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나 소설집 『메르쿠리우스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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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쿠리우스의 달』은 신수나 소설 특유의 환상적이고 철학적인 아우라로 ‘자아’ 탐색을 심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수나(소설가·나의 MBTI가 궁금하단 마리몽의 저자)-
판형 135/195, 216쪽
가격 13,000원
ISBN 979-11-92828-36-7*03810
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도서출판 도화
이 소설은
이 소설은 신소나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삶의 구체성과 시공간의 메타성이 세련되게 정련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깊고 넓은 성찰과 사유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새를 부검하다」는 20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은 남자와 그의 죽음을 수사하는 형사의 삶을 알을 포란 중인 수리부엉이의 행태와 대비하면서 현대인이 안고 있는 고독과 절망을 다층적으로 그리고 있다.
「메르쿠리우스의 달」은 조개껍데기로 조각상을 만드는 조각가 남자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외로운 영혼으로서의 자기애를 입체적으로 나타내어 마치 모래사장 그늘 속 햇빛을 받은 하얀 조개껍데기처럼 신비롭게 반짝인다.
「가오나시의 알」은 늦둥이로 태어난 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괴물 가오나시, 식욕을 주체할 수 없어 틈만 나면 할인매장에 달려가 냉장고를 채울 식료품을 마구 사들이는 여자, 주식에 빠진 남편, 그들의 모습을 통해 처음엔 눈에 잘 띄지도 않던 작은 실금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빠르게 뻗어 나가고 있는 뷸안한 우리 삶의 현장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에코리더」는 환경단체에서 일하면서 진짜 에코리더가 되기 위해 폐건전지 수거에 집중하는 영인과, 직장에서 팀장과 거래처 직원의 수상쩍은 거래를 우연히 지켜본 딸이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후 삶의 균형을 잃은 나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감당해야 할 개인 인생의 에너지 총량은 얼마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씨드 스프레이」는 대기업 임원으로 있다가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간 아들과 어머니의 갈등과 가족의 사연을 화자인 딸의 시선으로 차분하게 풀어놓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몇 번이나 미국행을 권유하지만 딱 잘라 거절한다. 하지만 딸은 어머니를 미국으로 보내기로 하고 생각 끝에 12인승 밴을 렌트해 가족들 서부여행 일정을 잡는다. 이삿짐처럼 많은 짐을 차에 싣고 출발한 밴이 서부를 지나자 “세상에 땅도, 땅도 넓다. 이 많은 땅을 놀리고 아깝다.” 하며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고 타령을 하던 어머니는 인디언 마을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자본주의 마지막 세포 단위인 가족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가족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밖에 없는가,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각별하다.
「락LocK」은 도어락에서 울린 경고음이 울리면서 현관문이 잠기지 않은 현장과 뛰어놀 아이도 없는 집인데도 아래층에서 층간소음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는 항의를 받는 화자의 불안한 심리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복도 등의 묘사로 긴박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실존의 공간에 틈입한 우발적이고 사소한 소리 하나가 자칫 일상의 파국, 그 빌미가 된다는 플롯을 배면 서사로 잘 깔아둔 소설이다.
「안전지대에 초록 불은 없다」 복지관 댄스 교실의 유명인사 K는 트럭을 몰고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이불 장사를 하는데 전직 택시기사였다. 그가 15년 동안 장롱면허였던 내가 운전을 해보고 싶어 운전대를 잡은 첫날 남의 차를 긁어 십만 원에 합의를 한 내 사연을 듣고는 운전을 가르쳐준다, 그후 나는 남의 손을 잡는 것이 부담스러워 댄스 교실을 관두었고 몇 개월 뒤 단기 상가에 깔세로 들어와 이불을 팔고 있는 K를 다시 만났다. 그 후 그이 가게를 몇 번 드나들면서 그렇고 그런 그녀의 가정사를 알게 되었고, 어느 날 그녀가 사이비 종교단체 광고 전단지를 봉투에 넣고 있는 것을 본 후 가장 나약한 사람들이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K가 교통사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주변에서 소리도 없이 배제되고 있는 작중 인물을 통해 현실의 상징과 알레고리로 읽히는 구분의 서사가 뛰어나게 읽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신소나 작가의 소설집 『메르쿠리우스의 달』은 서사 전개 중심축을 우리 삶에서 은폐된 사실들을 표층으로 끌어올려서 생기는 사건과 심리를 극도의 긴장감을 바탕으로 환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형상화 과정을 통해 인간 삶과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기초 위에 축조되어 있는가를 값지게 증언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새를 부검하다
메르쿠리우스의 달
가오나시의 알
에코리더
씨드 스프레이
락Lock
안전지대에 초록 불은 없다
본문 속으로
수리부엉이 부부의 둥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소장은 ‘저쪽이 암컷, 이쪽은 수컷’ 하며, 수리부엉이를 구별했다. 박 형사는 수리부엉이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암컷은 하나뿐인 알을 포란 중이었고, 수컷은 둥지 밖으로 날아갔다. 먹이 사냥을 나가는 듯했다. 돌연 혼자 남아 있던 암컷이 알을 부리로 물더니 둥지 밖으로 떨어뜨렸다. 박 형사가 놀라자, 소장은 알이 상해 부화가 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금실 좋던 수리부엉이 부부라도 헤어지게 되는데, 보통은 암컷이 둥지를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화면 속 암컷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도카니 둥지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뒤 수컷이 둥지로 날아들었다. 암컷이 느닷없이 수컷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리로 쪼고 사정없이 발톱으로 할퀴었다. 둥지 한구석으로 몰리던 수컷이 급기야 깃털을 뿜으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리곤 어수선하게 공중을 선회했다. 박 형사는 자신이 수리부엉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수컷 수리부엉이가 자신의 보금자리 위에서 공회전하고 있다는걸.
박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수리부엉이가 머리 위로 내리꽂힐 것만 같았다. -「새를 부검하다」
서욱은 거친 유화의 질감이 살아있는 회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제목은 ‘조각가의 작업실의 메르쿠리우스’였다. 고대 조각가의 작업실이라는데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별다른 건 없었다. 전신 조각상 하나와 선반 위 흉상만이 그곳이 조각과 관련된 작업장 풍경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특이한 것은 메르쿠리우스라는 인물이었다. 해설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미아의 아들이었다. 로마신화에서는 메르쿠리우스, 그리스어로는 히르메스로 불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홀로 벌거벗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벗은 황갈색 몸이 달처럼 빛났다. 허리에 휘감은 주황색 천 조각과 머리에 쓴 작은 투구가 걸친 것의 전부였다. 그는 신의 심부름꾼이고 부와 행운의 신이었지만 도적의 수호자가 되기도 했고,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사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하필 조각가의 작업실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서양의 미술작품 속에서 신들의 모습이 벌거벗은 채 등장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서욱의 눈엔 그가 어린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메르쿠리우스의 달」
그런 영인에게 부대표가 직무를 미끼로 돈을 요구했다. 그녀는 부대표가 말 한 오백 같은 건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결심했다고 했다. 대표가 퇴임하기 전에 진짜 에코리더가 되어 보자, 폐건전지 수거 캠페인에서 우수 직원 표창을 받으면 시 산하 환경 단체의 보직을 받을지도 모른다. 결의에 차서 그런지 영인은 조금 눈물을 내비쳤다. 그런 영인을 보며 나는 그녀가 자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이미 넘어선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내게 남아 있는 에너지의 잔량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에코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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