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바늘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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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해(苦海)를 건너온 여덟 명의 인생 항해기
― 김은호 소설집 『바늘털이』
2021년 『인간과문학』에 단편소설 「바늘털이」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후 2022년 백화점의 입점 시스템과 갑을관계를 파헤친 장편소설 『리모델링』으로 세간의 호평을 받은 김은호 소설가가 첫 번째 소설집 『바늘털이』(달아실 刊)를 펴냈다.
소설집에는 등단작인 「바늘털이」를 비롯하여 「순녀의 두레박」, 「너울」, 「애골, 그 할아버지」, 「복숭아나무 아래」, 「등대 그늘」, 「수색역」, 「봉순 씨의 비 오는 날 출근 분투기」 등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김은호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번 소설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초등학교 문예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이다음에 소설가가 되면 좋겠구나. 그러나 나는 그 말씀을 잊었고 다른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긴 항해를 하다가 내 삶의 배가 항구에 가까워질 무렵에야 어린 시절의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문득 돌아보니 그랬다. 내 삶엔, 그리고 내 주변인들의 삶엔 서사가 유난히 많았다.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처럼 쓴다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늦은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소설집은 나의 두 번째 책이지만 여기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은 모두 첫 번째 책으로 나왔던 장편소설 『리모델링』보다 먼저 썼던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 책의 표제작이자 등단작인 「바늘털이」는 내게 첫사랑 같은 작품이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서사는 실제로 존재했던 이야기들이다. 다만 원석을 가공하여 세팅하듯 새롭게 디자인하고 재구성했을 뿐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말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나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김미옥 문예평론가는 <발문>을 통해 소설가 김은호와 그의 첫 소설집 『바늘털이』를 이렇게 평한다.
“소설가 김은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녀의 소설은 생의 비의를 드러낸다. 그러나 절망이 아닌 희망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첫 장편소설 『리모델링』도 물질 만능의 세상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두 번째 소설집에 등장하는 여덟 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파장의 무지갯빛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생의 결핍은 묘하게 바다 냄새를 풍긴다. 김은호 작가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지점은 고통의 시간마저 그리움으로 순화시키는 데 있다. 지독한 슬픔이 희석되어 아련해질 때 생은 결국 기억이 아니던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을 살아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생존방식을 갖고 있다. 운명의 닫힌 시공간을 사는 이는 자신의 상처를 깊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마치 땅을 파듯 상처를 파는 일이다. 치유의 기회를 놓친 이는 자신의 상처를 핥으며 어둠 속에 산다.
이번 소설집에 특히 주목한 것은 수록된 단편소설 「바늘털이」다. 양식장에서 풀려나온 한국의 야생 무지개송어는 바다를 찾아갈 능력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생존본능의 회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낚싯줄에 끌려와서 마지막에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돌기를 하면서 온 힘을 다하여 바늘을 떼어내고 도망가는” 놈은 바다로 돌아가는 본능을 회복한다. 어떤 인간은 생의 위기를 맞는 순간 무지개송어처럼 잃어버린 생존력을 되찾는다.
과거의 단절을 위해 인연을 외면하는 여자 「순녀의 두레박」,
늘 어긋나는 생을 사는 여자의 선택 「너울」,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외면받는 노년의 사랑 「애골, 그 할아버지」,
버림받는 데 익숙했던 여자의 죽음 「복숭아나무 아래」,
상처를 상처로 치유한 현수의 이야기 「등대 그늘」,
재혼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슬픈 선택 「수색역」,
놓친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독신 여성의 치열한 생존기 「봉순 씨의 비 오는 날 출근 분투기」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고통에 저항한다. 그들은 인생의 행불행은 빛과 그림자처럼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감수성이 서사를 몰아가는 원동력이다. 김은호의 문장은 때로 거친 강물이나 사유는 윤슬로 빛난다.
그의 작품은 다만 보여줄 뿐, 생의 발원지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자유롭다.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사유의 바다다. 김은호의 다음 작품이 벌써 또 보고 싶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2021년 육십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이제 겨우 장편소설 한 권과 소설집 한 권을 낸 새내기 소설가이지만,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삶은 다채롭고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미옥 문예평론가의 말은 되새길 만하다.
“그의 작품은 다만 보여줄 뿐, 생의 발원지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자유롭다.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사유의 바다다. 김은호의 다음 작품이 벌써 또 보고 싶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김미옥)
■ 작가 소개
소설가 김은호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2021년 『인간과문학』에 단편소설 「바늘털이」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22년 백화점의 입점 시스템과 갑을관계를 파헤친 장편소설 『리모델링』을 출간했고, 현재,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 「어머니의 섬」을 출간 준비 중이다. 인간과문학회․한국소설가협회․작가포럼 회원, 문학인신문 서울서부지역 주재기자로 활동 중이다. 동서문학상과 더좋은문학상을 수상했다.
■ 차례
추천사 _ 우리 시대의 소설가, 김은호 │ 김미옥
바늘털이
순녀의 두레박
너울
애골 그 할아버지
복숭아나무 아래
등대 그늘
수색역
봉순 씨의 비 오는 날 출근 분투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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