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소설집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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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카테고리 : 한국소설
쪽 수 : 240쪽
발행일 : 2023. 12.22
ISBN : 9788982183324
가격 : 12600원
● 책 소개 :
황영경의 소설집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던 자리』는 기본적으로 회고의 시점이지만 한국 근대소설을 중심에 놓고 논의된 식민지 시대 도시문화사, 여성주의 등에 관한 근래의 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그만큼 성실한 취재와 조사, 고민이 수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이란 무엇이고 또한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관한 집요한 물음과 탐구의 자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터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담론에 편승한 클리셰적 결말이나 구태의연한 선형적(linear) 플롯으로 수렴되지도 않는다. 과거 문화적 유행이나 풍속에 대한 향수 어린 재현이나 굴곡진 현대사에 관한 그렇고 그런 알레고리 역시 찾아볼 수 없다. 회고 및 자전적 형식임에도 오히려 과거와 현재, 소설과 현실, 소설과 소설 간 경계를 부단히 교란하는 서술 방식과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작가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고백하는 과정에서 소설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본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밤 깊은 마포종점」, 「미나카이 백화점」, 「열두 살의 『선데이서울』」이라는 은례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느슨한 연작소설 구성의 삼부작은 그리하여 더욱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밤 깊은 마포종점」에서 1968년 은방울자매가 발표한 가요 「마포종점」이 이 단편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화자 은례의 외할머니 이은분 씨가 되뇌곤 하는 그 노래의 오인된 가사 “갈 곳 없는 이 거리”는 의미심장하다. 유년 시절 친정 식구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노래와 그림 같은 예술적 재기에 있어서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은분 씨는 시가와 결탁한 중신아비의 농간으로 뜻하지 않게 재취 자리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한량인데다 한때 축첩까지 자행한 남편 한동필의 수발과 뒤치다꺼리에 여념이 없었으며 셋이나 되는 전처 소생 자식들을 거두어 건사하는 한편으로 육 남매를 낳아 그중 넷을 장성시키는 삶의 역정 속에서 그녀가 마음 붙이거나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는 ‘거리’가 되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출판사 서평 :
「미나카이 백화점」은 은분 씨의 딸이자 ‘나’의 어머니 세대 한정임을 중심으로 한 단편이다. 하지만 이제 노년에 이른 정임을 중심으로 한 일가에 관한 회고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밤 깊은 마포종점」과는 다소 결을 달리한다. 즉 화자가 은분 씨와 외할머니 집에 관한 기억에 입각해 복원하고 있었던 생기 넘치는 원초적 구체성의 세계 대신 역사적 현실 및 리얼리즘이 얼마간 자리해 있다고 해도 좋다. 그래서인지 정임이 가장 빛나던 시절에 관한 회고는 미나카이 백화점이라는 역사의 장소를 매개로 이루어지며 학교와 직장 등에서 노래에 관한 재능과 일본어 능력으로 두루 인정받았던 식민지 시기의 여러 기억과 주로 관련되어 있다.
삼부작의 마지막, 그러니까 은례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열두 살의 『선데이서울』」은 앞서 두 편의 소설과는 별개의, 다소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은례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았던 담임 정상진 선생이 사실 방과 후 비밀 과외를 운영하면서 거기에 속한 부유한 집 아이들을 편애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을 계기로 유년의 순진무구한 세계 인식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나’에게 있어서 세상은 동화의 원리가 곧이곧대로 관철되는 곳이 아니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담임에게도 더없이 교활하며 추악한 면모가 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즉 세상의 이면 내지는 어른의 세계가 확실히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상과 명분으로 가지런한 동화나 학급문고, 외삼촌의 시사/문예 잡지가 아닌, 『선데이서울』의 선정적인 B급 뉴스가 환기하는 요지경 속 속물의 세계에 탐닉하게 된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수록된 단편들에는 그러한 존재들에 관한 애착 어린 수사가 관통하고 있다. 「오이지」에서 난치병으로 사망한 지인이자 에세이스트 은숙 언니의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하고자 하는 ‘나’의 소박하지만 애정 어린 결의는 이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하다. 「귀래」의 사라진 여승에 대한 집요한 관심 역시 예사롭지 않다. 과거에 사라진 이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 갑작스럽게 소환되어버린 계기에 관한 이야기인 「헛발」 같은 단편도 있다.
하지만 애수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녹두 장군을 닮은 사람」의 경우 한국전쟁 및 고도성장기를 관통하는 농촌 사회의 비관적인 현실이 가감 없이 그려지지만 어쩐지 백석의 시나 김기림의 「길」을 연상시키는 고향과 유년 시절에 관한 담담하고도 온정적인 노스탤지어의 분위기로 충만하기 때문에 그저 암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또 다른 가작(佳作) 「워싱턴 광장의 수지 이모」는 일반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치부로 여겨지는 소위 양공주 출신의 이모들에 관한 단편이다. 하지만 “인생은 엔조이야”라는 자신만의 금언에 입각하여 굴곡 많지만 결코 위축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해온 수지/김선자 이모의 면모에는 실로 예사롭지 않은 유머와 생기로 충만하다. 한때 휘황찬란하게 번성했으되 지금은 쇠락한 고랑포 마을처럼 어딘가 처연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과거의 그녀들은 지금 여기에서 생생한 색채와 질감을 가진, 결코 ‘억울하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복원된다. 이처럼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던 자리』는 작가 황영경이 전력(全力/前歷)을 다하여 추구해온 소설의 본령이 바로 지금은 없는 그들이 ‘있던 자리’를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되살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 목차 :
밤 깊은 마포종점
미나카이 백화점
녹두장군을 닮은 사람
워싱턴 광장의 수지 이모
열두 살의 『선데이서울』
헛발
오이지
귀래
해설 전력(前歷/全力)의 소설들 | 조형래
작가의 말
● 작가 소개 :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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