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아이디어 샘
페이지 정보

본문
ISBN 979-11-6115-227-1 | 문예바다 | 2024. 4.10 | 12,000원
책 소개
최문경 소설가의 새로운 장편소설 『아이디어 샘』이 상재되었다.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 대해 당시 심사위원 김선주는 최문경의 소설 『아이디어 샘』은 사고의 치밀성과 정확한 묘사가 마치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한 동양자수를 보는 것과 같은 성실성이 돋보였다.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말하였다.
저자 소개 | 최문경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졸업.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수료.
·1991년 『표현문학』 데뷔. 1999년도 광주매일신문 신춘문예 최인형으로 당선.
·장편소설
1. 『수채화 속의 나그네』
2. 『장마는 끝나지 않았다』
3. 『물한실』
4. 『나 홀로 가는 길』
5. 『귀호곡』
6. 『물, 그리고 돌의 신화』
7. 『붉은 새』
8. 『압구정의 민들레』
9. 『숨어 우는 바람 소리』
10. 『아이디어 샘』
·단편소설집
1. 『파랑새는 있다』
2. 『어머니의 부표』
·2013년 제1회 문예 바다 소설문학상 수상.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 선정.
·2017년 제5회 직지소설문학상 수상.
·2019년 손소희문학상 수상.
•2020년 문학상 3관왕
1. 월탄 박종화 문학상
2. 46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3. 광주문학상 수상(소설)
―계간 『문예바다』 편집위원
―2020년 영호남학술대회 박경리 『토지』, 조정래 『태백산맥』, 이병주 『지리산』 문학 세미나, 이병주 문학 주제 발표
―『광주 문학』(2020년. 3년간)에 소설 계간평 씀
―광주문학상 소설문학상 수상자전집 집필 위원
―2023년 광주문학상 소설 심사위원
―현 (사) 광주문인협회 소설분과 위원장
―현 (사) 한국소설가협회 복지위원
―광주시민 (시보) 7년 연재, 대하 장편소설 『수채화 속의 나그네』 9권 계간 문예 바다에서 출간 예정
본문 속으로
며칠 전, 김세준은 3년 전, 우울증 질환인 연말 병과 인후통을 치료했던 E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의사로부터 1년 만에 연락을 받았다. 의사는 김세준과 유사한 연말 병을 겪는 장애인을 발견, 치료를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의사는 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연구소를 만들어서 치료 중이며, 그를 치료하고자 한다는 말이었다.
김세준은 그 병원에서 몇 차례 우울증 연말 병 치료제를 복용해오다 끊었다.
치료제는, 가족들에 대한 기억들이 의식을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한, 처방전에 쓰인 치료제들이었다.
치료제들은 그의 뇌신경들의 운동 속도를 감소시켰다. 그리고 의지를 통해 기억 간의 연결을 막아, 그것들의 연쇄 때문에 발생하는 의식의 고통을 멈출 수 있게 했었다.
세준은 얼마간은 치료제들 덕분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의 ‘아이디어 샘’에서 많은 기획안이,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가족들의 걱정도 줄었다. 한동안 우울증 질환인 연말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료제들이 예전처럼 고통을 막아내지 못했다.
흥분을 생산하고 감정을 구성하는 데 있어 육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정신은 긴장으로 가득 차, 긴장 그 자체가 우울증이 되어 버렸다.
의식이 뇌 속 기억들이 운동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우울한 감정만을 느끼는 우울증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질환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치료되지 않는 약을 계속 먹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져 의사에게 여러 번 의논했으나 그 연말 병은 진단이 잘 안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인 기억들이 그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그것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의식은 활동을 멈췄고, 하나로 뭉친 감정들은 그의 육체와 정신을 붙들고 뒤흔들었다. 세준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료제들이 필요할 때, 약을 복용하지 못하자, 의식은 고통 그 자체로 변했고, ‘아이디어 샘’은 김세준의 가족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디어 샘』 중에서(15페이지)
의식 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5·18민주화운동 나흘째 되던 날, 아버지는 금남로 동구청 앞에서 D 항공여행사를 하는 당숙에게 직업보증을 서주고, 당숙이 갚지를 못하자, 아버지의 봉급이 압류가 되었다, 그것을 풀어달라고 집을 나섰다가,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동구청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의 모습이 의식을 채웠다. 곧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대한민국 군인이 같은 민족 시민을 총칼로 쏘고, 찌르고, 패는 법은 어디에도 없구먼.”
신군부의 군홧발에 찢기고 터져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를 끌어안고 통곡하시던, 어머니의 처절한 모습 또한 그의 의식을 채웠다.
1980년 5월, 민주항쟁 나흘째 되던 날 오후 1시경 계엄군은, 전남 도청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던 해맑은 어린 소녀를 향해 총을 쏘았다. 소녀가 쓰러진 후에도 계엄군은 조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총알받이가 된 시민들과 소녀. 그 기억 때문에 형은 고시 낙방을 거듭했었다. 세준은 어린 시절 형이 들려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아이디어 샘’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은행원이었던 여동생 순민이 약혼 파혼에 대한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디어 샘은 그런 그의 가족들 기억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체계들을 생산해내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했고, 이에 맞춰 사람들의 의식 또한 끊임없이 변했다. 경험되는 방식이 끊임없이 변했고, 경험이 생산해내는 감정도 끊임없이 변했다. 모든 게 끊임없이 변하는 가운데 어떤 대상들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진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으로 인해 꽉 막혀버린 아이디어 샘은…….
―『아이디어 샘』 중에서(17페이지)
세준의 아버지를, 선량한 광주시민을 짓밟고 상승가도를 내달리던 전모 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큰소리치며 세상 두려운지 모르던 사람이었다.
‘악이 오랫동안 잘 먹고, 잘산다’는 말처럼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이, 5·18민주화운동 때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희생시킨 전두환이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났다.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독재자로서,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며, 김세준의 가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부상자 가족들이 생겼다.
인간 말종이긴 하지만, 죽기 전에 단죄되지 못한, 유족들과 부상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떠나야 했느냐? 고인이라도 묻고 싶었다. 야만의 역사. 끝나지 않은 이 피울음, 끝까지 사죄는 없었다.
(중략)
‘5·18민주화운동’ 때 ‘북한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계엄령이 떨어져서 광주에 배치된 130여 명의 정보과 형사들이 깔려 있었는데, 그 감시망을 뚫고 북한군이 단 1명이라도 들어왔다면, 그 북한군을 붙잡아 사살하였다면 광주의 거리, 골목골목 유인물을 배포해 알렸을 것이고, 전두환 신군부는, 그 치적은 국방사에 있어 길이길이 남을 최고의 자랑거리에, 일선 장병부터 장성급 지휘관까지 그 일로 훈장을 받았을 것이며, 역사에 남을 일이었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
―『아이디어 샘』 중에서(67~70페이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