두 차례 더 만났으나 설득하지 못했다.” 이선실의 어설픈 공작은 실패로 끝났다. “이선실이 포섭한 백암산 김부겸을 접촉해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은 이선실의 과장된 보고에 기초한 것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선실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북한 권력층에 허위 정보를 올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

4.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총책이었던 황인오 (48)는 그 당시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정 의원이 지난 2월 총선을 앞두고 전화를 걸어 한나라당 입당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으나 정 의원은 이를 부인했다. (2004년 12월 경이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황인오는 이 잡지와 인터뷰에서 “지난 2월 총선을 앞두고 정 의원이 직접 전화를 해 정치할 생각이 없느냐며 한나라당에 입당하라고 제안했다.”면서 “정 의원 말고도 공천심사위원회에 관여한 한나라당 유력인사도 입당의사를 물었다.”고 주장했다. 황인오는 그러나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실체와 관련, “변혁운동 차원에서 지하당 운동을 한 것은 맞다. 운동가로서 잘못된 선택을 했고, 오류가 있었다.”면서 “반성을 했고 대가도 치렀다.”고 말한뒤 “사건 당시에 조작 논란이 있었지만 없는 조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내가 황씨와 직접 통화를 했거나 보좌관이 전화해서 바꿔줬을 것”이라며 “하지만 당시 내가 선거와 관련해 누구에게 입당을 권유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선거와 관련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 수사과정에서 고문 논란과 관련해서는 황인오가 검거된 후부터 모두 실토를 했고 고문 같은 것은 있을수도 없지만, 고문도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황인오는 “2000년 총선 전에도 정 의원이 처자식에 대한 폭행에 대해 폭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치 입문을 권유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92년 당시에 안기부 지하실에서 어머니하고 집사람을 20여 일간 감금, 고문한 사실이 있다.”면서 “어머니하고 아내에게만 했었던 게 아니고, 아내하고 같이 그 당시 네 살 먹은 아들을 같이 안기부 지하실에 감금해 놓고 네 살 먹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당시 수사국장이었던) 정씨가 직접 지휘하며 수사관들이 집사람을 폭행하고 폭언하고 협박하는 등 온갖 악행을 가했다. 아마 그가 고문을 안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안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 의원의 변명조 어설픈 주장과 관련해서, “그때 정 의원이 비서관을 저한테 따로 보내서 만났는데, 만나서 정 의원 부탁이라면서 저한테 그 당시 아들을 감금하고 집사람과 어머니한테 폭행 폭언했던 것을 폭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정 의원 부탁 때문에 안 하는 게 아니고 아들하고 집사람 때문에 안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라’고 돌려보냈는데 정 의원한테도 바로 전화가 왔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유명한 이근안 씨로부터도 80년과 83년 두 번에 걸쳐서 갖은 악행을 당한 바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과 원수를 삼지는 않는다. 어쨌든 역사의 현장에서 배역이 달랐으니까. 그러나 정 의원 같은 경우는 현직을 나와서까지 자꾸 이런 식으로 재탕 삼탕을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잊어버릴 만한 사건이 또 일어나서 나와 내 가족들이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을 헤치는 데 대해서 참 불쾌하다. 그러나 다시는 이와 같이 무덤을 파헤치고 관 뚜껑을 열어서 죽은 시신을 다시 훼손하는 것 같은 이런 행위를 이번에는 정말 끝내야겠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잘 된 기회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96년도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할 당시 나를 담당하던 교도소 관계자가 법무부에서 제안이 왔다면서 수기를 쓸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했다. 정치범들이 글을 쓰는 것을 일체 방해하던 교도소 측에서 내게 특별히 집필 허가를 내줘서 3개월간에 걸쳐서 그 글을 썼다 (옥중 수기「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말한다). 글을 쓰고 나서 마침 집사람이 출판 관계 일을 하기 때문에 이 글을 집사람에게 내보내서 출판하게 하려고 했고, 그것을 일단 교도소 당국에 내놨다. 그런데 그것을 집사람이 면회 오기 전에 안기부 직원이 가져갔다. 안기부 담당자가 대전 지부의 직원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안기부 산하의 천지미디어라는 출판사에 넘겨 거기서 자신들 마음대로 가감을 한 것이다. 출판계약은 집사람에게 강제로 받아가고. 교도소 당국자와 이 문제를 가지고 1년간 씨름을 했지만, 갇혀 있는 입장에서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97년 중반쯤에 그 책을 만들었다고 가지고 왔는데 원래 내가 쓴 원고보다 오탈자가 많아서 뜻이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내 뜻과 아무 상관없는 글들이 첨삭됐고, 이 의원이 표시됐다는 조직표는 조직 폭력배나 마약 사범들의 조직표와 같았다.
(황인오는 2025년 2월 현재 사북항쟁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보상 및 직권재심 회부를 촉구하는 특별위원회(사북항쟁특위)의 위원장이다. 그는 사북항쟁의 숭고한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며 1980년 사북항쟁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말했다.)


5. 국가정보원의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훨씬 나중의 일로, 2019년 10월경 국정원 과거사위는 1992년 그 당시 안기부가 대단히 흥분해서 과대포장하여 발표한) 할머니 간첩 이선실이 총책으로 지휘 감독한 3개의 간첩망, 황인오가 책임자인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손병선 간첩망, 김낙중 간첩망을 아우르는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은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나 확대 과장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과거사위는 그 당시 안기부의 수사과정에서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같은 혹독한 고문은 없었으나 다른 종류의 고문, 예컨대 고문 협박, 구타와 잠 안재우기, 벌 세우기, 인격 모욕 등 가혹 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가보면 압니다.’ 검은 승용차에 타면 그때부터 욕이나 반말이 시작되었다. 영장의 제시도, 묵비권이나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수사관이 말해주어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의 고지 같은 것도 없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본인들도 자신이 끌려간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조사실 (또는 취조실)은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이 미치지 않는 성역이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악랄한 고문을 자행했다.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 신발을 벗겨서 얼굴 머리 때리기, 무수한 발길질과 뺨 때리기, 얼굴에 가래침 뱉기, 몽둥이질, 손바닥 발바닥 등 특정 부위 때리기, 손발톱 사이 찌르기, 손가락 사이 나무 막대기 끼우기, 몽둥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뭉개기, 발가벗긴 몸을 나무 사이에 묶어 대롱대롱 매달기, 로프로 인정사정없이 등을 후려 갈기기, 터진 살갗에 소금물 붓기, 며칠 동안 흰 벽만 쳐다보게 하기, 수건을 얼굴에 씌우고 주전자로 물 붓기, 손발톱 뽑기, 군대식 원산폭격, 통닭구이, 거꾸로 매달기, 비녀 꽂기, 체모 불태우기,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 자극하기, 며칠 동안 잠 안 재우기, 다른 사람들의 고문 소리 듣게 하기, 가족을 데려다가 고문하겠다고 협박하기, 실제 권총을 들이대고 쏴 죽여 버린다고 협박하기, 성기 고문, 물 고문, 고춧가루 고문, 전기 고문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억지 자백을 받아내고 그나마 조서를 자기들 마음대로 조작해서 범인을 만들어 기소했다. (황인오는 1980년 4월 사북항쟁 당시에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에 끌려가서,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2년 10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그 당시 안기부 남산 분실에 끌려가서 물고문과 폭행 등 온갖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문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자백을 완벽하게 받기 전까지 절대 상대방이 목숨을 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살을 방지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폭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언제 고문을 멈추어야 할지 정확하게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170만의 목숨을 앗아간 크메르 루즈 대학살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때 S-21 교도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말로 심문하는 ‘차가운 고문‘, 고문의 정도가 심한 ’뜨거운 고문‘, 그 중간에 해당하는 ’미지근한 고문‘이 있었다. 고문의 종류에는 전기 충격과 채찍질, 코에 물을 넣는 고문과 구타,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우는 고문, 죄수의 가슴을 불로 지지는 고문, 손톱, 발톱을 뽑는 고문, 배설물을 한두 숟가락 떠먹이는 고문, 오줌을 마시게 하는 고문, 왕지네 같은 독이 있는 곤충으로 위협하는 고문 등이 있었다. 물고문의 경우 위에 물이 가득 차면 죄수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구토를 한다. 심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그때는 죄수가 의식을 되찾으면 다시 심문을 한다. 동물 사육하듯 음식을 줬고 진짜 동물처럼 대했다. 그리고 죄수가 으스러질 날을 기다렸다. 처형자들은 사람을 ’죽인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처단한다’, ‘퇴출시킨다’ 또는 ‘으스러뜨린다‘고 했다.
자백을 받고 나서 프톰펜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쯔엉 엑의 형장(킬링 필드)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는 잘 으스러뜨리는 것이 검은 인민복을 입은 사형집행인들의 당연한 의무였다. 사형집행인들은 (횃불을 들고) 밤에만 사형을 집행했는데 땅이 푹 꺼지도록 둥글게 판 구덩이에 죄수가 무릎을 꿇고 앉게 한 다음 죄수의 목 뒤를 굴대로 내려쳐서 목이 꺾이면 마지막으로 목을 벴다. (그렇게 사형을 집행해서 170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던 것이다) 보통 밤 9시경에 시작되는데 사형수가 많으면 동이 틀 때까지 진행되었다.
하지만 크메르 루즈의 고문 방식은 아주 원시적이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는 어떤 고문이 있었던가? 나치의 고문관들은 처음부터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치유 불가능한 노인과 장애인 등은 즉시 가스 살인 프로그램에 의해서 사망케 하였고 , 또는 독극물과 세균을 투여하거나 혹한에 노출시켜 그 영향을 연구하는 생체실험의 실험 도구로 사용했다. 오직 신체 건강한 사람만 살려주었고 그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과 음식물만 제공한 다음 중노동을 하게 했고 그래서 신체가 쇠약해서 더 이상 노동이 불가능할 때는 소각실에 집어넣어서 지클론 B (Zyklon B) 독가스로 죽게 했다.〔그들은 친절하게도 유대인을 고문한 게 아니다. (유대인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왔지만) 처음부터 노동이 가능한 사람과 불가능한 사람으로 분류해서 전자의 경우 일정 기간, 대략 몇 주나 몇 달간 중노동을 하게 하고 몸이 쇠약해져서 도저히 더 이상 노동이 불가능하게 되면 그때 소각실에 던져 넣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즉시 소각실에 집어넣어 집행을 했던 것이다.〕그러니까 선진국인 독일 사람들은 지극히 과학적이어서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무려 40년전에 벌써 독가스로 대량 살인을 감행했던 것이다. 

6. 참고 문헌
국가정보원의 자료. 재판기록과 판결문. 연합뉴스와 시사저널. 노컷뉴스. 중앙일보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19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758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9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240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0769. ko.daehoon@joongang.co.kr). NK지식연대의 자료. 월간조선 (우리가 이 책을 펴내기로 한 것은 우리 손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숨겨 놓은 것 또한 언론의 범죄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라는 성경 말은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적용될 것이다.) 1992년 11월호, 1993년 1~2월호, 4월호에 실린 이선실 관련 기사.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안기부 수사 팀장의 수기였다. 이 수기에는 인물들의 실제 이름이나 직책, 정황 등이 당시 상황 그대로 표기되어 있다. 나는 이 수기의 내용을 일부 요약해서 전재하였지만 (섬세한 완곡어법이거나 수사적 언어 유희가 아닌) 순수하게 문학적 세련미를 덧칠하기 위해서 이선실과 관련하여 사건의 내용이나 실재, 맥락에 따라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일부를 수정 보완하였다. 하지만 그 부분은 이선실에 관한 극히 작은 부분이어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조작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른바 팩션 (Fact+Fiction)형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소설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것이다. (물론 모큐멘터리 (mock+documentary) 도 아니다.) 다큐멘터리 (non-fiction)의 경우에는 실체적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북한 측 자료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인터넷에 실린) 일요신문 제1165호 기사. 김동식 지음,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2013년, 기파랑. (이 소설의 세 번째 주인공인 김동식에 관한 부분은 그의 자서전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하였다.) 황인오 옥중 수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7년, 천지미디어. (이 소설에서 황인오는 두 번째로 중요한 주인공 인물이다. 황인오에 대한 부분은 그의 책에서 발췌하고 어느 정도 각색한 것이다. 나는 작가 입장에서 그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과 감정을 캐내려고 많이 노력하였다.) 김질락 옥중 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 2011년, 행림서원. 김덕홍 지음,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2015년, 집사재. 황장엽 지음, 「황장엽 회고록」, 1998년, 시대정신. 김부겸 자서전,「나는 민주당이다」2011년, 미래인. 이창현 저, 「형사소송법(제8판)」,2022년, 정독.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동원탄자 시위조사보고서」. 사북청년회의소 편, 「탄광촌의 삶과 애환:사북 고한 역사 연구」. 2001, 선인. 황인욱․박다영․한정원, 「사북항쟁과 국가폭력」, 2021, 지식공작소 . 역사문제연구소민중사반사북팀 편, 「1980년 사북 항쟁과 일상의 사회사」, 2021, 선인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80년 사북사건 조사보고서」, 제5차 조사보고서. 유중원 지음, 중편소설 「배신 혹은 전향」, 2022년 겨울, 문학저널 통권 206호. 다만 그 소설에서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결성 시점은 1992년 7월 말’이 아니라 1991년 7월 말의 오타이므로 바로 잡아야 하고  , 따라서 ‘그 당은 탄생하자마자 한 달여 만에 소멸되었다’는 일 년여 만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가협), 민중당과 김낙중, 장기표, 손병선 등에 관해 자세한 것은 네이버 지식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82%99%EC%A4%91,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A%B8%B0%ED%91%9C 등 참조.
 또한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5760), https://blog.naver.com/olivemana/100042121481, https://007nis.tistory.com/8112649, https://nomorepost.tistory.com/51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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