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문 소설집 『낙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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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 서다
경계의 세계에 서다
판형 145/210, 258쪽
가격 15,000원
ISBN 979-11-92828-16-9*03810
발행일 2023년 8월 29일
도서출판 도화
이 소설은
강시문 작가가 펴내는 첫 소설집으로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어른과 아이, 동성과 이성, 현실과 상상 그 경계의 세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세계에서는 어른이지만 아직 잃어버리지 않는 순수함이나, 어른이기에 곧 놓쳐 버릴 것만 같은 연민의 마음이 떠돈다. 그 마음을 품은 세계는 소중하고 슬프고 무서운 현실을 이기는 연대의 힘이 되어 주는데, 소설 ????낙원에 서다????를 시종일관 관통하는 힘이기도 하다.
「먼 여정」은 이국땅에서 남편과 아버지라는 보호막 없이 홀몸으로 세상에 맞서야 하는 여자와 그 아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지연과 규영이 헤어지고 만나는 일련의 과정이 평범하게 읽히지 않는다. 지연과 규영의 삶에 마음을 열어가게 만드는 주변 인물과 사연들은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공들여 만든 장면 전환과 표현은 인상적이다. 소설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는 여럿이지만 이 작품의 인물이 겪고 경험하는 위로와 치유의 과정은 특별히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비의 눈」은 고양이 나비의 눈에 보이는 한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나비의 시선이 인간의 시선이기도 하다. 동물(비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곧 인간의 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비(비인간)가 보내는 실존적 마음의 파동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맺기 가능성의 효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동물의 의인화한 상징과 알레고리로서 인간의 고민을 말하면서, 그들이 도구로서 소모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진 생명으로 존중받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비상」은 사이버 공간이라는 물리적 허구의 세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우리 삶의 중심은 여전히 현실 공간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이버 공간이 주는 시간의 자유, 공간의 확장과 함께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소통에 관한 고민도 담겨있다. 가상 공간에서 특별하게 부각 되는 익명성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집단 속에 매몰된 채 희미해져 가는 개별 존재들의 마음 상태를 증언하고 있다.
표제작인 「낙원에 서다」는 살면서 우리가 처하게 되는 순간을, 숙희·정우·파우스트의 구체적 관계로 조밀하게 채워주면서 우리 삶의 관습적 이해, 선입견을 깨고 심원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낙원 같은 결말을 보여주는 이 작품의 이면에는 주장이 강하고 분명한 인물들의 자기 욕망에 충실한 모습이 들어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갈등하고 의심하고 질문하고 부딪히며 끝내 선택하는, 그런 구체적인 현실이 낙원이라는 것을 뛰어나게 증언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부메랑」의 인물들은 대립하거나 부딪히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발견한다.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각자 삶의 테두리를 감성으로 확장하고, 다양한 공유의 감정을 만든다. 그렇지만 인물들의 얽힌 인연이 사랑으로 확대되거나, 우정으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제목처럼 인생은 부메랑인지도 모른다.
「꿈」은 성소수자의 삶을 화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사실적으로 조망한다. 동성을 사랑하는 인물을 내세운 민감한 이야기이지만, 그 세계에 대해 이해하며 딛고 건널 수 있는 디딤돌을 놓아주고 있다. 소수성적 취향도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의 감정이며 존재이다. 동성이라는 소재에 의존하는 게 아니지만 사랑의 형식이나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작품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연대로 끝까지 서로를 동일시하려는 몸짓이 원형처럼 녹아있는 이 작품은 동성 그 파동의 대상 앞에서 오래 머물며 깊게 보아온 사유를 녹여내고 있다.
「멍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서사를 이끌면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의 모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세계가 강 노인 가족 안의 영역이고 그들만의 소통처럼 보이지만 독자를 구경꾼으로 서 있게 하지 않고 인물의 경험을 체험케 하는 접점이 강렬하다.
「그들의 선택」은 주인공보다도 더 개성 강한 인물들이 등장한 이야기는 다면적이고 풍요롭다. 그들은 자기만의 길을 따라가며 사연을 공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존재의 개인성이 빛난다. 서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인물의 존재감이 부각 되고 있다. 드러난 상처와 감춰진 상처의 의미를 눈에 띄게 제시하면서도, 그 상처의 해석을 독자의 몫으로 돌려 선택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에서 다양하게 독자를 감동시키거나 그만큼 각양각색의 감춰진 상처로 독자를 아프게 만들지만, 차이와 다름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면서 삶의 어려운 모퉁이를 잘 돌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드러난 감춰진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삶 혹은 생존에 대한 최선이라고 작가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탈출」은 한 집안의 몰락을 ‘죽음의 탈출’이라는 극적인 상징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비극적 죽음도 그만큼 감동을 준다. 이야기 중심에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더 큰 것은 가족에의 크나큰 책임감이다. 그래서 목숨을 건 주 여사의 행위 역시 그 자체로는 최선으로 읽힌다. 주 여사는 며느리 경애가 미용실에 간 사이 아들이 좋아하는 국과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면서 농약을 섞어 먹고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 목숨을 바쳐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목숨을 걸어 무언가를 감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상황을 고스란히 살려낸 묘사가 돋보인다. 의도된 죽음은 죽음 이상의 그 무엇으로 유의미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 여사와 아들 영수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재회」 역시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작품이지만 주인공 순애의 기억 속에 가장 생생하게 살아 빛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잃은 순애의 현재를 대등한 서사로 끌어가는 구성이 뛰어나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그것을 이해하기보다는 동일화하려는 순애의 아픔이 너무나 생생하고 절절해서 가슴 아프다. 삶을 뒤흔들어 놓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 이성을 상실하고 무참히 부서지는 순간에도 어머니와 남편,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순애의 마지막 순간이 마음을 크게 일렁이게 한다. 원망과 미움이나 분노와 저주가 아니라 한없는 감사로 마무리하는 이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작품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소설 ????낙원에 서다????에서는 등장인물이 잘하든, 실수하든, 나쁜 길을 선택하든, 전혀 다른 길을 따라가든,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서 최선이라는 확신이 유효하다. 그래서 아프고 애잔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 삶을 함부로 지적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작가의 태도가 남다른 미덕으로 오랫동안 기억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 나름의 삶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그들을 비판과 비난이 아니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각자가 선택한 길을 힘껏 응원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 사회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나눌 수 있는 최선이라는 서사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래서 소설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일련의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나가면서 이야기에 살을 붙여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획득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무리 없이 이야기의 흐름에 감상을 얹고 따라가며 시간의 경계, 사건의 경계 그 세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작가가 무심한 듯 만들어놓은 장면들을 통해 말하지 않는 진실의 언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가 소재로만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통로로 귀결된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의 세계이며, 그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독자들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목차
작가의 말
먼 여정 / 7
나비의 눈 / 33
비상飛上 / 55
낙원에 서다 / 77
부메랑 / 97
꿈 / 119
멍에 / 143
그들의 선택 / 167
탈출 / 191
재회 / 213
본문 속으로
나는 나이가 많다. 엄마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19년이다. 고양이로의 수명이 다한 셈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92살이다. 이제는 빗질을 해주며 나를 어루만져주는 엄마의 손길이 좋다. 가끔 자고 있는 엄마에게 간다. 그윽한 눈길로 바라본다.
“나비 왔어?”
엄마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정겹다. 입맛 없는 내게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건네는 엄마의 모습이 좋다. 깡마른 내 등을 토닥이며 엉킨 털을 손질해준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은 엄마 옆을 나는 뚜벅거리며 자주 찾는다. 이제 곧 나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오줌을 누러 비틀비틀 화장실을 찾는다. 이 걸음도 못 하게 되면 나는 엄마 곁을 떠난다. 엄마와 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왔다.
“엄마, 사랑해요. 고마워요.”
나는 흐려지는 생각을 다듬으며 엄마에게 사랑을 보낸다. (「나비의 눈」)
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한 번만 와 달라고 한다.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휴일을 택해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일바구니를 챙겨 준의 별장으로 향했다.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준과 내가 필연이라면 얽힌 쇠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사랑의 욕구는 받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 이동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라는 배타적 인정 약속은 이성의 약속이라기보다 감정의 약속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상대만 인정하면 된다. 남이 보기에 아무리 못생긴 사람도 내 눈에 안경이 될 수 있는 것은 내 감정이 그 사람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준을 보았을 때 비참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나는 나의 판도라 상자 속에 남아있는 희망을 꺼낸다. 마음이 보약이고 백신이다.(「비상」)
“신지야, 애기 좀 봐, 기저귀 갈아주고.”
“네.”
이층으로 올라간 매장 여주인의 둘째 딸 신지는 아이를 안고 내려왔다. 매장 여주인은 건강이 회복되는가 싶더니 췌장으로 암이 전이되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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