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말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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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여자
이 책은
첫 소설집 『마애암 골짜기』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각인시킨 신종국 작가가 펴내는 두번 째 소설집이다. 첫 소설집에서 가난, 죽음, 공포, 트라우마, 폭력이 도사린 난폭한 세계와 이 속에서 우연과 숙명을 조우하는 인간상을 문제적으로 보여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말하는 여자』에는 「뛰는 아이」, 「물속 바람계곡」, 「말하는 여자」, 「인철이」, 「식복사 젬마」, 「한 줌의 빛」 등 여섯 단편을 싣고 있다.
「뛰는 아이」는 이혼으로 친모와 계부로부터 외할머니에게 맡겨지는 아이의 심리를 이야기하는데, 아이의 심리를 설명하지 않고 아이가 뛰는 행위로 제시하고 있다. 아이의 외할머니 집을 찾아가는 서술의 과정은 결말에서 아이를 두고 오던 밤길에서 새끼 고라니가 차에 부딪히는 사건으로 일순 반전의 계기가 된다. 로드 무비의 한 장면처럼 계부가 아이의 이름을 외치는데 ‘뛰는 아이’의 이미지가 그와 무연한 사고와 더불어 연상된다. 소설은 기아와 죽음이 아니라 다시 만남과 돌봄의 가치를 은근히 부각한다.
「물속 바람계곡」은 고통사고로 아이의 죽음을 목도한 여성이 그 사실을 부정하며 이전의 기억에 고착한 상태로 미친 듯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어촌마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석준은 외부자일뿐더러 여름 한 철 한시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 편의점의 점장과 여러 고객을 살피고 그들의 행태를 전한다. 소설의 초점이 “죽은 자의 눈빛”을 한 여인에게로 옮겨지면서 소설의 무대가 편의점 일대에서 바닷가 정자로까지 확장한다. 여인은 아이를 잃고 남편과 이혼을 하였지만 여전히 아이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인연이 있는 편의점 점장에게 따지거나 주위를 맴돌며 알콜 중독에 실성의 모습이다. 석준의 시선을 따라가는 추리기법을 내포한 이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그녀의 “미친” 상태와 삶의 내력이 점장의 진술로 알려진다. 여성이 지닌 트라우마를 알아가는 과정이 점층적인 플롯을 이끌며 영화 속 장면의 변환처럼 여러 장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표제작인 「말하는 여자」는 선자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부당한 위해와 폭력으로부터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상처와 고통을 준 상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행위를 통하여 외상성 신경증을 해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아인 선자에게 혈육 못지않은 보살핌과 사랑을 준 이는 보육원에서 만난 ‘순영 언니’뿐이다. 하지만 갑자기 퍼진 자궁암으로 이 년 전에 순영 언니가 죽자 이혼 후에 혼자 살아가는 선자에게 기댈 언덕은 사라진다. 순영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착취하며 지배하는 남성뿐이다. 이렇게 외부로부터 가해진 상처와 고통이 마침내 그녀의 내부로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 플롯이다.
「인철이」의 주인공 인철이는 돌이 지날 무렵 병으로 아버지가 죽고 중1 때에 엄마가 도망간 뒤에 계부에게 폭행을 당하다 보육원에 가서 성장한 고아다. 인철이가 공장에서 만난 미자는 강간으로 임신한 아이를 미혼모로 기르지 못하고 입양한 사연이 있어 인철이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이 둘 사이에 놓인 인물이 공장 사장 봉수이다. 소규모 기계부품 공장에서 자행되는 노동 착취와 성적 폭력이 주된 이야기이다. 성적 폭력은 남성인 봉수가 미소년 같은 인철이에게 가하는 성적 폭력이다. 이처럼 신종국 작가의 소설은 유년의 상처나 성장 과정의 질곡에 관심이 유난하다.
「식복사 젬마」는 소아마비로 신체적 불구를 안고서 고아로 자란 한 여성이 지닌 영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가공이 아니라 실화에 기반하였다. 방언을 하고 타인을 치유하는 은사를 입은 늙은 여자 젬마는 성직자인 신부들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배제되며 마침내 남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입은 암으로 가지산 자연치유원에서 쓸쓸하게 죽고 만다. 주인공인 젬마는 오직 유미의 기억에 남을 뿐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대목은 영성이 작동하는 영역이 여성에 한정된다는 사실이다. 젬마는 치유와 더불어 여성의 낙태 이력을 인지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의 행위가 남성에는 미치지 않는다. 남성은 죄와 악, 타락과 훼손의 편에 있다는 의미가 없지 않다.
「한 줌의 빛」은 아들과 사별한 며느리를 위하여 손자를 챙기는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아침이면 며느리의 아파트로 가서 교사인 며느리가 출근하면 손자를 챙겨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며느리의 집을 청소한 뒤에 집으로 와서 낮 동안 잠시 쉬다가 다시 손자를 데려와 돌보다 저녁에 며느리가 귀가하는 데 맞춰 되돌아오는 하루의 일상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삶은 며느리의 재혼과 더불어 크게 흔들리고 만다. 이후 여러 달이나 아이를 보지 못하자 정신이 다 혼미해진 노인은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마침내 며느리가 새 남편의 성과 본을 따라 손자의 성본을 변경하면서 노인은 절망하게 된다. 거듭 손자를 만나려는 노인의 애달픈 행보가 계속되지만 이를 두고 며느리와 갈등만 커지다가 죽음을 맞는다.
이처럼 신종국 작가의 『말하는 여자』에 나오는 인물들의 형상은 첫 번째 소설집 『마애암 골짜기』에서 등장하던 인물들의 숙명과는 다르다. 오로지 외부의 장력을 걷어내고 주체로 우뚝 세우는 울림이며 자기를 말하게 하는 힘이다. 숙명은 소설에서 결정론으로 작동한다. 태생의 조건, 죽음, 폭력의 얼굴을 한 이것은 여성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더 가혹하다. 현실은 이와 같은 숙명에 익숙하지만 신종국 소설가는 이를 낯설게 바라보며 신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신종국 작가의 소설은 난폭한 숙명의 세계를 마주한 인물의 삶과 행위와 말을 건져내고 있다. 그는 밝은 대낮의 세계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두울수록 보이는 배면의 삶을 드러내고 보여 준다.
<목차>
뛰는 아이 / 7
물속 바람계곡 / 37
말하는 여자 / 69
인철이 / 97
식복사 젬마 / 145
한 줌의 빛 / 179
해설
난폭한 세계와 마주한 삶의 비의 / 213
작가의 말 / 229
<추천의 글>
「뛰는 아이」와 함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끝에 「한 줌의 빛」이 걸려 있다. 첫 작품부터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애절한 울림이 깊고 아프다. 시작점과 출구의 대비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6편 모두 퍼즐 조각처럼 꼭 들어맞는다. 작가는 리얼한 일상을 입혀 입체적인 전개와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려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6편 모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아주 선명하다. (소설가 배이유)
그의 소설 좌표는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리얼리티를 넘어 존재의 깊숙한 속살까지 제시한다. 동시에 작가는 낮은 데서 임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여주며 ‘그들도 사람이다!’라고 외친다. 낮은 자들의 외침 속에도 삶의 아름다운 무늬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눈 밝은 독자라면 그 무늬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희열에 가득 찰 것이다. (소설가 황인규)
신종국의 소설은 난폭한 숙명의 세계를 마주한 인물의 삶과, 행위, 말을 건져내고 있다. 그는 밝은 대낮의 세계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두울수록 보이는 배면의 삶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소설의 방법은 숙명의 결정론에 맞서 생동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인물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문학평론가 구모룡)
<작가의 말>
이런저런 부대낌의 와류 속에 나는 삶의 이면, 생존하려 발버둥치는 충혈된 눈들을 더욱 직시했고, 버림받은 열패에 어찌할지 몰라 서성대기만 하는 그들 소외된 자들의 심장 소리에 주목했다. 그 역시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내가 또 그들이었다.
지난 작품집 『마애암 골짜기』에서 우리 사회의 생존 조건과 개별 노동상황의 지난함에 천착했음과 비교하면, 이번 『말하는 여자』는 사뭇 다른 관점들이라 나의 새로운 고집이 다 들킨 기분이다.
이미 썼던 책, 쓴 글의 미흡함 때문에 살기 싫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죄책감에 목을 죄거나 자학하진 않기로 한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공범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전인미답의 글 소재와 주제는 우리들 머리 위 찬란하고 무수한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더 생각하고 더 고민해서 미래의 나도 계속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내 문학의 길은 그 길뿐이다. 더 단단히, 더 짱짱하게 벼려진 정신으로 인간이 무엇인지 헤치고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 소개>
부산 영도 출생. 경남중, 동아고, 경북사대, 부산대교육대학원(수료), 한국교원대(석사)를 거쳐 남해여고 초임 2년 후 부산에서 교원, 시교육청 장학관 등 교육자로 35년을 삶. 1987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가대기의 노래」 당선. 소설집으로 『마애암 골짜기』, 『말하는 여자』,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영화화된 ≪미친 사랑의 시간≫, 영화 ≪무사≫의 원작이 된 ≪뇌우만리≫ 및 다수의 영화칼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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