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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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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신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6-06-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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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덕분에 세계적인 작가가 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에 자주 온다.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이 프랑스이니 베르베르가 오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 교보빌딩 23층에서 90분에 걸친 그의 강연이 있었다.
1994년 첫 방문 이후 올해가 아마 11번째 방문일 것이다.
강연장에는 『개미』를 들고 온 젊은이들이 많았다.
『개미』는 프랑스 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작가의 운명을 바꾼 작품이다.
1991년 알뱅 미셸 출판사에서 초판을 찍었고, 1993년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한국어 번역판 초판을 찍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개미』는 1994년 1월 5일에 나온 초판 32쇄다.
베르베르가 서른 살의 나이에 120번의 개작을 거쳐 내놓은 이 데뷔작은,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 연간 5만 권 정도 팔리는 ‘주목할 만한 신인의 평범한 작품’ 수준이었다.
결코 지금 같은 대히트작이 아니었다.
한국의 한 출판사가 1992년 말 이 책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번역을 결정했는데,
당시 작가가 완전히 무명이었기 때문에 대학가에 다른 재고 도서와 함께 신간 예고지를 직접 돌리는 지독한 마케팅을 펼쳤다.
대학생 및 지식인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고, 전 세계 판매량 약 200만 부 중 절반이 넘는 1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 소식이 프랑스 본국에 전해지면서, 프랑스 언론과 평단이 비로소 이 작품과 베르베르라는 작가를 대대적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한국 독자들이 무명작가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로 밀어 올린 셈이다.
그는 총 31편의 장편소설을 썼는데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한국에서만 100%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베르베르는 자신의 소설을 어떤 장르에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철학소설 혹은 공상철학소설]이라고 답했다.
왜 SF가 아니냐는 물음에 상상력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를 소설로 쓰기 때문이며 판타지는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한 도구라고 답했다.
베르베르에게 판타지적 소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생태주의자인 그는 인구를 줄여서라도 지구와 자연을 보호해야 하며,
우리는 더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좌파다. 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는 건 좌파의 이념이다.
『퀸의 대각선』은 숙적인 두 소녀가 전 세계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삼아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 배후에서 벌이는 평생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개인주의 대 집단(신념)주의의 대결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인류의 역사는 이 두 가지 상반된 가치관의 충돌로 이루어졌다.
진보는 천재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굳건하게 연대하는 집단의 힘이 체제를 전복시키기도 하고 발전시키기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움직이는 체스판 위의 ‘졸’이 개개인일지도 모른다는 통찰을 하게 한다.
니콜의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 세상은 본래 모순투성이야. 가난한 사람들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건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이지.
로베스피에르나 레닌 같은 위대한 혁명가들, 그리고 오늘날 마오쩌둥이나 피델 카스트로 같은 혁명을 이끈 지도자들은
모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그들은 피착취 계급을 단결시켜 착취 계급을 굴복시키게 만들었지…
네가 부유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설 수 없는 것은 아니야. 그럴수록 더더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워야지…-
마르크스는 혁명가나 혁명 지도자보다 더 상류층이었다.
이모부는 세계적인 전자기업 ‘필립스(Philips)’의 창업자 프레더릭 필립스이고,
처가는 본가보다 계급적으로 훨씬 더 높은 최상류층 백작 가문이었다.
그런 그가 왜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인생을 걸었을까?
국외로 추방되고, 너무 가난해서 아픈 아이를 의사에게 데려가지도 못하고, 자본론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을까?
마르크스가 가졌던 인본주의(Humanism)가 나와 내 가족을 넘어 인간 전체의 존엄성을 고민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매슬로우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을 욕구 단계의 최상위에 두었다.
극빈의 상태(생존욕구는 1차, 안전의 욕구는 2차)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조망하거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사유할 만한 정신적·심리적 여유가 없다.
생존 본능이 앞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이니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수많은 ‘졸’들의 고통과 군집 본능(에그레고르)이 혁명에 거대한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그 에너지를 조직하고 방향을 틀어 대각선으로 돌진하게 만드는 ‘퀸(Queen)’의 힘은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의 무대 한 발짝 바깥에서 자라난 천재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는 점이다.
니콜이 믿는 집단 지성은 비판적 사고 없이 선동가나 주류 여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군중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정보를 검증하고, 주체적으로 사유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깨어있는 개인들이 모여
각자의 다양성을 유지한 채 협력할 때 비로소 집단 지성이 발현된다.
깨어있는 시민이야말로 집단 지성을 이루는 가장 건강하고 똑똑한 세포들이다.
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베르베르의 책을 100% 번역해서 출판한 대한민국에서 왜 강남 좌파는 인정받지 못할까?
베르베르의 주장은 수용하면서 우리 이웃을 위해 고뇌하는 조국과 유시민에게는 왜 그렇게 가혹할까?
좌파의 정책을 누리면서 좌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 왜 이렇게나 많을까?
전 국민 건강보험을 최초로 실시한 나라는 쿠바이고,
학교급식의 제도화와 현대 복지 체계 구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주역은 프랑스 공산당이다.
한국에서는 ‘공산당’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전히 금기이자 낙인이지만,
프랑스인들에게 공산당은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고, 노동자와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며,
복지 제도를 감시하는 사회의 유용한 한 축으로 인식된다.
빨갱이라는 낡은 색깔론을 앞세워 사회주의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복지 제도의 단물은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매주 일요일, 국가가 보장한 지하철 무상 교통(사회주의적 복지)을 이용해 교회에 가고,
몸이 아프면 국민건강보험(사회주의적 의료)의 혜택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설교 단상 위 목사의 “빨갱이는 물러가라”는 외침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풍경은 인지부조화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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