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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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폭격하라
옛 관성에 젖어 낡은 사고의 틀안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역사의 방향을 놓치기 쉽다, 필자는 겸허히 역사 앞에서 행동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더듬어 진실을 담아내려 한다.(필자의 말)
해방과 6.25, 70년대를 관통해온 굵직한 서사구조의 중편소설집
이계홍 작가의 ‘해인사를 폭격하라’...도서출판 ‘도화’ 간행
주로 굵직한 대하 장편소설을 써온 이계홍 작가가 최근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를 도서출판 도화(값15,000원)에서 펴냈다. 이 중편소설집은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 ‘해인사를 폭격하라’, ‘귀국선 우키시마호’ ‘인지 수사-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 등 4편으로 구성돼있다. 이들 작품은 작가가 장편소설을 쓰다가 만난 우리 역사에서 특이한 소재와 중요한 사건을 묵혀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으로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하여 집필했다.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역사적 맥락과 해당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로 평가된다. 선 굵은 서사구조와 단단한 스토리 텔링이 독자를 견인한다. 동시에 역사와 시대를 넘어서는 존재로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고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의 언론사 경력이 말해주듯 기자적 현장성과 작가적 상상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들로 독서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문제작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는 송안나(본명:송숙자)의 기구한 운명을 1970년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진한 남도 사투리와 거친 욕찌거리로 사람 냄새 짙게 풍기는 이야기다. 속칭 양갈보로 살아온 송안나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한 생애에서 암초를 만나는 주요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을 만나 따뜻하게 살아갈 날을 기다린다. 작가의 열망이 작품 제목 ‘순결한 여인’으로 승화되고 있다.
몸을 파는 여자로서 ‘고정간첩 공모자’로 찍혀 감당하기 힘든 고문과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 현장 묘사를 통해 작가는 시대의 야만에 눌려 불행이 오는 방식이 야속하상만, 우리 인생에서 불행은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시대의 초상’이라는 아픔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불행이 불행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삶의 방식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송안나의 삶을 통해 당대 정치사회적 상황과, 주변에까지 확대되는 불행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도록 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소재의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걸쭉한 남도 사투리와 욕찌거리를 의도적으로 대화에 끼워넣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들이 당대의 서사구조에 가감없이 소화되는 매력도 지니고 있다.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로 군인에 관한 인물전기를 많아 쓴 작가의 장점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미5공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천년 고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킨 한국 공군 전투조종사의 모습을 실제 전투를 하는 듯한 실감나는 표현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냉정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가난한 나라의 당대 군대 모습을 그대로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 소설은 장지동과 김영대라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균형 축을 이루는 주변 인물들을 개성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군인이라는 직분에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들이 전쟁을 통해 ‘민족장교’로서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펼쳐나가는 웅혼한 기상도 살펴볼 수 있다.
미5공군이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첩보를 접하고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천년고찰 해인사에는 우리의 정신사가 응축된 ‘팔만대장경’이 소장돼있고, 이 문화재가 소실되면 안된다는 절박감으로 끝내 명령을 거부한 두 한국 공군 장교의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를 가슴 여미게 한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국의 아픈 현실과 이를 극복해가는 의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나라의 전통적·문화적 인식없이 단순히 전투 승리의 목표달성주의에만 매몰된 외국군의 태도야말로 얼마나 해당국의 자존감을 모욕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비정하고 잔혹한 전쟁 상황에서도 군인으로서의 소명과 우리 것을 지키려는 투철한 민족의식이 젊은 공군 장교들의 혈관에 관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담대한 서사로 제시하고 있다. 청년 장교들의 애국정신과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군인으로서 ‘사나이’의 기질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만, 동시에 가슴 따뜻한 휴매니티도 펼쳐져 헌걸찬 군인정신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한국 전투조종사들의 폭격 거부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고스란히 지켜졌으며, 이들의 뜻을 기리는 공적비가 해인사 경내에 세워져 있다.
「귀국선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1호 귀국선인 우키시마호가 폭발해 침몰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8천 명이 넘은 사람이 승선했는데 생존자는 불과 이천여 명 밖에 안된다고 전해지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작가는 미군이 설치한 수중 기뢰 때문이든 패전한 일본의 방치와 외면으로 침몰했든, 수천 명이 수장된 사실과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을 매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조선인 일본 육사생도들이 일본 패망과 함께 귀국하는 과정에서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마이스루 군항 앞바다에서 폭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난자를 구하러 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소설적 허구에 논픽션 형식을 취해 현실감을 더해주는 구성 기법을 취하고 있다.
정확한 사망자 명부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고 실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가운데, 작가는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퍼즐 맞추듯 진상을 맞춰가고 있다. 조국을 잃은 나라의 백성으로 점령국의 나라에서 징용자로, 종군위안부로 힘들게 살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집념이 인물들의 성격이나 묘사를 통해 강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인물들이 사건의 실체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여 진실을 갈구하는 작가의 탐구정신이 잘 맞닿아있다.
승선자 중에는 북해도 강제 징용자, 해녀, 만주와 사할린에서 종군위안부로 살았던 조선인 처녀들이 있었으며, 작품 속에서 이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패전한 일본의 허무주의적 좌절과, 그로인한 전후 처리의 방임과 무책임으로 귀국선의 항행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런데 일본 연근해 마이쓰루 군항 앞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이때 희망을 품고 귀국하던 조선인들 수천명이 수장되고 만다. 조국은 무정부 상태의 진공상태로 조난자들을 구할 어떤 의지도, 대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패전으로 폐교된 조선인 일본 육사 생도들이 귀국길에 현장 출동하여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리고 복수극을 벌인다. 조난자들을 대변하는 과정이 실화적 요소와 함께 전쟁의 광기를 고발함으로써 한일 관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지 수사」는 남의 문중 땅에 몰래 묘를 쓴 사람과의 소송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우리로 하여 비판과 냉소의 형태가 현실의 어떤 순응과 체념의 경로를 거치는가를 심도 있는 내면과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의 문중 땅을 무단으로 점령한 자의 묘를 해결하지 못하는 재판 앞에서 패배의식을 느껴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이 본인도 납득하지 못하게 결말없이 끝나는데, 그런 가운데 무단 묘는 그대로 주인공의 문중 땅에 그대로 존속된다는 점이다. 상황을 보면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이끌어가는 재판과, 수긍할 수 없는 법에 지배되는 과정, 법적 인과율의 억압적인 상황을 주인공의 ‘독백’으로 폭로하고 있다. 결국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법과 제도라는 장치가 장애물이 되고 마는 윤리적 허무주의를 증폭시킨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이계홍 작가의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여러모로 문제적이다. 역사적 사실의 기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조건과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의 정신의 투영과 상처 입은 자들을 함께 보듬고 안아 더불어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는 푯대로 우뚝하다. 그리고 고통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그것을 허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길러내는 가쁜 숨결로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목차
작가의 말 _ 진실을 탐구하는 작업의 쾌미
순결한 여인 / 11
-1970년대 풍경화
해인사를 폭격하라 / 87
귀국선 우키시마호 / 153
인지 수사 / 263
-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
작가 소개
전남 무안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졸업,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74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으로 문단 데뷔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문화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서울신문 논설위원, 수석편집부국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창작집>
소설집 『틈만 나면 자살하는 남자』(1992. 책나라), 중편집 『비껴앉은 남자』(1993. 신원문화사), 소설집 『밑천』(1994. 문학아카데미), 장편소설 『초록빛 파도』(1994. 아사달의 꽃), 소설집 『서울 노마드』(2016. 문학나무), 대하 역사소설(5권) 『깃발-충무공 금남군 정충신』(2020. 범우사), 역사소설 『불타는 나라』(2020. 8-2021. 12 인터넷 매체 오피이언타임스 연재), 대하 장편소설(4권) 『고독한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2022. 범우사), 역사소설 『장만』(3권)(2023. 글로벌마인드)
<인물평전>
『이계홍의 휴먼스토리』(2004. 모아드림· ‘신동아’ 연재 ‘이 사람의 삶’을 묶은 인터뷰집), 인물전기 『장군이 된 이등병 최갑석』(2005. 화남출판사·국방일보 연재물 이등병이 장군이 된 최갑석 이야기), 인물전기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 켜고』(2006. 이미지북·국방일보 연재물. 전공군참모총장 장지량 장군 이야기), 인물전기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前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장군 전기(2007. 1-10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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