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련 소설집 『매우 불편한 관계』
페이지 정보

본문
발행일 : 2023년 12월 27일
ISBN : 979-11-92828-39-8*03810
출판사 : 도서출판 도화
페이지 : 190쪽
가 격 : 15,000원
한계상황에 지배받는 인간의 사랑이야기!
1. 책 소개
이 소설은 사랑 얘기이다. 동시에 한계 상황에 지배받는 인간의 얘기이다. 신과 인간, 성과 속, 초월과 욕망이라는 대립항 속에서 세속의 무게를 뛰어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노력이 사랑을 통해 어떤 식으로 굴절되어 나타나 성취 혹은 좌절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시도는 송헌수 다두 신부(神父)를 통해 탐색되어지는데, 사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인간의 오욕칠정에 지배받지 않는 인간 밖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고뇌가 더 클 것이라는 생각에서 착안되었다. 인간과 신의 중간자적 입지에서 오는 정체성의 모호함, 그 안에서 치러야 했던 자기와의 싸움은 예상외로 컸으며 뛰어넘어야 할 벽 또한 높았다. 그 구도자적 삶의 여정에 고향 친구인 윤오와 성당 신자인 보나가 함께 하는데, 우정으로 시작되었던 헌수와 윤오와 보나의 삼각 구도는 그 위에 사랑이라는 옷을 한 겹 더 껴입음으로써 미묘한 관계로 얽힌다. 양보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 같던 그들의 사랑은 정당하지 못한 사랑이라는 데서 오는 죄책감, 틀을 지키려는 자아, 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쉽사리 겉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혼자만의 내분 속에서만 끝없이 소용돌이치다가 끝내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이면서 인간 밖에 서 있어야 하는, 그러나 결국은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한 슬픈 상(像)에 관한 이야기다.
2. 줄거리
작은 바닷가 소읍에서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던 헌수(다두 신부)와 윤오는 성년이 되어 인근의 소도시에서 재회한다. 한 사람은 신부(神父)로 또 한 사람은 교사(敎師)가 되어 만났지만 자라온 환경과 기질이 달랐던 탓에 처음엔 친해지지 못하고 겉돈다. 그러다가 송헌수 신부가 음악교사인 함윤오에게 성가대 지휘를 부탁하는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렇게 1년여를 지낸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송헌수 신부가 새벽 미사를 펑크 내고 잠적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일은 미궁에 빠진 채 새 신부를 맞으며 종결되지만 윤오에겐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는다.
빈농의 가정에서 무식하고 괴팍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헌수는 일찌감치 신부가 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신부로의 길은 잠시 주춤하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헌수는 사제가 된다.
그러나 사제가 되고나서 치러야 할 고통은 더 컸다. 사제가 되면 인간적인 고역에서 놓여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체된 삶과 금기된 생활 속에서 사제의 본분만을 강요할 뿐 헌수가 추구하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인간 속에 풍덩 빠져버림으로써 초월에 이르고자 하나 번번이 인간적인 면에 지배만 받을 뿐 이를 뛰어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다. 그럴 때마다 신에게 의탁해보지만 하느님 역시 그 해답을 쉽게 주지 않는다.
헌수가 사제가 되고나서 맨 처음 정면으로 부딪쳐야 했던 문제는 여자였다. 처음엔 신부라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애써 그 감정의 정체를 외면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 정체가 사랑이라는 걸 알고 빠져나오려 하나 이미 금지된 구역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은 후라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쉬 헤어나질 못한다.
그때 때를 같이하여 헌수의 친구 윤오 역시 헌수가 사랑하고 있는 보나를 사랑하게 된다. 성가대에서 보나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 윤오는 그녀의 사랑만을 갈망하나 윤오의 사랑은 보나에게 가 닿기도 전에 번번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보나의 가슴엔 이미 송헌수 신부가 가득 차있어 윤오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정으로 시작된 헌수와 윤오와 보나의 삼각 구도는 그 위에 사랑이라는 옷을 한 겹 더 껴입음으로써 미묘한 관계로 얽힌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금기된 법규, 정당하지 못한 사랑이라는 데서 오는 죄책감, 틀을 지키려는 자아, 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쉽사리 표현되지 못하고 혼자만의 내분 속에서만 끝없이 소용돌이친다.
그러던 어느 날, 만취한 헌수가 보나의 집을 윤오의 집으로 잘못 알고 찾아가 그곳에서 밤을 보내게 됨으로써 세 사람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헌수는 만취한 상태에서 무의식중에 벌어진 일이라 일의 진위여부를 몰랐으나 보나가 잠적하고, 그녀의 잠적 사유가 임신 때문이며, 그 임신이 헌수 자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헌수는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미 현실은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렸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헌수는 인간에 대한 책임감과 신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사제복을 벗을 결심을 하고 사제관을 나간다.
그리고 잠적해버린 보나를 어렵게 찾아낸 헌수는 다두 신부라는 이름을 버리고 송헌수라는 평상인으로 살고자 작은 바닷가 마을에 둥지를 튼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윤오는 배반당한 우정과 사랑에 오열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그들의 관계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제복을 벗은 헌수는 현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또 다른 파국을 맞는다. 신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믿음이 인간이 파놓은 사소한 현실의 벽 앞에서 너무도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본 헌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초월에 이르고자 자신만의 코드를 선택한다. 성(聖)을 버리고 속(俗)을 취하는 삶에서도 실패한 헌수는 양쪽을 다 버리는 선택을 함으로써 영원히 자유로운 길에 이르고자 한다.
3. 작품 속으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윤오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기 모르게 이럴 줄은 몰랐다. 헌수는 누가 뭐래도 윤오가 가장 친하다고 자부하는 친구였다. 보나는 아직 그녀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했지만 윤오의 전파가 가장 많이 미치고 있는 이성이다. 말하자면 헌수와 보나는 윤오에게 전부라는 얘기다.
물론 그 두 사람이 윤오와 각각 가깝다고 해서 둘이 따로 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헌수가 누구인가. 그는 여자라면 친구로서도 경계해야 할 신부이다.
보나는 또 어떤가.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의 얼굴로 남자는 만나보지도 못한 듯 윤오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꺼렸다. 그런데 두 사람이 윤오 모르게 따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인간은 몇 겹의 베일을 벗겨야 그 본성이 드러나는 걸까? 그 베일이 얼마나 두터웠으면 그렇게 새까맣게 모를 수 있었을까?
윤오는 헌수가 끝까지 교회의 율법을 따를 신부님이라 여겼고, 보나는 지금은 비록 윤오가 그녀의 주변인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남자가 될 거라 스스로 규정지어 놓았었다. 그러니까 윤오는 베일에 싸여진 환상만 보고 그 두 사람을 자기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상식적인 틀에 가둬두었던 것이다. 환상이 사라진 이상 헌수는 좋은 사제가 아니었고 보나도 더 이상 정숙한 여자가 아니다. 본성대로 살아가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책 65쪽)
주방에서부터 은은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다. 그때 헌수는 엉뚱한 상상에 빠졌다. 그녀의 온기가 느껴지는 이 집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그녀가 생선구이 한 밥상을 들어 나르고, 바나나를 까먹으며 트롯프로를 보고, 집 앞 공원에 나가 저녁 산책을 하는, 그닥 행복하다고도 불행하다고도 할 수 없는 딱 그저 그런 평균치의 삶을 사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 이전글김동형 중편소설집 『그 여인의 탄원서』 24.05.14
- 다음글김우남 소설집 『아이 캔 두 이모』 24.05.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