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일 소설집 『독도를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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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12월 15일
출판사 :도서출판 도화
ISBN : 979-11-92828-38-1*03810
페이지: 284쪽
가 격 :13,000원
이 소설은 -
소설 『표절』과 『베트남 탈출의 기억』으로 독자들에게 선연한 기억으로 남은 차호일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12편의 다양한 이야기가 다채롭게 그려지고 있다.
「不一門」은 보통 절에서 만나는 불이문이 아니라 불일문이 있는 절을 세운 남악파 마지막 스님과 불우회 일행인 화자의 인연을 그린 소설이다.
불우회는 자립이 쉽지 않은 절을 찾아가서 수리와 보수를 해주는 모임이다. 스님은 화자인 나에게 “불일이란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일어나므로 하나가 아니라는 이치를 알려주면서” 남악파의 후예가 되기를 원했으나 나는 외면하면서 삶의 고민을 절감한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고향을 찾아가는 시인의 심경을 과거 어린 시절 회상을 통해 감성적이면서도 연좌제 등의 비극적 서사로 서술하고 있다. 「그 하루 무덥던 날」은 40이 넘어 실직한 아들을 80이 넘은 아버지가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하는 인생의 진리를 값지게 들려준다. 「세로로 긴 그림」은 몇 번의 중국여행을 하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조합하여 “세로로 보는 세상은 수평의 눈을 가진 우리가 이해하기에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자의 일생」은 김 선생의 숙모를 비롯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여자의 일생은 본인이 여자로서 원하는 인생으로 살아지지 않는 운명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들려준다. 「두 개의 절망」은 몽골 여행의 양잡이 파티에서 만난 양의 슬픈 눈을 잊지 못하는 문 선생의 슬픔이 짙은 독백처럼 서늘하게 느껴진다. 「어두운 시간」은 중앙선 기차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로 우연히 만난 사내가 군대 선임하사로 확신하는 화자의 중첩적인 심리를 통해 출구 없는 마음의 오래된 길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여자의 마음」은 남편과 함께 국립극장에서 오페라를 본 여자의 이중적인 심리를 통해 엄마와 여자의 마음이 일으키는 갈등을 잔잔하게 들려준다. 표제작인 「독도를 읽는 시간」은 독도와 통일에 대한 작가의 탁견을 읽을 수 있는 수작으로,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만난 왕소군 씨를 통해 풀어가는 구성의 묘미가 색다르다. 「하마와 코뿔소」는 동물에게 가해지는 잔혹 행위를 방지하고,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동물보호연대 회원들의 이야기를 시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백제의 여인」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화자가 동해안별신굿의 전설적인 인물 김석출 씨와 그의 딸, 그리고 곰 토템 이야기와 여인의 이야기를 설화처럼 재미있게 들려준다. 「인간의 길」은 목회자들의 여행을 안내하는 베트남 가이드의 이야기로 “과연 신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신의 길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치킨게임」은 농장에서 계사(鷄舍)를 관리하는 화자의 하루하루를 견디는 삶의 무의미성과, 그가 계사에 사육하는 닭의 시선을 두려워하다가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화자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것임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처럼 차호일 작가의 소설 『독도를 읽는 시간』 은 허망하고 소용없는 일이어도 결국은 자기 몫의 절망과 고뇌를 끝까지 감수하는 것이 인생의 의무라는 것을 뛰어난 소설적 형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삶을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수동성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동성이라는 점에서 패배주의적인 운명론과는 다른 길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신의 마음 같은 숭고미와 신성성을 획득하면서 삶 또한 삶다워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충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욕망을 초월하려면 그 욕망만큼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독도를 읽는 시간』 과정을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문체와, 심리와 사건의 진행형으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질문 자체가 대답에 가까운 인물들의 일상과 사유를 조망하고 있다.
목차
不一門
고향으로 가는 길
그 하루 무덥던 날
세로로 긴 그림
여자의 일생
두 개의 절망
어두운 시간
여자의 마음
독도를 읽는 시간
하마와 코뿔소
백제의 여인
인간의 길
치킨게임
후기
본문 속으로
여지껏 그 어느 사적에도 발견되지 않은 관혜조사상이라는 글을 읽자 나는 순간 벌에 쏘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그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는 그 남악파의 관혜가 저렇게 석조상으로 남아 있다니? 순간 나는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을 열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왕건상과 해인사 희랑대사상을 나란히 전시한다고 해서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북한에서 왕건의 상을 대여할 수 없다고 하여 전시는 희랑대사상 전시만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북악파의 조사인 희랑조사상은 떳떳하게 남아 있음에 비해서 남악파의 조사인 관혜의 흔적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는데 그것이 남쪽 지리산의 남악파를 자처하는 한 허름한 절에서 보관되어 있다니? 이것은 문화재에 관한 한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不一門」)
황점으로 옮겨온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16살이었다. 대구까지 버스로 갔고 대구에서 생전 처음으로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가출했다는 것이 표가 났던 것일까?
서울역에 내리자 나를 잡아갈 것 같은 몇몇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조건 서울역 앞의 파출소로 들어갔다. 누군가 자신을 잡으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사정을 말했다. 일을 해야 한다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프다고, 그래서 그 주임에게 소개를 받아 간 곳이 인쇄소 직공이었다. 거기서 잔심부름을 하다가 사장님의 배려로 공부를 하게 되고 1년 만에 중학교, 또 2년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쉽게쉽게 시험에 합격하게 되자 나는 공부라는 것을 만만히 생각해 이내 대학에 갈 생각을 했고 야간 대학을 졸업하자 좀더 나은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오로지 출세만이 목표였다. 출세를 하면 서울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빨갱이의 굴레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세를 위해 달려온 세월, 그러나 회사의 높은 직위에는 오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늘 내게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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