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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버지와 아들」의 작가가 쓴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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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중원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05-0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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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버지와 아들」의 작가가 쓴 뒷이야기

몇 번이고 수십 번쯤 수정 보완한 초고를 올리고 나서, 그때부터 갑자기 걱정이 되고 불안해서 강박에 시달리며 모두 37번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수정하고 보완 수정했다. 잘라 내서 버리기보다는 추가하는 사항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수정의 경우에는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추가하면 할수록 소설의 기본 구조가 어긋나면서 결국 작품성, 정체성까지 손상될 수 있다고 심각하게 의심한다. 어떤 경우에도 소설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데 말이다. 더 이상 보완 수정이 의미가 없거나 더 이상 손질을 가하게 되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져서 헤어나올 길이 없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추구하는 수정주의(Revisionism)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내 소설 속 주제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 스토리 전개를 위한 인과관계의 설정과 내적 논리의 구조에 대한 불만, 욕구, 간극, 생략, 병적인 자기비판이 원인일 수도 있다. 나는 변화를 원한다. 하나의 건조한 주제에 매몰되어 그 주제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우려먹을 순 없다. 주제의 경우에도 변주와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설의 기본이 되는 큰 주제와 스토리 진행의 핵심 부분을 수정해서까지 본질을 훼손하고 변조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수정은 경계해야 한다. 작품의 주체성을 말살하는 지경까지 나아가면 안 되는 것이다. 필요하면 제목까지도 바꿀 수 있지만 말이다.
수정에는 납득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참고자료가 필요하다.
내가 소설을 쓰는 모든 단계는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시행착오의 문제가 아니다. 좋아졌는지 오히려 더 나빠졌는지, 뭐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 무슨 수로 어떻게 해서 완성을 이루어낸단 말인가?
(내가 지금 그 이름을 기억할 순 없지만) 어느 예술가가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작품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런다는 핑계로 추가적으로 수정하고 수정 보완한다. 정말 그럴까?
새로 참고문헌으로 음악 관련 세 권의 두꺼운 책을 샀는데 당연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한지 깨달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음악용어사전」을 샀다.
Storytelling이라는 소설의 본질을 생각하면 소설성이건 문학성이건 간에 혹은 개연성과 핍진성, 필연성이라는 그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수정 보완은 불가피하다고 자신을 달랜다.
그러므로 소설에서 미니멀리즘은 소설성을 파괴하는 절대적인 적이라고 본다. 그건 무능하고 실력 없는 작가들이 자기방어적으로 내뱉는 추악한 변명으로 간주한다.
작가의 의도를 분석해보면 이 소설의 주제 중 하나는 가족애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옛날 독신주의를 고집하던 독일어 교사와 재혼해서 출가한)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인자하고 굳센 할머니는 생명의 기둥이고 마지막 안식처였다.
또한 무명 신인가수들이 을의 입장에서 (마치 무명 소설가와 대형 출판사의 경우처럼) 갑 중의 갑인 음반 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과 계약조건, 계약체결 후 노래의 녹음과 데뷔 앨범의 제작, 발표하는 과정을 빼놓을 수 없었다. (그걸 독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문 기술자인 수사관과 록가수의 대화 장면이 필요했다.
그는 고문 기술자이다. 조사실 (또는 취조실)은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이 미치지 않는 성역이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악랄한 고문을 자행했다.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 신발을 벗겨서 얼굴 머리 때리기, 무수한 발길질과 뺨 때리기, 얼굴에 가래침 뱉기, 몽둥이질, 손바닥 발바닥 등 특정 부위 때리기, 손발톱 사이 찌르기, 손가락 사이 나무 막대기 끼우기, 몽둥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뭉개기, 발가벗긴 몸을 나무 사이에 묶어 대롱대롱 매달기, 로프로 인정사정없이 등을 후려 갈기기, 터진 살갗에 소금물 붓기, 며칠 동안 흰 벽만 쳐다보게 하기, 수건을 얼굴에 씌우고 주전자로 물 붓기, 손발톱 뽑기, 군대식 원산폭격, 통닭구이, 거꾸로 매달기, 비녀 꽂기, 체모 불태우기,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 자극하기, 며칠 동안 잠 안 재우기, 다른 사람들의 고문 소리 듣게 하기, 가족을 데려다가 고문하겠다고 협박하기, 실제 권총을 들이대고 쏴 죽여 버린다고 협박하기, 성기 고문, 물 고문, 고춧가루 고문, 전기 고문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억지 자백을 받아내고 그나마 조서를 자기들 마음대로 조작해서 범인을 만들었다. (이건 국정원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믿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문 기술자도 청소년 시절 한때는 문학청년일 수도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 마니아일 수도 있었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남산 분실의 수사관이 되어 고문 기술자가 된 것이다.
(작곡가이면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가끔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숨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어느 선배 작곡가가 필요했다. 그에게 발라드곡의 진수를 해설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구조는 더욱 단단해지고 언어에 힘이 생기면서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게 되었다.

나는 (그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마술적 리얼리즘도 아니고, 실증주의로부터 유래하는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도 아니고, 극사실주의 hyper-realism도 아니지만)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리얼리즘은 이념이나 사상, 문예 사조로서 그것이 아니라 소설 쓰기에서 하나의 방법 혹은 양식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19세기 중엽 열렬한 자유주의자이고 민주주의자였던 프랑스 화가 구스타프 쿠르베와 오노레 도미에가 선언했던 그런 류의 사실주의인 것이다. (그들은 그 시대의 풍속 관념 현실을, 그러니까 파리의 빈민가와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빈민층 거지, 악덕 변호사, 부패한 정치인들을 주제로 사회의 부도덕성을 풍자하고 고발했다.)
그렇다면 장르를 불문하고 (SF소설이건 판타지 소설을 불문하고) 소설의 가장 기본은 구체적 실재로서 리얼리티 혹은 구체적 진리(konkrete Wahrheit)이다. 그것은 가식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걷어내고 실체적 진실을 내보인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작가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한계를 시험하면서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실패할 수도 있다. 틀림없이 그렇다. 하지만 창작의 결과물보다도 창작의 과정이 중요할 수 있다. 역사학자 앨버트 엘센은 “오늘날 우리가 로댕을 위대한 동시대적 예술가라 생각하는 이유는 작품을 완성하는 능력보다는 작품 행위 자체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일 것이다. 창조의 순간, 최고의 능력이 그의 손 끝으로 분출된다. 인간으로서 로댕의 문제는 불가능한 절대 완벽을 설정한 채 이를 위해 평생을 바쳐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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