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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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주인공인 독특하고 기발한 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한글날과 시점을 맞추어 출간되었다
일제로부터 해례본을 지켜낸 국문학자 김태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가 간송에게 넘겨준 해례본과 우리말이 흘러온 시간을
이중 나선구조로 엮은 기상천외한 상상력!
다양한 화법과 다채로운 방식의 추리소설이 교차하는 환상적 서사!
-책 속에서-
주수자의 소설 『소설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서』에는 훈민정음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글이 말을 하는 것이다. 글은 곧 정신이므로, 정신이 전하는 말에는 힘이 있고 한도 있다.
“천태산인天台山人 김태준은 국문학자이고, 학문은 그의 목숨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소진하며 오백 년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내 호적을 찾아 주었다. 그가 그렇게 목숨을 걸지 않았던들, 먼지투성이 고서들 틈에서 꺼내 준 해례본이 아니었던들 나는 천박한 태생으로 전락했으리라.”(12p)
“나에겐 어떤 힘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고 다시 허공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마법이 숨겨져 있었다. 세상을 빚어낼 수도, 살아 있는 존재를 창조해 낼 수도 있었다. 또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담기게 하여 인간을 붙잡아 맬 수도 있었고, 덧없이 흘러가는 것들을 이곳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아, 나는 공기와 같고 대지와 같아, 누구나 나에게서 빛과 같은 생명을 얻을 수 있으리라.”(43p)
훈민정음의 발화 외에도 시신(屍身)의 목을 잘라 그 구조를 들여다보고 자음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자들과 목이 잘린 광대 이팔삼의 혼잣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에 휩싸인 ‘암클’이라 천대받던 언문과 언문 투서 사건, 조선 최초의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파란 눈의 선교사와 그를 따라 언문 번역에 힘썼던 한 여인의 이야기 등이 곳곳에 배치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는 동시에 훈민정음이 목 잘린 광대와 같은 백성들의 힘을 바탕으로 창제되고, 창제된 후에는 암클이라 불렸으나 끈질기게 쓰여지고, 이후 어떤 문자보다 널리 오랫동안 성경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등 ‘살아 있는 글’이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한글의 의미를, 보편성을, 확장성을, 민족성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역사성과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잠들어 있던 국문학자 김태준을 세상 밖으로 밀어 올린, 유일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말-
아마도 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대의 자손은 언어로 만들어진 책이기에, 언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게 확실하다. 또한 선대에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 덕분에 한글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이십여 년을 넘게 타국을 떠돌다 보니 모국어가 느슨해졌다. 먼저 조사(助詞) 느낌이 모호해지고, 슬그머니 정체성이 흔들리고, 나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약해져 영혼이 불안해졌다. 어쩌면 잃어버렸기에 회복하고자 갈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나의 그런 상실에 대한 탐구이자 진심 어린 헌물(獻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클 투서」 허중달 이야기는 유희춘의 『미암일기』 부분에서 빌려와 각색한 것이다. 한편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김태준 이야기는 『김태준 평전』(김용직, 일지사, 2007)을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이 책이 없었다면 이 소설이 태어나지 못했으리라. 따라서 김태준, 박진홍, 이용준, 간송 전형필, 이현상 등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서사 자체는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허구적 상상이다.
드디어 마음속에서 나와 가까이 살고 있던 인물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어 기쁘다. 아니 슬프다. 그러나 깊이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언젠가 마침내 자신의 한 부분이 된다는 그 말을 믿으며 다시 엎드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김태준 국문학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4년 10월
주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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