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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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 문이당 발행일 : 2024. 5. 27 판형 : 140×210 / 276면 / 값 16,800원 ISBN : 978-89-7456-581-7 03810
지난해 성지혜는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 온 장편소설 『해를 품은 천리안』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16세기 경상도 북부지방 안동에서 권문 세도가의 장녀로 태어난 이경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작가 특유의 미려한 필체로 당시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 이처럼 성지혜 작가는 어려운 출판환경에서도 끝까지 문학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현실과 특히 문학 작품은 더욱 읽지 않는 작금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성지혜 작가는 적어도 일 년에 책 한 권씩 발간하는 작가이다. 그동안 출간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골동품에 관한 작품이나 옛것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그것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는 어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작가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옛것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역사와 자신을 성찰한다.
이번에 출간한 소설집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에서는 인간 본원의 그리움은 인간 존재의 양면성 곧 마음의 깨달음과 몸의 욕망이라는 것을 통합체로 이끈다. 이때 그리움이란 주체가 가지는 창의적인 기능의 일환으로서, 작가는 이러한 속성을 통해 경험적으로 자신을 회복하고 삶 속에 남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느끼게끔 한다. 인간은 몸과 마음을 아울러 갖춘 존재이다. 몸이 시키는 욕망과 마음이 시키는 독자적 출렁임은 서로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소설은 이러한 양면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을 불가피한 존재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의 독자들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거나, 상상적 일탈을 꿈꾸며, 부드럽고 아늑한 교양에 몸을 맡기면서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해 다시 한번 실존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지혜의 「나귀 타고 오신 성자」를 먼저 거론하고 싶은 것은 알레고리 기법으로 오늘의 세태를 풍자한 미학적인 신명 때문이다. 「나귀 타고 오신 성자」의 두 남성 주인공은 신자유주의 사회가 광분하고 있는 출세 가도의 잔혹한 생존경쟁에서 퇴출당한 현대판 돈키호테다. Q와 고주용의 첫 대면은 예수와 어부 베드로의 만남을 연상한다. 나귀 탄 고주용에게 Q가 경이의 시선으로 던진 첫 질문은 ‘차는 얻다 두시고?’라는 우문이었고, 현답은 운전면허 정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수록작품
(아빠 면접 소동, 나귀 타고 오신 성자,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결을 향한 단상)
아빠 면접 소동
엄마의 취향은 뭘까. 상담소를 세 번 옮기고 열두 번이나 맞선 본 뒤라 유리는 지쳤다. 정형외과의사, 학원장, 고교 교장, 영어 번역가, 법무사 등 썩 괜찮은 상대들이다. 그런데도 퇴짜 놓은 구실이 취향 운운이었다. 유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취향과 엄마의 취향이 다른지 사전을 들춰 볼 정도였다. 엄마 마음이 쏠린 상대는 누굴까. 아니면 쏠릴 상대는 또 누구여야 하나. 생각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맞선 본 자리마다 진 여사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딸이 아빠 감을 구해야 한다고 극성부려도 도무지 관심 밖으로 내몰았다. 디오 킴이 진 여사를 마주 대한 건 처음이었다. 얼마나 고자세였으면 맞선 본 자리에 출석 안 하고 유령인간처럼 굴었을까. 그래도 진 여사에게 풍긴 첫인상이 녹록지 않아 중매쟁이로서 긍지를 지녔다.
나귀 타고 오신 성자
「나귀 타고 오신 성자」의 두 남성 주인공은 신자유주의 사회가 광분하고 있는 출세 가도의 잔혹한 생존경쟁에서 퇴출당한 현대판 돈키호테다. 정리해고 당한 Q는 항의 농성을 벌이다 쫓겨 지하에서 8개월 동안 머물다 나온 우리 시대의 여러 ‘을’의 하나인 장삼이사의 전형이다. 초기에는 항의 집회에 백여 명이 모였으나 이런저런 구실과 요령(이기주의의 극치)으로 미꾸라지처럼 다 빠져나가고 종내에는 혼자 남아 지하 생활을 하다 봄이 되자 거리로 나섰다. 회색 차림에 긴 수염, 허리에는 담요를 두른 거지꼴이었다. 그가 거리를 헤매다 만난 게 나귀 탄 사나이 고주용이었다.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
종지기 부친이 여명산 자락에 둥지를 튼 건 위암 말기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섯 살 아들이랑 그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산삼, 더덕, 버섯, 약초들을 캐서 달여 먹이며 아내의 몸보신에 혼신을 쏟았다. 그래도 3개월 시한부 생명의 아내는 딸을 낳고 3년 지나 숨졌다. 종은 공방 앞에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타옥이 먼저 하는 게 새하얀 타월로 종을 닦았다. 타옥도 17세가 되자, 종이 달린 키만큼 자랐다. 타종이 여명산을 떠난 건 보다 나은 내일에 소망 둔 몸부림이였다. 여명산에서의 생활이란 약초를 캐고 텃밭 가꾸며 채소나 과일 기르기의 되풀이였다. 대해를 드나들며 외지의 풍물에 젖고 싶었다.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이 작품은 향수가 아닌 향수병을 좋아한 새미라는 화자의 취향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긴장을 유발하고 독자는 서사에 몰입하게 된다.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에피소드, 향수가 없는 병만을 수집하는 연유, 향수가 만들어진 유래부터 세계의 유명한 향수 등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에피소드를, 씨줄과 날줄의 이야기가 서로 상생하며 서사를 진행한다. 새미의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아 부재시간이 많다. 바람기마저 지닌 남자이다. 남편의 부재와 바람기는 새미로 하여금 무엇에 몰입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 하나의 계기가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암내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새미는 자신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암내로 인해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한다.
결을 향한 단상
이 작품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작가가 여행 수필이 아닌 이야기 형식을 빌어서 소설을 쓴 것은 여행을 통한 자기 탐색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작품의 작중 화자인 다솔의 방랑도 결국 원초적 본능을 찾기 위한 존재의 탐색이라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존재의 탐색을 거쳐 도달한 지점이 지리산이다. 목적은 자연의 합일을 통해 원초적 본능을 유지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원초적 본능은 성적인 것도 포함된다. 결국 성적인 교감을 나누었던 첫사랑과 결혼, 사랑하는 여인과 지리산의 자연을 함께 누리는 것으로 존재를 위한 탐색 여행은 끝이 난다.
성 지 혜
경남 진주 출생.
진주 대곡중학교 수학.
진주여고, 진주교육대학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출간한 작품은 장편소설 『환상의 나비』, 『은가락지를 찾아서』, 『한글의 얼』, 『남강』, 『베다니의 기적』, 『안견』, 『사랑의 묘약』, 『아버지』, 『해를 품은 천리안』이 있으며, 소설집 『옛뜰』, 『까치호랑이』, 『나귀 타고 오신 성자』, 『나무를 향한 예의』,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그리고 그리니 마냥 그리워』등이 있다.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남촌문학상〉을 수상했다.
※ 연락처 : 문이당 편집부 02)927-4990~2 munidang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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