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홍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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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내게 있어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난 한겨울에 부는 삭풍보다 춘삼월에 부는 봄바람이 더 싫다. 차라리 한파가 더 좋고 나른한 봄날은 죽을 맛이다. 피곤한 봄날은 우울증이 폭발하고 잊고 있던 고질병 쓴뿌리까지 돋아나고 피해의식이 가중된다. 청소년 시절 가장 힘들었던 계절도 3월 신학기 초였다. 중학교 시절, 나는 뒷자리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했다.
“정말 학교 다니기 싫다.”
그러면 친구는 말했다.
“학교 땡땡이 치고 그냥 돌아다니면 안될까?”
감색 교복에 쇠꼬챙이처럼 가는 다리를 드러내 놓은 치마를 입고 등교하기란 죽기보다 싫었다. 온몸에 병을 짊어지고 정신은 너무 혼란하고 공부고 뭐고 다 귀찮았다. 간신히 걸어 학교 다니는데 나쁜 머리 쥐어짜고 공부하느라 더 비감스러웠다.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졸업장은 꼭 따야겠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죽기살기로 다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인생에 있어 졸업장만큼 귀중한 것도 없지 싶었다. 겨우 생명줄을 이어가는데 현실은 언제나 가혹했다. 영양불량으로 얼굴에 버짐이 피고 온몸에 뼈가 휘었다. 특히 봄이 되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강박증이 이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불안 초조 우울증세라는 걸.
나는 어린 나이에 뼈에 심한 통증을 알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이런 내게 입시는 많은 감점 요소가 됐다. 고등학교 입시와 대입시에 반영되는 체력장 점수 20점에 간신히 13점을 받은 것이다. 뛸 수가 없으니 참가 점수만 받았다.
7점이라는 감점을 받고 겨우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학창 시절을 이어 갔다. 몸은 병에 치이고 정신은 혼란해도 내겐 꿈이 있었다. 소설작가였다. 난 자리에 누워서도 책을 읽었고 꿈을 꾸었다. 장래 희망란은 언제나 소설가였다. 교등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작문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백일장 등에서 수상한 적은 한번도 없다. 습작만 할뿐 제대로 된 문학공부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여의도에 있는 대형교회 백일장에서 딱 한번 당선됐다. 세상 살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리둥절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행운보다 불운이 더 많았던 지난날이었다. 이후부터 내게도 시온의 대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수없는 은혜 체험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꿈을 완성했다. 다른 건 불통 일색이었는데 문학 인생만큼은 형통으로 이어졌다고 믿는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복병이 나타나 해코지 당하는 일도 겪었고 전혀 돈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업인 영양사로 복귀해 2년 반 동안이나 소설을 포기하고 살았다.
이후 다시 소설로 회귀했고 때로는 알바로 뛰면서 다시 소설로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올해로 나는 등단 27년 차가 되었다. 30대 말미에 등단해 60대 중반에 들어섰다. 중간에 소설을 포기할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설은 언제나 내 동반자이자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언젠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저 신작가에게는 소설이 남편이다.
내가 등단할 당시만 해도 소설에는 가느다란 희망 같은 것이 보였었다. 그런데 세월이 3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소설은 무용지물처럼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영화에 인터넷에 요즘은 유투브 스마트폰에 밀려 아예 도외시 되어버렸다. 더 심각한 건 AI 인공지능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거의 모든 분야의 직업군조차 잠식해 가면서 예술분야까지 침투해 버린 것이다.
요즘 웬만한 회사는 문서 서류작성을 AI가 대신 한다. 직원들의 급여 정산도 마찬가지다. 단어 몇가지만 던져 주면 AI가 시(詩)도 창작해 준다. 머지 않아 소설도 시나리오도 애니메이션도 AI가 대신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문단에는 인원이 넘쳐나고 있다.
머릿속에 온갖 쓰레기 같은 잡념까지 다 집어넣고 소설에 매진하는 소설가의 경우에는 우울증이 언제 언제고 득달같이 달려들 수 있다. 그럼에도 천직으로 알고 매진하는 작가들이 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닌 천직을 위해 돈을 버는 기괴한 현상까지 감내하면서.
그동안 소설창작으로 인해 잊고 살았던 불안증과 우울증이 올 봄, 갑자기 찾아 왔다. 무기력증과 함께 기도할 힘조차 생기지 않았다. 부정적인 상상이 끊임없이 뇌리를 붙잡고 늘어섰다. 또다시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사순절 기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등단 당시 처음 찾았던 정독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면서 내재 된 활력을 느꼈다. 꿈이 되살아난 것이다. 정독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세월이라는 바람을 타고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럭셔리하고 아티스틱한 분위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잊고 있었던 낭만심리가 되살아나면서 나는 자신에게 외쳤다.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 은혜로.
이번에 내는 소설집 (홍대 앞에서)는 내 24번째 저서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인생은 오로지 소설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온 것 같다. 꿈은 절대로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내세우는 철칙과 같다. 꿈은 삶의 원동력이자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꿈, 34년만에 만나다는 내 자전적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팩트에 허구를 옷입혀 완성한 작품이다. 독자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난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옛꿈에 젖는다. 그 객지를 떠나온 지도 40년이 되었다.
내 20대 중반 잠시 머물렀던 그곳은 천지가 개벽하여 거의 무인도처럼 변해버렸다. 그런데 당시 난 그곳이 나의 소설의 무대가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다. 꿈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장선상에 있다. 두 번째 만남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써진 소설이다. 난 소설작가로서의 내 인생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주신 나의 주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번에도 나의 창작집을 출간해 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동화작가 심혁창님께 감사드리며 독자분들께도 형통한 축복이 이어지길 기도드린다.
본문 속으로
꿈 34년 만에 만나다
이상도 하지. 좋은 기억은 쉽사리 잊혀지는데 나쁜 기억이나 상처받은 기억은 머릿속을 붙잡고 도무지 떠날 줄을 모른다. 상처 위에 기름을 붓고 비아냥거리고 모든 걸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인간을 만났을 때는 더더욱 분노가 거세진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해자에게 관대하다. 가해자에게 인권 운운하는 세상이다.
자식을 때려죽인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얼굴을 마스크와 모자를 뒤집어씌워 인권을 보호한다. 그런 인간에게도 교도 행정은 최대의 배려 정책을 펼친다. 강간범에게는 책임을 묻지도 않은 채 오히려 강간당한 여자에게 원인제공하지 않았냐고 따진다.
얼마 전 극장가에서 상영되었던 영화에서는 그러한 극한 여혐(여성 혐오)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여자를 납치해 윤간한 남자들이 잔인하게 여자를 살해하며 쾌감을 만끽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국내 최고 배우들이 출연한 그 영화는 여혐 논란에 휩싸이다 얼마 안 가 종영하고 말았다. 악을 극대화하고 미워하게 함으로써 심판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여혐이었다.
종교권에서도 여혐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자는 자식을 생산하는 도구이며 쾌락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그런 여자에게 조금이라도 부정한 낌새가 보이면 가족 중의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하는 명예살인 제도가 있다. 국가에서도 눈감아주고 심지어 그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까지 추대하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벌어지는 미투 운동은 여성인권 차원을 벗어나 남혐 현상으로까지 여겨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군부대 내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사건으로 임신한 여자 장교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성희롱도 모자라 강간이라니. 사람의 생각을 다루는 문단에서조차 성폭력 사건이 대두됐는데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 예술 분야, 심지어 정치판으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여자라는 입장에서 당한 것만으로도 충격 그 자체인데 실명으로 나서서 그것을 공개했으니 얼마나 큰 각오와 결단이 있었을까. 남의 일이라고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예전에 내가 대인관계에서 겪은 상처와 어려움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지인(知人)들이 말했었다.
그게 다 니가 부족하고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야. 니가 똑똑하고 빈틈없이 행동했어 봐라 그런 일이 생겼겠나. 사람을 두 번이나 죽이는 말을 그들은 장난처럼 서슴없이 내뱉고 웃었다.
그 말은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으로 남았고 나는 그들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응징하고 복수했다. 가장 잔인한 원수는 내 주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집안에 원수가 있다고. 사람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남의 상처에 대해 쉽게 말하고 용서와 사랑을 외친다. 그런 인간들에게 해 줄 말은 딱 한마디다.
너도 한번 똑같이 당해 봐라.
그런 면에서 볼 때 요즘 벌어지는 미투 운동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갑질 행태를 벗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었다 해서 방관할 일은 아닌 것이다.
창세 이후로 이런 미투 현상이 또 있었을까. 자기가 당한 상처와 피해를 만천하에 공개한 그들은 그동안 얼마나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살았을까.
인터넷에 수시로 떠오르는 미투 고백에 나는 작가로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가며 흥분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법 제도가 있어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 차원이 있었다. 사랑을 책임지는 최소한의 도덕적인 윤리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는 책임은 사라지고 쾌락의 의미만 살아서 각종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민대위 또한 그들과 별다르지 않은가. 여러 여자들의 마음을 두고 감정 게임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 헛된 감정을 두고 사랑이라고 평생을 붙잡고 살았으니, 그럼에도 이 기쁘고 애틋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연하고 기막히고 한심하다.
작가 약력
* 작가 신외숙은 기독교 심리작가로 알려져 있다.
등단 이후 2편의 장편소설과 170편의 중 단편, 에세이, 시나리오를 창작 발표한 바 있으며 주로 심리소설에 천착하고 있다. 일 년간 기독교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온누리 교회 인터넷 방송(www.cgntv.net) 행복토크 ‘책으로 여는 세상’에 출연한 바 있다.
* 순수문학상. 순수 문학상. 만다라문학상. 크리스천 문학 이계절의 우수상 (소설)
스토리 문학관 이 달의 작가로 소설 18번 선정.
2000년 문예진흥 기금 수혜자.
* 저서
장편소설 『여섯 번째 사랑』 (2001년 5월)
『징후』 (2004년 12월)
소설창작집『그리고 사랑에 빼앗긴 자유』 (1999년 11월)
『아스팔트 위의 개구리』 (2001년 3월)
『체크아웃』 (2001년 5월)
『객지의 꿈』 (2010년 5월)
『남의 밭에 물주기』 (2011년 5월)
『악인도 사랑을 꿈꾼다』 (2011년 7월)
『힐링클럽』 (2012년 12월)
『추억이라는 이름』 (2013년 6월)
『신촌네거리』 (2014년 1월)
『리허설』 (2014년 8월)
『돌싱』 (2015년 3월)
『골목길』(2016년 4월)
『어떤 이별』(2018년 4월)
『멜로스릴러 드라마 (2019년 2월)
{연극배우 (2020년 5월)
{무인텔 (2023년 6월)
{꿈, 34년만에 만나다 2024년 4월}
에세이집 『산다는 게 기적입니다』 (2007년 7월)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2010년 7월)
『꿈 한번 꾸고 났더니』 (2017년 3월)
{인공 로봇시대 (2022년 5월)
시나리오 모음집 {솔로를 위한 애가 (2021년 4월)
전 2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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