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잘 가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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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아버지
<책소개>
이미 단편 소설집 『불면 클리닉』과 장편 소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 『매우 불편한 관계』 2권을 출간한 황혜련 작가가 《실천문학》에서 세 번째 장편 소설 『잘 가요 아버지』를 출간했다. 1부 아버지의 집, 2부 아버지의 여자, 3부 잘 가요 아버지, 3부로 구성된 이 장편 소설은 2남 2녀의 막내딸인 화자가 은퇴한 후 치매가 온 아버지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떻게 아버지와 잘 이별할 것인가를 아버지의 삶을 씨줄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날줄로 삼아 담담히 직조해내고 있다.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 때는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받는 수혜가 너무나 당연하다 여겼으나 정작 아버지가 자식의 보호를 받아야 할 때는 당연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소설은 그런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보듯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이면서 다른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치매 간병 소설과 달리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 주는 한 편의 반성문이다.
‘누구나 피해 가고 싶어 하지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치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과연 부모가 처한 치매라는 유령의 시간 앞에서 얼마만큼 담담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며 가족 간 서로 상처 입은 삶을 다독이고 아버지와 잘 이별할 수 있도록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가족 소설이다’는 이순원 작가의 추천사처럼 이 소설은 가족의 치매라는 유령의 시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가족의 치매라는 유령과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가? 묻고 답하고 있는 소설이며, 살아 있는 이별을 묵묵히 견뎌내는 자들을 위한 문학이기도 하다.
<목차>
1부 아버지의 집 009
2부 아버지의 여자 079
3부 잘 가요 아버지 135
작가의 말 210
<책 속에서>
아버지가 또 집에 가자고 졸랐다. 이젠 여기가 아버지 집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때 이른 스프링코트와 전엔 늙어 보인다며 잘 쓰지도 않던 중절모까지 어디서 찾아 쓰고는 방문 앞에 버티고 서서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이쯤 되면 말릴 방도가 없다. 나는 두툼한 패딩 조끼를 꺼내 입고 아버지를 앞세웠다. 아버지는 어느새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다. 나와 아버지가 나서는 걸 주방에서 저녁밥을 짓던 엄마와 큰올케가 빤히 쳐다본다. 이젠 참견하기도 지겨운지 나와 보지도 않는다. 엄마의 끌끌 혀 차는 소리만 주방을 뚫고 간간히 새어 나왔다. 현관을 나서면서 아버지의 스프링코트가 너무 얇다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그러다 말았다. 정신 나간 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히려면 그것도 일이었다. -1부 ‘아버지의 집’에서
여자는 흰 티셔츠에 검정 가디건을 걸치고 출구 쪽을 향해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배낭은 한쪽 어깨에만 걸쳤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 여자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냥 서로를 알아봤다. 여자가 나를 향해 웃었다. 고른 치아가 형광 불빛 아래서 빛났다. 내가 가까이 가자 여자도 한 발 다가왔다.
“저기…”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어서 와요.”
여자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조금 전까지 여자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건 기우였다. 여자의 미소를 보자 금방 편안해졌다. 여자는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보통 체격의 전형적인 몽골 여자 상이었다. 못생긴 건 아니었으나 딱히 예쁘지도 않았다. 얼굴을 살포시 덮고 있는 주름을 걷어낸다 해도 그저 평범한 얼굴일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이 여자를 왜 좋아했을까.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의문은 풀리겠지만 나는 여자가 평범해서 더 호기심이 일었다.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건 아주 흔한 일일 테니까. -2부 ‘아버지의 여자’에서
아버지는 홀가분해 보였다. 온몸에 거미줄처럼 엮여 있던 그 많은 생명줄들을 다 떼어버리고 아버지는 단출하게 누워 있었다. 갈 때는 이렇게 가는 거구나. 올 때처럼 빈손으로. 아버지와의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안치실 직원에 의해 아버지는 다시 깊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분향실로 올라왔다. 분향소엔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상복을 입은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장손인 큰조카를 데리고 나란히 서서 일일이 응대를 하고 있었다. 장조카는 지루한지 간간히 몸을 비틀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고 언니는 복도 의자에 앉아 형부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언니에겐 형부가 있어 다행이었다. 저러려고 결혼을 하는 거겠지. 힘들 때 기대려고 번거로운 아침밥을 해먹이고 같이 자는 거겠지. 나는 강릉엘 오는 내내 고속버스 등받이에 기대어 눈물을 찍어냈다.
-망자의 나이 여든 아홉이면 살만큼 살고 간 거라고, 그러니 호상이라고 했다.
호상이라는 말에 언니의 곡소리가 더 커졌다. 제 부모에 관한 한 호상은 없다. 백 살에 간들 애달프지 않을까.
-3부 ‘잘 가요 아버지’에서
<작가의 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무뎌질 때도 됐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해진다.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 때는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받는 수혜가 너무나 당연하다 여겼으나 정작 아버지가 자식의 보호를 받아야 할 때는 당연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소설은 그런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소설 한 편 헌정하면 그 면구스러움이 상쇄될까 싶었으나 써놓고 보니 오히려 더 누가 된 건 아닌가 염려스럽다.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한 가지 걱정을 하였다. 아버지 얘기를 아버지 허락도 없이 써도 되나. 소설이라지만, 세상에 아버지는 단 한 분, 어떻게 써도 그 영광과 오욕은 오롯이 아버지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시니 검증도 변명도 할 수 없다. 이제 와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건 고약을 발라 다 아문 상처를 다시 헤집는 것이었으나 아버지 얘기는 내가 작가가 된 이상 쓰고 죽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지금이 그 시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도 자꾸만 나이를 먹어간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쓰고 싶어도 못 쓸 것이다. 그리움이 남아 있을 때 붙잡아 놓아야 한다.
아버지 얘기를 하느라 부득불 조연으로 함께 해야 했던 가족들, 이번에는 불가피했음을 이해 바란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도록 마중물이 되어준 강원문화재단과 잘 맞는 옷을 입혀주신 실천문학 윤한룡 대표님, 그리고 그 옷에 날개를 달아주신 이순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인연에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진다.
202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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