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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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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6-05-11 10:28

본문

자백과 고문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 헌법 제12조 제2항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 또는 기타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 형법 제125조
「형법」제124조 ‧ 제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형법」제124조 ‧ 제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 형사소송법 제309조
 


1. 惡은 평범한 것인가?
고문 기술자들은 겉으로 보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주받은 표시가 얼굴에 나타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증오심이나 적개심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거나 눈에 살기가 감도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고문을 가했던 사람들, 고문 담당 기술자를 혹시 무슨 귀신 악마나 도깨비처럼 연상할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일까? 겉으로는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애써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보통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 스스로 큰 체하고 가식적이고 위협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다른 보통 사람들한테서도 볼 수 있는 것이고 별 뚜렷한 구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똑똑하고 야무지며 또 겸손한 척도 하는 사람들이다. 미소, 장난기 어린 미소조차 짓기도 하며 한숨도 쉬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어디서나 부딪칠 것 같은 그저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결혼한 딸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그 사위가 학생운동 출신 전과자여서 걱정이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리고 군대에 간 아들에 대한 걱정,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자식을 가진 어버이로서 당연히 느끼는 조바심, 서민이면 누구나 안게 되는 살림살이 걱정, 박봉에 대한 불평 등 종로나 명동의 어느 길거리에서나 부딪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고문 기술자가 되어 저 끔찍하고도 무서운 인면수심의 고문을 감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정신적으로 견딜 수 있을까? 무슨 신비한 비밀이 감춰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무서운 고문을 가하고도 혼란에 빠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는 이 사람들의 저 태연함, 느글느글함, 고문을 가하면서 짓는 야릇하고도 징글맞은 미소에 질려버렸다.
1985년 9월 4일 오전 9시경,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고문을 지휘하고 감행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과 과장 (일명 사장) : 총경 윤재호, 1과 전무 : 경정 김수현, 1과 전무 : 경정 백남은, 그 당시 ‘이름 모를 전기고문 기술자’로 알려졌던 이근안 경감, 1과 상무 : 경위 김영두, 1과 부장 : 경장 정현규, 1과 부장 : 경장 최상남, 1과 부장 : 경장 박병선 등이다.
〔이들은 ‘김근태 씨의 고문기록 및 옥중서신, 고문기술자 이근안!! 그는 누구인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일명 반달곰, 그는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하였다!!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권을 유린한 이근안 그의 죄를 고발한다!’, ‘로버트 케네디 국제인권상을 이재근씨와 공동수상한 김근태씨의 고문기록 및 옥중서신’ ,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그 곳에서 있었던 한 맺힌 내력!’ 이라는 부제가 붙은 김근태 지음, 「남영동」에 나오는 실제 이름이다. 그 당시에는 그들이 사장이니 전무같은 호칭을 사용했으므로 정확한 이름과 경찰 계급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그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 치안본부 제5차장인 박처원 경무관의 직접 지휘를 받았고, 법률적으로는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의 수사지휘를 받았으며, 주요 공안사범의 신병처리와 신문에 대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도록 의무화한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 · 조정 규정’에 의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장세동 안기부장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강력하게 지휘 통제했다. 치안본부 소속 남영동 대공분실의 예산은 대부분 안기부에서 나왔다.

비가 내리던 새벽 5시 반, 그날 새벽은 유난히 껌껌했다. 그는 잠이 덜 깬 채로 혼란에 빠져 끌려갔다. 대략 남영동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긴 했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머리는 혼란스러워지기만 하고 가슴 속만 저려올 뿐이었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어떤 의경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내보내 주는구나, 고마움조차 느끼며 옷을 주섬주섬 꿰어 입고 유치장을 나섰다.
하지만 수사과 사무실을 지나 복도로 나서는 순간 스산한 어둠이 확 덮쳐 왔다. 7~8명의 정사복이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서 있었다. 아찔했다. 다리가 몹시 후들후들 거리고. 여러 번 체포 당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 같지는 않았다.
“김근태 씨죠? 같이 가봐야겠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거한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이건 틀림없이 구속이라고 판단했다.
“좋소, 어딘지 가봅시다!”
보호실 쪽으로 뚫린 좁은 복도를 지나 마당으로 나서니 거기에 검은색 포니 자동차가 시동을 건 채 대기하고 있었다. 사방은 껌껌한데 경찰 10명이 둘러쌌고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뒷좌석 가운데 올라탔다. 왼쪽에는 최상남이, 오른쪽에는 김영두가 앉았다. 최상남이 잠바를 벗어 그의 머리를 감싸고 눈이 보이지 않도록 한 채 머리를 짓눌렀다. 김영두는 키 188센티미터, 몸무게는 95킬로그램쯤 나가는 거한인데 그 체격이 그를 압도하면서 짓눌러 버리는 듯했다.

2. 남영동 대공분실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7층 건물 왼쪽 맨 끝방으로 끌려갔다. 5층 15호실. (5층 전체는 취조실로 구성되어 있고 창문이 매우 좁은 것이 특징이다. 좁은 창문 때문에 안팎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무자비한 고문과 취조가 자행된 흔적을 감출 수 있다.) 방안에 들어서니 덮어씌운 잠바를 치웠다. 사방을 둘러보니 짐작할 만했다. 그렇게 낯설고 어색할 수가 없었다. 사방이 점차 빛바랜 황갈색으로 변해갔다. 생기도 없고 시들어 버리는 듯하면서 이 모두가 비현실적으로 그냥 일정한 거리 밖에 널려져 있는 듯했다.
먼저 김수현이 들어와서 물었다.
“진술 거부를 잘 한다지, 여기서도 할 거야? 여기는 보통 경찰과는 달라. 당신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가 아픈가?”
그가 대답했다. “피로가 누적된 것입니다. 방금 구류 살고 나오는 길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민청련 대표직을 그만두어서 어디 휴양지로 가서 몇 달 쉬려고 했습니다만…….”
그러자 김수현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 몸으로 견딜 수 있겠는가? 당신 많이 깨져야겠구먼.”
“제 의지가 살아있는 한 진술을 거부할 것입니다.”
김수현이 무릎 꿇고 앉으라고 명령했다. 그가 거절했다. 하지만 주춤주춤 밀리면서 얼떨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비통한 심정이 되었다. 뒤이어 백남은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정말 버틸거야? 여기서도 진술 거부가 통할 줄 알고? 어림도 없어.”
그가 끝까지 버틸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그러자 백남은은 “좋다, 해보자. 우리는 너를 깨부술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그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칠성대는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은 세면대보다 약간 높고 남자 팔뚝 굵기의 각목 4개가 (어쩌면 5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키보다 약간 큰 길이로 펼쳐진다. 앞부분은 경사져서 세면대에 착 밀착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위에 담요가 깔려있다. 사람이 눕혀지면 담요로 싼 다음에 그 바깥을 줄로 꽁꽁 묶어 버린다. 담요로 몸을 감싸는 것은 몸에 상처가 날까봐 그러는 것이다. 상처가 남겨진다면 그것은 곤란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문 당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담요 바깥을 묶는 줄은 군대 허리띠 같은 것으로 그것도 상처 자국이 남지 않도록 선택된 것이 분명하다. 발목, 무릎 위, 허벅지, 배, 가슴까지 다섯 군데를 묶는다. 완전히 묶어서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머리는 움직일 수 있다. 칠성대 위에 올려 눕혀진 그는 순식간에 완전히 결박되었다.
고문 기술자들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물고문으로 들어갔다. 백남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따라 눈이 가려져 있는 그의 얼굴에 노란 세수 수건이 덮어 씌워지고 세상은 희뿌옇게 누렇게 되고 말았다. 정현규와 최상남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머리 양쪽을 힘을 주어 고정시키고 그 위에 수도꼭지를 틀어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도록 했다. 육척 거구인 김영두가 그 샤워 꼭지를 잡고 사정없이 얼굴에 물을 들이댔다. 그러는 한편 주전자에도 물을 담아 동시에 붓고 또 쏟아 부었다.
숨이 탁탁 막히고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안간힘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이 덮쳐왔다. 주위는 신 냄새가 나는 짙은 회색의 공간으로 뒤바뀌고 속은 메스꺼워지다가 완전히 뒤집히고 콧속으로는 노린내가 치솟고 물이 쏟아지는 그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온몸을 버둥거리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뒤척거리니 칠성대도 기우뚱 하였다.
몸은 완전히 땀으로 젖어버리고 담요도 땀으로 물렁물렁해졌다.
샤워기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의 감촉, 물소리는 공포가 되어 온몸에 덮쳐오고 천근만근 무게로 짓눌려 왔다.
‘그래 무슨 길이 있을 거야, 진술 거부는 포기하자. 그리고 부딪혀 보는 거다’ 하고 생각이 바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이 고문자들은 아주 낮게 뭐라고 소곤거리면서 음산하게 웃음을 흘리는 것이었다.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그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웃음을 정말 죽이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나갔는지, 아니 시간과는 관계가 없었다. 이제 발버둥 칠 힘조차 없이 기진하여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오직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쏴아! 하고 내리꽂히는 그 소리만이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샤워기와 주전자를 치우고 나서 얼굴에 덮어씌웠던 수건을 벗겨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정말 다급하게 외쳤다. “말을 하겠습니다. 진술 거부를 하지 않겠습니다.”
백남은이 물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는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묻는 말에 뭐든지 대답하겠습니다.”
백남은이 말했다. “뭐, 묻는 말에 대답하겠다고? 필요 없어. 아직 멀었구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항복이야. 다시 시작해!”
수건은 다시 덮어씌워지고 샤워기는 다시 맹렬하게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답답함, 질식해 버릴 것 같은 공포, 그리고 아득하고 아득한 절망감, 그것뿐이었다. 턱을 약간씩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낭떠러지로 다시 곤두박질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항복하지, 그래도 진술 거부할 거야? 안 하지?” 하며 뭔가 독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수건을 치웠다.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다.
속은 뒤집혀지고 수없이 구역질을 하게 되었다. 온몸은, 담요는 땀으로 흥건했다. 칠성대 위에서 다시 항복과 진술 거부 포기를 확인한 다음에 고문자들은 묶은 줄을 풀었다. 휘청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시키는 대로 옷을 주워 입었다.
대략 7시 반경부터 물고문이 시작되었는데 12시 반이 이미 지나 있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물고문은 5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9월 4일 오후 1시경 이후, 첫 번째 물고문이 끝난 뒤 그는 두서없이 묻는 말에 대답하고 무언가 지시하는 대로 쓰기를 반복했다. 무엇인가 얘기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기억해 낼 수도 없다. 혼란 속에서 앞뒤가 서로 뒤바뀌어 엉켜 버렸지만 고문자들은 끝없이 묻고 또 묻고 하였다. 그러더니 저녁 8시경 백남은이 다시 옷을 벗기고 눈을 가리개로 씌우라고 명령했다. 김영두, 정현규, 최상남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는 또다시 고문대 위에 칭칭 묶여져 버렸다. 고문, 이것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무서워지고 더욱 낯설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명령했다.
첫째, 폭력혁명주의자임을 자백하고,
둘째,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음을 자백하고,
셋째, 각 민주화 운동 부문에서 움직이는 핵심적 인물을 대라.
김근태와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민청련)이 제일 과격하고, 제일 먼저 움직여서 오늘 같은 혼란스러운 사태를 가져왔다. 우선 학생운동과 노동 현장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하수인을 대라.
두 번째 물고문도 짐작건대 대략 5시간이 걸렸다. 끝난 것이 다음 날 새벽 1시경이었다.
두 번에 걸친 물고문.
그것만으로도 그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그의 인간적 주체성, 인격체는 동요되고 와해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가해오는 무지막지한 폭력에 굴복하여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너무 많이 맞아서 생긴 발뒤꿈치와 팔꿈치의 상처는 하루 동안의 고문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이후 이들 상처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3. 전기고문과 고문 기술자들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전설적인 전기고문 기술자.
델시 상표의 사무용 가방을 들고 건장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이키 운동화를 꺼내 신고서 뭔가 삐딱하니 꼬나보았다. 거리 어느 구석에 있을 깡패, 전형적인 어깨 타입의 풍모였다. 눈은 불안정하고 뻐기면서 걷는 인간 백정 같았다. 몸무게는 거의 90킬로그램에 육박할 것 같고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전설에 나오는, 뒤뜰에서 식칼을 가는 그 누구일 것 같은 그런 인물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동안 장의사가 한가했는데 일감이 풍족하게 생겨서 살맛난다. 작업을 차근차근 해 나갈 터이니 단단히 각오하라”고 협박했다.
말로만 들었던 전기고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녁 8시 반부터 9월 6일 새벽 1시경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전기고문이라고 하니까 다른 고문 담당자는 이것은 전기고문이 아니라 ‘배터리 고문’이라고 정정했지만.
최상남은 그에게 “잠을 전혀 못 자서 피곤할 것이다. 이 방의 불을 끌 수는 없고, 대신 눈에 반창고를 붙여 줄 테니까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두라”고 하면서 양쪽 눈에 엑스자로 모두 반창고를 붙였다. 전기고문 장치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졌다. 팬티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칠성대 위에 또다시 꽁꽁 묶여지고 나서 고문자들은 발바닥과 발등에 붕대 같은 것을 여러 겹 감았다. 새끼발가락과 그 다음 발가락 사이에 전기 접촉면을 끼우고 그것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 같았고 이 붕대도 전기담요처럼 전기가 통했다.
그런 다음 발에, 사타구니에, 배에, 가슴에, 목에, 그리고 머리에 주전자로 물을 들이부었다. 그때 물의 선뜩함은 귀기가 살갗에 달라붙는 바로 그것이었다. 고문 기술자는 뭔가 쉴 새 없이 떠들고 겁주고 협박했다. 이제 전기가 통하면 회음부가 터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 때문에 팬티를 벗겼다고 했다. 우선 물고문부터 시작했다. 다만 그 강도는 물고문만 할 때보다 덜했지만 공포나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어느 정도 물고문이 진행되어 몸에 땀이 나게 되면 그때부터 전기고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그러다가 점점 길고 강하게, 강력하게 전류의 세기를 높였다. 그리고 중간에 다시 약해지고, 가끔씩은 발등에 전기를 순간적으로 대기도 했다.
이제는 희미한 자국으로 남아있지만 그래서 발등의 살가죽이 꺼멓게 타 버리게 되었다. 김수현과 백남은은 지켜보면서, 고문 기술자가 직접 전기고문을, 김영두가 물고문을 집행 하도록 지시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한마디로 불고문이었다. 겉으로 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히고 극도의 고통과 공포를 수반하는 최고의 고난도 고문 기술이다. 물고문과 불고문의 조화라고나 할까. 그 기막힌 상승 효과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고문이 밑바닥에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 가는 것이라면 전기고문, 즉 불고문은 단근질해서 뜨거워진 불 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라 바스러뜨리고 돌돌 말려서 불에 튀기는 그런 것이다.
전기고문, 그것은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를 끊어버리는 것 같았다.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리는 공포가 몰려왔다.
전기가 발을 통해서 머리끝까지 쑤셔 댈 때마다 무거운 비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몸의 각 부분은 해체되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몸 전체가 시퍼렇게 핏줄이 솟고 헉헉 꺼이꺼이 목은 쉬어 가는데 이것은 멱이 따진 돼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른다고 강하게 전류를 통하게 하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빨로 혀를 꽉 물으면 혀를 빼라고 강하고도 긴 전류를 흘려보내고, 끙끙대면서 참는다고 또 그러고, 이들의 목표는 피고문자가 정신적으로 총체적인 혼란, 착란 상태로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미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온통 휘감고 그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그의 눈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환상이 공포와 광란의 소용돌이로 닥쳐왔다. 이것은 슬픔이라든지 외로움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잔인한 인격의 파괴, 그 자체였다.
담요는 땀에 흥건하게 젖는데 물을 쏟아 부었던 몸의 각 부분은 금방 말라 버렸다. 특히 머리털은 곧 말라서 물고문을 수시로 해야 됐다. 이 고문 기술자가 그의 가슴에 올라타고 쿵쿵 굴리는데도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고문대 위에 묶여 고문을 받을 때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고문자들의 요구 명령은 귀에 스피커를 들이대는 것처럼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머릿속에 아주 깊이 새겨졌다. 몸에 영원히 낫지 않는 깊은 상처를 입히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새겨지는 것이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소름끼치는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면서 고문자들의 요구 사항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이다. 〔이근안은 2008년 목사 안수를 받고 설교를 하면서 “차라리 고문은 예술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노련한 고문 기술자는 예술가의 경지에 이른다. 하지만 고문은 자백을 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 물리적 고문에는 한계와 경계선이 있다. 피고문자가 고문을 당한 끝에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가 죽으면 더 이상 자백을 받아낼 수 없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의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고문 상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상해를 입힐 경우 역시 특가법에 의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그리고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자살 예방책을 마련한다. 자살에 쓸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치우는 것이다. 몸을 철저히 수색해서 칼이나 못, 송곳, 독극물 등을 찾아내고 특히 목을 맬 수 있는 신발끈이나 허리띠 같은 노끈은 허용되지 않는다.〕

4. Revolution
9월 4일 오전 남영동에 강제로 끌려 온 이래 그는 단 한숨의 잠도 한 끼니의 식사도 하지 못했다. 별로 자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9월 6일, 점심 식사를 주는 것이었다. 다 먹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고마운 첫 식사였다. 그는 이것으로써 저 지옥 같은 고문의 폭풍우가 혹시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저녁 7시쯤 되었을 것이다. 김수현과 백남은은 얼굴에 웃음기를 띠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앞의 고정된 철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정면에 김수현이, 왼쪽 옆에 백남은이 앉았다.
이것은 무슨 대화와 논쟁자리 같았다.
그들이 길게 질문한 사항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80년 광주사태 이후 민주화 운동이 과격해지고 급진적이 되었다. 틀림없이 배후에는 북한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광주사태도 그들이 사주했으니까. 김일성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있지 않은가.
특히 학생운동이 그렇다. 이른바 Revolution (혁명)의 R을 지시하고 조정하는 사람이 명백히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얘기를 해달라. 네를 지시하고 조종하고 있는 인물 말이다. 아직 우리들이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요구에 응한다면 네가 요구하는 조건을 다 들어줄 것이고 필요하다면 정부의 고위층과 면담하도록 주선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명백히 약속을 하고 지키도록 하겠다. 너를 내보내 줄 수도 있다. 만약 내보내 준다면 우리들에게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그가 대답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심각한 갈등이 있고 격렬한 증오가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언젠가 빠른 시일 내에 폭발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군사정권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고 정권교체가 국민 의사에 따라서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고비에 다다랐다. 이 고비를 올바른 방향으로 극복해서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이것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경제문제, 민생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백남은은 “보답이 겨우 그뿐인가?”라며 소리를 높였고 김수현은 “지금 우리와 논쟁을 하려는 것이냐? 설득하려는 것이냐?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네놈이 감히 우리 앞에서 설을 푸는 거야? 필요 없어. 이 새끼,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어” 하면서 버럭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직후 돌아온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전기고문 그것이었다. 전기고문 기술자가 다시 들어오고 고문대가 들어오고 그날은 그들의 두목 격인 윤재호를 제외한 모든 고문자들이 총출동되었다. 살기등등한 그들의 눈빛에는 푸른빛마저 감도는 듯했다.
그날의 고문은 포악하고 격렬했다. 그 고문 기술자는 망나니였다. 숨통을 막아버리고 목줄띠를 끊어버리는 인간 백정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냈다. 요기 어린 파르스름한 달빛이 감도는 황야에서 작두칼을 휘둘러 대는, 미쳐 버린 인간 백정이었다. 김수현과 백남은, 김영두 등은 이러한 망나니를 칭찬하고 거들어 주고 축하하는 귀신들린 자들이었다.
격렬한 전기고문을 길게, 아주 길게 가하여 온몸이 고문대 위에서 오그라들어 버리는 것 같았다. 핏줄은 물론 모든 살이 마침내 다 타 버려 누리끼리한 살가죽과 뼈만 남아 버린 것 같았다. 쉬지 않고 조금도 쉬지 않고 이튿날 새벽 1시경까지 계속 했다. 고통을 못이겨 소리소리 질러댔기에 목 안에서 피냄새가 역하게 올라오고 콧속에서는 단내가 계속 피어올랐다.
물고문으로 인해 속이 빈 위는 계속 헛구역질을 해대고 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원통해서 이렇게 개죽음 당할 수는 없다.
그 고문자들이 시종 뇌까리는, “심장마비라는 의사의 진단서를 붙이면 자신들은 완전히 발뺌할 수 있다. 어디 외상이 남아 있는가”라는 협박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다.
그때 고문 기술자가 고문 도중에 지쳐서 잠시 쉴 때가 있었는데, 피고문자의 생식기를 가리키면서 “야, 이렇게 작은 것도 X라고 달고 다니냐. 너희 민주화운동 하는 놈들은 다 그러냐”라는 성적인 모욕도 했다. 그 당시 약간 열등감이 자극되기도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그때 ‘그게 무슨 문제냐, X이 없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 고통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너한테 그 이상의 모욕과 폭언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고문이 끝난 것은 이튿날 밤 1시였다. 고문자들이 지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5. 이 새끼, 내가 직접 고문할게……
9월 8일 일요일 오전 10시경, 지옥에서 온 나찰같은 얼굴을 한 윤재호 사장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그들보다 윗사람으로 경찰 계급이 몇 단계 위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사장님처럼 거들먹거렸다. 잠시 후 김수현, 백남은, 김영두, 고문 기술자, 정현규, 박병선, 최상남 그리고 또 한 사람 허만조 등이 방을 꽉 메웠다. 윤재호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소리를 질러 댔다.
“너 이 새끼, 배후를 안 대? 콧구멍에 고춧가루를 쳐넣어서 폐기종을 만들어 버리고 죽여 버리겠다. 안 댈 거지? 그거 (고문대) 들여와. 이 새끼, 내가 직접 고문할게.”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당황한 듯 하면서 모두 서 있었고 김수현, 백남은 등 고문 기술자들이 굽신거리며 “저희들이 하겠으니 나가주십시오. 틀림없이 빠른 시간 내에 자백을 받아내겠습니다”라고 애원하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그 사이 정현규와 최상남이 고문대를 들고 들어왔다. 이렇게 고문은 또 시작되었다. 주제는 아니 메뉴라고 할까? 배후, 정치적으로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불순한 모종의 배후, 그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내 나이 40인데 누가 배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당신들이 말하듯이 민주화 운동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고 오늘의 이 결과를 가져오게 한 역할을 했는데 내가 누구에게 조정을 당하겠습니까? 배후는 없습니다. 내가 의장으로서 최종 책임자란 말입니다. 민청련은 민족통일, 부정부패 특권 정치의 청산, 냉전체제 해소 등을 목표로 해서 학생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민중 운동 단체입니다.”
그들은 그를 고문대 위에 묶어 놓은 채로 그늘진 곳에 숨어 있는 배후, 운동권 주요 인물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잘난 체하지 말라고. 우리는 이미 민청련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너는 아직 어린 애야. 어린 애가 그런 큰 조직을 혼자서 이끌 순 없어.
틀림없이 배후에는 거물 인사가 있다니까. 그 인간의 이름을 대란 말이야. 혹은 북으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았을 수도 있어. 북과 연계되어 있다니까. 속 시원하게 자백을 해보란 말이야. 그러면 너를 풀어줄 거야. 우리에겐 배후 인물이 중요하단 말이야.”
그가 말했다. “이미 당신들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사무실, 집 전화를 도청했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나를 미행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고도 뭘 더 밝히란 말입니까?”
그 악랄한 전기고문 기술자가 말했다. “이 새끼 항복했다더니 아직 입이 살아 움직이는구먼. 진짜 맛을 보여주겠어. 남민전 이재문이 어떻게 죽은지 알아? 전노련 이태복 얘기를 들었을 거다. 이재문은 여기서 당해서 이미 속이 부서져 감옥에서 병사한 거야. 너도 각오해!” 라고 협박했다.
그날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받았던 모진 고문 중에서도 온몸이 부서지는 최악의 고통스런 전기고문이었다.
너무나 진부하고 한편의 코미디 같은 추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가 월북해서 간첩교육을 받고 다시 남파됐는지 여부에 대한 추궁, 북에서 내려온 대남 공작원과 접선했는지 여부에 관한 과거 행적에 대한 추궁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짓거리이다. 하지만 고문자들에게는 언제나 빼놓지 않는 관행적인 질문이었으며, 또다시 고문을 가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핑곗거리였다.
결국 그는 인정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고문자들은 좋아서 히히덕거리기조차 했다. 그래도 고문 기술자는 계속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백남은이 나서서 추궁했다. 어디서 어떻게 월북했는가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생각나는 대로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갔다고 했다. 그러자 백남은, 김수현 등은 폭소를 터뜨렸다.
“왜 여기서 삼천포가 튀어나오지? 잘 나가다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냔 말이야. 그 부분은 우리가 잘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그렇게 알라고……”라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았다.
다음은 그의 형들 셋이 월북을 했고 간첩으로 남파된 형들을 만났다는 것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 터무니없는 주장도 결국 인정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제는 될대로 대라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말했더니 김수현은 합리적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공작금으로 얼마의 돈을 받았느냐고 해서 1백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74년도에 쌍문동 집 근처에서 한 번 만났고, 84년도에 역곡에서 한 번 만났다고 했다. 고문자들은 참으로 좋아했다. 좋아서 미쳐 날뛰기 일보 직전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반복해서 백남은이 얘기할 때 조금 알아들었다. 백남은은 이어서 “그런 일 없었지?”라고 확인을 하면서 “그런 일 없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지경으로 고마워지는 것이었다. 이 틈에 용기를 내어서 “정말 그런 일이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고마움과 안도에 떨리는 목소리로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반복하여 확인했다. 고문 기술자가 나섰다. “그러면 왜 만났다고 했는가? 우릴 놀리려고 했단 말이지. 고문에 못 이겨서 그랬다고 했는가?”라고 추궁하며 다시 강하게 전기고문을 시작하면서 “야 임마, 북에서 남파된 간첩을 만났지?”라고 요구했다.
그는 부정했지만 결국은 또 인정하게 됐다. 도대체 몇 번을 이렇게 왔다갔다 하도록 고문을 당하고 강요를 당했는지 모른다. 거기다 또 말이 왔다갔다 한다고 고문했다.
아, 이처럼 눈물나는 희극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8일 오후 1시 반경, 일단 오전 고문은 끝났다. 저녁 7시경에 또다시 전기고문이 시작되었으며 밤 12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고문을 못이겨 악을 써 대고 고문 기술자는 맞고함을 치고 김수현 등은 킥킥거리며 몸부림치는 그를, 고문대에 묶여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계속 추궁했다.
역시 배후 인물이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러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배후란 것이 없다고 해 봐야 아무 소용 없는 헛일이었다. 결국 생각나는 대로 재야 운동권과 종교 운동권의 인사가 모두 배후라고 불면서 그대로 인정해달라고 애걸했지만 고문자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거절했다. 그들은 재야 인사로 초점을 옮겼다. 그중에서도 나이 많은 원로들의 이름을 대라고 계속 요구했다. 줄줄이 이름을 댔지만 거절당하고, 또 대고, 이렇게 반복하기를 십여 차례 하다가 함세웅 신부와 권호경 목사, 두 사람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와 고문자들과의 협력과 타협, 그리고 어설픈 조작으로 수립된 이야기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함 신부는 완전무결한 배후로 설정되었다.

6. NDR과 CDR, PDR이란 무엇인가
그날부터 학습과 복습이 시작되었다. 지난 4, 5, 6일 있었던 이을호, 문용식의 NDR과 CDR, PDR에 대해서 철저한 학습이 있었고 총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그것도 고문대에 눕혀진 채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잘 해내서 칭찬 아닌 칭찬을 받고 고문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제1차 사회구성체 논쟁을 CNP 논쟁이라고도 하는데, CDR, NDR, PDR 세 가지 노선 사이에 일어났다. CDR은 시민 민주주의 혁명 (Civil Democracy Revolution)의 약자이고 당대 남한 사회를 파쇼적 군사독재로 규정하면서 당면 목표를 시민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한 학생운동 계파를 의미한다. NDR은 민족 민주주의 혁명 (National Democracy Revolution)의 약자로 당대 남한 사회를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에 따른 반식민 반자본주의라고 규정한 계파이다. PDR은 민중 민주주의 혁명(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의 약자이다. 이 계파는 남한 사회의 식민지성과 신식민지성을 모두 부정하였지만 독점자본주의성은 긍정하였다.)
하지만 8일에 또다시 시작된 물고문은 지난 번보다 더 지독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수수건 대신 코와 입 위에 거즈를 덮고 물을 쏟아붓는 방식이었다. 세수수건을 덮고 고문할 때에도 호흡이 차단되었지만 그 방법은 공기가 끼어들 여지를 완전히 없애 버렸기 때문에 더 지독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고문의 중간에 억지로 한 번 입을 벌려서 고춧가루를 쳐넣었다. 곧 뱉어버리긴 했지만 입 속이 얼얼하고 , 고문대 위 담요에 고여 있는 땀과 물속에 떨어진 고춧가루 때문에 등짝 전체가 따갑기도 했다. 무슨 화학 약품이라고 겁주면서 거즈 위에 한 움큼을 집어다 놓고 물로 녹여서 입, 귀, 콧속으로 녹아들도록 했다. 이것을 세 번 했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약간 찝질한 것으로 보아서 소금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목이 완전히 붓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연거푸 비명을 질러 댔기 때문에 목이 쉬게 되었다. 팔꿈치와 발뒤꿈치는 이미 헤어져 상처가 어느 정도 깊어지기도 했다. 고문자들은 팔과 발뒤꿈치에 생긴 상처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약을 사다가 먹이고 연고를 바르고 열심히 치료하기 시작했다. 발뒤꿈치 상처가 특히 오래간다고 했다. 외상용 살포제로 니라민산이라는 하얀 가루약, 수많은 항생제의 복용, 옥시풀과 머큐로크롬 등을 발라서 치료했다. 한편 목이 따끔따끔 아픈 데에도 무슨 내복약인가를 주어서 먹고 조금 가라앉혔으나 한번 쉬어버린 목은 잘 낫지 않았다. 〔고문의 상처가 남겨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안부 검사의 조사과정에서는 한통속이니까 문제될 게 없겠지만 — 피의자가 부인하면 검사는 검사실에서 직접 물리적 고문을 할 수는 없다. 그런 기구나 장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수사부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돌려 보낸다. 거기서는 어김없이 더 악랄한 고문이 되풀이된다. 그들은 더욱 포악하게 굴게 된다. “왜 검사실에 가서 부인했어. 이 자식 아직 정신 못차렸네.” 물론 판사도 한통속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피고인이 아무리 악독한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이라고 항변해도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판결문은 공소장과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지만 재판 과정에서 고문의 흔적이 발견되면 공개 법정에서 민변의 변호사들이 항변을 하고 법정 밖으로 폭로될 수밖에 없다.〕

9월 10일 밤 7시경부터 10시경까지 다시 고문을 당했는데 처음 당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전기봉 고문인데 양쪽 발등에 무슨 장치를 하고 진동을 일으켜 고통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 고문을 직접 지휘한 것은 김영두이고 그 뒤에서 김수현이 조정했다. 박병선, 최상남, 정현규, 경상북도 출신의 또 한 사람의 경찰관이 고문을 했다. 9월 8일을 고비로 백남은은 고문 지휘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맡고 김수현이 주된 임무를 맡았다. 그래서 9월 8일 밤의 고문에서 김수현이 직접 고문 도구를 들고 전기고문을 했다.
전기봉 고문은 이렇다. 대단히 빠른 진동 때문에 발등에 심한 통증이 온다. 상처가 깊이 생기고 깊이 파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가 흐르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이 전기봉 고문은 부드러워서 받을 만하다고나 할까, 상쾌하다고나 할까, 아니 양념 고문이었다고 할까. 워낙 지독한 고문을 당해서 그런지 이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조차 했다. (그들은 진짜 전기고문을 계속 하면 그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약한 것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발뒤꿈치의 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반창고를 계속 붙여 주고 발밑에 수건을 접어 넣어주기도 했다. 그들이 왜 갑자기 그렇게 친절해졌단 말인가? 상처가 계속 남아 있으면 재판 과정에서 고문 사실이 들통나고 그 문제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문자들은 9일부터 식사를 제대로 주었던 것 같다. 그전에는 밥을 언제 주었는지, 준 적이 있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0일에는 저녁식사를 주지 않았다. 9일 아침부터 쭉 주던 것을 안 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을 가할 경우에는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가혹한 고문을 가하기 때문에 (속을 뒤집는 것은 전기고문이 아니라 물고문인데)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고문을 할 때는 거의 틀림없이 속이 뒤집혀 토할 것이다. 그러면 고문자들을 난처하게 만들 것이고 고문의 진행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밥을 주지 않는 것이다.
혹시 토할 때 기도가 막힌다든지, 그로 인한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 안 줄 수도 있다. 하여간에 밥을 안 주면 고문이 임박한 것임이 아주 분명했다. 그동안 여러차례 반복된 물 고문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문자들은 9월 13일 이후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데, 밥을 안 주는 것과 고문을 가하는 것을 연관시켜 유효 적절하게 잘 사용했다. 다시 말하면 고문자들이 뭔가 불만이 있으면 밥을 안 주고, 그러면 고문이 박두했음을 알게되면서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파랗게 질리곤 했다.
그때 고문자들은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그는 덜덜 떨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물고문과 전기고문. 그것은 그들 마음 내키는 대로 뒤죽박죽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과학적이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정리된 순서대로 세심하게 진행했다.
먼저 사무적으로 접근하고 나서 거친 방법과 친절한 방법을 조합하여 번갈아 나오게 하는 접근법 (고문을 하는 과정에서 언제쯤 음식, 물, 담배를 제공하고 상처를 치료해주는지, 간접적인 암시를 통해서 그러한 호의적인 조치는 수사관의 아량에 의해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피신문자의 몸짓, 신체적 반응, 얼굴 표정 등을 통해서 그의 심리적 궤적을 알아내는 방법, 수사관이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예상을 전술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방법,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적절하게 교차해서 사용하는 방법, 수사관이 교대로 번갈아가며 신문하는 방식을 혼용했다.
그들은 고문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끝없이 노력하고 도전했다. 그래서 고문 기술의 지평을 넓힌 숨은 공로자였다.
그를 끈질기게 추적했던 정보과 형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는 머리가 비상할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가 있어서 고집이 세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묵비권을 행사할 거라고 했다. 그의 입을 열게 하려면 그게 필요한 거였고,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이 실체적인지는 그들 자신도 몰랐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고문은 절대적으로 필요악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고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무척 열과 성을 다해서 노력했다. 드디어 인간으로서 두려움, 긴장감, 중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용기백배해졌다.
그들은 성숙했고 성실했고 그래서 아주 노련한 고문 기술자가 되었다.
일단 이 고난도 기술을 습득하고 나면 이를 쓰지 않고 방치하는 게 왠지 억울하고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망치를 든 자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이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강요해온 진술을 거듭 확인하여 암기하고 복습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는 어느 정도 세뇌가 되어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뛰어난 설득을 통하지 않고 오직 고문과 협박으로 피고문자의 마음에 스스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하여 그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가스라이팅 효과였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반박하거나 실수를 과장하는 왜곡을 통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 (전환)하게 만든다. 또한 피해자의 요구나 감정을 하찮게 여기거나 (경시), 실제로 발생한 일을 잊은 척 하거나 부인하는 (망각) 행위를 지속한다.
예컨대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당신 말은 틀렸어.", "너의 기억은 잘못된 거야.", "너는 너무 예민해.", "네가 문제라는 걸 모르겠니?" 등의 말을 반복해 피해자가 자존감과 판단 능력을 잃게 만든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말을 듣는 것을 거부하고, 피해자의 생각을 무시한다. 이러한 행위가 점진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지면서 가해자의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점차 낮아지며, 스스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게 되고 피해자는 이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최악의 상황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겪기도 한다.
이러한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군대, 직장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가스라이팅이 이뤄지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참조.〕

7. 오늘이 금요일이고 13일이야
9월 10일의 고문은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고, 끝난 뒤에는 김수현으로부터 위로도 받았습니다. 고통이 심하고 고생이 되는 줄 잘 안다면서 부하 고문자들이 고문대에서 내려오도록 도와주었다. 눈물이 핑 돌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조금만 더 역성을 들어 주었으면 그 김수현의 가슴에 기대어 엉엉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버렸을 것이다. 분노하고 저주해야 할 그 고문자들을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첫날 혹은 둘째 날부터 고문 때문에 탈진하여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이 박탈되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열쇠를 쥐고 있던 그 고문자들에게 모든 힘을 다하여 아양을 떨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고문자들의 현장 지휘자인 김수현에게 위로를 받은 것, 그것은 당시 그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따뜻한 라면을 대접받고 밤 12시가 못 되어 잠도 재워주고, 이제 평화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9월 13일 밤 10시, 고문 기술자들인 김수현, 백남운, 김영두 등이 또다시 몰려 들어왔다. 차가운 분노를 내뱉으면서 김수현은 그를 고문대에 올려 묶으라고 지시했다. 그날 오후까지도 순풍을 탄 돛단배처럼 평온을 향하여 순조롭게 나아갔는데 말이다.
그동안 협박과 공갈은 끊임없이 들었지만 몸서리쳐지는 고문이 사라져가던 나날들이었다. 13일 저녁식사가 15호실 방문턱을 넘어 그의 책상 위에 놓여졌다. 숟가락을 들고 두 번인가 먹었다. 그때 복도에 있는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자 정현규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면서 밥그릇을 들고 나가버렸다.
이 암담함이라니, 그것은 다시 고문을 가하겠다는 악랄한 선전포고였다.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혼란에 빠졌다. 오그라든 채로 몇 시간이 지났다. 저녁식사 시간이 오후 5시 반경이었으리라고 짐작되는데, 밤 9시가 넘도록 고문할 기척은 없었다.
아, 이것은 저들의 고약한 심리전술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그가 정신적으로 해이하게 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수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0시에 고문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김수현은 그를 고문대 위에 묶어놓고는 말했다.
“오늘이 금요일이고 13일이다. 무슨 날인지 알겠느냐? 악마의 날이다. 서양에서는 오늘을 최후의 만찬이라고 한다. 너에게도 최후의 만찬의 날이다. 각오하라!”
그 지독한 고문 기술자는 8일 이후 이 사건 조사에 이렇게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는데 13일, 그날은 다시 팔을 걷고 나섰다.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새벽 2시 반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계속하여 가했다. 마음은 물론 몸도 도무지 견뎌낼 수가 없게 됐다. 그 고문 기술자는 기고만장하여 한껏 기승을 부리며 고문을 계속하고 김수현은 시퍼렇게 핏대를 세우고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을 했다.
그 고문 기술자가 너무 피로하다고 하면서 잠깐 쉬니까 김수현이 직접 나서서 도구를 들고 고문을 꽤 오랫동안 했다. 이렇게 김수현이 전기고문을 하는 동안 고문대 옆의 욕조에서, 고문대 위에서 샤워를 하고 몸을 닦는 기척이 얼핏 들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환청이었는지 그들의 심리전 전술이었는지 도대체 분간할 수 없다.
그가 말했다. “당신 머리가 좋아서 일류 명문 대학을 나온 컴퓨터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에게는 못 당한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짜내서 대처하는 데는 못 이겨. 우리는 집단 지성이 아니라 집단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당신이 왜 이렇게 고초를 당하고 미움을 받는지 알아? 묻는 말에만 그저 대충대충 성의 없이 대답하기 때문이야. 그것도 아주 부분적으로 대답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핵심은 빠져나간단 말이야. 그러니 고문당할 수밖에 없어. 자업자득이야.”
그러자 김수현은 “당신은 무슨 당신이야! 개x끼지, 나쁜 개x끼야” 라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잔인한 고문을 쉴 새 없이 가했다.
이제는 그의 기력이 워낙 탈진해서인지 한번에 오래 고문을 가하지 않고 자주 쉬면서 했다. 워낙 꽁꽁 묶여 있어서인지 고문을 안해도 고문대에 눕혀있는 그 자체가 고통이었고 팔다리가 금방 저리고 시큰거렸다. 그가 손발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서 못 견디겠으니 풀어 달라”는 뜻의 말을 하자, 고문 기술자는 “그래, 걱정 말아!”하면서 전기고문을 왕창 세게 하기도 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 과정에서 그는 한 번도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13일, 이날은 이미 기력이 다해선지 전기고문, 물고문을 가해도 발버둥 치지 못했다. 그때마다 고문은 중지되고 찬물을 머리에 붓고 가슴을 손바닥으로 주물러댔다. 점차 아슴푸레해지는 의식 속에서 이제 자신이 정신을 잃겠구나라는 순간이 되면 고문은 중지되었다. 고문 기술자들은 그러한 신체적 반응 과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13일 이후, 그는 더 이상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밥을 먹고나서 소화할 수도 없었고, 가벼운 보행마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머릿속 두통이 최악의 상태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떤 한계점, 분수령이었다. 13일 하루 동안의 고문은 이튿날 새벽 2시 반에 끝났다.
9월 13일, 그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알고 싶은 주제는 민청련의 재정문제였다. 그래서 또다시 재정을 후원한 배후의 문제가 등장했다. 마무리 즈음에서는 9월 4일부터 행해진 모든 진술의 일목요연한 정리와 총복습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날 밤 10시경 김수현과 백남은은 (민청련 조직의) 재정문제에 대해 크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우리 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제 ○○○에 관해서는 모두 다 밝혀졌고 얘기도 잘하고 있다. 재정문제도 그렇다고 보고했고 회의석상에서도 그렇게 말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냐, 상부로부터 호통을 당하고 개망신을 당했다. 네놈 때문에 당한거란 말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각오하라!”
회원들의 월 회비 총액은 160~180만원 정도이고 지도위원 40여 명이 월 2만원 정도 납부한 총 60~80만원이 민청련 재정의 골격이었다. 그는 이에 관해서 이미 진술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종교계 인사, 재야 인사, 언론계, 법조계 인사 등으로부터 가끔 선의로 지원받은 소액의 금액을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게도 그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이다.
고문자들은 좋아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어. 진작 얘기했으면 고문도 받지 않았을 텐데”라고 했다.
그는 13일 이후부터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더 이상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다. 이튿날인 14일부터 남영동을 떠나는 26일 점심때까지 그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국물과 두어 숟가락 정도의 밥을 그것도 오래오래 씹어서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식사는 주로 햄버거빵을 우유에 녹여서 채웠고, 즉석 라면에 물을 부어서 그 국물과 약간의 라면발로 허기를 메웠다.
목은 붓고 쉬어서 말을 제대로 못하고, 머리는 깨져 나갈 것 같고,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나가기 직전 같았다. 그들이 지시한대로말하고, 쓰고, 베끼고, 손도장 찍고, 또 찍고 하니까 26일이 되었다.

8. 실체적 진실과 고문
14일부터 19일까지는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잠을 자게 해주었다. 그 이후에는 정신적 혼란과 불면증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잤다.
저녁식사 시간인 5시 반부터 대략 10시까지는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 비몽사몽으로 지내게 되고, 밤 10시가 지나면 그 고문자들은 그를 위로하면서 라면을 끓여주었다. 고문 없이 하루가 지난 것을 고마워하면서 끓여주는 라면에 콧등이 시큰해지고 그러면서 며칠 동안 그는 남영동에서 살았다.
당시 김수현은 정말 표독하게 굴었다. 고문도 잔인하게 할 뿐 아니라 직접 자신이 도구를 들고 고문을 했고 끊임없는 모욕과 학대를 가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최기식 신부를 조사했다는 이 고문 기술자는 처음에는 소극적이었으며 무척 난감해했다. 그러다가 며칠 후부터 악마로 변신하여 그를 학대했다.
김수현이 말했다.
“나는 안보와 관련된 사건을 주로 맡아오고 있어서 고문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사건들에서는 고문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고문을 가한 것 때문에 나에게 상처로 남은 것은 없다. 오히려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해 찜찜한 것으로 남은 사건들이 자꾸 떠오른다. 고문을 가하는 것은 상대에게 일찌감치 체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9월 4일부터 8일까지 백남은은 지독하게 고문을 가하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그 역할이 김수현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김수현은 자신의 역할을 악독하게 수행한 것이다. 나중에는 김수현이 무서울 뿐만 아니라 징그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얼굴만 쳐다봐도 비위가 역해지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고문을 자주 가하면서 그를 고문대 위에 올려 묶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고문 받는 것이 습관화되었겠지.”
그는 고문대에 올라갈 때마다 생각했다. ‘아, 내가 죽게 되는구나, 이렇게 해서 죽는 것이구나. 그것도 고문대 위에서 죽는구나. 내 나이 마흔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구나.’
그렇지만 고문대 위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으면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멍하니 내버려 둔다.
바깥사회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9월 20일, 그들은 민청련이 NDR을 지도 이념으로 하여 반국가단체를 결성했다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20일 이후는 이에 대한 서류 정리, 진술서,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6일 새벽 3시 20분 용산경찰서 유치장으로 이송되었다. 그 기간 중에 잠을 거의 못 잤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가 당하는 모진 고문을 보면서 그 고문을 거들었던 한두 사람의 눈물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떠나라. 정말로 큰일 나겠다”며 그 사람들은 울먹였다.
26일 오후 3시경 남영동 대공분실 5층 15호실을 떠나기에 앞서 그는 김수현과 백남은을 만났다. 잠시 책상을 사이에 두고 김수현과 마주 앉아 얘기를 했다. 별 의미 있는 얘기는 없었으나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다. 피고문자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울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에게 처참한 고문을 당하고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간다. 이러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원통하다. 더구나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분노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한스럽다. 떠나는 지금도 대놓고 욕 한 마디 할 수 없고, 그런 용기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말이다. 이 저주받을 인간들이, 악마 같은 자들이 내 생사 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군림했으며 그에 아양조차 떨어야 했던 이 끔찍한 지옥이 All Mighty처럼 덮쳐 왔던 것을…….’
검은색 포니차를 타기 직전에 백남은이 계단으로 나왔다. 그는 이 사람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똑바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떠나는 이 마당에서만은 당당하고자 했다.
그날, 기묘하게 열리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검은 철제 정문, 열려라 참깨와 같이 느껴지는 대문을 나서서 구치소로 향하는 자동차 속에는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온몸에 받았다. ‘아, 이 낯익은 거리에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이구나, 이 햇빛 속으로.’ 이것은 축복이었다.
검은 지옥으로부터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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