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설득, 전향 轉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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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운 가사야…… 구구절절이…… 그렇지 않나?
불쌍한 북한 주민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 노래를 배워서 외우고 가사 한 꼭지라도 틀리지 않게 노래를 불러야 한단 말이지. 틀리면 경을 치니까.”
〔염 국장은 언젠가 유럽으로 한 달여 간 출장을 갔었다. 그때 칼 마르크스의 무덤에도 가 보고 프리드리히 앵겔스의 생가까지 갔고 폴란드의 아우슈비츠까지 간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묘는 런던 외곽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중 동편 묘지에 있다. 마르크스의 청동 두상이 놓인 대리석 좌대 위쪽에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문장이 금박을 입힌 채 음각되어있고, 아래쪽에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인용한 “철학자들은 단지 세상을 이모저모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is to change it.)”라는 문장이 같은 글씨체로 새겨져 있다.
칼 마르크스는 유대계 독일인이었지만 망명객으로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Diaspora)는 이스라엘 땅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지지만 그 역시 유대인 디아스포라였다. 히브리 성경의 하느님, 신약성경의 나사렛 예수 모두 유대인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절멸 정책으로 유대인 육백만 명이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지만 위대한 유대 민족은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엥겔스의 묘지는 없다. 영국 서섹스 지방의 세븐 시스터즈 절벽 해안이 엥겔스의 묘지라 할 수 있다. 그 해안의 돌출한 곳에 유언에 따라 뼛가루를 뿌렸기 때문이다. 석회암 절벽이라 밀려오는 파도가 계속 부딪히면서 절벽이 부식되었고 해안은 석회가 섞인 회색빛 물이 자욱했다. 벼랑 끝에 서면 망명자인 엥겔스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끝이라는 막막함이 몰려온다. 그는 자기를 재로 만들어 바다에 뿌리게 하면서 그 막막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사실혼 관계였던 아내 메리 번스가 사망했을 때 마르크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메리가 죽었다네. …… 월요일 저녁까지는 아주 건강했는데. ……지금 심정을 뭐라 말 못하겠네. 불쌍한 여자, 정말 진심으로 날 사랑했는데.’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대인이 가장 많았던 폴란드에는 그 당시 30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면서 폴란드 인구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대인 집단 거주지였던 크라코프 인근 아우슈비츠 지역에 독일의 7번째 강제 수용소가 건립되면서 유대인의 앞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의 대량 학살을 목적으로 하는 최종적 해결이라는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세운 일곱 군데 강제 수용소 중 본부 격이며 가장 악명 높은 곳이었다 (세계의 항문 anus mundi). 1940년 6월 문을 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유대인 청소라는 나치 독일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장소로 선정되었지만 수용소라기보다는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범죄가 저질러졌던 처형소로 변모하게 된다.
유럽 전역에서 기차로 도착한 유대인들을 (하루에 3대, 5대 혹은 10대의 화물열차가 도착했다) 즉석에서 구분해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노약자, 어린이, 여성들은 바로 가스실로 보내 처형되었다. 수용소에서 학살된 사람의 90퍼센트가 유대인이었다. (나머지 10퍼센트는 정치범, 집시같은 비사회계층 수감자, 소련군 전쟁포로, 종교적 양심수, 동성연애자 등이었다.) 수용소에서 주된 살해 도구로 사용된 것은 차클론 B라는 독가스였으나, 과도한 노동, 굶주림, 구타, 아무런 이유 없이 수감자를 표적으로 삼아 행해지던 사격 연습, 생체실험 등으로 인해 죽은 이들도 많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과 감시탑들은 세월의 풍파 때문에 낡아 있었다.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 노동은 그때 나치가 말했던 ‘일을 통한 말살’이라는 다른 형태의 학살을 의미했다. 거기서 탈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수용소 주변에는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처져있고 도망치다 그 철조망에 닿으면 시커멓게 타서 죽었다.
즉각적인 죽음을 면한 대부분의 수감자들 역시 몇 주에서 수개월만 생존했다. (노동에 투입됨으로써 즉각적인 죽음을 면했던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개인 신원을 박탈당했다. 이들은 머리를 깎이고 왼쪽 팔뚝에는 등록 번호가 문신으로 새겨졌다. 남성들은 넝마로 만든 줄무늬 바지와 상의를 입어야 했고, 여성은 작업복을 입어야 했다. 모두에게는 맞지 않는 작업화가 지급되었다. 하지만 굶주림과 온갖 학대에 시달리다 불과 몇 주 몇 달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소련의 붉은 군대가 1945년 1월 초순경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나치의 SS가 관리하던 대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진군해서 남아있는 수감자들을 해방시켰다. 수용소에는 단 몇천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SS는 단 한 사람도 산 채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명령을 상부로부터 받고 실행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었다. 그 비극의 장소가 지금은 무슨 테마파크로 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용소 부근에는 켄터키 치킨이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커피숍, 기념품 가게, 쇼핑몰과 영화관, 모텔 등이 있고 넓은 주차장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리무진 버스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했다고 적힌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시체 소각로와 가스실, 교수대, 판잣집, 죄수 구역, 나치 친위대 구역을 건성으로 둘러본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이 있었던 비르케나우 라거로 연결되는 철로가 보존되어 있었다. 녹슨 철로는 수용소 안으로 이어져 텅 빈 공간 가장자리에서 끝났다. 거기가 관광명소가 됐다는 게 기이한 일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그들 중에는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가 섞여 있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왔을 수도 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학살 사실을 부정하면서 아우슈비츠는 독일을 비난하기 위해서 만든 거대한 선전용 쇼룸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치 독일은 그때부터 인면수심의 철면피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연합군이 나치 독일을 악마로 만들어 선전하기 위해서 홀로코스트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Holocaust는 ‘완전히 타버리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holokauston’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국제적인 동정심을 얻어내기 위해서 연합군의 선전선동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날조된 초현실주의적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염무성 국장은 생각한다. 독일이 끊임없이 사죄했다고……? 어느 독일 교수가 “독일은 끊임없는 과거사 반성을 통해 이웃과 공존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전후 70년 만에 유럽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는데.
도저히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가 사죄한다고 용서될 일인가? 이스라엘이 화해를 하고 성숙한 용서를 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과거사 극복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북쪽의 정치범수용소인지, 강제수용소인지를 아우슈비츠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너무합니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남쪽의 어떤 무리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악선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정도로 잔혹하지 않습니다.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한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정도로 잔혹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직접 몇 개월 동안 거기서 다른 수용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았지 않습니까? 지하 징벌방에 관해서는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염 국장이 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담배연기를 공중으로 천천히 뿜어 올렸다. 잠재의식 속에서 ‘개x끼’라는 욕설이 튀어나올 듯이 갑작스럽게 머리를 쳐들었지만 애써 그걸 눌렀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양가감정(ambivalence)이 떠오른 것이다. 그건 어떤 사람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상반된 감정을 말한다. 심학무가 잘난체하는게 보기 싫어서 때려죽이고 싶은 적대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연민의 감정이 일어나면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동지 의식이 떠올랐던 것이다. 양가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양가감정의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정신적인 증상이 신체적인 고통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아내가 떠나간 후 홀로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로 결심하면서 위스키에 의지했었다. 언제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웠지만 그래도 잠을 들 수 없었고 아침까지 뜬눈으로 지새기 일쑤였다. 그때는 연신 담배를 피웠다. 한 모금의 담배 연기가 그를 조금은 진정시켜 준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짜증이 난단 말이야. 어린 것이 아는 체는 얼마나 하는지. 이를 어찌한담……?’
“그렇게 귀에 거슬린다면…… 뭐랄까…… 안 들은 걸로 해. 그렇게 열을 낼 필요는 없어. 우리끼리 말이야.”
심학무가 아주 유감스럽다는 말투로 신중하게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아우슈비츠를 아전인수 격으로 우려먹고 있단 말입니다. 그들은 북유럽 게르만족입니다. 광신적인 인종주의자들이에요. 인종의 우월성을 굳게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약소 민족을 정복해서 자기들이 지배해야 한다는 거죠. 반유대주의자들이에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극단적으로 잔인해요 . 인면수심의 악마들이예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들을 흉내내다 원자탄을 두 방이나 맞았죠 . 자업자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입니다. 백의민족이고 단군의 자손으로 홍익인간이 건국이념입니다. 삼국유사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유교의 근본 개념인 인을 숭상합니다.”
“살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내려온 간첩 주제에…… 지금 도덕인지 윤리 교육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나요?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무슨 염치로……? 북쪽이 홍익인간을 들먹이고…… 아우슈비츠를 들먹인단 말인가? 나도 알고 있다니까. 그것들은 확실하게 정신병자들이고 미쳐버린 거야. 천년 제국인 제3제국을 건설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야. 천년은커녕 불과 12년이었어. 북쪽도 똑같이 마찬가지야. 지금 돌아가는 꼴을 살펴보면 그렇다니까.”
심학무가 정색을 하고 국장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이나 남이나 똑같았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양주의 향긋한 향기에 취한 듯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음미하고 나서 바로 단숨에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거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거 아닙니까. 남쪽에서 유행하는 ‘내로남불’아닙니까. 한자 성어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의미에서 아시타비(我是他非)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하라고…… 흥분하지 말라니까…… 왜 그렇게 어려운 한자를 쓰고 그래. 나는 처음 들어봤다고. 나에게 한자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거야? 어련하겠어. 간첩 교육을 받으면서 어깨 너머로 얻어 들었단 말이지. 그렇지 않나?”
“북한에도 엄연히 윤리 도덕이 살아 있습니다. 삼강오륜의 덕목을 지키고 있어요.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윤리 도덕과 정치적인 문제는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세요.
제가 황해남도 강령군 쌍교리 해안에서 몇 달 동안 해상 침투 훈련을 받았지요. 그때 가까이에 있던 ‘미제 신천 양민학살 기념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박물관 담당자가 설명했습니다. “조국해방전쟁 당시 (그들은 6‧25 전쟁을 그렇게 불렀다) 미제 침략자들은 조선에서 인류 역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인간 살육이라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건 20세기 식인종으로서 야수적 본성을 세계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내놓은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신천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잿가루 속에 파묻으라고 명령하면서 두 달 동안 신천군 주민의 반에 해당하는 무고한 인민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신천 대학살은 그 야수성과 잔인성에 있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일당들이 감행한 아우슈비츠의 유혈 참화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는 신천 학살을 주제로 하여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그림을 그려서 국제사회에 고발했던 것입니다.
그것뿐일까요? 미군 폭격기는 북한 전역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겁니다. 구석기시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모두 징집되었고 노인, 여자, 어린애들만 남아있는 마을에 무자비하게 폭탄을 퍼부었어요. 그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대량 학살이었습니다. 그것도 힘없고 무력한 무고한 인민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해방 공간에서 남북이 대립하면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우익과 좌익의 서로에 대한 증오와 원한은 대단했지. 그 전쟁이 한민족을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으로 완전히 찢어놓았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남한에서도 그런 만행이 있었지요. 대표적인 게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 아니겠습니까. 무고한 양민을 폭도로 몰아서 3만여 명이나 학살했어요. 제주도민들은 평생 한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걸 부인하시겠습니까?”
“민족적 비극이었지. 그래서 평화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 전쟁 때문이었어. 전쟁은 군인들만 싸우는 게 아니야. 모두가 서로 싸우지. 그 당시 도처에서 서로 간에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거야. 전쟁은 광기야. 미치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 그랬으니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어느 한쪽이 잘했다고 하거나 다른 쪽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고문 문제도 그렇습니다. 중정의 남산 분실이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모두 악독한 고문의 산실 아닙니까. 거기서 생사람이 죽고 완전히 x신이 되고 그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숨겨도 소용없어요.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이니까 우리 쪽에서만 악랄한 고문을 한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국장님! 양심이 있으면 말해보세요.”
실내는 연신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여기저기 흩어지고 독한 술 냄새가 퍼지면서 공중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어지간히 술을 마셨는데도 둘 다 술에 취한 기색은 전혀 없다. 그들의 이러저러한 대화는 당초 예상한 것보다 점점 훨씬 깊은 곳까지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은 많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항은 여전히 말해지지 않고 있었다. 국장은 크리스털 재떨이에 반쯤 남은 담배를 눌러 껐다. 그리고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술을 스트레이트로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부끄러운 과거 역사이지만 옛날 일이야. 지금은 아니라니까…… 우리는 환골탈태에 가까우리만큼 많이 바뀌었어. 변명은 아니야. 그래도 남쪽은 민주주의이니까 틀린 걸 바꿀 줄 안다니까. 국가적이건 사회적이건 어느 정도는 양심이랄까 정의가 살아 있는 거야. 그게 북과는 완전히 다른 점이야.”
“시대가 바뀌면 다시 부활하겠죠. 역사는 반복하니까요. 아우슈비츠는 북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아직도 세계 도처에 숨어있을 거라고요.”
“그래도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는 단 5년 동안만 운영되었던 데 반해 북한의 수용소는 50년째 운영되고 있단 말이지. 정권이 망할 때까지 존속하겠지. 북한에서 탈출한 강철환의「수용소의 노래」, 신동혁의 「세상 밖으로 나오다」, 안명철의 「완전통제구역」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증언을 했으니까 정치범수용소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지.
강철환이가……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수용소의 독가스실에서 무참히 죽어가면서도 나치 독일에 반항하지 못했던 이유와 오늘의 북한 현실은 너무나 똑같다’고 말했어. 그리고 인민군 중령 출신으로 18호 수용소를 탈출했던 김용이나 김혜숙 등이 수용소의 비참한 실정을 낱낱이 증언한 거야.
그들이 거짓말을 했을까?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조국을 저버린 배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
“국장님이 지금 용서해주신다면…… 제가 욕을 한 번 해주고 싶군요.”
“실컷 해 보라고…… 욕을 하면 뭔가 가슴 속에 응어리져서 막혔던 게 풀릴지도 모르지.”
“너희들은 쥐굴에서 대가리를 내민 박멸의 대상이야. 배신자들이라고…… 변절자들이라고.”
“그게 무슨 욕다운 욕이라고 할 수 있겠어?”
“왜곡 과장이 너무 심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돌미륵도 앙천대소할 나발’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자신들의 탈북 동기를 미화시키기 위해서는 터무니없는 과장이 필요했을 겁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현재 남한에서 떠도는 북쪽 이야기는 너무 과장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에 대해 많은 오해가 생기고 뿌리 깊은 편견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그걸 전부 진짜 사실로 알고 있단 말이야. 무조건 믿는단 말이지. 북쪽 이야기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대로 믿어 버린다니까.”
“탈북자들은 지독한 거짓말을 하고 있죠. 신동혁이란 자는 ‘죽음의 수용소’라고 알려진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탈북자라고 증언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단 말입니다. 그리고 14호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모의하다 들켜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다고 충격적인 진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어떠할까요?
그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14호가 아니라 18호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18호는 일반 범죄의 수용소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동혁은 자신이 모종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수용된 것이고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이유는 탈출 모의가 아니라 살인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했다면 사형에 처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닙니까.
탈북자들이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할까요? 그건 순전히 돈 때문입니다. 그들의 증언을 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인권단체나 종교단체들이 있습니다. 증언이 잔혹할수록 띄워주는 언론이 그들이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긴단 말입니다.
탈북자들은 방송에 출연해서 출연료를 받고 방송국에서 준 각본에 따라 증언을 합니다. 탈북자들은 교회에 나가서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만 해도 돈을 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신앙 간증을 하면 돈을 더 많이 줍니다. 그래서 남한에 내려온 탈북자들 대부분이 개신교 교회에 나간다고 하죠.
기자나 연구자들에게 북한 관련 증언을 해도 보수가 지불됩니다. 원칙은 하나입니다. 그런 증언이 더욱 끔찍할수록 비싸다는 것입니다. 공포의 무게에 비례하는 금전거래는 극적인 것을 갈구하는 기자들, 그리고 소위 북한 인권 활동에 돈을 대려는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과장이 심했다고? 심한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어.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까. 정찰용 인공위성이 촬영해서 구글 지도에도 나오는데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게 만천하에 드러났다니까.”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인민들에게 어느 정도 공포심을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사불란한 통치가 불가능합니다.”
“틀림없이……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겠지만…… 전향해서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는 게 어때? 북한 인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서 활동하고 있지. 그들 중에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진짜 단체도 있으니까.”
“저에게 그런 의지와 용기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게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일이 아닐까?”
“그런 운동에는 인민들의 호응이 중요한데 아직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죠. 북한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는 자신들의 삶 이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미련을 버리라고. 악마들을 위해서 귀중한 목숨을 버릴 건가? 생명은 귀중해. 사랑도 귀중하고.
그런데 당신은 소모품에 불과해. 다시 말하면 헌신짝이라니까.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거야? 우리에게 협력하라고. 협력하지 않으면 젊은 청춘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걸. 이제부터라도 사람답게 살라고.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단 말이지.
배가 고파서 쥐를 잡아먹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라는 말일세.
우리가 그걸 보장해줄 수 있지. 집도 마련해줄 수 있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도 시켜줄 거야. 남남북녀라고 했지만 남쪽에도 빵빵한 여자들이 많이 있지. 그리고 의식주 같은 거는 걱정하지 않도록 모든 걸 해결해줄 거야.”
“북에서 내려온 어리숙한 촌놈이 어떻게 그런 영리한 여자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들 날라리 아닌가요?”
“모두가 날라리는 아닐걸. 착하고 좋은 여자도 있을걸.”
“인간답게 살라고 말씀하시니까 국장님은 어느 쪽인가요?
진보적인가요? 보수 반동적인가요?”
“정보부 쪽에서 일하면 당연히 보수 반동적이지 않겠어. 그렇지만 진보 쪽에서만 인간 운운하는 게 아니야.
이건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관한 문제인 거지.”
“공작원이건 간첩이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겁니다. 간첩이란 게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그때부터 생긴 아주 오래된 직업이긴 합니다만. 처음에는 밀정이었을 겁니다. 그게 간첩으로 진화한 것이죠.”
“우리 솔직하게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니까……”
“뭘 말씀하시려고 그러는 거죠?”
“스파이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예민한 감각으로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만 하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내리는 어둑한 석양 무렵을 가리키는데 그때는 저만큼에서 다가오는 짐승이 우리 편 개인지 적군인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된단 말이지.”
“어둠 속에서 적군과 아군을 식별하는……?”
“현장에서 뛰는 요원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위험천만한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스파이가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는 거야. 먼저 의심하고 나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모든 게 두려워.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 셔터가 덜그덕거리는 소리, 무슨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렇고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렇고 밖을 나가면 미행이 두렵단 말이지. 거기다가 임무 실패에 대한 두려움까지…….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서는 예민한 동물적 후각이 필요해. 그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뎌지긴 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합신센터에서 충분히 증명했지. 조사관들이 치를 떨 만큼 끝까지 괴롭혔으니까. 그거면 충분할 거야.”
“국장님도 수사관을 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온갖 악독한 짓을 했던 거…… 아닙니까? 합신센터의 그들 모습이 떠오르네요. 거기는 악마의 소굴이에요.”
그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얼굴은 잠시 당황한 표정이었고 붉으락푸르락했다가 평온을 되찾았다. 국장이 담배를 빨아들일 때 담뱃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연기를 내뿜고는 바로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생각한다. 나와는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인생의 대선배니 스파이 세계의 대선배니 하면서 운운할 수는 없다. 무슨 자격으로…… 나는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지금도 여전히 지독한 후유증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말이다. 벌써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무시하거나 경멸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모습이다. 나는 지금 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차가운 침묵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대화와 설득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건 냉혹한 거래가 아니라니까. 너무 격식을 차릴 수도 없고 너무 친근하게 굴어서도 안된다니까. 하여간에 어려운 상대야.
“그러지 말게…… 나는 그쪽 현장에서 직접 뛰지는 않았어.”
“그건 손에 직접 피를 묻힐 수 없다는……?”
“계통이 완전히 달랐어. 나는 정통 공작원 계열이고 수사나 조사는 별도의 팀이 담당했어. 그들은 법률 전문가로서 특별사법경찰관 자격이 있단 말이지.”
“제가…… 어쨌거나…… 다시 말씀드리면 결국 실패했지요. 제가 그렇게 나약한 인간인지 깨닫고는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계속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말이야……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하자면…… 그 시절 단둥과 연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에는 남몰래 혼자서 술을 많이 마셨지. 어쩔 수 없었어. 그런데 술을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 점점 우울해져…… 술은 말 그대로 마취제인데…… 그게 시원찮으니까…… 닥치는 대로 돈을 주고 탈북녀들과 잠을 자고 마리화나를 했지. 거기서는 그걸 구하는 게 아주 쉬웠거든.”
“화려한 시절을 보냈군요.”
“그 때문에 본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강제 전역을 당할 뻔했지.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리는 중령까지도 현장에 투입되고 대령이 돼서야 일선을 떠나게 되어있는데…… 그쪽에서는 진급할 가망이 없었지.
어떻게 해서…… 운 좋게 이쪽으로 옮겨온 거지.”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지금부터라도 사람답게 살아보라니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춘인데. 청춘은 아름다운 거라네. 하지만 청춘은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는 오지 않지. 내가 스파이 출신이니까 당신을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지.
나는 스파이에 대해서 어떠한 환상도 없었어. 그냥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의 전문직 직업이었을 뿐이야. 그 직업의 특성상 스파이는 언제든지 악과 타협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우리는 매국노일 수도 있고 동시에 애국자일 수도 있는 거야.
우리는 본부 조직의 관점에서는 한낱 먼지 같은 하찮은 조직원에 불과하지만…….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장기판의 졸도 아냐.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인간이야. 누가 인간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니까.
우리도 인간이니까 환하게 웃을줄 안다고. 그렇다고 웃으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인간도 아니야. 그건 사이코패스같은 전문 킬러가 하는 짓이지.”
“저는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도 진정한 공작원 출신이야. 나는 겉으로 보이는 내가 아니었어. 나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남쪽에서 신용 불량자가 되어서 몇 가지 사기행위를 저지르고 도망쳐 온 것으로 신분 세탁을 했어. 무대는 단둥과 연길이었어.
거기는 최일선이야. 그때 정보사 소속 대위였는데 공작원들은 식당이나 가라오케, 숙박 시설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북쪽 정보원을 포섭하는 일을 했어. 그곳에 나와 있는 북한의 외화벌이 일꾼이나 국경 지역을 들락거리는 보따리 장수들이 대상이었어. 하지만 그런 건 하찮은 거였어.
진짜 내 임무는 아주 위험했단 말이야.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지. 비밀리에 접선할 때의 긴장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지.
……노동당 대외연락부 소속 고위급 인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는 거였어. 우리가 오래전에 찍어두었던 인물이었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했을 때 탈북을 권유하고 안전한 루트를 제공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두고 그럴 수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했지. 그런 후 우리는 손을 끊은 거야. 그 사람과 가족의 안전이 너무나 염려되었단 말이지.”
부모는 모두 경상남도 김해 출신이었다. 아직도 김해에는 당숙과 그들의 자손이 살고 있고 조상의 묘가 있는 선산이 있다. 그들 부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베나 도쿠시마 쪽에서 막노동을 하며 어렵게 살았지만 종전이 된 후 ‘조선인 부락’이라고 불렸던 오사카 이카이노에 정착했다. 그곳은 일본 속 작은 제주였다. 제주도 출신이 많았다. 골목을 걷다보면 오사카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한국말 억양의 오사카 사투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어머니는 쓰루하시역 도매시장에 붙어있는 조선시장에서 내장과 족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육점을 했고 아버지는 조총련 오사카 본부에서 간부로 근무했다.
그는 외아들로 늦둥이였다. 조총련계 고등학교인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니카타항에서 만경봉호를 타고가서 ‘조국 방문의 현관’이라고 불렸던 원산항에서 내린 후 평양으로 갔다.
그는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 덕분에 평양의 ‘조총련 간부 자녀 합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평양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곧바로 노동당 대외연락부에 들어가 처음에는 일본과 조총련을 담당했다. 그는 모종의 임무를 띄고 가끔 단둥으로 출장을 나갔고 어떤 때는 몇 개월씩 머무르기도 했다. 그때가 과장시절이었다.
“어쨌거나 내 임무는 까딱 잘못하면 그쪽 역공작에 말려들 수도 있었고, 만약 방첩팀에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건 숨바꼭질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미련한 생각을 버리니까 그때부터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변하기 시작하더군. 그랬다니까.”
“연길은 북쪽이건 남쪽이건 모든 정보기관들의 공작 거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불과 일주일 남짓 체류했습니다만 이미 연길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하고 검토했었습니다.”
“거기는 북쪽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어. 중국 공안들과 북쪽 요원들이 쫙 깔려 있단 말이지. 그들의 임무는 그쪽에서 활동하는 남쪽 요원을 잡아서 납치하는 거였어. 여의치 않으면 감쪽같이 죽여서 숲속 빈터에 암매장할 수도 있었지. 그들에게는 공공연히 살인 면허가 있었으니까.”
그 시절에는 잠을 잘 때도 옆에 권총이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스파이는 베개 아래 총을 숨기고 잠을 자는 줄로 오해하지만 잠을 잘 때는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놓아두어야 한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벌어지니까. 권총을 맨날 분해해서 닦고 기름칠을 했다. 손잡이는 원래 촉감이 조금 거칠었지만 닳고 닳아서 매끈해졌다. 분신이나 다름없었는데 규칙이 그러니까 자리를 옮기면서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권총이란 게 묘한 거였다. 성능과 다른 무엇이 반비례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능이 좋으려면 권총의 부피가 커야 하니까 숨기거나 휴대하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 반대이면 성능을 많이 줄여야 하고.
“누구보다도 잘…… 백발백중 명사수 아닙니까. 제가 초보자일 때 조교는 항상 두 손으로 사격하라고 강조합니다. 오른손으로 총을 꽉 잡고 왼손은 탄창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거죠. 그거 헛소리예요. 자세가 잡히지 않아서 속사가 불가능해요.”
“그게 참으로 묘한 일이야. 긴장의 연속인 일선 업무에 애착이 가면서도 은근히 후선으로 가고 싶은 거야. 이중적 감정이 일어나는 거지. 우리 임무는 감정의 배출구가 없으니까 가혹한 정신노동이면서 육체노동인데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더라고. 난 지금 퇴직 직전이지.
내가 그 험한 시절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 왔는지…… 계급정년을 기다리면서 쓸데없이 버티고 있는 셈이라네.
그래도 먹고 살만큼은 공무원 연금이 나오니까. 세월이란 게 참 빠르지 않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거든.”
“별 탈 없이 무난히 은퇴하신다고 하니까……”
“당신이 부러워할 일이 아니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온갖 위험한 일만 시키고 나서 이제는 쓸모가 없으니 그냥 나가라는 게 아닌가.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데 이 험한 세상 속으로 내던져지는 기분이야.”
“왜 그런 말씀을…… 유도 신문을 하기 위해서인가요?
정통 직업 스파이는 표리부동의 능력을 무한대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건 아니야. 오해하지 말게. 은퇴하고 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거니까. 진즉 안 쫓겨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한직에 있으면서 자리나 지키고 있으니까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지. 우울하니까 충동적으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니까 더욱 우울해지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남몰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니까 알코올 의존증이 되었다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진탕 마셨다가 다음 며칠 동안은 술이라면 진저리를 쳤지.
이러다가 길거리에서 객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게 밤새 술을 퍼마시고 거리에서 쓰러져 잠들었다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면……. 술을 끊으려고 아니면 조금 줄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해도 불가능하단 말이야. 그러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어.”
“술 대신 골프를 치시면…… 그게 신선놀음 아닌가요?”
“웬만하면 모두들 골프를 치지만…… 여기서는 골프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거든. 하지만 한가하게 골프치는 게 탐탁지 않았네. 그건 출세 지향주의자들이나 하는 거야.”
“국장님은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스파이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니까 중독에 빠질 것 같진 않은데요?”
“뭔가 오해하고 있구만…… 우리의 내면은 의외로 허약하지. 우리가 별난 세계에 사는 별종의 인간일까? 보통 사람의 욕망, 생각, 감정을 모르고 사는 현실 도피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삶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삶을 증오하고 삶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을까? 그렇다고…… 무슨 범죄자처럼 이제 과거의 일에서 손을 씻었다고…… 후회하면서 참회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야.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네.”
“저희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인생역정과는 완전히 다르긴 합니다.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스파이 판타지가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이번 공작을 성공해서 북으로 귀환하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게 되고 영웅 메달과 영웅증서, 국기훈장 제1급을 받게 되겠지. 그리고 잘하면 대좌로 은퇴할 수도 있겠지.
본부에서 은퇴하고 나면 연금이 나오겠지만 그 연금이 쥐꼬리만해서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으니까 결국 장마당으로 내몰리겠지. 그게 바로 거지 생활 아니겠어.
당신 장마당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이미 실패했지 않은가. 탈북자를 가장했지만 남파 간첩이라는 게 탄로났단 말이야. 김상빈이 아니라 심학무라는 게. 처음에는 가짜 이름을 댔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막다른 궁지에 몰리니까 진짜 이름을 댔단 말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신은 약간 고지식하다고 되어있어.
그런데 그런 성격은 공작원에 어울리지도 않고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정치싸움에서 성공할 수 없는 거야.
당신은 신체 건강하고 공부를 잘했으니까 뽑혔겠지만 본부에서 사람을 잘못 뽑은 거지.”
“북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뽑아주면 영광으로 생각해야지요. 갑산 촌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지요.
양강도 군사동원부의 군관이 학교에 왔을 때 저의 운명은 그때 벌써 결정되어 버렸지요.”
“옛날 KGB는 물론이고 CIA도 마찬가지인데 비밀 정보부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겉으로는 매우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것처럼 가장하지.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굳어있어서 웃을 줄을 모르거든. 유머 감각이 아주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단 말이지. 엄숙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한단 말이야.
그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긴 해. 군대 이상으로 규칙이 엄격하고 상명하복 관계이니까.
전문 스파이라면 그걸 넘어서야 하는데 당신은 아니었어. 어딘가 단단히 굳어있는 거야. 스파이는 변신하는 데 능수능란해야만 하니까 이럴 때는 이런 사람이 되고, 저럴 때는 저런 사람이 되고, 또 다른 데에서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야만 하지. 어려운 일이긴 하지. 즉석에서 자연스럽게 연기도 잘 해야 하고. 그걸 완전하게 숨길 수 없으니까 만나보면 어딘지 모르게 표시가 나는 거야. 우리는 동업자니까 본능적인 직감에 의해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 ”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연습 갖고 되는 게 아니야. 나이가 들어야 하지. 삶의 여정을 잘 살펴보면 나이가 사십은 넘어야 될걸. 그리고 여자를 알아야만 되지. 여자의 은밀한 마음과 함께 음탕한 육체를 알아야 한단 말이지. 그러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거야.
여자에게 내 거시기가 잘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 여자를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니까.”
“국장님도 지나치시군요. 저를 우습게 보고 깔아뭉개고 있어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여자는 몸으로 말하는데 그게 무언극이지. 여자는 수십 가지 무언극을 할 수 있다네.”
“저도 남자 구실을 톡톡히 할 수 있거든요. 여자의 미소, 여자의 촉감, 여자의 속삭임, 여자의 향기 등을 모두 알고 있다고요. 여자의 신음소리도…… 여자의 온몸 어디든지 어루만질 수 있단 말입니다. 탐스러운 젖가슴, 아랫배, 엉덩이, 촉촉한 사타구니를……”
“ㅎㅎㅎㅎㅎㅎㅎ”
“왜 웃으십니까? 제 말이 믿어지지…… 비웃는 겁니까?”
“당신 얼굴을 보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한창 젊은 시절 내내 전투원으로 그다음에는 공작원으로 계속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으니까 여자를 만나서 연애할 시간이 나 제대로 있었겠어?
총각 딱지를 뗄 시간도 없었을 거라고?”
“왜 그러세요. 아무렴 연애할 시간마저 없을라구요.
그날 밤 그녀가 말했었지요. ‘당신 벌써 다섯 차례나 제 몸속으로 들어왔단 말이에요. 아직도 모자라세요’”
“정말 그렇단 말이지……. 중국 땅에서 아름다운 평양 여자와…… 황홀한 밤이었군. 그렇다면 벌써 여자 뱃속에서 아이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떤 애정 소설에 쓰여 있는 걸 언젠가 써먹으려고 달달 외운 거 아닌가?
북한 공작원들은 달달 외워야 할 게 참으로 많지 않은가.”
“아무리…… 그런 것까지 외우지는 않습니다.”
“그 여자는 신체검사 결과 임신을 안 했단 말이야. 그런데 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
“여자가 그랬어요. 탈북하면서 성폭행을 당할 거에 대비해서 몸속에 뭘 설치했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사랑의 포로가 되거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거야. 미쳤어? 완전히 자유인이 되었는데…… 그 정도 미인이면 남쪽에서 훨훨 날아다닐 거야.”
“미련을 버리라는……”
“자신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어.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 궁박한 처지에서 사랑하는 척 하면서…… 쇼를 한 거지.
이제부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본부에서 출세하려면 3층 서기실의 빽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옛날 함경북도 갑산 산골 촌놈 출신이야. 오죽했으면 삼수갑산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지금 당신에게는 아무리 찾아봐도 연길에서 중국집 하는 아저씨밖에 없어. 이름이 아마 심한준이 아니었던가? 하여간에 그 양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음식점 주인이 무슨 힘이 있겠어. 호구증이 있으니까 중국 동포 행세를 하면서 중국 쪽 통행증 발급사무소에서 쉽게 국경통행증명서를 발급받은 거지. 그걸 이용해서 북한산 도자기, 냉동 노루고기, 송이버섯 등을 중국에 내다 파는 밀무역에 종사했서 돈을 모았지.
그런데 상당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더라고. 그러고 나서 그쪽에는 깨끗이 손을 털고 중국 식당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주 번창한 거야. 우리가 알아보니까 당신 아저씨는 술 좋아하고 원만한 사람이지만 그뿐이지. 그저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거야.
남한에 여러 번 왔다 갔는데 조사해보니 용의점은 없었어.”
“아저씨는 핏줄이 무엇인지…… 저에게 잘해주었습니다.”
염 국장은 같은 공작원 출신이어서 대화가 깊어질수록 연민의 정을 느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너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아주 오래전 내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거야. 기억들이 어둠 속에서 기어나오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그렇게 중요할 것인가. 인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너는 국가에 의해 이용된 도구에 불과했다. 그것도 소모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너가 파괴되어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것인가. 너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화의 숨은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던가. 나는 적군이 아니야. 아무리 어둠 속을 헤매고 있어도 그걸 알아야지. 젊음이 안타까울 뿐이야. 젊음은 찬란한 꿈이니까. 나에게는 그게 없었단 말이야. 인생을 허송세월한 거지. 너의 신념, 의지, 자존심, 그런 거 전부 헛거야.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고. 이게 마지막 기회야. 이게 내가 퇴직하기 전 마지막 임무이다. 나에게 부과된 엄숙한 소명이다. 하지만 너는 먼저 전향하고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 내곡동 본부는 협상할 권한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이번 임무에서 이미 완전히 실패했어.
가령 기적적으로 여기를 탈출해서 북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도 말이야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물론 전후 사정을 엄중하게 조사하겠지. 경우에 따라서는 영웅 대접을 받을 수도 있어. 왜, 자결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돌아왔냐고 하면서 배신자 취급을 할 수도 있어. 그냥 불명예 제대를 시킬 수도 있겠지. 아니면 강제수용소가 기다릴 수도 있어. 당신은 수용소에서 몇 달 동안 생활했으니까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거야. 다시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거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걸.
또 다시 가정을 해 보자고. 당신이 이번 임무에서 성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금의환향한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런다고 모든 게 술술 풀릴까?
내가 생생한 실례를 들을 수 있어.
이 사건은 아마 본부에서 쉬쉬했으니까 교육 과정에서 틀림없이 빼놓았을 거야. 공작원들이 알면 사기가 떨어지니까.
철석같이 믿었던 고첩은 진즉 전향했고 그를 접선하러 간 공작원 역시 전향해서 남쪽에서 잘 살고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까발려서 교육할 수 있었겠어. 그러나 그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지. 북에서 하는 일이 늘 그렇지 않은가.”
“무슨 말씀인가요?”
불쌍한 북한 주민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 노래를 배워서 외우고 가사 한 꼭지라도 틀리지 않게 노래를 불러야 한단 말이지. 틀리면 경을 치니까.”
〔염 국장은 언젠가 유럽으로 한 달여 간 출장을 갔었다. 그때 칼 마르크스의 무덤에도 가 보고 프리드리히 앵겔스의 생가까지 갔고 폴란드의 아우슈비츠까지 간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묘는 런던 외곽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중 동편 묘지에 있다. 마르크스의 청동 두상이 놓인 대리석 좌대 위쪽에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문장이 금박을 입힌 채 음각되어있고, 아래쪽에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인용한 “철학자들은 단지 세상을 이모저모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is to change it.)”라는 문장이 같은 글씨체로 새겨져 있다.
칼 마르크스는 유대계 독일인이었지만 망명객으로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Diaspora)는 이스라엘 땅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지지만 그 역시 유대인 디아스포라였다. 히브리 성경의 하느님, 신약성경의 나사렛 예수 모두 유대인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절멸 정책으로 유대인 육백만 명이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지만 위대한 유대 민족은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엥겔스의 묘지는 없다. 영국 서섹스 지방의 세븐 시스터즈 절벽 해안이 엥겔스의 묘지라 할 수 있다. 그 해안의 돌출한 곳에 유언에 따라 뼛가루를 뿌렸기 때문이다. 석회암 절벽이라 밀려오는 파도가 계속 부딪히면서 절벽이 부식되었고 해안은 석회가 섞인 회색빛 물이 자욱했다. 벼랑 끝에 서면 망명자인 엥겔스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끝이라는 막막함이 몰려온다. 그는 자기를 재로 만들어 바다에 뿌리게 하면서 그 막막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사실혼 관계였던 아내 메리 번스가 사망했을 때 마르크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메리가 죽었다네. …… 월요일 저녁까지는 아주 건강했는데. ……지금 심정을 뭐라 말 못하겠네. 불쌍한 여자, 정말 진심으로 날 사랑했는데.’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대인이 가장 많았던 폴란드에는 그 당시 30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면서 폴란드 인구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대인 집단 거주지였던 크라코프 인근 아우슈비츠 지역에 독일의 7번째 강제 수용소가 건립되면서 유대인의 앞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의 대량 학살을 목적으로 하는 최종적 해결이라는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세운 일곱 군데 강제 수용소 중 본부 격이며 가장 악명 높은 곳이었다 (세계의 항문 anus mundi). 1940년 6월 문을 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유대인 청소라는 나치 독일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장소로 선정되었지만 수용소라기보다는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범죄가 저질러졌던 처형소로 변모하게 된다.
유럽 전역에서 기차로 도착한 유대인들을 (하루에 3대, 5대 혹은 10대의 화물열차가 도착했다) 즉석에서 구분해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노약자, 어린이, 여성들은 바로 가스실로 보내 처형되었다. 수용소에서 학살된 사람의 90퍼센트가 유대인이었다. (나머지 10퍼센트는 정치범, 집시같은 비사회계층 수감자, 소련군 전쟁포로, 종교적 양심수, 동성연애자 등이었다.) 수용소에서 주된 살해 도구로 사용된 것은 차클론 B라는 독가스였으나, 과도한 노동, 굶주림, 구타, 아무런 이유 없이 수감자를 표적으로 삼아 행해지던 사격 연습, 생체실험 등으로 인해 죽은 이들도 많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과 감시탑들은 세월의 풍파 때문에 낡아 있었다.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 노동은 그때 나치가 말했던 ‘일을 통한 말살’이라는 다른 형태의 학살을 의미했다. 거기서 탈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수용소 주변에는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처져있고 도망치다 그 철조망에 닿으면 시커멓게 타서 죽었다.
즉각적인 죽음을 면한 대부분의 수감자들 역시 몇 주에서 수개월만 생존했다. (노동에 투입됨으로써 즉각적인 죽음을 면했던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개인 신원을 박탈당했다. 이들은 머리를 깎이고 왼쪽 팔뚝에는 등록 번호가 문신으로 새겨졌다. 남성들은 넝마로 만든 줄무늬 바지와 상의를 입어야 했고, 여성은 작업복을 입어야 했다. 모두에게는 맞지 않는 작업화가 지급되었다. 하지만 굶주림과 온갖 학대에 시달리다 불과 몇 주 몇 달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소련의 붉은 군대가 1945년 1월 초순경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나치의 SS가 관리하던 대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진군해서 남아있는 수감자들을 해방시켰다. 수용소에는 단 몇천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SS는 단 한 사람도 산 채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명령을 상부로부터 받고 실행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었다. 그 비극의 장소가 지금은 무슨 테마파크로 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용소 부근에는 켄터키 치킨이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커피숍, 기념품 가게, 쇼핑몰과 영화관, 모텔 등이 있고 넓은 주차장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리무진 버스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했다고 적힌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시체 소각로와 가스실, 교수대, 판잣집, 죄수 구역, 나치 친위대 구역을 건성으로 둘러본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이 있었던 비르케나우 라거로 연결되는 철로가 보존되어 있었다. 녹슨 철로는 수용소 안으로 이어져 텅 빈 공간 가장자리에서 끝났다. 거기가 관광명소가 됐다는 게 기이한 일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그들 중에는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가 섞여 있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왔을 수도 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학살 사실을 부정하면서 아우슈비츠는 독일을 비난하기 위해서 만든 거대한 선전용 쇼룸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치 독일은 그때부터 인면수심의 철면피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연합군이 나치 독일을 악마로 만들어 선전하기 위해서 홀로코스트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Holocaust는 ‘완전히 타버리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holokauston’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국제적인 동정심을 얻어내기 위해서 연합군의 선전선동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날조된 초현실주의적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염무성 국장은 생각한다. 독일이 끊임없이 사죄했다고……? 어느 독일 교수가 “독일은 끊임없는 과거사 반성을 통해 이웃과 공존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전후 70년 만에 유럽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는데.
도저히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가 사죄한다고 용서될 일인가? 이스라엘이 화해를 하고 성숙한 용서를 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과거사 극복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북쪽의 정치범수용소인지, 강제수용소인지를 아우슈비츠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너무합니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남쪽의 어떤 무리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악선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정도로 잔혹하지 않습니다.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한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정도로 잔혹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직접 몇 개월 동안 거기서 다른 수용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았지 않습니까? 지하 징벌방에 관해서는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염 국장이 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담배연기를 공중으로 천천히 뿜어 올렸다. 잠재의식 속에서 ‘개x끼’라는 욕설이 튀어나올 듯이 갑작스럽게 머리를 쳐들었지만 애써 그걸 눌렀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양가감정(ambivalence)이 떠오른 것이다. 그건 어떤 사람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상반된 감정을 말한다. 심학무가 잘난체하는게 보기 싫어서 때려죽이고 싶은 적대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연민의 감정이 일어나면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동지 의식이 떠올랐던 것이다. 양가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양가감정의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정신적인 증상이 신체적인 고통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아내가 떠나간 후 홀로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로 결심하면서 위스키에 의지했었다. 언제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웠지만 그래도 잠을 들 수 없었고 아침까지 뜬눈으로 지새기 일쑤였다. 그때는 연신 담배를 피웠다. 한 모금의 담배 연기가 그를 조금은 진정시켜 준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짜증이 난단 말이야. 어린 것이 아는 체는 얼마나 하는지. 이를 어찌한담……?’
“그렇게 귀에 거슬린다면…… 뭐랄까…… 안 들은 걸로 해. 그렇게 열을 낼 필요는 없어. 우리끼리 말이야.”
심학무가 아주 유감스럽다는 말투로 신중하게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아우슈비츠를 아전인수 격으로 우려먹고 있단 말입니다. 그들은 북유럽 게르만족입니다. 광신적인 인종주의자들이에요. 인종의 우월성을 굳게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약소 민족을 정복해서 자기들이 지배해야 한다는 거죠. 반유대주의자들이에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극단적으로 잔인해요 . 인면수심의 악마들이예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들을 흉내내다 원자탄을 두 방이나 맞았죠 . 자업자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입니다. 백의민족이고 단군의 자손으로 홍익인간이 건국이념입니다. 삼국유사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유교의 근본 개념인 인을 숭상합니다.”
“살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내려온 간첩 주제에…… 지금 도덕인지 윤리 교육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나요?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무슨 염치로……? 북쪽이 홍익인간을 들먹이고…… 아우슈비츠를 들먹인단 말인가? 나도 알고 있다니까. 그것들은 확실하게 정신병자들이고 미쳐버린 거야. 천년 제국인 제3제국을 건설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야. 천년은커녕 불과 12년이었어. 북쪽도 똑같이 마찬가지야. 지금 돌아가는 꼴을 살펴보면 그렇다니까.”
심학무가 정색을 하고 국장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이나 남이나 똑같았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양주의 향긋한 향기에 취한 듯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음미하고 나서 바로 단숨에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거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거 아닙니까. 남쪽에서 유행하는 ‘내로남불’아닙니까. 한자 성어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의미에서 아시타비(我是他非)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하라고…… 흥분하지 말라니까…… 왜 그렇게 어려운 한자를 쓰고 그래. 나는 처음 들어봤다고. 나에게 한자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거야? 어련하겠어. 간첩 교육을 받으면서 어깨 너머로 얻어 들었단 말이지. 그렇지 않나?”
“북한에도 엄연히 윤리 도덕이 살아 있습니다. 삼강오륜의 덕목을 지키고 있어요.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윤리 도덕과 정치적인 문제는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세요.
제가 황해남도 강령군 쌍교리 해안에서 몇 달 동안 해상 침투 훈련을 받았지요. 그때 가까이에 있던 ‘미제 신천 양민학살 기념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박물관 담당자가 설명했습니다. “조국해방전쟁 당시 (그들은 6‧25 전쟁을 그렇게 불렀다) 미제 침략자들은 조선에서 인류 역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인간 살육이라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건 20세기 식인종으로서 야수적 본성을 세계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내놓은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신천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잿가루 속에 파묻으라고 명령하면서 두 달 동안 신천군 주민의 반에 해당하는 무고한 인민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신천 대학살은 그 야수성과 잔인성에 있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일당들이 감행한 아우슈비츠의 유혈 참화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는 신천 학살을 주제로 하여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그림을 그려서 국제사회에 고발했던 것입니다.
그것뿐일까요? 미군 폭격기는 북한 전역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겁니다. 구석기시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모두 징집되었고 노인, 여자, 어린애들만 남아있는 마을에 무자비하게 폭탄을 퍼부었어요. 그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대량 학살이었습니다. 그것도 힘없고 무력한 무고한 인민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해방 공간에서 남북이 대립하면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우익과 좌익의 서로에 대한 증오와 원한은 대단했지. 그 전쟁이 한민족을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으로 완전히 찢어놓았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남한에서도 그런 만행이 있었지요. 대표적인 게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 아니겠습니까. 무고한 양민을 폭도로 몰아서 3만여 명이나 학살했어요. 제주도민들은 평생 한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걸 부인하시겠습니까?”
“민족적 비극이었지. 그래서 평화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 전쟁 때문이었어. 전쟁은 군인들만 싸우는 게 아니야. 모두가 서로 싸우지. 그 당시 도처에서 서로 간에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거야. 전쟁은 광기야. 미치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 그랬으니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어느 한쪽이 잘했다고 하거나 다른 쪽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고문 문제도 그렇습니다. 중정의 남산 분실이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모두 악독한 고문의 산실 아닙니까. 거기서 생사람이 죽고 완전히 x신이 되고 그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숨겨도 소용없어요.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이니까 우리 쪽에서만 악랄한 고문을 한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국장님! 양심이 있으면 말해보세요.”
실내는 연신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여기저기 흩어지고 독한 술 냄새가 퍼지면서 공중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어지간히 술을 마셨는데도 둘 다 술에 취한 기색은 전혀 없다. 그들의 이러저러한 대화는 당초 예상한 것보다 점점 훨씬 깊은 곳까지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은 많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항은 여전히 말해지지 않고 있었다. 국장은 크리스털 재떨이에 반쯤 남은 담배를 눌러 껐다. 그리고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술을 스트레이트로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부끄러운 과거 역사이지만 옛날 일이야. 지금은 아니라니까…… 우리는 환골탈태에 가까우리만큼 많이 바뀌었어. 변명은 아니야. 그래도 남쪽은 민주주의이니까 틀린 걸 바꿀 줄 안다니까. 국가적이건 사회적이건 어느 정도는 양심이랄까 정의가 살아 있는 거야. 그게 북과는 완전히 다른 점이야.”
“시대가 바뀌면 다시 부활하겠죠. 역사는 반복하니까요. 아우슈비츠는 북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아직도 세계 도처에 숨어있을 거라고요.”
“그래도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는 단 5년 동안만 운영되었던 데 반해 북한의 수용소는 50년째 운영되고 있단 말이지. 정권이 망할 때까지 존속하겠지. 북한에서 탈출한 강철환의「수용소의 노래」, 신동혁의 「세상 밖으로 나오다」, 안명철의 「완전통제구역」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증언을 했으니까 정치범수용소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지.
강철환이가……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수용소의 독가스실에서 무참히 죽어가면서도 나치 독일에 반항하지 못했던 이유와 오늘의 북한 현실은 너무나 똑같다’고 말했어. 그리고 인민군 중령 출신으로 18호 수용소를 탈출했던 김용이나 김혜숙 등이 수용소의 비참한 실정을 낱낱이 증언한 거야.
그들이 거짓말을 했을까?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조국을 저버린 배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
“국장님이 지금 용서해주신다면…… 제가 욕을 한 번 해주고 싶군요.”
“실컷 해 보라고…… 욕을 하면 뭔가 가슴 속에 응어리져서 막혔던 게 풀릴지도 모르지.”
“너희들은 쥐굴에서 대가리를 내민 박멸의 대상이야. 배신자들이라고…… 변절자들이라고.”
“그게 무슨 욕다운 욕이라고 할 수 있겠어?”
“왜곡 과장이 너무 심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돌미륵도 앙천대소할 나발’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자신들의 탈북 동기를 미화시키기 위해서는 터무니없는 과장이 필요했을 겁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현재 남한에서 떠도는 북쪽 이야기는 너무 과장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에 대해 많은 오해가 생기고 뿌리 깊은 편견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그걸 전부 진짜 사실로 알고 있단 말이야. 무조건 믿는단 말이지. 북쪽 이야기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대로 믿어 버린다니까.”
“탈북자들은 지독한 거짓말을 하고 있죠. 신동혁이란 자는 ‘죽음의 수용소’라고 알려진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탈북자라고 증언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단 말입니다. 그리고 14호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모의하다 들켜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다고 충격적인 진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어떠할까요?
그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14호가 아니라 18호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18호는 일반 범죄의 수용소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동혁은 자신이 모종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수용된 것이고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이유는 탈출 모의가 아니라 살인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했다면 사형에 처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닙니까.
탈북자들이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할까요? 그건 순전히 돈 때문입니다. 그들의 증언을 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이용하려는 인권단체나 종교단체들이 있습니다. 증언이 잔혹할수록 띄워주는 언론이 그들이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긴단 말입니다.
탈북자들은 방송에 출연해서 출연료를 받고 방송국에서 준 각본에 따라 증언을 합니다. 탈북자들은 교회에 나가서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만 해도 돈을 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신앙 간증을 하면 돈을 더 많이 줍니다. 그래서 남한에 내려온 탈북자들 대부분이 개신교 교회에 나간다고 하죠.
기자나 연구자들에게 북한 관련 증언을 해도 보수가 지불됩니다. 원칙은 하나입니다. 그런 증언이 더욱 끔찍할수록 비싸다는 것입니다. 공포의 무게에 비례하는 금전거래는 극적인 것을 갈구하는 기자들, 그리고 소위 북한 인권 활동에 돈을 대려는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과장이 심했다고? 심한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어.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까. 정찰용 인공위성이 촬영해서 구글 지도에도 나오는데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게 만천하에 드러났다니까.”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인민들에게 어느 정도 공포심을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사불란한 통치가 불가능합니다.”
“틀림없이……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겠지만…… 전향해서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는 게 어때? 북한 인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서 활동하고 있지. 그들 중에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진짜 단체도 있으니까.”
“저에게 그런 의지와 용기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게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일이 아닐까?”
“그런 운동에는 인민들의 호응이 중요한데 아직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죠. 북한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는 자신들의 삶 이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미련을 버리라고. 악마들을 위해서 귀중한 목숨을 버릴 건가? 생명은 귀중해. 사랑도 귀중하고.
그런데 당신은 소모품에 불과해. 다시 말하면 헌신짝이라니까.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거야? 우리에게 협력하라고. 협력하지 않으면 젊은 청춘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걸. 이제부터라도 사람답게 살라고.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단 말이지.
배가 고파서 쥐를 잡아먹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라는 말일세.
우리가 그걸 보장해줄 수 있지. 집도 마련해줄 수 있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도 시켜줄 거야. 남남북녀라고 했지만 남쪽에도 빵빵한 여자들이 많이 있지. 그리고 의식주 같은 거는 걱정하지 않도록 모든 걸 해결해줄 거야.”
“북에서 내려온 어리숙한 촌놈이 어떻게 그런 영리한 여자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들 날라리 아닌가요?”
“모두가 날라리는 아닐걸. 착하고 좋은 여자도 있을걸.”
“인간답게 살라고 말씀하시니까 국장님은 어느 쪽인가요?
진보적인가요? 보수 반동적인가요?”
“정보부 쪽에서 일하면 당연히 보수 반동적이지 않겠어. 그렇지만 진보 쪽에서만 인간 운운하는 게 아니야.
이건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관한 문제인 거지.”
“공작원이건 간첩이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겁니다. 간첩이란 게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그때부터 생긴 아주 오래된 직업이긴 합니다만. 처음에는 밀정이었을 겁니다. 그게 간첩으로 진화한 것이죠.”
“우리 솔직하게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니까……”
“뭘 말씀하시려고 그러는 거죠?”
“스파이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예민한 감각으로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만 하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내리는 어둑한 석양 무렵을 가리키는데 그때는 저만큼에서 다가오는 짐승이 우리 편 개인지 적군인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된단 말이지.”
“어둠 속에서 적군과 아군을 식별하는……?”
“현장에서 뛰는 요원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위험천만한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스파이가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는 거야. 먼저 의심하고 나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모든 게 두려워.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 셔터가 덜그덕거리는 소리, 무슨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렇고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렇고 밖을 나가면 미행이 두렵단 말이지. 거기다가 임무 실패에 대한 두려움까지…….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서는 예민한 동물적 후각이 필요해. 그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뎌지긴 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합신센터에서 충분히 증명했지. 조사관들이 치를 떨 만큼 끝까지 괴롭혔으니까. 그거면 충분할 거야.”
“국장님도 수사관을 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온갖 악독한 짓을 했던 거…… 아닙니까? 합신센터의 그들 모습이 떠오르네요. 거기는 악마의 소굴이에요.”
그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얼굴은 잠시 당황한 표정이었고 붉으락푸르락했다가 평온을 되찾았다. 국장이 담배를 빨아들일 때 담뱃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연기를 내뿜고는 바로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 생각한다. 나와는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인생의 대선배니 스파이 세계의 대선배니 하면서 운운할 수는 없다. 무슨 자격으로…… 나는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지금도 여전히 지독한 후유증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말이다. 벌써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무시하거나 경멸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모습이다. 나는 지금 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차가운 침묵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대화와 설득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건 냉혹한 거래가 아니라니까. 너무 격식을 차릴 수도 없고 너무 친근하게 굴어서도 안된다니까. 하여간에 어려운 상대야.
“그러지 말게…… 나는 그쪽 현장에서 직접 뛰지는 않았어.”
“그건 손에 직접 피를 묻힐 수 없다는……?”
“계통이 완전히 달랐어. 나는 정통 공작원 계열이고 수사나 조사는 별도의 팀이 담당했어. 그들은 법률 전문가로서 특별사법경찰관 자격이 있단 말이지.”
“제가…… 어쨌거나…… 다시 말씀드리면 결국 실패했지요. 제가 그렇게 나약한 인간인지 깨닫고는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계속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말이야……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하자면…… 그 시절 단둥과 연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에는 남몰래 혼자서 술을 많이 마셨지. 어쩔 수 없었어. 그런데 술을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 점점 우울해져…… 술은 말 그대로 마취제인데…… 그게 시원찮으니까…… 닥치는 대로 돈을 주고 탈북녀들과 잠을 자고 마리화나를 했지. 거기서는 그걸 구하는 게 아주 쉬웠거든.”
“화려한 시절을 보냈군요.”
“그 때문에 본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강제 전역을 당할 뻔했지.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리는 중령까지도 현장에 투입되고 대령이 돼서야 일선을 떠나게 되어있는데…… 그쪽에서는 진급할 가망이 없었지.
어떻게 해서…… 운 좋게 이쪽으로 옮겨온 거지.”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지금부터라도 사람답게 살아보라니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춘인데. 청춘은 아름다운 거라네. 하지만 청춘은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는 오지 않지. 내가 스파이 출신이니까 당신을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지.
나는 스파이에 대해서 어떠한 환상도 없었어. 그냥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의 전문직 직업이었을 뿐이야. 그 직업의 특성상 스파이는 언제든지 악과 타협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우리는 매국노일 수도 있고 동시에 애국자일 수도 있는 거야.
우리는 본부 조직의 관점에서는 한낱 먼지 같은 하찮은 조직원에 불과하지만…….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장기판의 졸도 아냐.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인간이야. 누가 인간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니까.
우리도 인간이니까 환하게 웃을줄 안다고. 그렇다고 웃으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인간도 아니야. 그건 사이코패스같은 전문 킬러가 하는 짓이지.”
“저는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도 진정한 공작원 출신이야. 나는 겉으로 보이는 내가 아니었어. 나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남쪽에서 신용 불량자가 되어서 몇 가지 사기행위를 저지르고 도망쳐 온 것으로 신분 세탁을 했어. 무대는 단둥과 연길이었어.
거기는 최일선이야. 그때 정보사 소속 대위였는데 공작원들은 식당이나 가라오케, 숙박 시설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북쪽 정보원을 포섭하는 일을 했어. 그곳에 나와 있는 북한의 외화벌이 일꾼이나 국경 지역을 들락거리는 보따리 장수들이 대상이었어. 하지만 그런 건 하찮은 거였어.
진짜 내 임무는 아주 위험했단 말이야.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지. 비밀리에 접선할 때의 긴장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지.
……노동당 대외연락부 소속 고위급 인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는 거였어. 우리가 오래전에 찍어두었던 인물이었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했을 때 탈북을 권유하고 안전한 루트를 제공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두고 그럴 수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했지. 그런 후 우리는 손을 끊은 거야. 그 사람과 가족의 안전이 너무나 염려되었단 말이지.”
부모는 모두 경상남도 김해 출신이었다. 아직도 김해에는 당숙과 그들의 자손이 살고 있고 조상의 묘가 있는 선산이 있다. 그들 부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베나 도쿠시마 쪽에서 막노동을 하며 어렵게 살았지만 종전이 된 후 ‘조선인 부락’이라고 불렸던 오사카 이카이노에 정착했다. 그곳은 일본 속 작은 제주였다. 제주도 출신이 많았다. 골목을 걷다보면 오사카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한국말 억양의 오사카 사투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어머니는 쓰루하시역 도매시장에 붙어있는 조선시장에서 내장과 족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육점을 했고 아버지는 조총련 오사카 본부에서 간부로 근무했다.
그는 외아들로 늦둥이였다. 조총련계 고등학교인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니카타항에서 만경봉호를 타고가서 ‘조국 방문의 현관’이라고 불렸던 원산항에서 내린 후 평양으로 갔다.
그는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 덕분에 평양의 ‘조총련 간부 자녀 합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평양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곧바로 노동당 대외연락부에 들어가 처음에는 일본과 조총련을 담당했다. 그는 모종의 임무를 띄고 가끔 단둥으로 출장을 나갔고 어떤 때는 몇 개월씩 머무르기도 했다. 그때가 과장시절이었다.
“어쨌거나 내 임무는 까딱 잘못하면 그쪽 역공작에 말려들 수도 있었고, 만약 방첩팀에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건 숨바꼭질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미련한 생각을 버리니까 그때부터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변하기 시작하더군. 그랬다니까.”
“연길은 북쪽이건 남쪽이건 모든 정보기관들의 공작 거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불과 일주일 남짓 체류했습니다만 이미 연길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하고 검토했었습니다.”
“거기는 북쪽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어. 중국 공안들과 북쪽 요원들이 쫙 깔려 있단 말이지. 그들의 임무는 그쪽에서 활동하는 남쪽 요원을 잡아서 납치하는 거였어. 여의치 않으면 감쪽같이 죽여서 숲속 빈터에 암매장할 수도 있었지. 그들에게는 공공연히 살인 면허가 있었으니까.”
그 시절에는 잠을 잘 때도 옆에 권총이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스파이는 베개 아래 총을 숨기고 잠을 자는 줄로 오해하지만 잠을 잘 때는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놓아두어야 한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벌어지니까. 권총을 맨날 분해해서 닦고 기름칠을 했다. 손잡이는 원래 촉감이 조금 거칠었지만 닳고 닳아서 매끈해졌다. 분신이나 다름없었는데 규칙이 그러니까 자리를 옮기면서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권총이란 게 묘한 거였다. 성능과 다른 무엇이 반비례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능이 좋으려면 권총의 부피가 커야 하니까 숨기거나 휴대하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 반대이면 성능을 많이 줄여야 하고.
“누구보다도 잘…… 백발백중 명사수 아닙니까. 제가 초보자일 때 조교는 항상 두 손으로 사격하라고 강조합니다. 오른손으로 총을 꽉 잡고 왼손은 탄창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거죠. 그거 헛소리예요. 자세가 잡히지 않아서 속사가 불가능해요.”
“그게 참으로 묘한 일이야. 긴장의 연속인 일선 업무에 애착이 가면서도 은근히 후선으로 가고 싶은 거야. 이중적 감정이 일어나는 거지. 우리 임무는 감정의 배출구가 없으니까 가혹한 정신노동이면서 육체노동인데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더라고. 난 지금 퇴직 직전이지.
내가 그 험한 시절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 왔는지…… 계급정년을 기다리면서 쓸데없이 버티고 있는 셈이라네.
그래도 먹고 살만큼은 공무원 연금이 나오니까. 세월이란 게 참 빠르지 않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거든.”
“별 탈 없이 무난히 은퇴하신다고 하니까……”
“당신이 부러워할 일이 아니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온갖 위험한 일만 시키고 나서 이제는 쓸모가 없으니 그냥 나가라는 게 아닌가.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데 이 험한 세상 속으로 내던져지는 기분이야.”
“왜 그런 말씀을…… 유도 신문을 하기 위해서인가요?
정통 직업 스파이는 표리부동의 능력을 무한대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건 아니야. 오해하지 말게. 은퇴하고 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거니까. 진즉 안 쫓겨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한직에 있으면서 자리나 지키고 있으니까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지. 우울하니까 충동적으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니까 더욱 우울해지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남몰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니까 알코올 의존증이 되었다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진탕 마셨다가 다음 며칠 동안은 술이라면 진저리를 쳤지.
이러다가 길거리에서 객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게 밤새 술을 퍼마시고 거리에서 쓰러져 잠들었다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면……. 술을 끊으려고 아니면 조금 줄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해도 불가능하단 말이야. 그러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어.”
“술 대신 골프를 치시면…… 그게 신선놀음 아닌가요?”
“웬만하면 모두들 골프를 치지만…… 여기서는 골프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거든. 하지만 한가하게 골프치는 게 탐탁지 않았네. 그건 출세 지향주의자들이나 하는 거야.”
“국장님은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스파이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니까 중독에 빠질 것 같진 않은데요?”
“뭔가 오해하고 있구만…… 우리의 내면은 의외로 허약하지. 우리가 별난 세계에 사는 별종의 인간일까? 보통 사람의 욕망, 생각, 감정을 모르고 사는 현실 도피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삶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삶을 증오하고 삶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을까? 그렇다고…… 무슨 범죄자처럼 이제 과거의 일에서 손을 씻었다고…… 후회하면서 참회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야.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네.”
“저희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인생역정과는 완전히 다르긴 합니다.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스파이 판타지가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이번 공작을 성공해서 북으로 귀환하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게 되고 영웅 메달과 영웅증서, 국기훈장 제1급을 받게 되겠지. 그리고 잘하면 대좌로 은퇴할 수도 있겠지.
본부에서 은퇴하고 나면 연금이 나오겠지만 그 연금이 쥐꼬리만해서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으니까 결국 장마당으로 내몰리겠지. 그게 바로 거지 생활 아니겠어.
당신 장마당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이미 실패했지 않은가. 탈북자를 가장했지만 남파 간첩이라는 게 탄로났단 말이야. 김상빈이 아니라 심학무라는 게. 처음에는 가짜 이름을 댔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막다른 궁지에 몰리니까 진짜 이름을 댔단 말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신은 약간 고지식하다고 되어있어.
그런데 그런 성격은 공작원에 어울리지도 않고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정치싸움에서 성공할 수 없는 거야.
당신은 신체 건강하고 공부를 잘했으니까 뽑혔겠지만 본부에서 사람을 잘못 뽑은 거지.”
“북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뽑아주면 영광으로 생각해야지요. 갑산 촌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지요.
양강도 군사동원부의 군관이 학교에 왔을 때 저의 운명은 그때 벌써 결정되어 버렸지요.”
“옛날 KGB는 물론이고 CIA도 마찬가지인데 비밀 정보부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겉으로는 매우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것처럼 가장하지.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굳어있어서 웃을 줄을 모르거든. 유머 감각이 아주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단 말이지. 엄숙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한단 말이야.
그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긴 해. 군대 이상으로 규칙이 엄격하고 상명하복 관계이니까.
전문 스파이라면 그걸 넘어서야 하는데 당신은 아니었어. 어딘가 단단히 굳어있는 거야. 스파이는 변신하는 데 능수능란해야만 하니까 이럴 때는 이런 사람이 되고, 저럴 때는 저런 사람이 되고, 또 다른 데에서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야만 하지. 어려운 일이긴 하지. 즉석에서 자연스럽게 연기도 잘 해야 하고. 그걸 완전하게 숨길 수 없으니까 만나보면 어딘지 모르게 표시가 나는 거야. 우리는 동업자니까 본능적인 직감에 의해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 ”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연습 갖고 되는 게 아니야. 나이가 들어야 하지. 삶의 여정을 잘 살펴보면 나이가 사십은 넘어야 될걸. 그리고 여자를 알아야만 되지. 여자의 은밀한 마음과 함께 음탕한 육체를 알아야 한단 말이지. 그러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거야.
여자에게 내 거시기가 잘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 여자를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니까.”
“국장님도 지나치시군요. 저를 우습게 보고 깔아뭉개고 있어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여자는 몸으로 말하는데 그게 무언극이지. 여자는 수십 가지 무언극을 할 수 있다네.”
“저도 남자 구실을 톡톡히 할 수 있거든요. 여자의 미소, 여자의 촉감, 여자의 속삭임, 여자의 향기 등을 모두 알고 있다고요. 여자의 신음소리도…… 여자의 온몸 어디든지 어루만질 수 있단 말입니다. 탐스러운 젖가슴, 아랫배, 엉덩이, 촉촉한 사타구니를……”
“ㅎㅎㅎㅎㅎㅎㅎ”
“왜 웃으십니까? 제 말이 믿어지지…… 비웃는 겁니까?”
“당신 얼굴을 보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한창 젊은 시절 내내 전투원으로 그다음에는 공작원으로 계속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으니까 여자를 만나서 연애할 시간이 나 제대로 있었겠어?
총각 딱지를 뗄 시간도 없었을 거라고?”
“왜 그러세요. 아무렴 연애할 시간마저 없을라구요.
그날 밤 그녀가 말했었지요. ‘당신 벌써 다섯 차례나 제 몸속으로 들어왔단 말이에요. 아직도 모자라세요’”
“정말 그렇단 말이지……. 중국 땅에서 아름다운 평양 여자와…… 황홀한 밤이었군. 그렇다면 벌써 여자 뱃속에서 아이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떤 애정 소설에 쓰여 있는 걸 언젠가 써먹으려고 달달 외운 거 아닌가?
북한 공작원들은 달달 외워야 할 게 참으로 많지 않은가.”
“아무리…… 그런 것까지 외우지는 않습니다.”
“그 여자는 신체검사 결과 임신을 안 했단 말이야. 그런데 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
“여자가 그랬어요. 탈북하면서 성폭행을 당할 거에 대비해서 몸속에 뭘 설치했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사랑의 포로가 되거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거야. 미쳤어? 완전히 자유인이 되었는데…… 그 정도 미인이면 남쪽에서 훨훨 날아다닐 거야.”
“미련을 버리라는……”
“자신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어.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 궁박한 처지에서 사랑하는 척 하면서…… 쇼를 한 거지.
이제부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본부에서 출세하려면 3층 서기실의 빽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옛날 함경북도 갑산 산골 촌놈 출신이야. 오죽했으면 삼수갑산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지금 당신에게는 아무리 찾아봐도 연길에서 중국집 하는 아저씨밖에 없어. 이름이 아마 심한준이 아니었던가? 하여간에 그 양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음식점 주인이 무슨 힘이 있겠어. 호구증이 있으니까 중국 동포 행세를 하면서 중국 쪽 통행증 발급사무소에서 쉽게 국경통행증명서를 발급받은 거지. 그걸 이용해서 북한산 도자기, 냉동 노루고기, 송이버섯 등을 중국에 내다 파는 밀무역에 종사했서 돈을 모았지.
그런데 상당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더라고. 그러고 나서 그쪽에는 깨끗이 손을 털고 중국 식당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주 번창한 거야. 우리가 알아보니까 당신 아저씨는 술 좋아하고 원만한 사람이지만 그뿐이지. 그저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거야.
남한에 여러 번 왔다 갔는데 조사해보니 용의점은 없었어.”
“아저씨는 핏줄이 무엇인지…… 저에게 잘해주었습니다.”
염 국장은 같은 공작원 출신이어서 대화가 깊어질수록 연민의 정을 느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너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아주 오래전 내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거야. 기억들이 어둠 속에서 기어나오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그렇게 중요할 것인가. 인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너는 국가에 의해 이용된 도구에 불과했다. 그것도 소모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너가 파괴되어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것인가. 너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화의 숨은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던가. 나는 적군이 아니야. 아무리 어둠 속을 헤매고 있어도 그걸 알아야지. 젊음이 안타까울 뿐이야. 젊음은 찬란한 꿈이니까. 나에게는 그게 없었단 말이야. 인생을 허송세월한 거지. 너의 신념, 의지, 자존심, 그런 거 전부 헛거야.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고. 이게 마지막 기회야. 이게 내가 퇴직하기 전 마지막 임무이다. 나에게 부과된 엄숙한 소명이다. 하지만 너는 먼저 전향하고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 내곡동 본부는 협상할 권한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이번 임무에서 이미 완전히 실패했어.
가령 기적적으로 여기를 탈출해서 북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도 말이야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물론 전후 사정을 엄중하게 조사하겠지. 경우에 따라서는 영웅 대접을 받을 수도 있어. 왜, 자결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돌아왔냐고 하면서 배신자 취급을 할 수도 있어. 그냥 불명예 제대를 시킬 수도 있겠지. 아니면 강제수용소가 기다릴 수도 있어. 당신은 수용소에서 몇 달 동안 생활했으니까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거야. 다시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거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걸.
또 다시 가정을 해 보자고. 당신이 이번 임무에서 성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금의환향한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런다고 모든 게 술술 풀릴까?
내가 생생한 실례를 들을 수 있어.
이 사건은 아마 본부에서 쉬쉬했으니까 교육 과정에서 틀림없이 빼놓았을 거야. 공작원들이 알면 사기가 떨어지니까.
철석같이 믿었던 고첩은 진즉 전향했고 그를 접선하러 간 공작원 역시 전향해서 남쪽에서 잘 살고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까발려서 교육할 수 있었겠어. 그러나 그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지. 북에서 하는 일이 늘 그렇지 않은가.”
“무슨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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