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꿈, 그리고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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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그리고 환상
현실과 환상 또는 현실과 꿈의 경계 이야기!!
손영목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사실주의 문학인 동시에 환상문학이다.
-장경렬(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이 소설은
손영목 작가의 열세 편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꿈’과 ‘환상’이다. 작중화자의 어릴 적 소망 또는 꿈을 드러내는 자전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인 「환상 여행」을 제외하면, ????꿈, 그리고 환상????은 현실 세계에 환상성이 가미되어 있는 작품, 현실과 꿈 또는 현실과 환상이 교직되어 있는 작품, 현실속의 꿈이나 꿈속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 작품 열두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집이다.
작품의 상당수가 넓게 보아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유형 별로 세분하면 네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몽환적 또는 환상적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 세계의 한 단면을 사실주의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안개의 우수」, 「밀랍인형들의 집」이다. 둘째, 현실의 삶에 환상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작품으로, 「슬픈 인어」, 「용굴」, 「죽음에 관한 명상」이다. 셋째, 현실의 삶에 관한 이야기 속에 ‘정신 현상’으로서의 꿈이 ‘액자 형태’로 삽입된 작품으로, 「잿빛 안개 저편」, 「스틸라이프」, 「백제성에서」이다. 넷째, 현실의 삶이 투영된 꿈이 이른바 ‘정신 현상’의 소재가 되는 작품으로, 「미로에서」, 「고사나목과 광진역」, 「탈출구」, 「종말과 구원에 관하여」가 있다.
「안개의 우수」와 「밀랍인형들의 집」은 현실 세계 안으로 환상적 요소가 유입되고 있다기보다 현실 세계 자체가 환상 세계만큼이나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안개의 우수」는 “짙은 안개 속”에서 한 “여자”와 작중화자인 ‘나’ 사이의 “꿈이나 환상”과도 같은 만남을 소재로 다룬 작품으로, 현실 세계를 감싸고 있는 “짙은 안개”와도 같이 환상적 또는 비현실적 분위기가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밀랍인형들의 집」을 지배하는 것도 환상적 또는 비현실적 분위기이지만, 이는 “짙은 안개”와 같은 것이라기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서 감지되는 썰렁한 냉기와도 같은 것이다. 남자와의 동거 끝에 헤어져 “정신적인 안정에 앞서 생활의 안정이 시급”한 여자, “당장 먹고 자는 문제가 시급”한 “서미영”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직업소개소의 주선으로 일자리를 얻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정상인으로 보이는 인간 또는 인간들이 억누르거나 감추고 있는 병적 심리가 마침내 걷잡을 수 없이 기괴하고 난폭하게 폭발하는 작품이다.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인간의 현실 세계는 환상 세계보다 더 환상적인 것일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용굴」과 「죽음에 관한 명상」과 마찬가지로 「슬픈 인어」의 배경을 이루는 것도 일상적 삶의 현장이다. 「슬픈 인어」에서 작가는 이성에 눈뜰 무렵인 한 소년의 입장에서 “네 살이나 다섯 살 연상”인 이웃집 소녀와의 은밀한 만남을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소녀가 “갑자기 마을에서 종적을 감”추고, 뒤이어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지만,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소년에게 그 소녀가 인어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같은 설정을 통해 환상적 요소가 사실적인 현실 세계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작품이다. 「죽음에 관한 명상」은 한 소년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러던 그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담뱃가게에 다녀”오러 나갔다가 “들판 한가운데”서 “알갱이가 먼지처럼 작으면서도 촘촘하게 밀집해 광휘가 훨씬 뚜렷한 그 노르스름한 빛의 덩이”를 목격하게 된다. 소년은 “도깨비불”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 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덧 담배 심부름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불을 따라잡는 데만 온 정신을 몰두”한다. 이를 따라가다 결국 소년은 죽은 할머니와 만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러면서 ‘도깨비가 없는 세상’ 속으로 도깨비가 존재할 법한 환상 세계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용굴」은 고향마을에 있는 ‘용굴’이 개발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는 소식으로 인해 작중화자가 이에 얽힌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린 그의 주변에는 “나이에 비해 체구가 커서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해 또래 중에서는 왕초”인 “상도”라는 아이가 있다. “그로 말미암은 가장 큰 피해자”는 작중화자인 ‘나’와 ‘나’의 친구인 “윤조”와 “재철”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지긋지긋한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의해 상도를 “용굴에 집어넣자고” 설득한다. 마침내 설득을 당한 두 친구와 함께 ‘나’는 각본에 따라 시도를 하지만 첫 번째는 실패하고 두 번째 “용굴에 들어가 물이 다 찰 때까지 있다가 나오는” 모험을 상도에게 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용굴에 들어간 상도가 나오지 않는다. 실종된 상도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상도가 평상시나 다름없는 생생한 모습으로 나를 불쑥 찾아와 자신이 “용굴의 주인”인 “용”이 되었음을 밝힌다. 상도와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나’는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참한 자신을 눈물로써 자책하는 일뿐”이라는 생각에 몰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작가는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도가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와 대화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꿈속의 환상 체험으로 분장하지 않는다. “엄연한 현실”의 일부인 양 담담하게 서술을 이어갈 뿐이다. 작가는 논리와 합리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신비롭고도 이상야릇한 이야기로, 한국적인 마술적 사실주의를 생생하게 감지케 한다.
「잿빛 안개 저편」, 「스틸라이프」, 「백제성에서」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나름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잿빛 안개 저편」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이로, 이 아이는 학교 가기를 지겨워하고 공부도 하기 싫어한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시험 성적도 나쁘고 드센 아이와 한 바탕 싸움질을 한데다가 청소 당번에 걸려, “우울하고 슬픈 기분으로” 혼자 늦은 귀갓길에 오르면서 서술이 전개된다. 「스틸라이프」의 주인공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는 한 남자로, 아침에서 저녁까지 그의 하루 삶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다. 「백제성에서」의 주인공은 “여행을 황혼녘 삶의 질을 높이는 무슨 필수요건처럼 여기는 안식구”를 거느린 남자로, “안식구”를 따라 중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서 겪은 이야기이다. 이처럼 세 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은 모두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실 속의 평범한 인물의 평범한 삶이다. 그런 그들이 현실의 삶 한가운데서 꾸는 꿈이 현실의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 안에 ‘액자 형태’로 삽입되고 있다. 특히 「백제성에서」는 손영목 작가 특유의 작가적 숨결을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작가 나름의 탐구가 예리하게 나타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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