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까마귀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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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140/210, 286쪽 가격 13,000원 ISBN 979-11-92828-49-7*03810 발행일 2024년 4월 17일 도서출판 도화
이 소설은
<불교신문>·<경상일보> 신춘문예와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산윤 소설가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신춘문예 당선작과 그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10편을 수록하고 있는 『까마귀 서점』에서 작가 시선은 온통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들을 향한 작가의 섬세한 접근은 소외되어 살아가는 그들도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욕망을 지녔고, 욕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가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욕망에 충실한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표제작인 「까마귀 서점」은 아버지로부터 서점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화자와 서점 직원인 길 대리 그리고 그와 판박이처럼 닮은 고등학생 지우의 관계를 숨은 그림처럼 찾아가는 이야기의 조밀한 짜임새, 성급하게 주제를 내보이지 않는 차분한 이미지를 통해 핏줄의 분위기를 혼탁한 세상의 연꽃처럼 깨끗하게 피워내고 있다. 「모카를 위하여」는 주인공 혜주가 삶의 부조리를 ‘모카’라는 반려견을 통해 매우 일상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억압을 사랑으로 정당화하는 슬픈 세태를 집요하게 그려낸다. 「봄」은 몇 년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서, 공부보다는 비트코인 폭락에 밤잠을 설치는 건호는 어머니의 자랑거리에서 어느덧 애물단지가 되어있다. 어느 날 동네 계곡에서 초등학교 친구 지승을 만난다. 이따금 말 울음소리와 피아노 연주 소리가 흘러나오는 동네 산언저리 집에서 사는 그는 장애물 승마선수였는데, 다쳐서 의족을 한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그런 지승이 루시퍼라 부르는 말과 함께 기거하는 집 때문에 도로 연결이 지연되어 동네 부동산 가격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분식점을 하는 건호 엄마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건호는 지승에게 동네 사람들이 나서기 전에 얼른 마방을 불태워버리라고 부추기고, 결국 지승의 집에 불길이 치솟는다. 작품의 안과 밖, 형식과 내용이 인간 면면을 감싸고 있는 기만과 함정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정거장」은 어머니가 다른 병오와 기현이 아버지가 물려준 식용 개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로 ‘정거장’의 상징이 소외된 인물들의 상황 인식과 태도와 예리하게 맞물리면서 끌고 가는 서사의 힘이 돋보인다. 「본래 그 자리」는 신도시 건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준석이 우연히 들른 카페 정원에서 비싸보이는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대출금을 갚아야 할 돈이 필요한 준석은 카페 주인 홍 사장 제안으로 룸메이트인 김과 함께 공사 현장의 소나무를 밀반출하려다가 발각되어 구치소에 갇히지만 벌금을 내고 풀려난다. 며칠 후 홍 사장이 유럽 크루즈여행을 간 사이 그의 친한 형이라는 민 사장이 카페 정원에 있는 고가의 소나무를 깊은 산속 암자 마당으로 옮겨 심은 일을 준석은 김과 도와주면서도 찜찜하다. 민은 그런 그들에게 소나무가 원래 암자 자신의 사부님 것이었는데 홍 사장이 훔쳐 간 것을 본래 그 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라며, 홍 사장의 본업이 장물아비라 신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모두 다른 성격과 외모와 사연을 지녔지만, 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 지점의 형상들이 하나같이 소나무로 회귀하는 각별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키 큰 나무들」은 문화재과를 졸업하고 문화재 유적발굴 용역업체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재산용역을 차린 재희와 상명의 이야기이다. 창업한 그들은 대학 동아리 선배 형수가 던져주는 일거리를 받아 겨우 먹고 산다. 엑스포장 시설관리과에 근무하는 형수가 그들에게 주는 일거리라는 것이, 엑스포장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을 일부러 훼손시켜 복원하는 것인데 수입의 상당량을 중간에서 형수가 가져가는 바람에 벌이가 신통치 않다. 실크로드문화 엑스포 상징 조형물로 보도블록을 까는 일을 맡은 둘은 천리마 형상의 보도블록을 깔려고 노력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결국 상명은 떠나고 재희만 혼자 남는데, 멀리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그를 가만히 지켜본다. 문화재 관련 종사자들의 삶과 더불어 그들 사이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요인들을 적재적소에 표현하여 소외된 현재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터널」은 사립대학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훼손되어가는 우리 공동체의 모습과 결부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기억색」은 고향집 처분을 둘러싼 소재가 뼈대를 이루는 스토리에, 집 뒤 연못에 빠져 숨진 동생 해승을 비롯해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화자인 나의 기억을 고향의 공간으로 촘촘하게 채워가며 주제화하는 문장과 기교가 특별하다. 「티타임대여」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내가 학과 동기 다빈과 함께 ‘나 자신을 대여하는’ 사업을 공동 창업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고독하고 외로운 노인들을 만나 겪는 현장은 지금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런 현장이 지금 우리의 삶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빵」은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해고된 병국의 모습을 밀착 취재한 절절한 영상처럼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면서도, 결말에 그가 이루는 성취를 통해 독자들이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어도 될 용기를 내게 만드는, 금방 만들어진 빵같이 따뜻한 소설이다.
박산윤 작가의 소설 『까마귀 서점』은 사회 곳곳에서 소외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걸고 그들이 맞닥뜨린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 보려고 애쓰는 값진 증언으로 읽힌다. 그의 소설은 삶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의식과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서, 그 과정에서 획득하는 보편성의 감동이 독특한 감각이나 이미지를 통해 현재화되면서 소설의 인물들이 각자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소외된 사람들의 우리 이야기 현장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목차
까마귀 서점 / 7
모카를 위하여/ 31
봄 / 57
정거장 / 87
본래 그 자리 / 117
키 큰 나무들 / 145
터널 / 171
기억색 / 201
티타임대여 / 229
빵 / 259
작가의 말
본문 속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나이하고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거침없는 말투로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우의 모습이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인다. 여름방학 때 티베트로 떠나기로 했어요. 그래서 주말에 등산을 다니며 고산기후 적응 훈련을 하기로 했고요. 말을 하는 지우의 표정이 한껏 들떠 있다. 길 대리가 지우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 이해가 안됐지만, 나는 지우를 와락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지우도 나에게 응석을 부리듯 안겨왔다. 신이 나 있는 지우를 보며 나는 까마귀 두 마리가 새파란 티베트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침 안개가 자옥하다. 청명한 날씨를 예고하는 것 같다. 전봇대에 앉아있는 까마귀가 통유리창 안을 향해 계속 대화를 요청한다. 나는 까마귀를 쳐다보다가 길 대리가 서서 시집을 읽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면에 퍽 박혀있는 거뭇한 물체가 고개를 든다. 고양이를 어깨에 태우고 그가 서가에 기대어 서서 시집을 읽고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그가 있던 자리를 다시 한번 힐긋 돌아본다. -「까마귀 서점」 중에서
내가 혜주와 같이 살게 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때마침 나의 원룸 계약이 끝났고, 그녀 또한 함께 살던 어머니가 지방으로 내려가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혜주는 나를 위해 15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새롭게 인테리어까지 했다. 내가 캐리어 두개를 끌고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집 안에서 도배지의 독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새집증후군에 민감했지만 그녀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괜히 그녀의 기분을 거스를 것까지 없다고 생각했다.
혜주는 자신의 아파트를 새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마다 그럼, 우린 뭐지?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의 말을 옳다고 존중하기로 했다. 물론 아파트의 소유주는 혜주였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들도 그녀의 것이다. 모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와 모카는 혜주의 공간에 이케아 매장에서 구입한 옷장이나 소파와 같았다. DIY가구처럼 그녀가 원하는 형태로 앉거나 눕거나 서 있기만 하면 됐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나의 코가 도배지의 풀 냄새에 무뎌지듯, 나는 곧 혜주가 케어해주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모카를 위하여」 중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시내버스가 병오 앞에서 주춤거리더니 느릿느릿 지나갔다. 병오는 서울에서 택배기사를 하고 있다는 기현에게 매일 전화를 했다. 강아지가 태어났다고, 혼자서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봤다고, 혜인이 누나가 그림을 칭찬했다고, 미용사 자격증을 딴 누나가 기념으로 머리를 깎아줬다고. 매일 자랑을 해도 자랑할 거리가 많았다.
‘올해도 많이 바쁜가봐. 형도 우리가 보고 싶지. 누나가 형도 이 골짜기의 냄새가 그리울 거라고 했어. 난 잊어버릴까봐 형 얼굴 매일 그리고 있어.’
병오는 전화기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승강장 의자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륜 전기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스쿠터 트렁크에 실린 북어포가 몸을 뒤척였다. -「정거장」 중에서
재희와 상명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상명이 블록을 놓으면 재희가 나무망치로 두드려 수평과 아귀를 맞춘다. 래퍼들이 리듬을 타듯 두 사람의 동작이 리듬을 탄다. 상명이 포터트럭에 실린 보도블록 묶음을 내려 포장비닐을 벗긴다. 그 틈새를 이용하여 재희가 생수를 마시고, 다 마신 생수통을 던지며 일어나 허리를 두드린다. 상명이 블록을 현장 가까이에 옮겨쌓는 동안 재희가 밀개로 모래를 편편하게 고른다. 설계도에 그려진 라인을 따라 기존의 보도블록을 제거한 자리에 칼라 블록으로 다시 끼워 넣는 작업방식이다. 바람이 없어 모래가 날리지 않아 작업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 포터트럭의 헤드라이트를 켜서 큰 조명으로 사용하고, 가까이 비추기 위해 헤드랜턴을 머리에 꼈다. 작업하는 그들을 멀리서 보면 꼭 뿔 달린 도깨비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 마감날짜에 맞추려면 몇 밤을 지새워야 할지 모른다. -「키 큰 나무들」 중에서
펜션의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봤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많이 낯설었다. 몇 년 사이 동네 지형 자체가 바뀌었다. 마동의 3층 석탑이 동네 한가운데로 내려와 있었다. 누가 일부러 옮겨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탑 주변이 식당가와 카페, 펜션단지로 완전히 개발이 되었다. 멀리 경주의 남쪽 벌판을 가로 지르는 남천이 보였다. 마을 앞에 흐르던 강은 복개가 되었고, 메인 도로 건너편에 일부 물줄기만 남았다. 그것도 가뭄 탓인지, 야트막한 둑 아래 속살을 다 드러내놓고 누웠다. 복개돼 버린 어머니의 강. 몰래 어머니를 뒤따라 걸으면서 새벽안개 자옥한 강둑에서 발이 미끄러져 물속으로 떨어질까 봐 불안해했던 높다란 강둑이었는데. 그때는 강이 한없이 넓고 깊다고 생각했는데. 복개된 시멘트 틈을 비집고 나오는 기억의 벌레들. -「기억색」 중에서
1년여 만에 제빵사 자격증을 따고 개인 브랜드 빵집을 개업했다. 그러고 유튜브학원에서 동영상 촬영과 편집 과정을 배우고, 여러 번 실습을 했다. 오늘 처음 유튜브에 업 로드할 동영상을 찍는 날이다. 자신의 플랫폼에서 자기가 디자인한 빵 장사를 제대로 해볼 참이다. 병국이 빵 디자인하는 모습을 딸이 캐리커쳐 해 썸네일을 만들었다. 그는 메이크업을 끝내고 제빵사 가운을 입었다. 아이롱 펌도 얼굴과 잘 어울렸다. 머리숱이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며, 미용사가 권했는데, 하기를 잘했다. 거울 앞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는 그에게 아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호흡을 조절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동영상의 제목은 ‘뼝국의 빵 이야기 1편’이다. -「빵」 중에서
작가의 말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나 또한 작품 속에서 함께 살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작품을 쓰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사는 공간은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고 잠시 스쳐가는 곳이 많다. 아니면 아예 외면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면 주류가 아닌 사람들이라 칭할 수 있겠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을 오랫동안 눈여겨보지 않고 시선을 돌리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불편하니까. 즐겁지 않으니까가 답일 것이다.
저자소개
경북 영덕 백석마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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