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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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던 착한 내 동생[추모합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10-02 09:09
조관선 소설가. 그는 생전 사진을 즐겨 찍지 않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오른쪽은 그의 마지막 소설집 표지 이미지.
■ 추모합니다 - 고 조관선 소설가
벌에 쏘여서 사망하는 경우는 보통 아나필락시스 쇼크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벌 독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신체가 벌 독에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증상이 급격히 나타나는 것이다. 벌에 쏘인 후 두 번째 벌에 쏘였을 때 신체가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 쇼크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쇼크는 급격하게 혈압이 떨어지고, 기도가 좁아지며 호흡 곤란이 일어나는 등 몇 분에서 수십 분 이내에 발생하기 때문에 벌에 쏘인 후 응급 처치가 이뤄졌더라도, 쇼크로 인해 뇌, 심장, 폐 등 주요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고 한다. 추석 성묘 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험성을 왜 널리 홍보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추석 전에 갑자기 소설가 조관선 프란치스코 형제가 이 쇼크로 생명을 잃었다는 비보를 듣고 강원도 동해를 다녀왔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생명처럼 소중했다. 은퇴 나이가 되자 그는 부모님 산소 곁에 작고 소박한 집필실을 짓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우리 집안의 먼 친척 동생뻘이 되는 그를 나는 20대부터 50년 동안 지켜보았다. 왜 한결같이 글쓰기에 매달리느냐고 꼬리를 달면 그는 조용히 웃으면서 “형님, 저는 쓰지 않으면 삶의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냥은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한때 승산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그는 글쓰기가 돈이 되는 것도 이름을 내는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글을 안 쓰면 숨을 잘 쉴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부터 나는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많이 지났다. 변변찮은 여러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그는 강원도 삼척 문협·예총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동해역에서 출발한 서울행 KTX 막차를 타고 오며 텅 빈 객실에 홀로 앉아 어둠 속을 질주하는 차창에 기대어 그를 생각했다. 모두들 그가 온갖 궂은일을 자기 일처럼 돌봤던 사람이었다고,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애석히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낯선 얼굴들이 차창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착한 내 동생 프란치스코가 훤히 웃고 있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닮았다. 그의 아버지. 우리가 늘 ‘삼촌’이라 불렀던 분을 기억한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하신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쩐 영문인지 몰라도 가난한 어부로 숨어 사셨다. 늘 깊고 잔잔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고, 조용하고 과묵하셨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사시는 분 같았다. 어린 나는 그분의 풍모가 언제나 신비로웠다. 큰 키에 두 눈은 형형히 빛났으나 그 빛 뒤에 깊은 슬픔이 짙게 밴 듯했다.
나는 2대에 걸쳐 내 곁에서 살고 간 아버지와 아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 어떤 성취를 삶의 궁극적 관심이나 최고의 목적으로 두고 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 악착같이 발을 딛고 애착의 뿌리를 뻗는 세상 밀착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발은 이 세상에, 또 한 발은 다른 곳에 두고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를 싣고 가는 열차는 태백의 등줄기 대관령 터널을 지나갔다. 어두운 밤 그 어둠 속에 더 깊은 땅속으로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나를 싣고 지나갔다. 기차가 흔들리고 손에 받쳐 든 핸드폰이 흔들리고 나도 흔들렸다. 쇠바퀴의 반복되는 크고 작은 바람의 회전소리가 변할 때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슬픈 물보라가 앞을 가렸다.
고인이 되신 조관선 프란치스코에게.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조광호 신부(강화 동검도채플 주임·유리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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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채문수님의 댓글
채문수 아이피 (203.♡.243.82) 작성일이 글은 조광호 신부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박성규님의 댓글
박성규 아이피 (220.♡.233.147) 작성일
고인을 그리는 애뜻한 추모의 글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광호 신부님의 글을 올려 주신 채문수 상임 이사님께 감사드립니다.

嚴冬花님의 댓글
嚴冬花 아이피 (125.♡.205.233) 작성일고인의명복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