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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신
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26-07-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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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서 만든 실사영화 <모아나>가 <백설공주>의 흥행 참패를 만회할 수 있을까?
핵심 정체성인 눈처럼 하얀 피부(Skin as white as snow)를 정면으로 깨뜨리고
라틴계 배우를 캐스팅한 백설공주에 대해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이 거셌던 터라
32,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남태평양 사바이섬과 사모아 제도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여배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결과는? 백설공주보다 나은 작품이긴 했으나 감동하지는 않았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쨍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바다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듯한 회화적 아름다움이
실사 그래픽으로 바뀌면서 생동감이 약화되었고,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를 연기했던 드웨인 존슨이 마우이로 출연했으나
몸집을 부풀린 특수 분장 수트와 가발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목소리만 더빙할 때의 그 유쾌한 매력이 실사 몸짓과 표정에서는 전혀 살아나지 않았고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대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각색이나 깊이 있는 신화적 재해석 없이 원작의 카메라 구도와 대사까지 그대로 복사한 영화를 보는 내내
기술이 감동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신화 자체가 안 먹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대중은 여전히 신화를 좋아한다.
신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신화를 원하는 것이다.
전 세계 흥행수입이 약 22억 6,700만 달러라는 중국 애니메이션 <너자 2>는 매우 중요한 사례다.
2019년 상영된 겨울왕국 2의 흥행수입은 약 14억 5,360만 달러였다.
너자 2는 중국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가족, 성장, 운명, 반항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었다.
이는 신화를 새롭게 이야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은 익숙한 이야기보다 새롭고 진정성 있는 세계관을 찾고 있다.
서양 신화가 주는 피로감도 있다.
동양 고객조차 공주, 왕자, 마녀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보았다.
반면 중국 신화는 전 세계 관객에게 아직 신선하다.
20년 전에는 디즈니가 세계 신화를 만드는 회사였다면,
지금은 중국(너자2의 자오쯔), 일본(귀멸의 칼날의 고토게 코요하루), 인도(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있다.
미국 영화 <아바타> 1편은 판도라라는 새로운 위성을 창조했다.
그런데 2편, 3편으로 갈수록 서사의 놀라움은 줄었다.
새로운 지역을 보여주는 것과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중국의 <너자 2>는 우리가 익히 아는 강태공과 달기가 나오는 고전 봉신연의의 신화를 현대적으로 다시 썼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스스로 바꿀 수 있는가? 라는 아주 오래된 주제를 현대 관객의 언어로 풀어냈다.
토게 코요하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귀멸의 칼날>은 일본 신화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귀(鬼), 업보, 윤회, 조상, 검술, 희생 등 일본적·동양적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관객은 이를 설교가 아니라 캐릭터의 삶을 통해 경험한다.
반면 최근 디즈니 실사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미 성공한 IP(이야기와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자산)와 세계관을 전제로 출발하다 보니
관객은 이 캐릭터가 왜 지금 다시 등장해야 하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1990~2000년대에는 할리우드가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고, 서구 신화와 동화가 세계 표준처럼 소비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관객들은 일본 만화, 한국 드라마, 중국 애니메이션을 함께 소비하며 자랐다.
덕분에 서양 판타지가 더 이상 유일한 판타지가 아니다.
디즈니는 고전을 다시 실사화하지만, 귀멸의 칼날이나 너자 2는 관객에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라는 기대를 준다.
향후의 경쟁력은 누가 더 사실적인 CG를 만드는가보다 관객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누가 설득력 있게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
기술 격차는 줄어들고 있지만, 독창적인 세계관과 인물은 여전히 쉽게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를 미국 기업들이 선도하고 있고 영화 제작 기술이나 글로벌 자본력도 여전히 할리우드가 강하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소비자의 무게중심은 분명히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개봉 → 해외 수출 → 한국 개봉 → TV 방영이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 동시 공개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크런치롤 같은 플랫폼에서는 어느 나라 작품이든 출발선이 같다.
한국 드라마가 브라질에서 동시에 화제가 되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개봉 첫 주부터 흥행하며,
중국 애니메이션도 입소문만 나면 해외 팬층을 만들 수 있다.
예전에는 번역될 가치가 있는 작품만 해외에 갔으나 지금은 거의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평가받는다.
문화도 수출이 아니라 동시 경쟁의 시대가 되었다.
한국의 전통 설화와 무속에는 흥미로운 소재가 많지만, 서사의 규모에서는 중국이나 일본과 차이가 있다.
무속 신화, 바리공주, 단군 신화, 제주 신화 등이 국민적 공통 서사로 계속 소비되지 않았다.
생활문화와의 연결이 없다. 무당이나 굿, 신화를 역사나 민속으로 이해할 뿐 일상적인 문화적 상상력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일본은 신화나 전통을 현대화했고, 인도는 일상 자체이며, 중국은 거대담론화했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은 생활문화에서 대부분을 잃었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서 성공한 것도 신화나 전통 때문이라기보다 사람 때문이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폭싹 속았수다>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을 보면
인간관계와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거대 신화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 계급, 가족, 생존 같은 보편적인 문제를 탁월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인도의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라는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는 대서사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일상의 언어로 소비되고,
중국의 산해경, 봉신연의, 서유기에는 천상계·인간계·명계가 연결되는 거대한 우주론이 있다.
일본의 귀멸의 칼날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도 신사에 가고, 오니(귀)라는 개념을 알고, 칼 문화와 무사 서사에 익숙하며,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신사에 가서 새해 참배(하쓰모데)를 하거나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기원하는 시치고산(七五三) 행사에 참여한다.
한류에 열광할 게 아니라 우리의 신화, 역사, 풍습, 관습을 생활화하지 못하고 멸실한 것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한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너자 2>를 능가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탄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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