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정 소설집 『꼬리지느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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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청어
ISBN 9791168551541
발행(출시)일자 2023년 06월 01일
정가 16,000원
<작가정보>
저자(글) 최미정
서울 거주. 어린 시절 글을 쓰는 꿈이 있었으나 가족과 일에 집중하느라 순위가 미뤄졌다. 계기가 있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소설 등 여러 문예지에 올린 글을 한 권으로 묶어 발간한다. 새로운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의 말>
검은색 안에는 무지개가 있다
생각과 의식에 조종당하던 육체는 껍질이었을까
허물처럼 남겨진 육체를 바라보며 완전한 자유를 느낀다
이 책은 코로나가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팬더믹이 시작되기 전 나는 시간이 나면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찾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여행은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했다. 내가 군중에 휩쓸려 살아왔다는 것을 안 순간 삶의 모든 것에 그래서? 라는 물음표를 붙였다. 여행했는데 그래서? 돈을 모았는데 그래서? 또는 힘든데 그래서? 열심히 살았는데 그래서? 이 모든 그래서 뒤에 해답을 찾지 못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 같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를 보고 싶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넓고 높은 곳이 필요했다. 높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알프스나 넓은 곳이라 생각했던 몽골의 사막도 좁디좁은 지구의 한 곳에 불과했다. 나는 지구의 어떤 곳에서도 넓음을 보지 못했다. 너무 좁았다. 나는 비행기로 이삼일이면 어디든 도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성에 살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자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된 느낌이었다. 살아가는 일이 허무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무의미하기까지 했다. 그런 감정이 내 안에서 돌멩이처럼 굳어지더니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그 무게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계적인 팬더믹 상황이 사람들을 모두 독방에 가두어 버린 낯선 일이 발생했다. 그 낯선 일이 내 글쓰기의 시작점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길이었다.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일 줄 알았던 내면에 우주가 있었다. 그제야 지구를 바라보며 답답해하던 지난날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거대한 우주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고 싶었던 여행길이 내면에 있다는 사실이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그곳에서 나 자신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자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자, 그제야 삶이 사랑이라는 것과 모든 것이 다 괜찮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다. 현실의 모든 것들 -이전에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심지어 좋다고 분류한 것은 받아들이고 싫다고 생각한 것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들)- 이 모두 다 괜찮은 것이었다. 어떤 형태의 감정이든, 어떤 삶이든, 사랑이고자 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다 완전한 것이었다. 그것을 발견하자 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글로 적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이들에게 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글을 짓는 것은 타작한 마당에 늘어놓은 콩을 고르는 일과 닮아서 끝없이 나오는 벌레 먹은 콩을 손으로 집어내는 것 같은 작업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그 일을 계속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나를 가장 높고 넓은 곳으로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끝으로 나의 모든 일을 도와주고 지지해 준 우리 가족, 또한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옆에서 격려해 주신 선생님, 나와 같은 길을 걸으며 조언과 격려로 힘이 되어주는 필우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목차>
작가의 말 - 5
내게로 온 너 -12
21그램 - 42
그녀의 공간 - 68
자각몽 - 98
꼬리지느러미 -128
루미놀 - 156
스르지에는 바람이 있었다 - 182
해설_소통의 부재, 통합된 자아 찾기_이덕화(소설가, 작가포럼 대표)
<책 속으로>
꼬리 지느러미
*
이삿짐을 거의 다 내렸을 때다.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내 안부를 묻기도 전에 여자의 자살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그녀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야, 괜찮니? 친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들렸다. 오래전에 여자는 신의 가면을 쓰고 내 앞에 나타났었다. 내가 그곳을 떠난 후에 여자의 삶을 추측해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신의 가면을 쓰고 있었으리라. 그러다가 따르던 추종자들과 마찰이 일어났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벗겨지려는 가면을 끝까지 움켜쥔 모양이었다. 그것이 신으로 살았던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와 함께 살던 때가 생각났다. 인터폰으로 호출하면 당연한 듯 십 층으로 올라가 복종하고 살았으니 함께 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친구는 그녀가 사이비 교주 같다고 했다.
“사이비면 돈 뜯는 게 목적이야. 그 여자도 그런 것 아니니?”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이혼 후 받은 위자료 삼분의 이가 이미 그녀에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가 말하기 전에 그녀가 사이비 교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의심이 드는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구멍 난 내 마음을 메워주고 있었으니까. 친구의 계속된 만류에도 나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의 통제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꼈고 상처가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용기가 생겼다.
내가 보육원에 들어온 것은 세 살 무렵이라고 했다. 이름도 생일도 없이 버려진 아이였단다. 이미지. 내 이름을 듣고 사람들은 성이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미지는 그냥 이름일 뿐이다. 너를 처음 봤을 때 눈동자가 너무 예뻤지. 새로 온 아이 하면 가장 먼저 눈동자가 이미지로 그려졌지. 그래서 네 이름이 이미지가 되었단다. 보육원 원장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개가 된 기분이었다. 흰둥이나 까미 같이 보이는 대로 이름 붙여진.
나는 보육원 선생님을 엄마로 알고 자랐다. 여섯 살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달 가까이 엄마를 찾아달라고 울며불며 원장님을 괴롭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 살 때 버려졌던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 있어 다시 버림받을까 봐 그 두려움에 발버둥 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엄마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엄마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렴풋이 뭔가를 깨달았는지 다시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일어났다. 나와 다르게 사는 아이들이 있음을 알아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의 낯선 웃음을 보았다. 그 순간 가슴으로 뭔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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