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소설집 『언더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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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강
쪽수 : 252쪽
ISBN : 9788982183300
책 소개 -
김민주의 『언더고잉』은 정규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력서를 쓴다.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대부분이 기피하는 직장까지도 거절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고자 악전고투하는 인물들이다. 또 어떤 부당함이든지 과감히 뿌리치고, 타자의 삶을 배려하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자신의 생존조차 어찌할 수 없지만 불쌍한 길고양이들을 돕고 사회적으로 정당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주체적 인물들이다.
그들은 그런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윤리적 주체이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 생생한 살아 있는 체험을 몸에 각인하려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생생이 살아 있는 체험은 타자와 더불어 살 때 더욱더 시너지 효과가 난다. 문체 속, 자연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카이로스의 시간, 살아 있는 생명력을 느끼기 위한 들숨과 날숨이다.
문체를 통한 자연을 향한 들숨과 날숨, 타자들과의 연대 의식은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로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한다.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윤리적 주체로서의 종횡무진함은 한 개인의 삶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이면서 저력이다. 이 소설집의 작품에서 느끼는 활기는 윤리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 현실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세상과의 긴장감이다.
표제작 「언더고잉」의 세 인물인 작중화자, 지유, 링고는 각자 나름대로 가족, 혹은 학교, 사회로부터 받은 모멸감 속에서 살아온 인물들이다.
작중화자는 함바집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어머니로부터 한 번도 칭찬을 들을 적이 없다. 언니는 죽은 인물임에도 엄마의 머릿속에는 언니밖에 없다.
화자인 ‘나’는 언니 대신 칭찬을 받고 엄마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백일장 금상을 받은 날에도 엄마에게 전화, 칭찬을 듣고 싶었지만 욕설만 돌아왔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모멸감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삶의 방향을 상실하게 한다.
「벌레의 시간」의 초점화자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목숨의 일부를 바쳐서라도 직장을 구해야 한다. 상대 회사의 갑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맘 편히 발 뻗고 누울 방 한 칸을 위해,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가난의 비교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벌레의 시간을 견딘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인격이나 배려, 존중 같은 가치는 사치이다. 가난은 명백한 죄라고 하는 투자 광고를 보라. 생명과 돈이 저울질 되고, 돈은 무소불위가 되었다. 신문에서는 연일 노동자의 죽음을 떠들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돈 대신 시간이 지불되고, 욕망과 정열, 이성과 감성을 마비시키고, 인생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통찰력을 마비시키는 사회이다.
「버터플라이 허그」의 초점화자 경주는 교통사고로 부모님은 죽고, 자신은 내장 파열로 수술 후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 척추 수술을 했지만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대학원에서 휴먼 융합 전공 후 가상현실 제작 기술회사에 취업, VR 엔지니어로서 재활 치료 게임 제작자가 되었다.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다. 방에 떨어진 조그마한 물건 하나 줍는데도 죽을힘을 다해야 가능하지만 순간순간을 살아 있는 듯 살고 있다. 그러나 비록
하반신 마비로 흴체어를 타고 다니고, 무엇을 하든 죽을힘을 다해야 하지만, 다양한 환자들의 치유를 위해 가상현실에서 최선의 노력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생생히 살아 있고자 하는 인물이다.
「라임 나무가 되어」의 초점화자 초희가 근무하는 서울의 구시가지 역에서는 거친 말과 고성 외에는 공격 아이템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시비를 따지고 싶은 것은, 왜 백 원짜리가 두 개 더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느냐가 아니라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만 가는데 이 기계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냐고, 너희들까지 나를 무시하냐고, 다른 사람들은 희희낙락 잘 사는데 왜 내 인생만 이렇게 꼬이느냐고 트집 잡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 승강장 터널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입, 나중에 업무 과실치사로 억울하게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기관사 등, 익명의 시스템을 통해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작업 지시 앞에 인격의 비하, 삶 전체가 휘둘린 정도의 위기감 속에서 크고 작은 모멸감을 느끼며 사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초희나 동생 종희가 힘든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자연과의 일체를 통해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일을 쉬는 날에는 요가를 하고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빵을 만들고, 라임 차를 마시며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을 통해 건강한 의식을 가지게 된다. 또 엄마와 동생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을 통해 가족애를 가진다. 가족 간에 나누는 따뜻한 사랑은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토대가 된다.
『언더고잉』의 인물들은 타자를 향해 활짝 열린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만찬」의 ‘나’는 결혼할 남자의 동생이 도박 관련 사기죄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속이고 결혼하려고 했다는 것으로 결혼을 취소, 포기한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집 주위의 길고양이에게도 세심한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화살이 누운 자리」에서는 딸과 사위를 잃고 손녀만 키우는 이장과 딸을 잃은 후 아내까지 떠나고 혼자 남은 ‘민수’가 이장 손녀를 자신의 잃은 아들처럼 돌보는 것을 통해 훼손되고 상처받은 두 가족의 연대를 전망하게 한다.
후기 자본주의 노동 사회에서 누구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은 새로운 억압 사회의 피로를 가져온다. 과도한 책임은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으로 드러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주체적인 윤리감이 필요하고 삶의 충만감이 요청된다. 충만감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이 주는 살아 있음의 체험은 확대되어 타자와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살아 있음의 체험을 타자와의 유대 속에서 가질 때 기쁨이 배가된다. 꿈을 잃은 세대의 서사, 『언더고잉』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타자와의 연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충만함은 꿈을 읽은 세대에게는 깊은 산골짜기로부터 흘러내리는 생수이다.
목차 -
언더고잉
라임 나무가 되어
벌레의 시간
버터플라이 허그
특별한 만찬
화살이 누운 자리
날숨
봄의 제단
해설 윤리적 주체와 카이로스 시간 | 이덕화
작가의 말
작가 소개 – 김민주
대구 출생. 상명대학교 대학원 소설창작학과 석사.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석 <탱고>,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신의 자장가> 당선.
소설집 <화이트 밸런스>, 앤솔러지 <쓰다 참, 사랑>, <버터플라이 허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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