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詩人의 죽음(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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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중좌는 들어오자마자 다시 진술을 재촉했다.
“그렇지. 계속하시오. 계속해서…… 하사관 동무, 잘 받아 적으시오. 진술의 요점을 놓치면 안 되겠지…….”
“잘 알겠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하쿠슈의 시는 터무니없이 멜랑콜리하고 센티멘털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휴지통에 처박아야할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이지. 동무 역시 그 사람의 아류라고 할 수 있소.
겉으로는 예술지상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사회성이 결여된 감각적이고 신흥 예술파의 경박한 시만 썼던 것이오.”
“그럴지도 모르오. 내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마디 변명을 하자면 순수한 조선어 어휘를 발굴해서 풍부한 표현력으로 시를 쓰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동안 우리 시가 음악성만을 중시해 왔지만 새로 시의 공간성이랄까 회화성을 도입하고 싶었던 거지요. 시의 이미지 말입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김 중좌님, 저는 원래 사회성이니 사상성이니 같은 것은 잘 알지도 못하고. 하여간에 그것들은 저와는 관계없는 공허한 존재들입니다.”
김 중좌의 거무죽죽한 얼굴이 금세 굳어지고, 화가 나서 버릇대로 눈이 뱀눈처럼 되면서 소릴 질렀다.
“입을 닥치시오. 동무는 너무 잘난 체하는 게 탈이요. 뭐가 공허하다는 거요? 프로 문학의 동지들을 절대로 폄하하지 마시오. 마르크스주의 문학론에 바탕을 두고 있단 말입니다. 문학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이요. 형식은 껍데기일 뿐이요. 공작새처럼 화려한 장식이나 경박한 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 없는 거요.”
젊은 하사관 동무가 그의 진술을 받아 타이프라이터를 치면서 끙끙대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긴 진술을 꼬박꼬박 그대로 받아치면서 몹시 힘겨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 중좌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문을 계속하였다.
건물 밖에서는 여전히 멀리서 폭격기의 굉음과 폭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시인은 전쟁의 진행 상황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며칠째 김 중좌의 날카로운 심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질문은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고 때로는 시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두둔하면서 날선 목소리로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시인은 부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길고 끈질긴 심문 탓에 점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가끔 꿈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소식이 끊긴 가족과 이 소좌의 생사가 궁금하였을 뿐이다.
“문제는 말이요. 동무가 하늘처럼 믿고 있는 그 천주교가 동무의 시적 재능을 앗아갔다는 것이요. 동무는 종교시 편에서 가톨릭의 교리가 절대적이고 영원불변의 진리라고 맹신하여 전지전능한 신에 의지해 구원받으려는 나약한 태도를 보였단 말이요.
동무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망각하고 모든 걸 신에게 맡겨 버렸으니까 시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요. 너절한 신앙고백에 다름 아닌 종교시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오직 신만을 우러러보았지. 그때 동무의 종교시는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소.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이었다는 말이요. 무슨……? 신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태어났다고 한들 진즉 죽어서 사라져버렸단 말이요. 그런데도……?
다시 말하면, 그때 동무가 쓴 너절한 종교시는 산만하고 긴장감이 없는 문체로 쓴 거였소. 시인의 개성이나 신선한 이미지는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단 말이요. 부인할 수 있겠소?
그때부터 동무의 시적 재능이 점점 사라진 것이요. 그것들은 동무의 초기 아름다운 시에 감탄했던 독자들을 배신한 거였소. 그런데 시인에게서 시인의 혼을, 시인의 상상력을 앗아간 신을 그래도 믿고 있는 거요? 그 신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요?”
“…….”
“다시 말하겠소. 그 신은 동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소. 당신의 시심을, 시적 재능을 말살했을 뿐이오. 동무는 그때 종교시를 쓰면서 전지전능한 신의 힘으로 구제받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모든 게 허사였소. 동무는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신을 찾은 거요. 그래서 공허하고 관념적인 종교시에 빠진 것이었소.
내 말이 틀렸소? 그 쓸모없는 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시오. 그리고 천주교에 대해 침을 뱉으시오. 동무가 천주교를 고수하는 한 그건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요.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인정되는 빌미가 된단 말이요. 그 신을 당장 버리시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교묘하게 조작해낸 인민의 아편일 뿐이요. 당장 신을 버리시오! 이건 공화국의 엄숙한 명령이요! 알겠소?”
시인이 멈칫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요. 신은 저의 울부짖음에도 단 한 번도 대답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인간 삶의 불가해성을 속 시원히 풀어서 가르쳐주기를 간청했었지요. 그 신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구료.
신은 거룩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일 수 있습니다. 신은 전지전능하지도 않습니다. 무소부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신을 떨칠 수는 없을 것 같소이다. 그 무력한 신을 원망해서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무지무능한 신은 이 순간에도 살아계신다고 믿고 싶습니다.”
“동무는 참으로 멍청하오.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시인이란 족속들은 참으로 어리석지.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이상하고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음산하게 조사실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김 중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독히 심술궂은 태도로 이죽거리고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리다 침을 튀기며 다시 심문하였다.
“이 부분이 동무의 범죄 혐의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것인데 지금부터 자세히 조사하겠소. 다시 경고하는데 허튼 소리는 용납할 수 없소. 그따위 소린 집어치우시지. 당장 집어치우라고. 동무는 지금 자기 변명이 지나치다는 것 알고나 있소?
그때 북조선에서는 동무의 변신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반신반의했소. 그러다가 동무의 논설이 점점 과격해지자 이제는 동무를 공화국의 위대한 전사로 간주하기 시작했소. 천군만마를, 문학적 동지를 얻었다고 생각한 거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맹장인 전사를!
물론 그 후 동무의 변절을 보고 아연실색했지만 말이요.
동무는 나중에 악질 반동단체인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소.
우리는 동무의 변절에 대해 공화국을 반역한 죄, 미국 제국주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다스릴 작정이오.”
갑자기 무시무시한 불안 강박이 시인을 덮쳤다. 그의 목을 죄어들고 있었다. 목울대가 경련하고 있다. 그는 온몸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인이 답변하였다.
“김 중좌님이 변절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변절이라는 낱말이 정말 생소하게 들리는군요. 저에게도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 누가 변절을 하였는지 말씀드리지요. 그 시절에 매일신보나 경성일보 등에 문필가랍시고 자리 잡고 앉아 공출과 징용, 징병을 독려하는 글을 익명으로 매일처럼 써 갈겼던 자들이 해방 후 어떤 행보를 하였는지 알고 계신지요? 그들이 이번에는 파렴치하게도 좌익 지식인 행세를 하면서 우익 타도에 너도나도 앞장섰지요.
또 다른 친일파 모리배들은 고고한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재빨리 친미파로 변신하였지요.”
“동무, 세상에는 쓰레기들이, 기회주의자가 언제나 득실거리는 법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거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지.
동무도 남의 말 할 계제가 아닌 것 같소. 하여튼 말이요…… 남의 말은 할 것 없소. 동무의 이야기를 진술하시오.”
“남조선에 단독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진 겁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전력을 가지고 있던 저는 단독정부의 수립과 때를 같이 하여 이화여대의 교수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녹번리 초당에서 조용히 붓글씨를 쓰면서 소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한에서 시인으로서 존립 기반이 상실된 거였습니다.
도대체 그때 제가 무얼 할 수 있었겠소. 북에서는 변절자라고 욕하고 남에서는 빨갱이라고 욕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설 땅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제게 이념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념이 무슨 소용이 되었습니까? 저는 이념을 모르오. 제가 누구요? 저는 오로지 시밖에 모르고 오직 시에만 심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를 읽고 시를 썼습니다. 그러니 다만 시인일 뿐이요. 시인…… 시인…… 시인이란 말입니다. 시인에게 뭘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단 말입니까. 절, 그냥 내버려 두시오…….”
“동무는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도피하고 싶겠지요. 동무는 증오할 능력이 없는 거요. 동무는 치열하게 싸우지도 못해요. 비겁한 놈이니까. 그래서 동무의 시에는 원래부터 사회 의식,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없었소. 동무가 자칭 시인이라고 할 수 있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요. 위선자라고 할 수 있소.
동무는 평생을 모더니즘의 기교주의에 빠져서 바닥이 얕은 감각시나 썼으면서 너무 시인, 시인하지 마시오. 그러니까 동무는 현란한 언어 감각만으로 시를 썼던, 두뇌도 없고 심장도 없었던 수공 예술의 시인이었을 뿐이오. 그들이 지적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소.”
“그래서인지…… 저더러 최초의 모더니스트니,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 지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말끝에 꼭 사상성이니 사회 비판성이 없다고 비난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현실 자체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배후 또는 이면에 숨어 있는 존재의 본질을 캐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피상적이었습니다. 시란 말입니다, 긴 서사시가 아닌 바에야 짧은 시행 속에서 사회성이나 사회제도의 모순까지 요령 있게 묘사할 수는 없는 겁니다. 거의 불가능하지요. 시는 본질적으로 리듬 박자입니다.
예를 들자면 카프 문학의 그런 종류의 시들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지요. 시에는 고도의 외재율과 내재율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시를 쓰느니 차라리 노골적으로 논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쉬운 일이거든요.”
김 중좌가 화나 가서 낡은 철제 책상을 꽝꽝 내리쳤다. 그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인민해방군의 서울 점령기간 중 동무의 행위는……? 그래도 되는 거였소……? 동무는 변절한 거요. 배신자! 배신자!! 위대한 공화국과 인민을, 김일성 동지를 배신한…… 배신자란 말이요.”
김 중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만한 자세로 시인을 째려보면서 분명하게 조롱하고, 경멸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동무는 지금 자기 변명에 너무 급급하고 있소. 그것은 못돼먹은 제국주의 지식인 근성 탓이오. 여태껏 고질적인 회색분자 경향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이란 말이요. 그만 두시오! 변절자가 부끄럽지도 않소! 잘한 게 무어 있다고 큰소리요! 엉터리 시인! 기회주의자! 비겁한 놈! 민족의 반역자! 반동분자! 인민의 적이란 말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요. 다시 한번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위선자 나으리……. 부디 자중자애하시오.”
“…….”
“동무는 피조사자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마시오. 조사자는 나란 말입니다. 김규진 중좌란 말입니다. 당신의 운명을 내가 쥐고 있어요. 함부로 너무 까불지 말기요.”
그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피웠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뱉어 신경질적으로 발로 문지르면서 또 한 개비를 피울 것인지 망설인다. 그가 준엄한 눈초리를 던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동무에게 다시없는 기회를 주겠어. 자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요. 아니 자백할 기회를 주겠소. 잘 들으라우. 그리고 명심하시오. 반성문 겸 전향서를 쓰시오. 그래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란 말이요.
그러고 나서 공화국과 북조선 인민,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을 향해 용서를 비는 거요. 마지막으로 김일성 장군님의 항일유격전을,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를 찬양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칭송하는 위대한 시를 당장 몇 편 쓰시오. 그리고 쓰고 또 쓰시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고 있는 거요. 혁명이란 바로 서정시인 거요. 혁명이나 시나 그것들은 인간의 열정이 필요한 거요. 당신은 이제부터 혁명가가 되는 거요. 위대한 혁명 전사 말이요.
러시아 혁명이 낳은 최대의 시인은 바로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이요. 그 시인은 거칠고 강렬한 언어로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증오심을, 압제자와 적극적 투쟁에 나선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소. 사회주의 사실주의적 시를 쓰면서 그 시인을 참고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상부에 보고하여 동무가 북조선에서 영화를 누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오. 동시에 남쪽에서 월북한 동무들에게는 필수적인 사상 검토 사업이나 동무의 과거 과오에 대한 엄중한 자아비판을 면제시켜 주겠소.
자아비판이란 자기 굴종인 거야.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인 거지. 알겠소?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단 말이요. 이런 잔인한 행위를 시인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어.
엄청난 시혜인 거지. 며칠간 말미를 주겠소. 잘 생각해 보시오. 밤에 잠을 잘 자시오. 그러면 꿈 속에서 영감이 떠오를 거요.”
그가 멸시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무에게 가혹한 고문을 할 수도 있지.
원하는 것을 획득하려면 고문을 해야만 하는 거지. 고문은 결국 승리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이지. 인간은 하찮은 존재, 짐승, 벌레 같은 것이니까 채찍질로 다스려야만 하는 거야.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 희생자는 결국 굴복하고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과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고 가해자의 공범이 되고야 말지. 그건 자진해서 스스로 타락하는 거라고 봐야겠지.
그렇다고 시인에게 시를 쓰라고 고문을 할 수는 없는 거요. 그건 나도 알고 있소. 나는 마지못해서 하는 복종에는 만족할 수가 없지. 그건 비열한 굴종에 불과하니까. 시인이 우리에게 항복하게 될 때 그것은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어야만 하지. 시란 그런 식으로 쓸 수는 없는 거니까. 시는 자유의지에 따라 가슴으로 써야만 해요. 그래서 이번만은 예외로 하는 거요?”
김 중좌가 철제 책상의 맞은편 회전의자에 통통한 상체를 비스듬히 뉘이고 거만하게 하지만 내심 긴장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 방이 새삼스럽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지난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새 호흡곤란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자꾸 기침이 나왔었다. 시인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였다.
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무릇 인간들이, 잘못이 없는, 실수가 없는 인간들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소?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요. 저는 북조선 인민들이나 김일성 장군에게 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소. 그러니 무슨 반성문 같은 것을 쓸 수 있겠소?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소.”
김 중좌가 시인의 말을 잘랐다. “말을 삼가시오. 김일성 장군님이요. 장군이 아니란 말이오. 반드시 ‘님‘자를 붙이시오. 그분은 조선 민족의 태양이요. 시인 나으리…… 그걸 인정하시오.”
“잘 알겠습니다. 말조심하겠습니다. 제가 이 비열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심사숙고했지요. 나는 시인이요. 할 말은 해야겠소.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 말입니다. 결국 그것 역시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저는 근 30여 년 동안 고작 126편의 시를 썼을 뿐이요. 시인을 자처하면서도 그 정도이지요. 시는 충분히 숙성되어야 하는 법이요. 시인은 절제와 중용,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한 줄의 시를 위해서는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지요. 추억과 기억을 망각 속에 집어넣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하지요.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지요. 시는 저 먼 뒤쪽 어딘가에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오랫동안 거기에 숨어 있지요. 시인은 오로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 지경에 무슨 수로 시를 쓸 수 있단 말이요. 그건 도대체 불가능한 일이요. 아무리 해도 갑작스럽게 너절한 시를 쓸 수 없는 일이지요.”
시인은 다음 순간 그 냉혹한 심문자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가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으려고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인은 그 순간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속의 모든 신경세포가 전율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중좌는 몇 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꼼짝없이 앉아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화풀이하듯 물컵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컵이 박살나면서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들이 이곳저곳에 튀어 올랐다.
그는 극도로 격앙해 있었다. 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는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북한식 어법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들은 언어 예절을 강조했지만 상대방을 완전히 ‘적’으로 간주하는 그 순간부터 살기등등한 막말로 변하는 것이다.
“뭐가 어째! 이 간나새끼! 늙다리 미치광이! 각을 떠버리겠어! 배은망덕도 유분수이지! 지금까지 잘 대해주니까, 정말 형편없구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거지! 넌 사형감이야! 사형이라구! 원쑤의 나라 미 제국주의자 앞잡이! 반동분자 새끼! 날 원망할 필요는 없겠지! 자업자득인 거야! 어이, 하사관! 이 자를 정식 재판에 넘길 테니까, 준비하라우. 그리고 평양 형무소로 이송해.
빨리 서둘러. 동무를 미 제국주의자의 첩자로, 민족 반역자로 기소할 것이오. 공화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시오.”
시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면서 대항했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그건 요식 행위일 뿐이오. 그런 요식 행위가 왜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구려. 비밀 법정에서 감쪽같이 진행될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나를 조롱하고 괴롭히기 위한 잔인한 짓일 뿐이오. 우리 간단히, 아주 간단하게 김 중좌의 권총으로 이 자리에서 즉시 집행하시오. 뭘 꾸물거리는 거요!”
귤껍질처럼 울퉁불퉁하여 매끄럽지 못하고 가무잡잡한 김 중좌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가 시인을 쏘아보면서 다시 격렬하게 외쳤다.
“그렇게 할 순 없어! 동무를 단순하게 처리할 순 없지! 이 간나새끼! 내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했는데 말이지. 동무는 나의 호의와 충고를 완전히 묵살하였어. 스스로 절호의 기회를 차버린 거지.
그리고 나의 입지까지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어. 모시기 작전이 실패했으니까, 상부에서 호된 질책이 있겠지. 나는 동무를 굴복시키지 못했어. 내가 패배한 거지. 하지만 동무는 충분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내가 복수를 하는 거지! 반드시 엄정한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아야만 해! 죽음의 끈덕진 악몽 속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지독한 고통을,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거야! 그래야만 하지!”
“…….”
“공화국 법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우리는 법에 따라 재판을 할 것이오. 동무는 반드시 재판을 받아야만 하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오. 공화국 최고재판소의 재판관들이 현명하게 재판을 할 것이오.”
둥근 갓을 씌운 전등불이 생생하게 드리운 원 안에 갇혀 있는 시인의 얼굴은 의심할 여지 없이 늙은 남자의 초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파괴할 수 없는 엄숙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겠지요.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겠지요. 그래서 현명하게도 죽음을 내리겠지요. 저는 그 죽음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피의자를 감방으로 돌려보내고 나서 김 중좌와 하사관은 조서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 중좌가 말했다. “음… 김 특무, 내 말 잘 듣고 조서에 적으란 말이야. 이 자는 누가 뭐래도 진정한 대시인이지. 조선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조선어가 말살되지 않는 한… 그의 시는 민족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겠지. 그의 시는 이미 불멸성을 획득한 거야. 그런데 동무… 동두천이 38선 이남인 거 맞지? 그리고 말이야 지도에서 동두천 근처에 무슨 야산이 있는지 찾아봐….”
“군관님, 동두천 북쪽으로 고도가 560미터인 소요산이 있디요. 그 산에서 퇴각하던 인민군이 많이 죽었답니다. 미군 폭격이 심했다고 하디요. 김기림 시인도 월북하다가 미군기에 폭사했다고 하디요.”
김 중좌가 말했다.
“우리가 그 시인을 죽였다고 공식 문서에 남길 수는 없어. 그러니 말이야… 언제쯤이 좋을까? 그렇지… 1950년 9월 25일 자진 월북하던 중 동두천 근처 소요산에서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맞아 즉사한 것으로 기록하란 말이야. 알겠어? 동두천은 38선 이남이니까 그는 남조선에서 미국 놈의 손에 죽은 셈이 되는 거지.
그리고 조사 기록과 재판 기록 등등은 사형집행이 끝난 즉시 김 특무가 직접 깡그리 태워버리라고. 잘 알겠지?”
1953년 11월 18일 북한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제시한 민간인 납치자 명단에 의하면, 학자로는 현상윤, 정인보, 문인으로 이광수, 김진섭, 김동환, 이재순, 박승호 등이 들어있었지만 그는 빠져있었다. 최근 북한이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는 그가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 * *
평양 형무소, 마지막 밤
낮이면 햇빛은 오후 느지막하게 잠깐 동안 건너편 건물의 벽을 비추다가 이내 짙은 먹구름처럼 검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격자무늬의 쇠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가끔 그 창문을 통해 하늘을 가로질러 나지막하게 떠가는 조각구름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멀리서 터지는 폭격 소리를, 밤이면 낮은 하늘을 찢을 듯한 올빼미 울음소리를, 겨울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도시가 불타는 매캐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감방 벽 위쪽에 붙은 두껍게 성에가 낀 그 창문에 달빛이 어린다.
…… 차디찬 밤이다. 환한 눈이 곱게 빛난다. 강물도 달빛 아래 언다. 어쩌면 밤이 이처럼 차고 흴까.
어스름한 어둠 속이다.
어둠과 정적이 추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가끔 그들의 군화가 복도를 저벅저벅 밟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밤은 영원히 계속되어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암흑의 중압감이 나를 억누르고 질식시킬 것 같다. 감방의 공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축축하고 답답하다. 나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고결한 영혼의 안식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면서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밤이면 꿈결에서 그녀의 환영이 가끔 나타났던 일이 새삼 기억이 난다. 안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축축한 검은 밤.
나는 너덜너덜해진 매트리스에 누운 채로 하염없이 고향 마을을 생각했다. 그 순간 갑자기 향수병에 걸린 것일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 . 오직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하계리 봄 풍경은 먹물로 그려진 동양화처럼 한가하다. 봄이 오면, 동네 어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카시아 꽃이 피고 , 집집마다 얕은 담벼락에는 철 이른 붉은 줄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붉은 꽃잎은 골목길에 붉은 피를 쏟아붓는다. 꽃잎은 매일 아침마다 농염하게 자신을 화장하였다. 꽃잎의 육감적인 냄새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였다. 겨우내 살얼음이 얼어있던 실개천은 옛 이야기를 지즐대며 청석교 다리 밑을 졸졸 흐른다. 밤새 별똥별이 솔숲으로 떨어지고 , 은고리 같은 새벽달이 서쪽으로 지고 , 동이 틀 무렵이면 동네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암탉이, 늙은 수탉이 서로 가슴을 펴고 날개를 퍼덕이며 연호하듯 울기 시작했다. 신이 닭에게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머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하품을 하고 , 기침을 하고, 졸음에 겨워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쯤이면 하늘이 환하게 홍조를 띠었다. 동네의 삽살개들이 서로에게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개들은 한동안 쉬지 않고 짖어댔다. 이윽고 개들은 차츰 조용해졌으며 울부짖던 소리가 어느새 끊겼다. 그것들이 골목길을 누비며 배회하였다. 삽살개들은 골목에서 담벼락에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오면 그제서야 헛간에 매어둔 얼룩백이 황소는 길게 하품을 하다 말고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고 , 이따금씩 향기롭고 노란 꽃을 꽂은 아카시아의 나뭇가지에 앉은 제비들이 사이좋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처럼 숱 많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어머니는 그 꽃향기를, 그 꽃이 피는 봄날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때 우리들이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렸던 초라한 초가집은 얼마나 아늑하고 평온했던가. 그리고 마당가 늙은 감나무의 잔가지에 모여 앉은 참새들이 날카롭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촉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불거리지 않았던가. 서늘한 봄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지 않았던가. 그때 경부선 슬픈 기차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안고 시커먼 연기와 불을 뱉으며 길게 기적 소릴 울리고 마성산 기슭을 돌아 남쪽으로 달려갔다. 형용할 수 없는 긴 여운을 끌면서……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러나 나는 비극의 흰 얼골은, 가난과 헐벗은 삶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으리라.
어느새 이승에서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는 밤이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어찌 이 밤에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어디선가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밖으로부터 희미하게 후드득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시계의 초침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경비병들의 음산한 구두 발자국 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무채색 복도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오는 저승사자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곧 날이 밝으면 그가 날 데리러 오리라. 그 요식행위가 내일, 간단히…… 아주 간단히 치러질 거야. 최후의 심판이. 총살형을 당하는 것은 무섭지 않겠지만 참수형이나 교수형, 화형은 견딜 수 없으리라. 틀림없이 총살형이겠지. 지금은 전시이고 그들도 간단히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니까. 아니면 성질 급한 열혈 공산당원인 판사가 법정에서 직접 집행할 수도 있겠지. 그가 외칠 거야. 이 남조선 시인 버러지야, 이 정의의 총알을 가슴으로 받아라. 그러나 그건 말이 안 되지. 소심한 판사가 직접 집행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그 예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정식으로 집행 당하기를 원하지. 그러니까, 분대가 정렬하고 , 하사관이 ‘사수 준비’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외칠 것이고, 총알을 장전하는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메아리치면 하사관은 마지막 발사명령을 내리겠지. 아니지, 그 하사관이 친절하다면 마지막으로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물려주고 그걸 다 피울 때까지 기다려줄 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의 간절한 요청을, 눈가리개를 벗겨달라는 요청을 들어줄지도 모르지. 나는 그 순간 푸른 하늘을 보고 싶으니까. 그러나 발사명령이 떨어지면 그 순간, 단 몇 초만에 총알 여러 발이 나의 가슴팍에 무자비하게 박힐 것이고 , 피가,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초라한 몸뚱이가 거꾸러지겠지. 그때 세계는 정지될 것이다. 그리고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라갈 것이다.
나의 운명은 현재 진행 중에 있고 , 그건 과거에, 아주 오래 전에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은 과거와 현재 일어난 일들과 무한정 서로 연결되어 있지. 세상은 돌고 돈다니까. 많은 시인들이 역사 속에서 이미 죽었지. 태어나고 죽었던 거야. 그래서 순환의 연속인 거야. 그게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세상에는 수많은 반복과 순환의 과정이 있는 거지. 지금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도 아닌 거지. 내가 죽어야만 비로소 구원이, 참다운 구원이 이루어지는 거지. 그러므로 이 죽음이야말로 나를 구원해주는 신성한 행위이지. 지금 죽음은 은총인 거야. 김 중좌의 바람대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는 거지. 그가 오해한 거였어. 그를 용서해야만 할까? 그러나 육체는 죽음과 함께 파괴되고 죽음에 의해 흩어지겠지만 영혼은 생명의 근원이기에 소멸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의 시, 고결한 영혼이 천국의 환희 혹은 지옥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고뇌하며 쓴 그 시들은 나와 함께 무덤 속에 묻히고 말까, 아니면 오랫동안 살아남아 생생히 기억될 수 있을까? 지금 섬망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억나는 시가 있을까? 짧은 시 한 편이라도……?
그런데, 생의 마지막 순간, 이 엄숙한 순간에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야겠지. 나는 나름대로 時의 길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겠지. 시들에게서 강렬한 혈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지. 그러나 반드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야. 시의 세계는 너무 신비하거든. 감각적 신비의 세계가. 그러니까 지금껏 백지 위에다 일종의 가식의 언어를 늘어놓은 게 아닐까? 완벽한 표현을 위해서 수정하고 또 수정했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 시에는 독자들이, 예리한 평론가들까지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분리시키기가 불가능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던 작품에도 언제나 뭔가 부족했었지. 그 아름다운 시도 그 무엇을 부분적으로만 포착했기 때문에 더 총체적인 완벽성이 필요했던 거야. 완벽성에 관한 한 나는 비타협적이었지. 도저히 관대할 수가 없었던 거야.
내가 시인으로 떠받들어지는 게 부담스러웠고 일종의 무력감 때문에 너무 짜증스러웠지. 작가의 숙명처럼 항상 실패할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초조하고 공허했지. 언제나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 진정한 한 줄. 진실. 그 진실을 썼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나는 끊임없이 의심했어……?
그날 밤, 지상에서 마지막 밤, 가장 잔혹한 밤. ……하늘의 거리를 밤이 걷는다. 시를 뿌리면서…….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결코 다시 쓰지 못할 시들을 생각했다. 비록 나에게 죄가 없다 해도 나는 나를 꾸짖어야 하고,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해도 나는 나를 죄인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내가 여위어서 뼈와 가죽만 남아있으니 이것이 나의 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참혹하도록 명증한 의식 속에서 이 혼란한 세상을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우왕좌왕하며 우유부단하게 살았음을,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 * *
평양 군사법정, 사형선고
이 비망록은 오늘로서 끝이다. 내일부터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 몇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더라면…….
오늘 무슨 일인지 사형이 집행이 되지 않고 이 감방으로 되돌아 왔다. 다만 오늘 재판 과정만은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니까 역사적 흔적을 자세히 남기고 싶다.
엎치락뒤치락하다 아침이 밝아왔다. 오전 9시 30분.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내 감방 문 앞에서 멈춰서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물쇠 속에서 열쇠가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고 귀에 익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제 문이 열렸다.
그때 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암흑 속인 것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땀이 흘러내렸다. 아, 얼마나 두려운가. 그러나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역겨운 광경인가. 왜 그때 구리 반지가 생각났을까. 두 명의 정복을 입은 군인이 어깨에 따발총을 메고 감방 안으로 들어왔고, 두 손에 수갑을 채우자 차갑고 거친 쇠의 감촉이 느껴졌고, 양옆에서 나를 붙잡고 끌고 나갔다. 나는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발이 질질 끌리자 그들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감방 문밖으로 나와 계단들과 긴 복도를 지나왔다.
나는 군사법정에 출두하였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법정에서 있었던 재판 이야기에 앞서 이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다. 그날은 1950년 2월 22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전에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언도 받은 후 그날 오후에 집행되지 않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온 일 말이다. 어쩐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재판이 끝난 후 사형 집행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오전에 재판이 끝나면 오후에 형무소의 집행장에서 바로 집행하는 게 그 즈음 관례였다. 전시 상황이니까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이다. 집행장에서 돌아와 감방 건물로 들어서기 전 눈에 덮인 뜰을 지났다. 약간 추운 날이지만 하늘은 맑다. 아침이면 대동강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는 말끔히 걷혀있다. 조각구름이 북풍에 떠밀려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고 구름을 막 뚫고 나온 태양이 밝게 빛났다. 한 무리 참새 떼가 날아오른다. 나는 굳은 땅속에서부터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를 맡고 그 밀어를 들을 수 있다.
아 아름다운 세상이여. 아름다운…….
그때 호송하는 앳된 얼굴의 하급 전사가 가만히 귀띔을 해주었다.
“오늘 오후에 있을 사형집행은 연기되었디요.”
그 순간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리죽여 울다가 염치불구하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온몸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인가요? 혹시 사면령이라도?”
“나도 모르디요.”
“그럼 언제?”
“모르디오 ,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디요. 총알이 가슴을 뚫어버리겠디요.”
그런 후 나는 정들었던 내 방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렇지. 그렇다니까. 그들은 도대체 뭘 재판하고자 했던가? 누구를?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나에게는 단지 또 하나의 무자비한 시련과 고뇌와 굴욕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죽음의 지연, 일시적 삶의 연장. 아,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한번 태어난 자는 한 번은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여, 너는 흙이다.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 치욕과 눈물과 회환으로 얼룩진 이승을 떠나면 하느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게 될까. 낙원으로 가거라? 연옥으로? 지옥으로?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으니까.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누구인가? 왜 내 인생에 난데없이 불쑥 나타났던가. 잊을 수 없다. 잊고 싶지 않다. 그녀가 눈에 어른거린다. 강렬한 눈길. 그녀가 웃을 때면 그 눈빛이 얼마나 빛났던지. 그때 밤이 깊어갔다. 그녀의 눈이 희미한 등잔불 불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던가. 내가 그녀의 몸을 알고 있었던가. 내 몸이 그녀의 몸을 느끼고 , 피의 온기를 느끼고 ,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가. 내 심장이 요동치며 손바닥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배어 나왔던가. 내 위장과 내장이 뒤틀리고 있었던가. 내가 말없이 그녀의 활짝 핀 얼굴을, 뺨과 입술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가. 서로 몸을 부벼댈 수 있었던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닌 거야? 나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이 순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죽음은 나중 일이야. 아주 먼 훗날일까? 파스칼이 말했었거든…… 인간들이란 자신의 형 집행일을 모른 채 쇠사슬에 묶여있는 사형수들이라고. 욥은 알고 있었지…… 사람은 모태로 내려가게 되어 있고 , 그에게는 주어진 날이 정해져 있고 , 그는 결국 죽어서 소멸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들뜨고 편안한 기분이다. 그랬으니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는 슬펐지만 행복했다. 곧 봄이 찾아올 것이다.
……종달새처럼 분방하게 아침 하늘에 날아오르는 자는 행복하여라…… 이 세상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피어나는 꽃과 소리 없는 것들의 밀어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법정에는 엄숙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면에는 붉은 바탕에 실물보다 더 큰 스탈린과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좌우 벽면에는 흰 바탕에 청봉체 붉은 글씨로 ‘인민의 법원은 인민을 위해 정의를 집행한다.’ ‘인민 만세, 위대한 공화국이여 영원하라.’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고급 장교의 정복을 차려입은 판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온 법정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하였다.
“피고인의 이름은 무엇인가?”
“정지용입니다.”
“생년월일은?”
“1902년 6월 20일 태어났습니다.”
“출생지를 말하시오 .”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입니다.”
“가톨릭 세례명은 무엇인가?”
“세례명은 방지거 또는 프란치스코입니다.”
“창씨 개명을 하였는가? 다른 이름이 있는가?”
“오오유미 오사무입니다.”
“피고인은 시인이요. 자신의 대표시를 말해보시오.”
“내 시 모두가 나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 시들 중에도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을 거 아니오?”
“그렇다면 …… ‘유리창’, ‘오월 소식’, ‘압천’, ‘춘설’, ‘향수’, 등이 생각납니다만 …… 잘 모르겠소.”
“지금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의 재판을 개시한다. 최고검찰소의 검사가 기소한 내용에 의하면, 피고인이 중대한 범죄를 범하였으므로 즉결처분이나 인민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정식재판으로 재판을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은 썩어빠진 낡은 법체계가 아니라 새롭고 혁명적인 공화국의 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낡은 법 원리인 적법 절차니, 죄형법정주의는 결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쓰레기 법 이론은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야 마땅하지. 따라서 판사는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인민과 공화국을 위해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 재판을 할 것이다. 다만 이 재판은 대다수 인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개재판으로 열려야 마땅할 것이나 지금이 준엄한 전시 상황임을 감안하여 비공개로 개정할 것임을 선언한다.
기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피고인은 매국적인 괴뢰정권인 이승만 도당의 역적들과 모의하여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둘째는 인민군의 서울 점령기간 중에는 문화일꾼으로서 전선에 나가 인민군을 격려하라는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에 불복종하고 , 또한 미군의 투항을 권유하는 영어 방송의 신성한 임무도 수행치 아니하는 등 조선민족에 반역한 반동분자였다. 셋째는 피고인은 열렬한 천주교도이면서 영어에 능통한 자로서 미제국주의자의 식민지화 정책에 동조하여 미제의 간첩이 되었는바, 미제의 첩보기관에 제공하기 위해 공화국의 군사, 정치, 문화 사업에 관한 중요한 기밀을 탐지하려고 평양에 잠입하여 간첩으로 활동하였다. 넷째는 일제 시대 일본 국책 문학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간행된 유일한 문예 잡지인 「국민문학」에 일제의 전쟁을 찬양하고 일본 천황을 드높이는 친일시 ‘異土’를 발표했다.
……낳아자란 곳 어디거나 묻힐데를 밀어나가쟈 /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따로짖힌 고양이 미신이리 / 제비도 설산을 넘고 적도직하에 병선이 이랑을 갈제 / 피였다 꽃처럼 지고보면 물에도 무덤은 선다 /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충성과 피로 곻아진 흙에 / 싸흠은 이겨야만 법이요 시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 / 기러기 한형제 높이줄을 맞추고 햇살에 일곱식구 호미날을 세우쟈.
「국민문학」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내선일체’, ‘조선인의 징병 독려’ 등 황국신민화를 목표로 한 잡지였다. 8‧15 광복 후에는 변신하여 좌파 문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이 되었지만 좌우 대립이 극렬해지자 월북을 선택한 문인 동료들과는 달리 전향을 선택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변신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공화국을 배신한 것이다. 다섯째는 피고인에게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통렬히 반성하여 공화국을 위해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였음에도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이는 우리 인민과 위대한 공화국을 감히 모욕하는 패륜적 반역 행위인 것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
공화국의 충성스러운 조사관은 수고스럽게도 피고인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생 역정에서 일어난 모든 주요 행적과 언행을 빠짐없이 조사하였고 , 특별히 피고인이 쓴 모든 시, 수필, 기행문, 논설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였으며, 관련 문서, 증언 등을 취합해서 증거자료를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기소 사실은 검사가 제시한 명명백백한 증거에 의해 완벽하게,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 피고인은 악랄하기 짝이 없는 반민족적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는가? 증거조사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가? 큰 소리로 대답하라!”
“…….”
“다시 말한다. 이의가 없는가?”
“…….”
판사가 엄숙하게 말했다.
“침묵은 금이고 침묵은 명백한 긍정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이 판사가 형을 언도할 차례이다.”
그 소름 끼치는 판사의 말은 꿈처럼 모호하게 나의 귀에 웅성거림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그 판사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 입술이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입은 저주와 거짓, 사악한 속임수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심장이 그 순간 방망이질치고 그 고동 소리가 들린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정지하였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에게 묻겠다. 그대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반평생을 바쳐 숭앙했던 신 말이다. 그 신이 그렇게 갈망했던 구원을 해주었던가? 그 신은 우상이었을 뿐이다. 그대 말처럼 슬픈 우상이었다. 한갓 우상, 어리석은 우상이었단 말이다.”
“…….”
“위대한 공화국은 그대에게 은혜를, 커다란 은혜를 베풀기로 이미 결정하였다. 그대의 우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보내주겠다. 동무에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형법 제63조 조국반역죄, 제64조 간첩죄를 각 적용해서 사형을 언도한다. 사형은 즉시 총살형으로 집행될 것이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준엄한 판사는 금테 안경 너머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그는 거만하고 자부심에 차 있다.
“동무,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다 하시오. 모두 들어줄 것이오. 이 세상에서 하는 마지막 말이 될 것이오. 유언이 될 수도 있소. 최후 진술을 하란 말입니다.”
나는 그때 굽실거리지 않고 당당하였던가.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공화국의 만수무강을 빌지도 않았다. 김일성 만세를 부르지도 않았다. 평안하고 태연해 보이도록 바른 태도를 취했다. 이미 예상했던 만큼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나는 눈부신 미광이 어려 있는 얼굴로 겸허하게 말했다고 믿는다.
“여러분! 부디 여러분이 단죄하고자 하는 매국역적놈의 비참한 말로를 똑똑히 지켜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 게 아니냐고 , 지금 추궁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비를 구걸하지는 않겠소. 무슨 소용이 있겠소. 허수아비는 바람에 나부낄 뿐 아니겠소.
그러나 이 세상을 잘못 산 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겠지요.
나는 오직 시인입니다. 다른 아무것도 아니고 시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미리 예정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단 한 줄, 궁극의 진실을 쓰지는 못했지요. 그건 가장 깊은 비밀, 우주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만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태초에 흙을 빚어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최초로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이토’는 타국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노스탤지어를 그린 서정시란 말입니다. 나는 허울뿐인 사상이나 이념이니 하는 것들을 도대체 알지 못합니다. 젊은이들이 타향에 가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친일파 시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를 오독하고 있습니다. 모욕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니 긴 시를 읊지는 않을 것입니다. 짧은 시를, ‘나비’를. 나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요. 그곳에서 나의 위대한 신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요. 신만이 오직 위대한 분이요.
내가 인제 나비 같이 죽겠기로…… 나비 같이 날라 왔다…… 검정 비단 네 옷 가에 앉았다가…… 창 훤하니 날라 간다.”
“그렇지. 계속하시오. 계속해서…… 하사관 동무, 잘 받아 적으시오. 진술의 요점을 놓치면 안 되겠지…….”
“잘 알겠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하쿠슈의 시는 터무니없이 멜랑콜리하고 센티멘털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휴지통에 처박아야할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이지. 동무 역시 그 사람의 아류라고 할 수 있소.
겉으로는 예술지상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사회성이 결여된 감각적이고 신흥 예술파의 경박한 시만 썼던 것이오.”
“그럴지도 모르오. 내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마디 변명을 하자면 순수한 조선어 어휘를 발굴해서 풍부한 표현력으로 시를 쓰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동안 우리 시가 음악성만을 중시해 왔지만 새로 시의 공간성이랄까 회화성을 도입하고 싶었던 거지요. 시의 이미지 말입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김 중좌님, 저는 원래 사회성이니 사상성이니 같은 것은 잘 알지도 못하고. 하여간에 그것들은 저와는 관계없는 공허한 존재들입니다.”
김 중좌의 거무죽죽한 얼굴이 금세 굳어지고, 화가 나서 버릇대로 눈이 뱀눈처럼 되면서 소릴 질렀다.
“입을 닥치시오. 동무는 너무 잘난 체하는 게 탈이요. 뭐가 공허하다는 거요? 프로 문학의 동지들을 절대로 폄하하지 마시오. 마르크스주의 문학론에 바탕을 두고 있단 말입니다. 문학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이요. 형식은 껍데기일 뿐이요. 공작새처럼 화려한 장식이나 경박한 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 없는 거요.”
젊은 하사관 동무가 그의 진술을 받아 타이프라이터를 치면서 끙끙대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긴 진술을 꼬박꼬박 그대로 받아치면서 몹시 힘겨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 중좌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문을 계속하였다.
건물 밖에서는 여전히 멀리서 폭격기의 굉음과 폭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시인은 전쟁의 진행 상황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며칠째 김 중좌의 날카로운 심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질문은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고 때로는 시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두둔하면서 날선 목소리로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시인은 부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길고 끈질긴 심문 탓에 점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가끔 꿈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소식이 끊긴 가족과 이 소좌의 생사가 궁금하였을 뿐이다.
“문제는 말이요. 동무가 하늘처럼 믿고 있는 그 천주교가 동무의 시적 재능을 앗아갔다는 것이요. 동무는 종교시 편에서 가톨릭의 교리가 절대적이고 영원불변의 진리라고 맹신하여 전지전능한 신에 의지해 구원받으려는 나약한 태도를 보였단 말이요.
동무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망각하고 모든 걸 신에게 맡겨 버렸으니까 시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요. 너절한 신앙고백에 다름 아닌 종교시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오직 신만을 우러러보았지. 그때 동무의 종교시는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소.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이었다는 말이요. 무슨……? 신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태어났다고 한들 진즉 죽어서 사라져버렸단 말이요. 그런데도……?
다시 말하면, 그때 동무가 쓴 너절한 종교시는 산만하고 긴장감이 없는 문체로 쓴 거였소. 시인의 개성이나 신선한 이미지는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단 말이요. 부인할 수 있겠소?
그때부터 동무의 시적 재능이 점점 사라진 것이요. 그것들은 동무의 초기 아름다운 시에 감탄했던 독자들을 배신한 거였소. 그런데 시인에게서 시인의 혼을, 시인의 상상력을 앗아간 신을 그래도 믿고 있는 거요? 그 신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요?”
“…….”
“다시 말하겠소. 그 신은 동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소. 당신의 시심을, 시적 재능을 말살했을 뿐이오. 동무는 그때 종교시를 쓰면서 전지전능한 신의 힘으로 구제받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모든 게 허사였소. 동무는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신을 찾은 거요. 그래서 공허하고 관념적인 종교시에 빠진 것이었소.
내 말이 틀렸소? 그 쓸모없는 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시오. 그리고 천주교에 대해 침을 뱉으시오. 동무가 천주교를 고수하는 한 그건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요.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인정되는 빌미가 된단 말이요. 그 신을 당장 버리시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교묘하게 조작해낸 인민의 아편일 뿐이요. 당장 신을 버리시오! 이건 공화국의 엄숙한 명령이요! 알겠소?”
시인이 멈칫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요. 신은 저의 울부짖음에도 단 한 번도 대답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인간 삶의 불가해성을 속 시원히 풀어서 가르쳐주기를 간청했었지요. 그 신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구료.
신은 거룩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일 수 있습니다. 신은 전지전능하지도 않습니다. 무소부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신을 떨칠 수는 없을 것 같소이다. 그 무력한 신을 원망해서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무지무능한 신은 이 순간에도 살아계신다고 믿고 싶습니다.”
“동무는 참으로 멍청하오.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시인이란 족속들은 참으로 어리석지.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이상하고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음산하게 조사실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김 중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독히 심술궂은 태도로 이죽거리고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리다 침을 튀기며 다시 심문하였다.
“이 부분이 동무의 범죄 혐의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것인데 지금부터 자세히 조사하겠소. 다시 경고하는데 허튼 소리는 용납할 수 없소. 그따위 소린 집어치우시지. 당장 집어치우라고. 동무는 지금 자기 변명이 지나치다는 것 알고나 있소?
그때 북조선에서는 동무의 변신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반신반의했소. 그러다가 동무의 논설이 점점 과격해지자 이제는 동무를 공화국의 위대한 전사로 간주하기 시작했소. 천군만마를, 문학적 동지를 얻었다고 생각한 거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맹장인 전사를!
물론 그 후 동무의 변절을 보고 아연실색했지만 말이요.
동무는 나중에 악질 반동단체인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소.
우리는 동무의 변절에 대해 공화국을 반역한 죄, 미국 제국주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다스릴 작정이오.”
갑자기 무시무시한 불안 강박이 시인을 덮쳤다. 그의 목을 죄어들고 있었다. 목울대가 경련하고 있다. 그는 온몸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인이 답변하였다.
“김 중좌님이 변절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변절이라는 낱말이 정말 생소하게 들리는군요. 저에게도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 누가 변절을 하였는지 말씀드리지요. 그 시절에 매일신보나 경성일보 등에 문필가랍시고 자리 잡고 앉아 공출과 징용, 징병을 독려하는 글을 익명으로 매일처럼 써 갈겼던 자들이 해방 후 어떤 행보를 하였는지 알고 계신지요? 그들이 이번에는 파렴치하게도 좌익 지식인 행세를 하면서 우익 타도에 너도나도 앞장섰지요.
또 다른 친일파 모리배들은 고고한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재빨리 친미파로 변신하였지요.”
“동무, 세상에는 쓰레기들이, 기회주의자가 언제나 득실거리는 법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거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지.
동무도 남의 말 할 계제가 아닌 것 같소. 하여튼 말이요…… 남의 말은 할 것 없소. 동무의 이야기를 진술하시오.”
“남조선에 단독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진 겁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전력을 가지고 있던 저는 단독정부의 수립과 때를 같이 하여 이화여대의 교수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녹번리 초당에서 조용히 붓글씨를 쓰면서 소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한에서 시인으로서 존립 기반이 상실된 거였습니다.
도대체 그때 제가 무얼 할 수 있었겠소. 북에서는 변절자라고 욕하고 남에서는 빨갱이라고 욕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설 땅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제게 이념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념이 무슨 소용이 되었습니까? 저는 이념을 모르오. 제가 누구요? 저는 오로지 시밖에 모르고 오직 시에만 심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를 읽고 시를 썼습니다. 그러니 다만 시인일 뿐이요. 시인…… 시인…… 시인이란 말입니다. 시인에게 뭘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단 말입니까. 절, 그냥 내버려 두시오…….”
“동무는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도피하고 싶겠지요. 동무는 증오할 능력이 없는 거요. 동무는 치열하게 싸우지도 못해요. 비겁한 놈이니까. 그래서 동무의 시에는 원래부터 사회 의식,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없었소. 동무가 자칭 시인이라고 할 수 있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요. 위선자라고 할 수 있소.
동무는 평생을 모더니즘의 기교주의에 빠져서 바닥이 얕은 감각시나 썼으면서 너무 시인, 시인하지 마시오. 그러니까 동무는 현란한 언어 감각만으로 시를 썼던, 두뇌도 없고 심장도 없었던 수공 예술의 시인이었을 뿐이오. 그들이 지적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소.”
“그래서인지…… 저더러 최초의 모더니스트니,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 지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말끝에 꼭 사상성이니 사회 비판성이 없다고 비난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현실 자체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배후 또는 이면에 숨어 있는 존재의 본질을 캐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피상적이었습니다. 시란 말입니다, 긴 서사시가 아닌 바에야 짧은 시행 속에서 사회성이나 사회제도의 모순까지 요령 있게 묘사할 수는 없는 겁니다. 거의 불가능하지요. 시는 본질적으로 리듬 박자입니다.
예를 들자면 카프 문학의 그런 종류의 시들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지요. 시에는 고도의 외재율과 내재율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시를 쓰느니 차라리 노골적으로 논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쉬운 일이거든요.”
김 중좌가 화나 가서 낡은 철제 책상을 꽝꽝 내리쳤다. 그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인민해방군의 서울 점령기간 중 동무의 행위는……? 그래도 되는 거였소……? 동무는 변절한 거요. 배신자! 배신자!! 위대한 공화국과 인민을, 김일성 동지를 배신한…… 배신자란 말이요.”
김 중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만한 자세로 시인을 째려보면서 분명하게 조롱하고, 경멸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동무는 지금 자기 변명에 너무 급급하고 있소. 그것은 못돼먹은 제국주의 지식인 근성 탓이오. 여태껏 고질적인 회색분자 경향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이란 말이요. 그만 두시오! 변절자가 부끄럽지도 않소! 잘한 게 무어 있다고 큰소리요! 엉터리 시인! 기회주의자! 비겁한 놈! 민족의 반역자! 반동분자! 인민의 적이란 말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요. 다시 한번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위선자 나으리……. 부디 자중자애하시오.”
“…….”
“동무는 피조사자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마시오. 조사자는 나란 말입니다. 김규진 중좌란 말입니다. 당신의 운명을 내가 쥐고 있어요. 함부로 너무 까불지 말기요.”
그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피웠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뱉어 신경질적으로 발로 문지르면서 또 한 개비를 피울 것인지 망설인다. 그가 준엄한 눈초리를 던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동무에게 다시없는 기회를 주겠어. 자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요. 아니 자백할 기회를 주겠소. 잘 들으라우. 그리고 명심하시오. 반성문 겸 전향서를 쓰시오. 그래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란 말이요.
그러고 나서 공화국과 북조선 인민,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을 향해 용서를 비는 거요. 마지막으로 김일성 장군님의 항일유격전을,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를 찬양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칭송하는 위대한 시를 당장 몇 편 쓰시오. 그리고 쓰고 또 쓰시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고 있는 거요. 혁명이란 바로 서정시인 거요. 혁명이나 시나 그것들은 인간의 열정이 필요한 거요. 당신은 이제부터 혁명가가 되는 거요. 위대한 혁명 전사 말이요.
러시아 혁명이 낳은 최대의 시인은 바로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이요. 그 시인은 거칠고 강렬한 언어로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증오심을, 압제자와 적극적 투쟁에 나선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소. 사회주의 사실주의적 시를 쓰면서 그 시인을 참고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상부에 보고하여 동무가 북조선에서 영화를 누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오. 동시에 남쪽에서 월북한 동무들에게는 필수적인 사상 검토 사업이나 동무의 과거 과오에 대한 엄중한 자아비판을 면제시켜 주겠소.
자아비판이란 자기 굴종인 거야.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인 거지. 알겠소?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단 말이요. 이런 잔인한 행위를 시인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어.
엄청난 시혜인 거지. 며칠간 말미를 주겠소. 잘 생각해 보시오. 밤에 잠을 잘 자시오. 그러면 꿈 속에서 영감이 떠오를 거요.”
그가 멸시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무에게 가혹한 고문을 할 수도 있지.
원하는 것을 획득하려면 고문을 해야만 하는 거지. 고문은 결국 승리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이지. 인간은 하찮은 존재, 짐승, 벌레 같은 것이니까 채찍질로 다스려야만 하는 거야.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 희생자는 결국 굴복하고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과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고 가해자의 공범이 되고야 말지. 그건 자진해서 스스로 타락하는 거라고 봐야겠지.
그렇다고 시인에게 시를 쓰라고 고문을 할 수는 없는 거요. 그건 나도 알고 있소. 나는 마지못해서 하는 복종에는 만족할 수가 없지. 그건 비열한 굴종에 불과하니까. 시인이 우리에게 항복하게 될 때 그것은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어야만 하지. 시란 그런 식으로 쓸 수는 없는 거니까. 시는 자유의지에 따라 가슴으로 써야만 해요. 그래서 이번만은 예외로 하는 거요?”
김 중좌가 철제 책상의 맞은편 회전의자에 통통한 상체를 비스듬히 뉘이고 거만하게 하지만 내심 긴장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 방이 새삼스럽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지난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새 호흡곤란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자꾸 기침이 나왔었다. 시인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였다.
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무릇 인간들이, 잘못이 없는, 실수가 없는 인간들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소?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요. 저는 북조선 인민들이나 김일성 장군에게 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소. 그러니 무슨 반성문 같은 것을 쓸 수 있겠소?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소.”
김 중좌가 시인의 말을 잘랐다. “말을 삼가시오. 김일성 장군님이요. 장군이 아니란 말이오. 반드시 ‘님‘자를 붙이시오. 그분은 조선 민족의 태양이요. 시인 나으리…… 그걸 인정하시오.”
“잘 알겠습니다. 말조심하겠습니다. 제가 이 비열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심사숙고했지요. 나는 시인이요. 할 말은 해야겠소.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 말입니다. 결국 그것 역시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저는 근 30여 년 동안 고작 126편의 시를 썼을 뿐이요. 시인을 자처하면서도 그 정도이지요. 시는 충분히 숙성되어야 하는 법이요. 시인은 절제와 중용,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한 줄의 시를 위해서는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지요. 추억과 기억을 망각 속에 집어넣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하지요.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지요. 시는 저 먼 뒤쪽 어딘가에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오랫동안 거기에 숨어 있지요. 시인은 오로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 지경에 무슨 수로 시를 쓸 수 있단 말이요. 그건 도대체 불가능한 일이요. 아무리 해도 갑작스럽게 너절한 시를 쓸 수 없는 일이지요.”
시인은 다음 순간 그 냉혹한 심문자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가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으려고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인은 그 순간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속의 모든 신경세포가 전율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중좌는 몇 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꼼짝없이 앉아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화풀이하듯 물컵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컵이 박살나면서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들이 이곳저곳에 튀어 올랐다.
그는 극도로 격앙해 있었다. 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는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북한식 어법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들은 언어 예절을 강조했지만 상대방을 완전히 ‘적’으로 간주하는 그 순간부터 살기등등한 막말로 변하는 것이다.
“뭐가 어째! 이 간나새끼! 늙다리 미치광이! 각을 떠버리겠어! 배은망덕도 유분수이지! 지금까지 잘 대해주니까, 정말 형편없구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거지! 넌 사형감이야! 사형이라구! 원쑤의 나라 미 제국주의자 앞잡이! 반동분자 새끼! 날 원망할 필요는 없겠지! 자업자득인 거야! 어이, 하사관! 이 자를 정식 재판에 넘길 테니까, 준비하라우. 그리고 평양 형무소로 이송해.
빨리 서둘러. 동무를 미 제국주의자의 첩자로, 민족 반역자로 기소할 것이오. 공화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시오.”
시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면서 대항했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그건 요식 행위일 뿐이오. 그런 요식 행위가 왜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구려. 비밀 법정에서 감쪽같이 진행될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나를 조롱하고 괴롭히기 위한 잔인한 짓일 뿐이오. 우리 간단히, 아주 간단하게 김 중좌의 권총으로 이 자리에서 즉시 집행하시오. 뭘 꾸물거리는 거요!”
귤껍질처럼 울퉁불퉁하여 매끄럽지 못하고 가무잡잡한 김 중좌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가 시인을 쏘아보면서 다시 격렬하게 외쳤다.
“그렇게 할 순 없어! 동무를 단순하게 처리할 순 없지! 이 간나새끼! 내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했는데 말이지. 동무는 나의 호의와 충고를 완전히 묵살하였어. 스스로 절호의 기회를 차버린 거지.
그리고 나의 입지까지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어. 모시기 작전이 실패했으니까, 상부에서 호된 질책이 있겠지. 나는 동무를 굴복시키지 못했어. 내가 패배한 거지. 하지만 동무는 충분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내가 복수를 하는 거지! 반드시 엄정한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아야만 해! 죽음의 끈덕진 악몽 속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지독한 고통을,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거야! 그래야만 하지!”
“…….”
“공화국 법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우리는 법에 따라 재판을 할 것이오. 동무는 반드시 재판을 받아야만 하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오. 공화국 최고재판소의 재판관들이 현명하게 재판을 할 것이오.”
둥근 갓을 씌운 전등불이 생생하게 드리운 원 안에 갇혀 있는 시인의 얼굴은 의심할 여지 없이 늙은 남자의 초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파괴할 수 없는 엄숙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겠지요.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겠지요. 그래서 현명하게도 죽음을 내리겠지요. 저는 그 죽음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피의자를 감방으로 돌려보내고 나서 김 중좌와 하사관은 조서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 중좌가 말했다. “음… 김 특무, 내 말 잘 듣고 조서에 적으란 말이야. 이 자는 누가 뭐래도 진정한 대시인이지. 조선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조선어가 말살되지 않는 한… 그의 시는 민족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겠지. 그의 시는 이미 불멸성을 획득한 거야. 그런데 동무… 동두천이 38선 이남인 거 맞지? 그리고 말이야 지도에서 동두천 근처에 무슨 야산이 있는지 찾아봐….”
“군관님, 동두천 북쪽으로 고도가 560미터인 소요산이 있디요. 그 산에서 퇴각하던 인민군이 많이 죽었답니다. 미군 폭격이 심했다고 하디요. 김기림 시인도 월북하다가 미군기에 폭사했다고 하디요.”
김 중좌가 말했다.
“우리가 그 시인을 죽였다고 공식 문서에 남길 수는 없어. 그러니 말이야… 언제쯤이 좋을까? 그렇지… 1950년 9월 25일 자진 월북하던 중 동두천 근처 소요산에서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맞아 즉사한 것으로 기록하란 말이야. 알겠어? 동두천은 38선 이남이니까 그는 남조선에서 미국 놈의 손에 죽은 셈이 되는 거지.
그리고 조사 기록과 재판 기록 등등은 사형집행이 끝난 즉시 김 특무가 직접 깡그리 태워버리라고. 잘 알겠지?”
1953년 11월 18일 북한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제시한 민간인 납치자 명단에 의하면, 학자로는 현상윤, 정인보, 문인으로 이광수, 김진섭, 김동환, 이재순, 박승호 등이 들어있었지만 그는 빠져있었다. 최근 북한이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는 그가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 * *
평양 형무소, 마지막 밤
낮이면 햇빛은 오후 느지막하게 잠깐 동안 건너편 건물의 벽을 비추다가 이내 짙은 먹구름처럼 검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격자무늬의 쇠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가끔 그 창문을 통해 하늘을 가로질러 나지막하게 떠가는 조각구름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멀리서 터지는 폭격 소리를, 밤이면 낮은 하늘을 찢을 듯한 올빼미 울음소리를, 겨울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도시가 불타는 매캐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감방 벽 위쪽에 붙은 두껍게 성에가 낀 그 창문에 달빛이 어린다.
…… 차디찬 밤이다. 환한 눈이 곱게 빛난다. 강물도 달빛 아래 언다. 어쩌면 밤이 이처럼 차고 흴까.
어스름한 어둠 속이다.
어둠과 정적이 추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가끔 그들의 군화가 복도를 저벅저벅 밟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밤은 영원히 계속되어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암흑의 중압감이 나를 억누르고 질식시킬 것 같다. 감방의 공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축축하고 답답하다. 나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고결한 영혼의 안식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면서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밤이면 꿈결에서 그녀의 환영이 가끔 나타났던 일이 새삼 기억이 난다. 안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축축한 검은 밤.
나는 너덜너덜해진 매트리스에 누운 채로 하염없이 고향 마을을 생각했다. 그 순간 갑자기 향수병에 걸린 것일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 . 오직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하계리 봄 풍경은 먹물로 그려진 동양화처럼 한가하다. 봄이 오면, 동네 어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카시아 꽃이 피고 , 집집마다 얕은 담벼락에는 철 이른 붉은 줄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붉은 꽃잎은 골목길에 붉은 피를 쏟아붓는다. 꽃잎은 매일 아침마다 농염하게 자신을 화장하였다. 꽃잎의 육감적인 냄새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였다. 겨우내 살얼음이 얼어있던 실개천은 옛 이야기를 지즐대며 청석교 다리 밑을 졸졸 흐른다. 밤새 별똥별이 솔숲으로 떨어지고 , 은고리 같은 새벽달이 서쪽으로 지고 , 동이 틀 무렵이면 동네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암탉이, 늙은 수탉이 서로 가슴을 펴고 날개를 퍼덕이며 연호하듯 울기 시작했다. 신이 닭에게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머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하품을 하고 , 기침을 하고, 졸음에 겨워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쯤이면 하늘이 환하게 홍조를 띠었다. 동네의 삽살개들이 서로에게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개들은 한동안 쉬지 않고 짖어댔다. 이윽고 개들은 차츰 조용해졌으며 울부짖던 소리가 어느새 끊겼다. 그것들이 골목길을 누비며 배회하였다. 삽살개들은 골목에서 담벼락에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오면 그제서야 헛간에 매어둔 얼룩백이 황소는 길게 하품을 하다 말고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고 , 이따금씩 향기롭고 노란 꽃을 꽂은 아카시아의 나뭇가지에 앉은 제비들이 사이좋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처럼 숱 많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어머니는 그 꽃향기를, 그 꽃이 피는 봄날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때 우리들이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렸던 초라한 초가집은 얼마나 아늑하고 평온했던가. 그리고 마당가 늙은 감나무의 잔가지에 모여 앉은 참새들이 날카롭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촉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불거리지 않았던가. 서늘한 봄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지 않았던가. 그때 경부선 슬픈 기차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안고 시커먼 연기와 불을 뱉으며 길게 기적 소릴 울리고 마성산 기슭을 돌아 남쪽으로 달려갔다. 형용할 수 없는 긴 여운을 끌면서……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러나 나는 비극의 흰 얼골은, 가난과 헐벗은 삶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으리라.
어느새 이승에서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는 밤이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어찌 이 밤에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어디선가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밖으로부터 희미하게 후드득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시계의 초침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경비병들의 음산한 구두 발자국 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무채색 복도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오는 저승사자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곧 날이 밝으면 그가 날 데리러 오리라. 그 요식행위가 내일, 간단히…… 아주 간단히 치러질 거야. 최후의 심판이. 총살형을 당하는 것은 무섭지 않겠지만 참수형이나 교수형, 화형은 견딜 수 없으리라. 틀림없이 총살형이겠지. 지금은 전시이고 그들도 간단히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니까. 아니면 성질 급한 열혈 공산당원인 판사가 법정에서 직접 집행할 수도 있겠지. 그가 외칠 거야. 이 남조선 시인 버러지야, 이 정의의 총알을 가슴으로 받아라. 그러나 그건 말이 안 되지. 소심한 판사가 직접 집행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그 예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정식으로 집행 당하기를 원하지. 그러니까, 분대가 정렬하고 , 하사관이 ‘사수 준비’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외칠 것이고, 총알을 장전하는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메아리치면 하사관은 마지막 발사명령을 내리겠지. 아니지, 그 하사관이 친절하다면 마지막으로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물려주고 그걸 다 피울 때까지 기다려줄 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의 간절한 요청을, 눈가리개를 벗겨달라는 요청을 들어줄지도 모르지. 나는 그 순간 푸른 하늘을 보고 싶으니까. 그러나 발사명령이 떨어지면 그 순간, 단 몇 초만에 총알 여러 발이 나의 가슴팍에 무자비하게 박힐 것이고 , 피가,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초라한 몸뚱이가 거꾸러지겠지. 그때 세계는 정지될 것이다. 그리고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라갈 것이다.
나의 운명은 현재 진행 중에 있고 , 그건 과거에, 아주 오래 전에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은 과거와 현재 일어난 일들과 무한정 서로 연결되어 있지. 세상은 돌고 돈다니까. 많은 시인들이 역사 속에서 이미 죽었지. 태어나고 죽었던 거야. 그래서 순환의 연속인 거야. 그게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세상에는 수많은 반복과 순환의 과정이 있는 거지. 지금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도 아닌 거지. 내가 죽어야만 비로소 구원이, 참다운 구원이 이루어지는 거지. 그러므로 이 죽음이야말로 나를 구원해주는 신성한 행위이지. 지금 죽음은 은총인 거야. 김 중좌의 바람대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는 거지. 그가 오해한 거였어. 그를 용서해야만 할까? 그러나 육체는 죽음과 함께 파괴되고 죽음에 의해 흩어지겠지만 영혼은 생명의 근원이기에 소멸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의 시, 고결한 영혼이 천국의 환희 혹은 지옥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고뇌하며 쓴 그 시들은 나와 함께 무덤 속에 묻히고 말까, 아니면 오랫동안 살아남아 생생히 기억될 수 있을까? 지금 섬망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억나는 시가 있을까? 짧은 시 한 편이라도……?
그런데, 생의 마지막 순간, 이 엄숙한 순간에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야겠지. 나는 나름대로 時의 길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겠지. 시들에게서 강렬한 혈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지. 그러나 반드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야. 시의 세계는 너무 신비하거든. 감각적 신비의 세계가. 그러니까 지금껏 백지 위에다 일종의 가식의 언어를 늘어놓은 게 아닐까? 완벽한 표현을 위해서 수정하고 또 수정했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 시에는 독자들이, 예리한 평론가들까지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분리시키기가 불가능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던 작품에도 언제나 뭔가 부족했었지. 그 아름다운 시도 그 무엇을 부분적으로만 포착했기 때문에 더 총체적인 완벽성이 필요했던 거야. 완벽성에 관한 한 나는 비타협적이었지. 도저히 관대할 수가 없었던 거야.
내가 시인으로 떠받들어지는 게 부담스러웠고 일종의 무력감 때문에 너무 짜증스러웠지. 작가의 숙명처럼 항상 실패할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초조하고 공허했지. 언제나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 진정한 한 줄. 진실. 그 진실을 썼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나는 끊임없이 의심했어……?
그날 밤, 지상에서 마지막 밤, 가장 잔혹한 밤. ……하늘의 거리를 밤이 걷는다. 시를 뿌리면서…….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결코 다시 쓰지 못할 시들을 생각했다. 비록 나에게 죄가 없다 해도 나는 나를 꾸짖어야 하고,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해도 나는 나를 죄인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내가 여위어서 뼈와 가죽만 남아있으니 이것이 나의 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참혹하도록 명증한 의식 속에서 이 혼란한 세상을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우왕좌왕하며 우유부단하게 살았음을,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 * *
평양 군사법정, 사형선고
이 비망록은 오늘로서 끝이다. 내일부터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 몇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더라면…….
오늘 무슨 일인지 사형이 집행이 되지 않고 이 감방으로 되돌아 왔다. 다만 오늘 재판 과정만은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니까 역사적 흔적을 자세히 남기고 싶다.
엎치락뒤치락하다 아침이 밝아왔다. 오전 9시 30분.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내 감방 문 앞에서 멈춰서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물쇠 속에서 열쇠가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고 귀에 익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제 문이 열렸다.
그때 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암흑 속인 것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땀이 흘러내렸다. 아, 얼마나 두려운가. 그러나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역겨운 광경인가. 왜 그때 구리 반지가 생각났을까. 두 명의 정복을 입은 군인이 어깨에 따발총을 메고 감방 안으로 들어왔고, 두 손에 수갑을 채우자 차갑고 거친 쇠의 감촉이 느껴졌고, 양옆에서 나를 붙잡고 끌고 나갔다. 나는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발이 질질 끌리자 그들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감방 문밖으로 나와 계단들과 긴 복도를 지나왔다.
나는 군사법정에 출두하였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법정에서 있었던 재판 이야기에 앞서 이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다. 그날은 1950년 2월 22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전에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언도 받은 후 그날 오후에 집행되지 않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온 일 말이다. 어쩐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재판이 끝난 후 사형 집행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오전에 재판이 끝나면 오후에 형무소의 집행장에서 바로 집행하는 게 그 즈음 관례였다. 전시 상황이니까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이다. 집행장에서 돌아와 감방 건물로 들어서기 전 눈에 덮인 뜰을 지났다. 약간 추운 날이지만 하늘은 맑다. 아침이면 대동강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는 말끔히 걷혀있다. 조각구름이 북풍에 떠밀려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고 구름을 막 뚫고 나온 태양이 밝게 빛났다. 한 무리 참새 떼가 날아오른다. 나는 굳은 땅속에서부터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를 맡고 그 밀어를 들을 수 있다.
아 아름다운 세상이여. 아름다운…….
그때 호송하는 앳된 얼굴의 하급 전사가 가만히 귀띔을 해주었다.
“오늘 오후에 있을 사형집행은 연기되었디요.”
그 순간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리죽여 울다가 염치불구하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온몸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인가요? 혹시 사면령이라도?”
“나도 모르디요.”
“그럼 언제?”
“모르디오 ,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디요. 총알이 가슴을 뚫어버리겠디요.”
그런 후 나는 정들었던 내 방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렇지. 그렇다니까. 그들은 도대체 뭘 재판하고자 했던가? 누구를?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나에게는 단지 또 하나의 무자비한 시련과 고뇌와 굴욕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죽음의 지연, 일시적 삶의 연장. 아,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한번 태어난 자는 한 번은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여, 너는 흙이다.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 치욕과 눈물과 회환으로 얼룩진 이승을 떠나면 하느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게 될까. 낙원으로 가거라? 연옥으로? 지옥으로?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으니까.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누구인가? 왜 내 인생에 난데없이 불쑥 나타났던가. 잊을 수 없다. 잊고 싶지 않다. 그녀가 눈에 어른거린다. 강렬한 눈길. 그녀가 웃을 때면 그 눈빛이 얼마나 빛났던지. 그때 밤이 깊어갔다. 그녀의 눈이 희미한 등잔불 불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던가. 내가 그녀의 몸을 알고 있었던가. 내 몸이 그녀의 몸을 느끼고 , 피의 온기를 느끼고 ,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가. 내 심장이 요동치며 손바닥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배어 나왔던가. 내 위장과 내장이 뒤틀리고 있었던가. 내가 말없이 그녀의 활짝 핀 얼굴을, 뺨과 입술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가. 서로 몸을 부벼댈 수 있었던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닌 거야? 나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이 순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죽음은 나중 일이야. 아주 먼 훗날일까? 파스칼이 말했었거든…… 인간들이란 자신의 형 집행일을 모른 채 쇠사슬에 묶여있는 사형수들이라고. 욥은 알고 있었지…… 사람은 모태로 내려가게 되어 있고 , 그에게는 주어진 날이 정해져 있고 , 그는 결국 죽어서 소멸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들뜨고 편안한 기분이다. 그랬으니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는 슬펐지만 행복했다. 곧 봄이 찾아올 것이다.
……종달새처럼 분방하게 아침 하늘에 날아오르는 자는 행복하여라…… 이 세상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피어나는 꽃과 소리 없는 것들의 밀어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법정에는 엄숙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면에는 붉은 바탕에 실물보다 더 큰 스탈린과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좌우 벽면에는 흰 바탕에 청봉체 붉은 글씨로 ‘인민의 법원은 인민을 위해 정의를 집행한다.’ ‘인민 만세, 위대한 공화국이여 영원하라.’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고급 장교의 정복을 차려입은 판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온 법정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하였다.
“피고인의 이름은 무엇인가?”
“정지용입니다.”
“생년월일은?”
“1902년 6월 20일 태어났습니다.”
“출생지를 말하시오 .”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입니다.”
“가톨릭 세례명은 무엇인가?”
“세례명은 방지거 또는 프란치스코입니다.”
“창씨 개명을 하였는가? 다른 이름이 있는가?”
“오오유미 오사무입니다.”
“피고인은 시인이요. 자신의 대표시를 말해보시오.”
“내 시 모두가 나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 시들 중에도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을 거 아니오?”
“그렇다면 …… ‘유리창’, ‘오월 소식’, ‘압천’, ‘춘설’, ‘향수’, 등이 생각납니다만 …… 잘 모르겠소.”
“지금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의 재판을 개시한다. 최고검찰소의 검사가 기소한 내용에 의하면, 피고인이 중대한 범죄를 범하였으므로 즉결처분이나 인민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정식재판으로 재판을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은 썩어빠진 낡은 법체계가 아니라 새롭고 혁명적인 공화국의 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낡은 법 원리인 적법 절차니, 죄형법정주의는 결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쓰레기 법 이론은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야 마땅하지. 따라서 판사는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인민과 공화국을 위해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 재판을 할 것이다. 다만 이 재판은 대다수 인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개재판으로 열려야 마땅할 것이나 지금이 준엄한 전시 상황임을 감안하여 비공개로 개정할 것임을 선언한다.
기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피고인은 매국적인 괴뢰정권인 이승만 도당의 역적들과 모의하여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둘째는 인민군의 서울 점령기간 중에는 문화일꾼으로서 전선에 나가 인민군을 격려하라는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에 불복종하고 , 또한 미군의 투항을 권유하는 영어 방송의 신성한 임무도 수행치 아니하는 등 조선민족에 반역한 반동분자였다. 셋째는 피고인은 열렬한 천주교도이면서 영어에 능통한 자로서 미제국주의자의 식민지화 정책에 동조하여 미제의 간첩이 되었는바, 미제의 첩보기관에 제공하기 위해 공화국의 군사, 정치, 문화 사업에 관한 중요한 기밀을 탐지하려고 평양에 잠입하여 간첩으로 활동하였다. 넷째는 일제 시대 일본 국책 문학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간행된 유일한 문예 잡지인 「국민문학」에 일제의 전쟁을 찬양하고 일본 천황을 드높이는 친일시 ‘異土’를 발표했다.
……낳아자란 곳 어디거나 묻힐데를 밀어나가쟈 /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따로짖힌 고양이 미신이리 / 제비도 설산을 넘고 적도직하에 병선이 이랑을 갈제 / 피였다 꽃처럼 지고보면 물에도 무덤은 선다 /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충성과 피로 곻아진 흙에 / 싸흠은 이겨야만 법이요 시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 / 기러기 한형제 높이줄을 맞추고 햇살에 일곱식구 호미날을 세우쟈.
「국민문학」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내선일체’, ‘조선인의 징병 독려’ 등 황국신민화를 목표로 한 잡지였다. 8‧15 광복 후에는 변신하여 좌파 문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이 되었지만 좌우 대립이 극렬해지자 월북을 선택한 문인 동료들과는 달리 전향을 선택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변신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공화국을 배신한 것이다. 다섯째는 피고인에게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통렬히 반성하여 공화국을 위해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였음에도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이는 우리 인민과 위대한 공화국을 감히 모욕하는 패륜적 반역 행위인 것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
공화국의 충성스러운 조사관은 수고스럽게도 피고인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생 역정에서 일어난 모든 주요 행적과 언행을 빠짐없이 조사하였고 , 특별히 피고인이 쓴 모든 시, 수필, 기행문, 논설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였으며, 관련 문서, 증언 등을 취합해서 증거자료를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기소 사실은 검사가 제시한 명명백백한 증거에 의해 완벽하게,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 피고인은 악랄하기 짝이 없는 반민족적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는가? 증거조사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가? 큰 소리로 대답하라!”
“…….”
“다시 말한다. 이의가 없는가?”
“…….”
판사가 엄숙하게 말했다.
“침묵은 금이고 침묵은 명백한 긍정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이 판사가 형을 언도할 차례이다.”
그 소름 끼치는 판사의 말은 꿈처럼 모호하게 나의 귀에 웅성거림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그 판사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 입술이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입은 저주와 거짓, 사악한 속임수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심장이 그 순간 방망이질치고 그 고동 소리가 들린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정지하였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에게 묻겠다. 그대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반평생을 바쳐 숭앙했던 신 말이다. 그 신이 그렇게 갈망했던 구원을 해주었던가? 그 신은 우상이었을 뿐이다. 그대 말처럼 슬픈 우상이었다. 한갓 우상, 어리석은 우상이었단 말이다.”
“…….”
“위대한 공화국은 그대에게 은혜를, 커다란 은혜를 베풀기로 이미 결정하였다. 그대의 우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보내주겠다. 동무에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형법 제63조 조국반역죄, 제64조 간첩죄를 각 적용해서 사형을 언도한다. 사형은 즉시 총살형으로 집행될 것이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준엄한 판사는 금테 안경 너머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그는 거만하고 자부심에 차 있다.
“동무,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다 하시오. 모두 들어줄 것이오. 이 세상에서 하는 마지막 말이 될 것이오. 유언이 될 수도 있소. 최후 진술을 하란 말입니다.”
나는 그때 굽실거리지 않고 당당하였던가.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공화국의 만수무강을 빌지도 않았다. 김일성 만세를 부르지도 않았다. 평안하고 태연해 보이도록 바른 태도를 취했다. 이미 예상했던 만큼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나는 눈부신 미광이 어려 있는 얼굴로 겸허하게 말했다고 믿는다.
“여러분! 부디 여러분이 단죄하고자 하는 매국역적놈의 비참한 말로를 똑똑히 지켜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 게 아니냐고 , 지금 추궁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비를 구걸하지는 않겠소. 무슨 소용이 있겠소. 허수아비는 바람에 나부낄 뿐 아니겠소.
그러나 이 세상을 잘못 산 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겠지요.
나는 오직 시인입니다. 다른 아무것도 아니고 시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미리 예정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단 한 줄, 궁극의 진실을 쓰지는 못했지요. 그건 가장 깊은 비밀, 우주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만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태초에 흙을 빚어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최초로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이토’는 타국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노스탤지어를 그린 서정시란 말입니다. 나는 허울뿐인 사상이나 이념이니 하는 것들을 도대체 알지 못합니다. 젊은이들이 타향에 가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친일파 시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를 오독하고 있습니다. 모욕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니 긴 시를 읊지는 않을 것입니다. 짧은 시를, ‘나비’를. 나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요. 그곳에서 나의 위대한 신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요. 신만이 오직 위대한 분이요.
내가 인제 나비 같이 죽겠기로…… 나비 같이 날라 왔다…… 검정 비단 네 옷 가에 앉았다가…… 창 훤하니 날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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