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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설득, 전향 轉向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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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4-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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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름밤이 꽤 깊어진 것 같다.
보드카는 완전히 비어있다. 그들은 나중에는 입가심으로 각자 알아서 맥주를 병나발로 마셨다. 국장은 마지막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는다. 그는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 독한 술을 목구멍에 털어넣어 얼큰한 기분이 들게 하고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가 주는 편안함을 느끼도록 안간힘을 다했다. 대화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설득은 불가능하다. 설득에는 강압적이고 까다로운 태도는 전혀 효과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마주보고 대화하는 사람들도 마음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다’라고 했지 않은가.
(특히 말하는 사람이 실제 내뱉는 단어들은 종종 모호하다. 우리는 내면의 느낌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아주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지만 물론 상대에게 설득당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설득을 위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것을 대화 도중 언제 말해야 하는가? 언제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될지언정 가슴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 인생이란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설득 과정이 아닐까? 설득의 사전적 정의는 ‘상대편이 이쪽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심각한 설득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의도를 탐색해야 하기 때문에 머릿속까지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 우리는 때로 설득은 말 잘하는 사람의 능력이라 여긴다. 그렇지 않다. 설득의 기술은 상호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내 의도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대화와 설득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통상 남파 간첩은 처음에는 북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대로 완강하게 입을 닫는다. 그래서 간첩을 대화로 설득해서 자백을 받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대화와 설득만으로 심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육체적인 고문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문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자백을 완벽하게 받기 전까지 절대 상대방이 목숨을 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살을 방지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폭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언제 고문을 멈추어야 할지 정확하게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입을 열게 해야 한다. 자제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온다. 간첩들도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이 어느 정도 노출되는 순간 당황하고 공포심에 빠져 결국 실토하면서 온갖 유혹에 넘어오기 마련이다.
심학무는 전혀 달랐다. 그는 원래 자기 신념에 충실한 지독한 확신범일 수 있다. 국장은 웃는 얼굴로 조사실로 들어와서 그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심학무를 설득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심학무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말의 효과를 가늠하면서 대화를 주도하고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많이 했지만 내심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양주 한 병씩을 마신 셈이다. 그것도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아무리 담배를 많이 피워대고 술을 연거푸 마셔 얼큰한 기분에 얼굴이 붉게 물들어도 그들의 대화 속 심연에 깔려있는 긴장감을 완전히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술과 담배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국장은 자신이 상대방의 의중이나 반응도 살피지 않은 채 목적도 두서도 없이 무슨 말을 마구 지껄이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의 입을 떠난 말들은 겨눈 표적을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파편이 튀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게 글이었다면 문장들 위에 박박 줄을 그어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어쩔 수 없다. (프로이트식 말실수란 무엇인가. 아무리 말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해도 결국 똑같은 말실수를 한다는 거 아닌가.)
심학무는 내내 그의 비위를 건드리고 신경을 미묘하게 긁었다. 결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사람처럼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남과 북의 견고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마침내 수세에 몰렸고 심학무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그의 마지막 공작 임무였는데 말이다.
그는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생각한다.
‘이런…… 정말 어이없는 일이야. 이런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리다니.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까. 처음에는 뭔가가 제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 생각할수록 정말 단단한 인간이야. 짧게 때로는 길게 대답했지만 그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걸 빠짐없이 말했단 말이지.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지껄인 것 같군.
그러나 어쩔 수 없지. 대화를 이끌고 나가야 했으니까. 그를 설득하려면 사무적이어서도 안되고 조용하고 감정 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갈 수도 없었던 거야.
내가 너무 많이 가식적이었던가…… 위선적이었던가…….
하지만 맹세코 나는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실제 사실과 어긋나는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진실한 대화는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새삼스럽게…… 논쟁에서 상대방을 압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설득한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가 떠오른다.’
염 국장이 마무리하려는 듯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끝난 것 같구먼.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수사를 잘 받으라고. 당신은 역사적 증언대에 서 있는 셈이야. 올해가 2010년이란 걸 기억해두게. 그러니까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끝까지 버티는 것은 피곤한 일이야. 그러지 않도록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당신의 운명을 쥐고 있으니까.
그걸 알라고…… 그걸 알라니까……”
염 국장이 마지막으로 작별의 악수를 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심학무는 미소를 지어보이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입술이 비틀렸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손길을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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