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물셋,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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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
일상에서 그려내는 다채로운 생각의 무늬들
서용좌 작가의 산문집 『스물셋,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푸른사상 산문선 56으로 출간되었다. 수필의 나이 스물셋에 이르기까지 매년 써온 글을 묶은 이 책은 저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살아 숨 쉰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무늬를 그려내는 저자의 상념과 단상들이 펼쳐진다.
작가의 말
지금으로서는 이만큼 썼으므로 이만큼 썼노라고, 누구라도 필위 잘 쓸 수는 없노라고, 정직하면 되리라는 어설픈 변명으로 소설들을 더구나 감히 산문집을 내놓습니다. 어쩌면 무지가 용맹이 아니라, 부족을 인내한다는 의미에서 겸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산문집과 같은 시간에 세상을 맞닥뜨릴 장편소설 『날마다 시작』도 마찬가지 마음으로 떠나보냅니다. 언제나처럼 미술을 전공한 둘째가 그려주는 표지에 숨어, 느슨한 또는 된 말들, 묽은 아니면 진한 글들이 숨 쉬고 있기를 바라면서, 저는 숨을 죽입니다.
사족, 아니 본론입니다. 더 어설픈 이 산문집은 무슨 마음으로 무슨 권리로 내놓는가 부끄럽습니다. 소설가라고 불리기 시작하자 한국소설가협회를 시작으로 한국문인협회며 국제PEN한국본부 등 문학단체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것이 상례인 줄 알았습니다. 몇 안 되는 그들 중 이대동창문인회에서는 회원들 등단 장르를 막론하고 매년 수필을 한 편씩 모았습니다. 수필을 쓴 경력이 전혀 없이도 수필이라고 하는 글을 쓰도록, 회원의 의무라고 하시는 선배들의 격려(?) 또한 엄중했습니다. 그렇게 수필 나이 스물셋에 모인 글들을 내놓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답을 얼버무릴밖에요. 속내는 발화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흠결 많았을 젊은 날들을 걱정하면서 어쩌면 더 많은 흠결을 쌓아가고 있는 오늘입니다. 무심한 이 사람과 몸과 맘으로 닿아 있는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족, 아니 본론입니다. 더 어설픈 이 산문집은 무슨 마음으로 무슨 권리로 내놓는가 부끄럽습니다. 소설가라고 불리기 시작하자 한국소설가협회를 시작으로 한국문인협회며 국제PEN한국본부 등 문학단체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것이 상례인 줄 알았습니다. 몇 안 되는 그들 중 이대동창문인회에서는 회원들 등단 장르를 막론하고 매년 수필을 한 편씩 모았습니다. 수필을 쓴 경력이 전혀 없이도 수필이라고 하는 글을 쓰도록, 회원의 의무라고 하시는 선배들의 격려(?) 또한 엄중했습니다. 그렇게 수필 나이 스물셋에 모인 글들을 내놓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답을 얼버무릴밖에요. 속내는 발화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흠결 많았을 젊은 날들을 걱정하면서 어쩌면 더 많은 흠결을 쌓아가고 있는 오늘입니다. 무심한 이 사람과 몸과 맘으로 닿아 있는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책 속으로
과거의 시간들이 기억으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한, 현재의 시간에 자유의 공간이 줄어든다. 미래의 시간이 기대로서 현재에 존재하는 한, 그 또한 자유의 공간을 줄인다. 과거 때문에도 미래 때문에도 자유롭지 못한 인간 존재가 여기에 있다. 나의 내적 자유여-자판 위를 열에 들떠 떠도는 열 손가락들은 한 조각 자유를 토로해낼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이름 석 자의 피복 속에서 자유를 꾸며대고 있을까? (「내적 자유」, 54~55쪽)
복숭아 껍질을 벗긴다. 아직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따 들인 것들이라 당도도 높고, 무엇보다 벗겨 드러난 속살에서 물기가 두둑두둑 듣는다. 두 개를 벗길 양이면 늘 어느 하나가 더 먹음직스럽다. 너무도 당연히 더 맛있어 보이는 쪽을 당신의 접시에 올려놓으면서 느낀다. 누군가에게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을 내밀면 그것이 사랑일 것. 나란한 두 베갯잇을 새로 갈아 끼우면서 풀기 더 고슬고슬한 쪽을 그리로 밀어놓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 이 시시한 진부한 존중이 어우러져 나란히 서 있는 평행선. (「평행선」, 85~86쪽)
갑자기, 너무나 늦게 깨닫는다, 얼마나 서운하셨을꼬. 인생이 뭘까. 인생관이 다른 딸을 두고 평생 얼마나 참담했을꼬. 단 한 톨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이제는 없다.
나 홀로. 이제 나 홀로다. 나는 또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야 할까. 아름다운 관계를 얻기 위해 얼마나 나를 죽이고 참아야 할까. 내 멋대로,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 ‘엄마’가 이제는 없다. 49재를 지났으니 어딘가로 정말 떠나시고 없다. 머리에 꽂았던 하얀 리본이 타들어 가는 초라한 불꽃과 함께 영영 떠나버렸다.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 101~102쪽)
복숭아 껍질을 벗긴다. 아직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따 들인 것들이라 당도도 높고, 무엇보다 벗겨 드러난 속살에서 물기가 두둑두둑 듣는다. 두 개를 벗길 양이면 늘 어느 하나가 더 먹음직스럽다. 너무도 당연히 더 맛있어 보이는 쪽을 당신의 접시에 올려놓으면서 느낀다. 누군가에게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을 내밀면 그것이 사랑일 것. 나란한 두 베갯잇을 새로 갈아 끼우면서 풀기 더 고슬고슬한 쪽을 그리로 밀어놓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 이 시시한 진부한 존중이 어우러져 나란히 서 있는 평행선. (「평행선」, 85~86쪽)
갑자기, 너무나 늦게 깨닫는다, 얼마나 서운하셨을꼬. 인생이 뭘까. 인생관이 다른 딸을 두고 평생 얼마나 참담했을꼬. 단 한 톨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이제는 없다.
나 홀로. 이제 나 홀로다. 나는 또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야 할까. 아름다운 관계를 얻기 위해 얼마나 나를 죽이고 참아야 할까. 내 멋대로,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 ‘엄마’가 이제는 없다. 49재를 지났으니 어딘가로 정말 떠나시고 없다. 머리에 꽂았던 하얀 리본이 타들어 가는 초라한 불꽃과 함께 영영 떠나버렸다.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 101~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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