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02-703-9837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가입 로그인

소설창작실

  • 자유게시판
  • 소설창작실

소설창작실

오디세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현신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9-16 08:32

본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 12일 만에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어섰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3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고 말한다. 오디세이 종이책 판매량이 늘었을 뿐만아니라 영화를 해설하거나 원전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유튜브도 많다. 관람객의 성별 분포는 스파이더맨과 비슷한데 연령별 분포에서는 20대와 50대 이상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오디세이>는 IMAX(Image Maximum, 1.43:1의 높은 가로세로비, 70mm 필름) 카메라로 전체를 촬영했다. 유튜브에서 젊은 패널이 아시아에는 IMAX 상영관이 없다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고 세대 차이를 실감했다. 과거에는 70mm 필름으로 찍은 영화를 쉽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서울의 대한극장, 단성사, 서울극장, 국도극장, 피카디리 극장, 부산의 부산극장, 부영극장, 제일극장, 동보극장, 대구의 제일극장, 아카데미극장 등 어림잡아도 10개가 넘는다. 서울의 대한극장이 2000년 5월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재건축하기 전 ‘명화 재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마지막 황제,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등을 상영했다.

놀란 감독이 특별한 이유는 IMAX 촬영을 위해 기존의 한계를 깨는 새 장비와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70mm 필름은 프레임 크기가 35mm의 10배에 달한다. 이 거대한 필름을 초당 24프레임의 속도로 압축·진공 흡입하여 모터로 당겨 올려야 하기 때문에 전기톱이나 전기 드릴이 돌아가는 듯한 진동과 소음이 발생한다. 이전까지의 70mm 영화는 소음이 묻히는 야외 씬만 동시녹음할 수 있었다. 놀란 감독과 기술진은 <오디세이>를 찍기 위해 카메라의 기계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아쿠스틱 방음 하우징 케이스(Blimp)를 특수 제작했고, 차세대 카메라 키슬리(Keighley)를 개발해 구동 소음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무게도 줄였다. 배우 얼굴 앞 30cm 거리에서 속삭이는 대사까지도 후시녹음(ADR) 없이 깨끗한 현장 동시녹음으로 담아냄으로써 영화 역사상 최초로 100% IMAX 카메라 촬영 및 동시녹음을 완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런 기술적 발전보다 더 중요한 점은 고전을 해석하는 놀란 감독의 새로운 시선이다. 수많은 전쟁 영화들이 승자의 기쁨을 다룬다. 얼마나 많은 적을 죽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세밀하게 찍는다. 그리고 승자를 환호하며 맞이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놀란 감독은 트로이에서의 학살과 파괴에 괴로워하는 오디세우스를 찍었다. 아테네 신전에서 여신의 조각상인 팔라디온의 목을 자르는 장면과 영화 내내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는 여신의 목이 잘리는 장면이 겹친다. 오디세우스의 얼굴에 비통함과 자괴감이 뒤섞인다. 고통에 가득찬 이 얼굴이 영화 전편에 걸쳐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놀란은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 시네마틱 스펙터클의 껍데기를 씌웠지만, 3시간을 인간의 죄책감과 문명의 몰락을 괴로워하는 중후한 철학극으로 채웠다. 원작의 꾀 많은 영웅의 모험담 대신 트라우마에 짓눌려 방황하는 인물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설정은 흥행에 실패할 위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흥행이 아니라 문명적 메시지를 선택했다. 전작 <오펜하이머>에서 파괴적 기술(원자폭탄)을 개발한 인간의 지독한 죄책감을 다루었다면 <오디세이>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AI와 첨단 기술이 인간의 정신 문명을 위협하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혹은 어디로 귀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문명은 끝났다는 대사가 시대를 깊이 고찰하는 이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준다.

미국 이란 전쟁을 예견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고대의 트로이가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쥐고 있었다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를 쥐고 있다. 미국의 대 이란 정책이나 군사적 압박을 단순히 정의 구현이나 정권 교체로만 보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과 달러 패권, 그리고 핵심 해상 무역로를 미국이 완전히 통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싸움으로 본다. 오디세우스의 극심한 자괴감은 우리가 과연 정의나 명예를 위해 싸웠는가, 아니면 그저 탐욕과 정복을 위해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놀란이 쓴 오디세우스의 대사에서 그의 관점이 확실히 드러난다.

"신들의 뜻이나 황금빛 머릿결의 여인을 되찾는 명분 따위는 잊어라. 아가멤논이 진짜 바라는 것은 헬레스폰투스의 물길이다. 그 해협을 틀어쥔 채 통행세를 걷는 트로이를 무너뜨려야만 동방으로 향하는 무역로 전체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예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시장의 열쇠를 빼앗으러 가는 것이다.“

3,000년 전의 트로이 전쟁이나 현재 진행 중인 미·이란 전쟁이나 본질은 무역로와 자원 패권이라는 완전히 같은 패턴의 반복일 뿐이라고 한다. 세상 자체가 잔인한 전쟁터다. 전장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죄책감과 집으로의 귀향]이라는 놀란의 핵심 주제는 오디세이에서도 계속된다.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잃어버린 집(가족)으로 돌아가려는 인물(인셉션, 인터스텔라)과 자신이 만든 과오와 무거운 책임감에 괴로워하는 인물(다크 나이트, 오펜하이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우리나라가 상영 일수와 인구 대비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람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놀란 감독의 의식을 지배하는 ‘집으로의 귀향’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리라. 가족이 해체됨으로써 우리는 돌아갈 곳을 잃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약 36%)이 미국(약 29%)보다 훨씬 높다. 집은 단순히 벽과 지붕이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추억이 있고, 엄마와 아빠와 나의 사랑이, 나와 아내 혹은 남편과 아이들에 다한 사랑이 담긴 곳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연애도 하지 않으려는 20대 청춘들과 인생을 바쳐서 키운 자식에게서 버려지는 50대 이후 관람객이 많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도리(道理)를 망각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부모 자식 간에, 친구 사이에, 동료와 이웃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인간에게만 있는 개념인 도리. 지나치게 도리를 강조했던 시대도 있었고, 도리를 다하려다 개인의 행복을 포기한 사람도 많았다. 그 시절에 대한 반발 때문에 극단적으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온 건지도 모른다. 목사님도 신부님도 스님도 백 세를 넘긴 철학자도 모두 네가 잘살 궁리만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아들, 딸, 남편, 아내,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갈아 넣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도리를 잊고 개인의 행복에 전력투구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도리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돌아갈 집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놀란 감독이 일생에 걸쳐서 돌아가려고 했던 그 ‘집’은 가족이 있는 집이니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업무시간 : 오전 10시 ~ 오후 4시

사단법인 한국소설가 협회
주소 : 04175)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2, 한신빌딩 1113
전화번호 : 02-703-9837 FAX : 02-703-7055
이메일 : novel2010@naver.com

Copyright © K-novel All Rights Reserved

계좌안내

국민은행 827-01-0340-303 (사)한국소설가협회

농협 069-01-257808 (사)한국소설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