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애플망고
페이지 정보

본문
최정원 작가 단편소설집 『애플망고』 _출간 <도서출판카논>
“You came to me and my painful soul blossomed.”
아홉 편으로 구성된 단편집 애플망고는 각각의 화자들이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을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 『마지막 수유 시간』에서는 화자가 ‘햇생명냄새’ 로 가득 차 있다고 표현한 갓난아이와 그 아이를 돌보는 아이돌보미와의 관계를 통해 나의 아픔이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어떻게 피어날 수 있는가를, 그러면서 동시에 내 삶의 헛헛함을 일깨우는 그 상대적 존재를 어떻게 질투할 수도 있는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정원 작가가 펼쳐 놓은 세계는 그렇듯 단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삶은 아름다운 것 아닐까, 하고 말하는 화자의 펜 은 상처로 얼룩진 잉크통의 먹물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모순처럼 써 내려가는 삶의 고통과 그 안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생에 대한 끈질긴 긍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에.
그래서 결국 무엇을 말하는 걸까, 싶을 때쯤 작품 속 화자는 놓을 수도 붙들 수도 없는 삶의 아이러니에 대해 혼잣말 하듯 “아가, 너를 어쩌면 좋으니?”라는 말을 남긴다.
두 번째 작품 애플망고에서도 화자의 삶은 상처로 얼룩져 있고 가장 큰 얼룩은 ‘남편의 죽음’이라는 흉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은 화자에게 보기 흉한 흔적만을 남겨 놓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 우주(宇宙), 넓고 넓은 그 존재를 통해 화자는 삶 너머의 의미를 깨우치게 되니까. 그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긍정 그 자체를 넘어선, 생 그 자체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만도 같다.
그 외에 『손』, 『기이한 인연』, 『팔찌』에서도 화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죽음을 주요한 소재로 끌어들여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렇듯 최정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화자는 생의 작별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작별을 고한 사람들은 아니다. 삶이 여기 있다, 죽음은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생의 굴곡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 화자들이니까.
물론 애플망고 속 작품이 모두 생과 죽음만을 다루는 무거운 작품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나비바늘꽃』, 『땜빵』, 『성 재활 교실』 등에서는 젊은 남녀의 풋풋한 사랑, 삶의 황혼을 맞이하게 될 중년 부부의 곰삭은 정과 연민, 단순한 육체의 사랑을 넘어 상대에 대한 배려와 교감의 진실함 그에 바탕한 아름다운 몸의 대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끝으로 『한련꽃이 피어 있는 언덕』을 통해서는 세련된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구성 끝에 맞이하게 되는 한 장면, 해가 저문 시각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무척이나 생기발랄하게 어둠을 빨아 들이며 피어나는 한련꽃밭을 우리네 삶 중심으로 훅 끌어들이며 마무리 했는데 그것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삶의 한 장면으로 우연을 가장한 삶의 틈, 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만 같다.
이렇듯 삶은 느닷없고도 엉뚱하며 때로 고통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밭을 갈아 생긴 파도 모양의 굴곡에서 높아진 부분을 ‘두둑’, 반대로 깊이 팬 쪽 은 고랑이라고 하던가. 그렇게 두둑과 고랑이 만나 함께 이룬 공간을 ‘이랑’이라고 한다. 생은 한결같은 듯하면서도 변화무쌍하고 변화무쌍한 듯하면서도 한결 같다. 우리네 삶은 거처할 곳 없이 떠도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는 따스한 기억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날숨을 뱉으며 이 말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삶이라고, c’est la vie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저마다 삶의 두둑 그리고 패인 고랑을 반복해서 거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랴, 그것이 삶이기에 우리는 갓난아이의 볼 보다 작은 햇살 한줌에도 삶의 씨앗을 이랑에 뿌리며 생을 일군다.
작가 소개 - 최정원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석·박사 졸업
2017년 -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저서 - 『울새가 노래하는 곳』, 『융, 오정희 소설을 만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