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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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욱∥메이킹북스∥148*210 ∥228쪽 18,000원 ∥979-11-6791-546-7(03810)
책 소개
중년의 해방일지 -
자신을 담가두던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찾아 가는 여정
『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에 담긴 일곱 편의 단편 속 ‘나’는 모두 중년의 인물이다. 이처럼 ‘나이 듦’이라는 주제가 본 소설집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언뜻 나이 듦과 자유로움은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물학적 신체를 덜어내고 젠더성을 벗어난 자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들의 삶은 자유로워지고 온전해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이 되면서 비로소 자신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김주욱은 각 인물이 처해 있는 삶의 자리를 현실감 있게 그리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중년에 다다른 인물들의 욕망과 결핍은 물론 가장 내밀하고 취약한 내면까지 특유의 잘 벼린 문장으로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래서 ‘쓸모없음의 쓸모’, ‘상실 이후의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여정은 더욱 큰 공감과 설득력을 얻는다.
한편으로 김주욱은 꾸준히 문학과 미술의 융합을 꾀하고 있는 작가다. 양경렬 화가와 함께 작업한 이번 『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역시 기존 소설과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각 단편소설을 재해석한 양경렬 화가의 그림들이 매 소설의 시작을 열고, ‘Naked King’ 시리즈는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출판사 서평
중년의 1인칭 화자가 주를 이루는 일곱 편의 단편 속 ‘나’들은 가진 것 없고,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작가는 중년의 일상을 무대로 그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그들 안의 상처와 슬픔을 산뜻하게 그려낸다. 김주욱은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 나이 듦의 회한에 매몰되지도, 결코 섣부른 낙관을 던지지도 않는 탁월하고 노련한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속 인물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조 속에서 오히려 성별을 벗어나 더없이 가벼운 걸음걸음을 옮겨 나간다.
추천사
중년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 아니, 무엇이 중년을 해방시키는가?
젠더의 구속, 몸의 부자유, 정신의 불구, 관계의 한계… 자유로운 중년이란 이렇게 자신을 가두고 있던 ‘청년’의 시간에서 해방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년의 해방은 무용함의 유용함, 쓸모없음의 자유를 아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나이 듦으로 인한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부정하고 세월에 맞서느라 중년을 소진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고 소설 속 ‘나’들은 저마다의 삶을 통해 역설한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비관과 체념에 사로잡히지도, 어설프게 청년의 패기와 오기를 흉내 내지도 말라고, 그저 자연이 내준 길을 묵묵히 따르는 생체리듬을 익혀 쓸모없음의 자유를 누리라고.
- 임정연(문학평론가, 안양대학교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책 속으로
정육점 식당에서 나오자 때는 이미 저녁나절에 가까워졌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의 누런빛에 반사된 빗방울이 불에 달려드는 나방의 비늘 가루처럼 선배의 어깨에 떨어졌다. 큰길가 호프집으로 걸어가는 선배의 뒷모습이 위태로웠다. 짐을 잔뜩 지고 고개를 오르는 듯했다.
- <구 씨 여인의 부활> 중에서
큰언니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달렸고 양산을 펼친 둘째 언니는 날아오를 것처럼 뛰었다. 나는 언니들의 날갯짓에 몸이 저절로 떠오르는 듯했다. 아마 바람이 바다를 향해 세게 불었다면 우리는 태평양으로 날아갔을지도 몰랐다.
- <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중에서
열차는 아주 천천히 달리면서 레일 마찰 소리를 크게 냈다. 누군가 칼날을 벼리는 소리 같았다. 객실이 흔들렸다. 빨리 달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흔들림이었다. 그녀는 거울 쪽에 붙어 이불을 말아 덮었다. 그는 커튼을 치고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피로가 밀려왔다. 이불을 덮으려고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레일크루즈 패키지여행> 중에서 -
나전칠기로 만든 화장대에서는 언제나 엄마 냄새가 난다. 어머니의 냄새는 간장 조림 냄새지만 엄마의 냄새는 장미향 같은 분 내음이다. 호칭에 따라 추억의 향수가 달라진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상이고 엄마는 찻잎이 우러나는 유리 찻잔에 맺힌 물방울 같다. 엄마를 떠올리며 화장대 앞에서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바람에 날리는 꽃향기 같은 것이 난다.
- <경대 앞에서> 중에서 -
흙빛이 도는 요강은 항상 할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 나를 불러 의지한 채 용변을 보기 위해 힘겹게 요강에 앉았다. 할머니는 내가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제일 먼저 요강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요강은 할머니와 함께 사라져야 하는 존재였다.
- <굽다리 요강> 중에서 -
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다시 주먹을 날리고 배를 때렸다. 나는 민과 함께 꼬꾸라졌다.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이불이 되어 민을 감쌌다. 패거리가 나를 짓밟는 동안 민의 피와 내 피가 바닥을 물들였다.
- <생선 썩은내가 나지 않는 항구> 중에서 -
얼마 전 노조 파업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정 사장이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를 청구했다. 우리의 인력 충원, 비정규직 차별 철폐 주장은 정당했기에 법원을 믿었으나 판사는 이십 년 전의 판례를 들어 정 사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 <불의 정원> 중에서 -
저자 소개
소설가 김주욱
2014년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한 장편소설 『표절』을 시작으로 2015년 아르코 창작 기금 선정 단편소설집 『미노타우로스』, 2016년 경기문화재단 단독출판 선정 중‧단편 소설집 『허물』, 2017년 그림의 이야기와 소설의 이미지가 만나는 단편소설집 『핑크 몬스터』, 2019년 교보문고 eBook 10minute 초단편 오디오북 <오이모독죄> <부드럽고 달콤한 맛> <빨간 유도등> <크리스마스 케이크>, 2020년 화가들의 삶과 대표작품을 재해석한 스마트소설집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 2021년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제주 4‧3 항쟁의 형식적 변주를 담은 장편소설 『물북소리』, 2024년 짧은 파란이 빚어내는 긴 여운을 담은 스마트소설집 『찰나』 등을 펴냈다. 제5회 천강문학상 소설대상, 제23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다.
화가 양경렬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독일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대학교 수료.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4년 독일 함부르크와 중국 베이징을 포함해서 20번의 개인전, 국제아트페어에 40회 다수의 그룹 및 기획 초대전을 열었다.
Isart@hanmail.net
목차
소설가의 말
구씨 여인의 부활
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레일크루즈 패키지여행
경대 앞에서
굽다리 요강
생선 썩은내가 나지 않는 항구
불의 정원
작품 해설
클럽팬텀 <다시 읽는 참사의 후일담>
수록작품 발표지면
화가 소개∣수록 그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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