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권 소설가 산문집 『내 안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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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140-210 / 330쪽
가격 15,000원
ISBN 979-11-7032-097-5(03810)
발행일 2023년 4월 3일
(사)한국소설가협회
이 책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김춘권 작가의 산문집으로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난 세상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인연을 들려주고 있다. 저자가 한국영화인협회 시나리오 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최금동 작가를 비롯한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 영화배우 장동휘를 비롯한 스타들, 인기 TV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존 인물인 강력계 최중락 반장, 정치인 김영광 국회의원 등과의 일화를 마치 한편의 시나리오처럼 생동감 있게 들려준다. 베스트셀러작가 이관용 소설가와의 사연을 담담하게 회상하는 장면은 애달픈 서글픔으로 다가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업가이기도 한 저자가 사업을 하면서 만난 거래처 사람들, 직원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이다. 특히 쇼디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로 작용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욕망의 분출과 충돌과 좌절, 실패와 영광을 그려내는 이 산문집은 한 시대를 지배하던 순박한 휴머니즘을 다시 불러내려는 작가의 강한 의지와 시선이 느껴진다. 또한 치열한 인물관찰을 통해 뼛속 깊이 도사린 삶의 가치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다중성과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인 욕망 사이의 갈등을 다원화하고 있어 마치 한 시대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입체적이다.
70여 년 넘게 살아오면서 만난 크고 작은 인연을 ‘내 안의 사람’으로 따뜻하게 감싸면서도 한 시대의 첨예한 자화상으로 형상화한 김춘권 작가의 산문집 『내 안의 사람들』은 개인들에게 주어진 특수한 삶의 조건에 특별한 개성을 부여하여 즐거움과 감동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는 산문집이다.
목차
작가의 말
이불에 지도 그린 남자 / 8
꼬장꼬장한 노인 / 21
내 몫까지 부탁해 / 31
아듀 쇼디 / 46
천하의 포도대장 / 60
아름다운 자산 / 72
소탈하신 사장님 / 85
간교한 전무 / 99
욕쟁이 / 114
인간미 넘치는 맏형 / 130
광주 나들이 / 143
황 사장의 약속 / 155
소신의 정치인 / 167
여당권의 맹장 / 181
유기흥 소장님 / 194
요디의 결혼식 / 208
노름빚 탕감 / 233
이사 간 박 사장 / 245
물증 없는 고발인 / 255
믿었던 윤 사장 / 266
눈물의 보헤미안 / 288
우리 선생님 / 299
외상은 소도 잡는다 / 308
귀순 용사 1호 / 321
본문 속으로
나는 공손히 허릴 굽히고 난 후 내 소개를 하자 그는 활짝 웃음을 머금으며 악수를 청한 채로 입술을 움직였다.
「나 최금동이야! 우리 작가협회 한 가족이 된 걸 환영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나는 그의 존함을 듣는 순간 크게 놀란 나머지 내민 그의 손도 잡지 못한 채 멍해 있었다.
내가 시나리오 작가 수업을 하면서 수없이 보아온 많은 영화 속에서 선생님의 존함을 많이 보아왔다. 선생님의 시나리오는 유독 깊이와 무게감이 남달랐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존경심을 금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존함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선생님의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며 화답하는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뿌듯함과 기쁨에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관계로 협회에는 자주 들리진 못했지만 회원들의 애경사나 정기총회 때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참석 이유도 이유였지만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선생님이 언제나처럼 계시는 위원장실엘 갔다.
선생님이 흥분된 어조로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한테 원고 맡기면 늦어진다는 거 모르고 맡겼나? 시나리오가 밀가루 반죽해서 만드는 무슨 물건인 줄 아는 모양인데, 나와의 계약은 없던 거로 하시오. 내 쓰던 원고지는 불쏘시개를 할망정 당신네 영화사엔 팔지 않겠소!」 하며 철컥 수화기를 탁 내려놓았다. (「꼬장꼬장한 노인」 중에서)
한 시대를 고하는 1970년대가 사라지고 극악무도한 무리들이 정권 찬탈을 위해 수많은 민주시민을 참살하고 폭도들이란 누명을 씌워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등장으로 나라의 운명은 거대한 회오리 속으로 휘말리게 되었다.
양심 있는 학자와 불의에 항거하는 언론인들은 언론 정화라는 적반하장의 미명 하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국민이 볼 수 있고 읽을거리인 잡지나 주간지들이 퇴폐문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간 조치되었다.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한 동양TV(TBC)가 문을 닫게 되는 날 고별방송을 위해 가수 이은하가 눈물을 보이지 말라는 규정을 어기고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부르다 솟구치는 감정을 참질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해서 ‘방송 출연 10개월 정지 처분’이란 벌칙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가던 소도 웃고 개도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국장과의 연락 두절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내 몫까지 부탁해」 중에서)
인천 공항은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이 붐볐다.
쇼디의 출국 수속이 완료됨과 함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들어가 봐, 쇼디야!」
나는 꽉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으며 말을 했으나 나도 모르게 울먹임 소리가 나왔다.
「안녕히 계세요, 사장님!」
그 역시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나를 바라본 채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였다.
나는 어서 가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시야가 점점 멀어짐에 따라 그는 몸을 돌려 앞을 보고 걷기 시작하였다. 걸으면서도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하는 듯 손등을 눈에다 갖다 떼고 하는 동작을 반복하더니 어느 틈엔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도 가슴 찡한 허전함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 후 쇼디와 헤어진 첫 크리스마스를 맞는 이브의 밤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듯 하얀 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었다.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란 문자가 날라왔다.
우즈벡의 쇼디로부터 온 문자였다.
국민 대다수가 타 종교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교회를 다니는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의 갸륵한 마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 같아 감사함과 함께 흐뭇한 마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듀 소디」 중에서)
어디 그뿐인가. 늙으신 홀어머니를 둔 범인이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가 동료들과 더불어 박봉을 쪼개고 모금 운동을 벌여 범인이 형량을 마치고 출소하기까지 그의 노모를 돌봐온 사실은 미담 중에 미담이겠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이런 사실이 밖으로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뜻에 의해 손이 근질거려도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석 선배의 말이고 보면, 그는 정녕 낮은 자세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한국 경찰의 자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천하의 포도대장」이란 호칭은 언제 들어도 어색함이 없는 것 같다. (「천하의 포도대장」 중에서)
현재까지 한국영화 액션 영화배우 중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꼽으라는 질문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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