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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장편소설 『해를 품은 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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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소설가협회
댓글 0건 조회 107회 작성일 24-05-14 15: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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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를 품은 천리안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출판사: 문이당

정가 : 15,000원

ISBN : 978-89-7456-550-3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문단에 나왔지만,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평단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성지혜는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 온 장편소설해를 품은 천리안을 출간했다. 작가가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내력을 쓰고자 한 건 오래전부터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세월을 길쌈한 건, 행여 저의 모자란 글이 그분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런 사이 자료를 수집하며 그분을 연모하고 그분을 닮고자 한 공경도 싹을 틔웠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16세기 북부지방 안동에서 권문 세도가의 장녀로 태어난 이경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작가 특유의 미려한 필체로 당시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읽는 재미를 더욱 느끼게 하고 있다.

오래전 이문열의 윗대 할머니 안동장씨의 삶을 형상화한선택은 뜻하지 않은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그 당시의 사회상은 한 여자로서의 삶은 지아비에 순종하고 가문을 지키며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데 헌신하는 안동장씨의 삶이 순종으로 왜곡되어 진보주의자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집안은 고려 충정왕과 공민왕 때 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 조선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용헌공 이원 선생, 구한 말 석주 이상룡 독립운동가 등을 배출한, 우리 민족의 산 역사를 일군 명문가이다. 사람들이 안동을 유학의 산 고장이라 부른 것도, 대저택인 임청각을 비롯한 군자정, 귀래정, 반구정, 어은정이 있기에 더 빛났다는 걸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고성이씨 삼대들이 그 정자들을 마련했기에, 그곳을 드나들던 선비들과 유학자들이 학문을 파고들며 토론하고 연구해 영남학파의 산실이 되었다.

 

고성이씨 할머니 이야기를 어려서 자장가처럼 들었기 때문일까? 소경으로서 눈 뜬 사람보다 훨씬 현명하고 담대하며 솜씨가 좋아서 큰 살림을 다스렸다는 고성이씨 할머니는 우리 겨레의 조상인 웅녀처럼 비상하고 신비로운 인물로 느껴졌었다. 단순히 맑고 초롱초롱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가혹한 운명을 의지력으로 극복한 강인한 여인이 아니라 갈등과 회한에 몸부림하던 끝에 자신의 운명으로 수용하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친족들을 위해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매 순간 조심하고 긴장하며 살았던 여인. 한 여인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이토록 높고 깊음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랴. 그래서 옷깃을 가다듬고 할머니의 자취를 삼가 보듬고 싶다.

ㅡ서지문(고려대 명예교수, 영문학)

 

까마귀가 궁궐마당을 점령해 소란을 피워 임금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는 말을 듣고는 흥분제를 섞은 수수 찰밥을 몇 수레 분을 지어 보내 궁궐마당에 풀도록 해서 까마귀들이 궁궐마당에서 죽지 않고 물고 멀리 날아가 죽도록 했다. 감탄한 선조가 그 지혜로운 부인의 아들이자 임진왜란에서 임해군과 순화군을 구한 신하 서성을 불러서 사돈을 맺자고 했다. 이경의 외아들 약봉 서성이 달성서문의 거목으로 그 가계가 조선 후기에 가장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것은 모자의 공덕과 지혜가 함께 이룩한 것이다. 이경이 한성으로 이주할 당시는 16세기 초였는데 데리고 있던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한양으로 데리고 간 노비들도 노비 문서를 없애고 임금을 받는 하인으로 고용했다. 당시에는 남성도 하기 힘든 통 큰 선구적인 인도주의의 실천이었다. 조선 시대의 세분 현모는 신사임당, 장씨부인,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였다. 앞의 두 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는 덜 알려져 그분의 행적을 형상화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퇴계 선생이 당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던 서해 선생이 23세에 요절해 대구서씨 가문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장님 고성이씨 부인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으로 외아들 약봉 서성 선생이 6도 관찰사와 형조, 병조, 호조, 공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으며, 손주 서경우가 우의정에 올라, 그분이 정경부인으로 추존 되었습니다. 그분은 노비를 해방시킨 선구자입니다. 안동 소호헌에서 청주로, 다시 장정의 길에 올라 한성에 당도해 중씨 댁에서 살며, 새집을 지어 이사한, 맹모삼천을 실천한 현모였습니다. 장애인들과 이웃에게 베풂을 실천한 자선가이며, 고난을 승리로 이끈 개척자입니다. 아들과 손주들을 참 인재로 키운 교육자이며, 앞날을 꿴 의인이었던 것입니다.

ㅡ작가의 말 중에서

 

ㅡ 줄거리

 

16세기 안동에 있는 임청각. 권문 세도가의 장녀로 태어난 이경은 일곱 살 때 사서삼경을 익힐 정도로 총명하고 인물도 빼어났다. 부친 이고는 아들이 없어 재색 겸비한 딸을 명문가의 자제와 혼인시킬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임청각 버금가는 소호헌을 짓고 서당지기 이황의 제자인 서해와 혼인을 약조했지만, 딸의 혼례를 보지 못하고 숨졌다. 그런 연유는 이경이 폐결핵에 걸려 탕약을 마시려는데 여종의 실수로 부자탕이 눈 부위에 쏟아져 장님이 되어 충격을 받아서였다.

서해는 이십 세에 성리학의 귀재로 학계에 알려지고, 이황은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계획이었다. 서해는 이경이 장님이 된 줄 알면서도 형의 반대를 물리치고 혼례를 올렸다. 그들 부부는 소호헌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는 아들을 낳고 지내다 이태만에 서해가 숨졌다. 병명은 심장마비였다.

남편이 갑작스레 숨졌지만, 이경은 부친과 모친의 유산을 받은 재력가였다.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선 안동이 궁벽한 곳이라며 중씨댁이 있는 한성으로 이사를 했다. 그 전에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노자를 넉넉히 안겨준 당찬 여인이었다.

이경은 한성 약현에 대저택을 지을 당시, 기둥이 잘못 놓여졌다고 그걸 바로 놓아 대목들이 경외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외아들 서성을 율곡 문하생으로 보내 학문에 전념케 했다. 그런 사이 이경은 안동 소호헌의 땅을 팔아 집안에 둔 돈궤를 도둑맞은 일이 생겨 술과 약과를 빚어 팔 단안을 내렸다. 유모이며 자신을 돌보는 소들내의 솜씨가 좋아 술과 약과도 잘 팔려 부를 누렸다. 그런 사이 서성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이경은 궁궐에 까마귀 떼가 몰려와 극성부린다는 소문을 듣고 집안의 일꾼들을 시켜 수수찰밥에 흥분제를 섞어 궁궐 뜰에 놓아두게 했다. 까마귀들이 그걸 먹고 달아나 대신들과 선조의 찬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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