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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과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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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신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6-05-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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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경로당에서 모임이 있었다.
노인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모임을 주관한 분이 경로당 회장이어서 경로당에서 모이게 되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입주민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옥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려서 좌회전한 후 직진하라고 말해 주었다.
경사가 심한 산에 아파트를 짓다 보니 주 출입구는 1층인데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출입구는 지하 3층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을 눌렀으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엘리베이터는 나를 1층으로 데려다 줄 의사가 없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을 걸어서 1층으로 갔다. 경로당이 어디 있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시니어센터라는 명판이 보였다.
요즘은 경로당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니어(senior)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 센터(center)는 어떤 활동의 중심부,
경로당(敬老堂)은 노인을 공경하는 뜻을 표하기 위해 마을 노인들이 함께 모여 교유할 수 있게 마련한 집이나 방이다.
시니어센터에는 공경의 의미가 없지만 영어 이름이 더 멋있어 보이나?
이런 경향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아파트 이름도 외래어가 대세다.
디에트르더펠리체, 롯데케슬파크엘, 올림픽파크포레온 등.
외래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는 것도 문제지만 길다는 것 역시 문제다.
가장 긴 이름인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는 무려 25자다.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인데 시어머니 경계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서구권에서는 건물 이름을 도로명 주소로 대신하거나, 이름 + 주소 형태의 아주 간결한 방식을 선호하고,
고급 아파트일수록 짧아진다고 한다.
뉴욕, 런던 등 대도시의 초고가 아파트(럭셔리 콘도)들은 오히려 이름을 아주 짧게 짓는다.
432 Park Avenue(뉴욕), One Hyde Park(런던)처럼 번지수와 거리명만 사용하는데,
이는 주소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이름이 어렵거나 시니어센터라는 영어 이름보다
외부인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호텔도 아니고, 건물로 들어가는 현관도 아닌,
경사가 급해서 편리하게 오르내리도록 설치한 외부 엘리베이터에 왜 비밀번호가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보안 때문에?
입주민들은 외래어로 길게 지은 이름이 부를 상징한다고 믿거나
외부인은 이용하지 못하게 만든 외부 엘리베이터가 호텔처럼 고급스럽다고 느끼는 걸까?
승효상 건축가는 한국 아파트가 스스로 거대한 담을 쌓아 배타적인 성(Castle)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버킹엄궁의 정문처럼 웅장한 대문을 가진 아파트도 있다.
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면 정문이나 경비실을 거쳐야 하니 외부인은 통과하지 못한다.
도시 전체의 흐름을 끊고, 거주민과 외부인을 구분 짓는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경계를 짓는다.
이는 공동체 의식보다 사유 재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 작동한다.
골목이 아파트의 복도와 엘리베이터로 대체되면서 관계의 질이 바뀌었다는 건축가의 지적은
현대 한국 사회의 고질 문제인 ‘주거의 상품화’와 ‘공동체 붕괴’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다.
골목은 단순히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라 아이들이 놀고, 이웃이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유된 거실이었다.
2025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 한국인은 대략 2,300만 명이었다.
여행을 떠난 사람이 대다수였다. 유럽이나 발칸, 러시아, 중남미, 인도, 동남아,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도시의 아파트를 보러 가지는 않는다.
오래된 건축물과 광장과 골목을 보러 간다.
광장에 앉아서 맥주나 커피를 마시고, 골목의 가게에서 기념품이나 선물을 산다.
야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전 인구의 절반이 매년 여행을 떠나는데 왜 우리에게 골목이 없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할까?
각각의 단지에 담장을 두르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며 살까?
그 반작용으로 골목을 찾아서 세계를 누비는 걸까?
2026년 3월에 발표된 2026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 147개국 중 67위였다.
2025년보다 9계단 떨어졌는데 지난 몇 년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행복 순위는 낮아지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 폐쇄적인, 너무나 폐쇄적인 아파트 문화 덕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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