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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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이 책은
『달루에 걸린 직지』로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은 화가이자 소설가인 이경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숨』을 펴냈다. 이 소설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이지만 전쟁을 직접 말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 아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어떻게 화해와 평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박이룡 장군이 사용했던 전설의 검 ‘새우검’을 중심으로 세 개의 시간이 겹쳐지고 교차하는 독특한 구조의 장편소설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조상의 검을 되찾아온 할아버지의 시간,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려 했던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그 검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소설의 화자인 아들의 시간이 하나의 서사로 엮여 나간다.
수백 년 동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설처럼 전해져 온 새우검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가문의 역사이자 기억이며, 세대를 관통해 이어지는 운명의 상징이다. 작가는 세 인물의 서로 다른 시간을 교차시키며 인간이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리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검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삶을 되짚으며 리코와 메이로 이어지는 사랑의 연연을, 주인공 박현성과 일본인 화가 린의 만남을 통해 전쟁과 국경을 넘어선 인간의 인연을 발견하게 만든다.
『숨』은 세대를 이어온 시간의 연결 방식을 혈연이나 역사적 당위성에만 기대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인간 존재의 신비로운 연결을 섬세하게 탐색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남성 서사뿐 아니라 새우검을 둘러싼 리코, 메이, 린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과 감정이 깊이 있게 채색되며 작품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작가는 이 여성 인물들을 통해 ‘소유’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과연 사랑은 소유일 수 있는가.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기억은 한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새우검을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과 집착, 상실과 기다림은 결국 인간이 무엇을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숨』은 역사를 박제된 과거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경 작가는 역사가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작동한다. 소설 속 새우검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실체를 상징한다. 잊힌 줄 알았던 기억은 후손들의 삶 속에서 되살아나고, 끝난 줄 알았던 역사는 또 다른 현재를 만들어낸다.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화가이기도 한 이경 작가의 소설에는 화가와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작업적 배경의 반영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방법과 깊게 맞닿아 있다. 그는 이 세계를 흑백을 넘어서는 수많은 빛과 그림자, 명암과 결이 공존하는 고유한 색채로 바라본다. 장편소설 『숨』에서도 이러한 화가의 감각은 곳곳에서 빛난다. 작가는 언어만으로 온전히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떨림과 역사의 기억이 남기는 미세한 흔적들을 마치 화폭 위에 색을 덧입히듯 섬세하게 터치한다. 남성들의 침묵과 시선, 여성들의 설명할 수 없는 끌림과 상실의 감각을 하나의 색채와 질감의 선명한 서사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그림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각하게 만드는 또하나의 언어다. 『숨』이 세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사랑과 기억의 서사를 다루면서도 묵직한철학적 사유와 서정성을 잃지 않은 것은 작가 특유의 화가적 시선 덕분이다. 작가는 언어가 닿지 못하는 지점을 색채의 감각으로 확장하며 『숨』의 인간과 인연의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풍부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숨』 역시 이러한 주제를 함축한다. 작가는 ‘숨’을 단순한 생명의 유지 수단이 아닌 존재를 이어가는 가장 근원적인 움직임으로 바라본다. 소설 속 숨은 끝이 아니라 계속되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며,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과 사랑, 역사와 운명의 다른 이름이다. 치열한 역사소설의 긴장감과 깊이 있는 인간 탐구, 그리고 세대를 관통하는 서정성이 어우러진 『숨』은 역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이경 작가는 독자들에게 조용하지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우리가 지금 쉬고 있는 이 숨은 과연 누구의 시간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인가?”
『숨』은 역사의 무게와 인간의 운명을 함께 끌어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독자 곁에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스며든다.
<작가의 말>
나는 오래도록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써왔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남아 우리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왔다.
『숨』은 그 믿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한 자루의 검, ‘새우검’이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한 번 끊어진 인연이 세대를 건너 다시 이어지고,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지, 나는 그 흐름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세 개의 시간이 겹쳐져 있다.
검을 되찾아온 할아버지의 시간, 그것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의심하는 아들의 시간들이다.
나는 그 연결의 방식에 오랫동안 주목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리코와 메이 그리고 린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존재 또한 그러한 연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숨』을 쓰는 동안, ‘소유’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검은 누구의 것인가. 가문에 속한 것인가, 역사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개인의 것인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작동한다고.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숨’이라는 단어를 남겼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계속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것은 아마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6년 5월
작약꽃이 ‘숨’처럼 터진 그 밤에….
<추천의 글>
이 소설은 그 보이지 않는 숨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되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기억인가, 사랑인가, 관계인가.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결국 숨뿐이다. 그래서 『숨』은 생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붕괴 속에서도 이어지는 존재의 증거다.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것, 그 미약하고도 집요한 지속-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말하는 ‘숨’이다.
-연용흠(소설가)
이 소설에는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 다양한 서사가 숨바꼭질하며 얽히고설켜서 나아간다. 시대의 굴절된 세상사를 다층적 접근하여 <생로병사>까지 파고든다. 또한 감정의 지뢰를 요소요소에 매설하고 터트려, 긴 소설의 여정을 빠른 속도로 전개하니 읽는 맛이 있다. 더구나 유물인 새우검을 조상들과 관통시켜 현실로 끌어낸 마술적 착상조차 자연스럽다. 이는 솜씨 있게 축약과 확장을 넘나드는 좋은 소설의 진가가 드러난 것일 터.
공유된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서 삶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행복이 순식간에 불행으로 바뀌는 일은 생각의 같음과 다름에서 온다. 인간의 유전자가 우주의 내막을 측정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자의 파생된 기억은 죽었던 인물들과의 소통을 염원한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타인의 주검에서 우리의 죽음을 엿보는 위기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숨에서 ‘숨’이란, 꺼지지 않은 지금을 일컫는다.
그래서 주술사가 된 작가는, 욕망과 슬픔을 서사의 옷자락으로 휘감아 환영을 불러낸다. 작가의 씻김굿으로 말미암아 <새우검>의 주인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최성배(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
무엇보다 이경 작가의 문장은 독특하다. 화가이기도 한 작가는 언어를 붓처럼 사용한다. 인물들의 침묵과 상처, 시대의 냄새와 스러져가는 숨결까지도 색채처럼 번져 나온다. 장면마다 스며 있는 빛과 어둠, 회색의 감각은 독자로 하여금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한 폭의 거대한 그림 속을 걸어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김성달(소설가^한국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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